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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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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매주 금요일자에 [책·지성 섹션]이 타블로이드판으로 따로 나갑니다. 거기에 《손병목의 독서퍼즐》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제 이름을 딴 코너라 쑥스럽지만, 그런 만큼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퍼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몇 주 됐습니다. 첫 주에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음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그리고 《공산당선언》을 실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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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매주 금요일자에 [책·지성 섹션]이 타블로이드판으로 따로 나갑니다. 거기에 《손병목의 독서퍼즐》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제 이름을 딴 코너라 쑥스럽지만, 그런 만큼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퍼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몇 주 됐습니다. 첫 주에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음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그리고 《공산당선언》을 실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실립니다. 이 퍼즐은 아주 일상적인 단어를 주로 사용하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친숙하게 다가갈 기회를, 읽어본 사람에게는 되새겨 볼 기회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책 선정은 가급적 널리 들어봤던 책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읽어본 책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회분의 퍼즐은, 널리 알려진 책,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 읽어보지는 않았을 수도 있는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많이들 읽어본 책 중에서 하나 선정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린왕자》를 고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린왕자》의 리뷰를 쓰는 건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차라리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대다수분들이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이 속이 편합니다. 옛날 중국의 천재화가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가장 그리기 쉬운 건 귀신이요, 가장 어려운 것은 개나 말이라고. 귀신은 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그리든 상관이 없지만, 사람들 가까이서 늘 함께하는 개나 말은 잘못 그리면 심하게 욕을 먹을 테니까요. 《어린왕자》에 대해 한마디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린왕자》의 줄거리는 대부분 알고 있을 테지요. 심지어 우리 어린 딸조차도 초간단 요약본 《어린왕자》를 읽고 있으니까요. 혹시 아직도 기회가 되어 읽지 못한 분이라면 서점에서 매우 쉽게 구할 수도 있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면 삽화를 포함한 전문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가 의도적으로 어른들을 위해 쓴 동화입니다. 그 대상은 분명히 어른입니다. 읽기가 쉬워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맑고 깨끗한 유년 시절보다는 세상에 어느 정도 찌든 다음에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이것도 어른의 생각일 뿐인가요? 손바닥만한, 정말 말도 안 되는 - 이렇게 말하는 순간 저는 이미 어른입니다 - 조그마한 별의 어린왕자가 여러 별들을 떠돌다 지구에 옵니다. 지구에 오기 전에 이미 어린왕자는 어른들에게 해야 할 말을 이미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혼자 뿐인 왕과 허영심 가득한 남자, 주정뱅이, 상인, 가로등 관리자, 지리학자 등. 더 설명드리는 것은 사족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구에 와서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 - 그러니까 작중 화자 - 를 만나게 되고, 여우를 만나고, 뱀을 만나고... 나중에 그 뱀에 물려 죽은 듯 사라지게 되고... 그런데, 그는 왜 자그마치 1년 동안이나 지구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가 자란 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별이었으니 대충 둘러보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테지요. 그래도 그의 성격을 보자면 쉽게 넌절머리를 내고 돌아섰을 법한데도 1년을 기다립니다. 그가 왔던 별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때를 기다린 것인가요? 그 1년 동안 지구에서 그는 '관계'를 배웁니다. '관계맺기'란 다름 아닌 '길들이기'입니다. 나와 너가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에게 길드는 과정이며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훗날 아픔을 동반할 수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의미는 곧 가치이고, 그러나 그 가치는 곧 아픔과 교환되기도 합니다. 그 아픔을 익히 알면서도 그는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갑니다.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그 장미 한 송이를 찾아서. 읽을수록 두루두루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입니다. 중언부언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책이지요. 그러나 엉뚱하게도 제가 《어린왕자》를 읽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언젠가 나도 내 책을 쓰면서 스스로 삽화를 그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판본을 보아도 똑같은 그림, 그것은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달을 보라고 하면 손가락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몇 번이나 반복하여 말하는 어린왕자의 말을 듣고서도, 겨우 든 생각이 이 정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부러워하는 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어른입니다.
n******8 2005.1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