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막 - 바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한여름의 뜨거운 바람에 대지가 바싹 말라붙으면 사람들은 물을 찾아 우물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계절풍이 비를 몰고 오면 그제야 모래 언덕으로 돌아옵니다. 바람의 사람들에게 비는 그야말로 생명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다운 비가 2년 동안이나 내리지 않기도 합니다. 추울 때는 영하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더울 때는 섭씨 50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러한 척박한 사막에서도 주인공 샤바누는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씩씩한 열두 살 소녀입니다. 가족과 낙타가 한 식구가 되어 비를 저장하고 아껴 먹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비록 사막일지언정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입니다. 샤바누를 읽는 동안 눈을 뜨기도 힘든 모래바람 소리와 모래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사막에 대한 꿈을 키워오다 마침내 처녀가 되어 사막으로 훌쩍 떠났던 자유스런 애인,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의 마음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라힘 사히브와 결혼하면 하인들을 두게 될 거야. 그러면 집안일은 안 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라힘 사히브의 소유물이 되고 말 거야. 라힘 사히브가 진정으로 내 행복을 바란다면 사막에서 낙타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해. 하지만 그런 생활은 결혼한 여자에게는 불가능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자유가 없으면 그렇게 할 수 없어. 읽고 쓰는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라힘 사히브는 여자가 읽고 쓰는 걸 두려워할까? 피리 연주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샤르마 이모와 함께 산다면 모든 게 자유로울 텐데. 하지만 나 때문에 언니가 곤란해진다고 해도 자유가 달콤할까?’ 토버에 목욕하러 갈 때마나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살펴보았다. 기쁨 반, 두려움 반의 느낌이었다. 가슴은 이미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나도 언니처럼 예쁜 가슴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가슴이 빨리 자란다는 건 내가 그만큼 빨리 어른이 된다는 걸 뜻한다. (311 - 312쪽) 자연에 순응하며 바람의 사람들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모래폭풍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모든 사람을 친친 동여매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또 스스로 안주하는 인습이라는 괴물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사막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샤바누 또한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샤바누는 이모를 통해 자유가 무엇인지를 맛본 소녀입니다. 하여 샤바누는 자신만큼 훌쩍 커버린 낙타 미투를 타고 어둠을 타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자유는 쉽게 얻어지지 않으니 결국 아빠에게 붙잡혀 호되게 매를 맞습니다. 그렇더라도 샤바누의 가슴속엔 샤르마 이모가 들려준 ‘비밀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거야. 그게 바로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영혼의 비밀’이라는 지혜의 선물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람처럼 살고 싶은 샤바누의 열정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
|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막의 모래 바람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리는 것만 같다. 사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샤바누의 고된 성장기보다는 내 눈과 가슴을 끄는 것은 그곳의 자연환경과 삶의 방식이다. 그림 한 컷 담아 있지 않은 책인데도 나는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도 샤바누 만큼이나 자유롭게 살고 있다. 가끔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두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가 사막이든 광야든 꼭 한 번은 내 일상에서 벗어나 일 년이든 이년이든 정말 자유롭게 살아 보고 싶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가지려 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려고 하지 않고 말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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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달리 보이는 날이 있다. 십년 전 선을 보았을 때는 서로의 매력을 몰라보았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 고등학교 때 노처녀 선생님이 계셨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가 어는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영성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이 책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몇 년 전 누구의 소개로 읽은 책이었다.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서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다 정도였던 것 같다. 이번에도 자발적이라기보다는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하면서 다시 책을 펼쳤다. 단숨에 읽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잠이 오기 전까지만 읽으려고 했다가 꼬박 다 읽은 후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낙타의 등에 올라 탄 샤바누를 만난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의 딸 샤바누’는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의 작품이다. ‘위험한 하늘’이라는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그의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진지하다. 어린 독자가 과연 소화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어린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내공을 쌓기를 간절히 바란다.
샤바누의 가족은 파키스탄의 사막에서 낙타를 키우며 사는 유목민이다. 할아버지와 부모님, 언니, 그리고 나는 척박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낙타는 매우 중요하다. 낙타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료이자, 가족이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생계를 책임져 주는) 생명줄과도 같다.
이 작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생명, 삶과 죽음
작품의 앞부분에 낙타 미투가 태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어미 낙타는 크라이트라는 뱀에게 물려 사경을 헤매고 있고 죽음의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어미 낙타와 새끼 낙타를 먹어치우려고 달려들고 있다. 샤바누는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해서 새끼 낙타를 구해낸다. 죽어가는 어미의 몸속에서 새끼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결국은 새로운 생명이 투쟁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한다.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새 생명의 탄생이 있다면 죽음도 있다. 샤바누의 할아버지는 모든 세상을 삼켜버릴 것 같은 모래폭풍 속에서 목숨을 부지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자연의 포악함을 이길 만큼 강하다. 하지만 하늘의 섭리를 거스를 순 없다. 결국 할아버지는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평생을 살았던 사막에 묻힌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굴루번드는 누구나 탐내하는 훌륭한 낙타이다. 샤바누와 아버지는 시장으로 낙타를 팔러간다. 낙타를 좋은 값에 팔아야 풀란 언니도 나도 결혼에 필요한 혼수를 장만할 수 있다. 샤바누는 아버지에게 굴루번드는 절대로 팔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지만 결국 굴루번드는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만다. 대신 우리 가족은 덕분에 부자가 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빠가 너무 밉지만 이것 역시 삶의 이치이다.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헤어짐은 반드시 온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
샤바누의 가족은 유목민이다.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에 달려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알라의 뜻’이다.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그들에게 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물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물이 다 말라 없어지기 전에 분명히 알라 신이 다시 채워 줄 것을 믿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약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자연은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넘치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결혼, 여성의 삶
이 책을 처음 읽어 본 독자라면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야 하는 소녀들의 삶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갈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읽었을 때 다른 것은 기억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샤바누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넷째 부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기억은 있다. 그래야만 하는 그들의 관습을 비난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물론 그들의 조혼 풍습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변함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합리한 제도에 대항하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로 국한해서 읽는 것은 이 작품의 깊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읽고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다. 샤바누와 그의 언니인 풀란의 엉클어진 결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인생이란 그렇다.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해결방법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샤바누의 약혼자가 언니와 결혼을 하게 되고 샤바누은 나이 많은 남자의 아내가 되도록 결정된 것은 이미 예전에도 그래왔던 그들 나름대로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잣대로 보면 너무나 불합리하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읽는 독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갈수 있는 부분이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기 때문이다. 그 입장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가치관을 크게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샤바누, 그녀의 이야기
샤바누는 나이 어린 소녀이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이미 그의 부모는 그녀의 예사롭지 않은 뛰어남(자유분방함)을 알고 있다. 그 뛰어남이 그녀를 힘들게 할까봐 걱정을 한다. 세상은 튀는 사람을 그리 달갑게만 보지 않는다. 특히 그녀가 살고 있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샤바누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상대와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호기심이 너무나 많은 사춘기 소녀이지 않은가. 그녀에게 있어서 남녀의 사랑은 아직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더구나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도 언니처럼 예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자신보다 예쁜 언니를 보고 질투를 하기도 한다. 약혼자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이렇듯 샤바누는 많은 일을 겪으면서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여러 위험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그녀는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녀에게 맨토의 역할을 하는 인물은 샤르마 이모이다. 결혼 생활을 스스로 뿌리치고 혼자서 자식을 키우면서 사는 이모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손가락질 받는 인물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동경의 대상이다. 샤르마 이모는 사회의 관습을 스스로 무너뜨린 인물이다. 하지만 이모 역시 여자의 행복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서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샤바누는 혼란스럽다. 그녀 역시 이모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데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사는 것에는 너무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샤바누는 집을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밤에 몰래 도망친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위한 도피는 성공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 온 그녀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부터는 독자의 몫이다. 작가가 샤바누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나 역시 마지막에 스스로 포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안타까웠다. 다른 결말이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샤바누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위해 가족 모두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만큼 모질지도 못하다. 지금의 선택이 현재로서는 최선일 수도 있겠다. 진정으로 샤바누가 바람의 딸이 되는 것은 독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 이 책은 분류를 보니 중학생 대상의 청소년 소설이란다. 난 어떻게 이 책을 주문하고 보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을테고 내 카트에 담겨져있었던 것을 적정한 시기에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상이 정해진 책이라는 것은 없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읽는다고 중학생인 것도 아니고 이 책은 중학생이 아니고 누구에게든 감명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파키스탄의 유목민 소녀 샤바누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1인칭으로 그려놓은 소설이다. 소설같지않다. 진짜 이야기일 것 같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샤바누는 오늘도 바람이 부는 사막에서 낙타를 데리고 떠나고 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둔 언니와 함께 할아버지와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낙타를 키우는 소녀. 샤바누 그녀는 매우 강인하다. 자기가 봐도 아주 예쁘다고 느끼는 나약하고 게으르고 꿈에 빠져있는 언니를 제껴놓고 모든 집안일을 도운다. 우리 주변의 12살 소녀에게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샤바누의 이야기가 청소년 소설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이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난 사막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사실 들어본 적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새로운 세계의 삶에 대한 간접 경험을 또한번 톡톡이 하게 해주었다. 낙타가 춤추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에는 그림 한점 없지만 그걸 다 볼 수 있다. 매우 슬픈 눈으로 이별을 하는 친구 낙타나, 사바를 엄마로 알고 쫓아다니는 아기 낙타를 볼 수 있다. 동물원에서만 보던 낙타가 아니다. 나랑 같이 사는 낙타인 것이다. 늘 사막을 꿈꾸고 있었다. 언제고 한번은 가보고싶었던 사막인데, 그렇게 여행으로 볼 수 있는 얘기가 아닌 진짜 사막에서의 삶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꿈꾼다. 사막을 여행하는 것이 아닌 진짜 사막에서 사는 거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그들은 사막의 험난한 환경을 거스르지않으면서 조화롭게 살아간다. 비가 안오면 먹을 물이 없어져 그렇게 힘든 날들이 오지만 견뎌낸다. 이동을 하기도 하고 미리 준비를 하기도 하지만 결코 투덜거리거나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지않는다. 오히려 그 사막을 개간하고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인간미대신 불화가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사실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가족의 생활안에 들어있는 알라에 대한 믿음은 참으로 소박하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조그맣게 이야기해준다. 뭐니뭐니 해도 관건은 샤바누의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다. 언니가 결혼하고 나면 곧이어 다음해면 결혼할 예정이었던 샤바누, 그녀는 그러나 바뀐 운명에 그저 순응하지만은 않는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자 바람부는 사막 속으로 걸어간다. 그녀를 따라 나도 걸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바람의 딸이라니... 왜 그랬을까? 사막에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자란 아이라는 뜻일까? 바람이 불어올 때의 사막을 상상밖에 하지못하는 나지만 바람불어오는 사막에서 차도르로 얼굴을 감싸고 엎디어 바람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들은 단순히 그저 시계바늘의 움직임이 가리킨 게 아닌 것이다. 바람이 키웠다는 이야기처럼, 바람을 맞으며, 바람과 함께, 바람을 극복하며, 바람을 보내며 살아가는 소녀 샤바누, 그녀가 오늘 내속으로 왔다. 꼭 나인 거 같기도 하고 내 딸일 것 같기도 하고 저기 서있는 그녀일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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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촐리스탄 사막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소녀 샤바누~ 샤바누의 가족은 자연의 섭리를 순종하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유약하고 어리석게 까지 느껴졌지만 그것이 진정 자연과 조화로움을 이루며 살아가야 할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파키스탄 여성들의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던 샤바누... 마지막에 낙타 미투와 집을 떠나는 샤바누의 모습은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숨겨왔던 내면의 자아를 일깨워 현실을 그대로 순종하기 보단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표출되는 것 같아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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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는 편하게 집에 있는 책을 읽기로 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필독 도서라서 사뒀던 것 같다. 제목은 확실히 아는데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읽은지 오래 된 책이다. 파키스탄의 유목민 소녀의 성장기로, 여성을 억압하는 이슬람 문화권에 순종하는 언니와 그를 따르고 싶지 않은 샤바누의 이야기다. 뉴스에서 이슬람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보았기에 지금 다시 읽으니 생각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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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삶은 주어진 환경의 것에 맞서 싸워가야 하는 경쟁의 것이기에 보다 세세한 배려와 존중의 것이 우선이 되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 더 중요하다. 역할의 것에 최선을 다하는 존재로서 순응해 살아가다보면 그들만의 종교와 관습이 불문율처럼 되어 그에 따른 복종과 희생의 종속적인 존재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여자들이 아닌가 싶다.
파키스탄의 촐리스탄 사막에서 낙타를 키우는 유목민인 샤바누의 가족은 자연의 삶 속에서 나름의 순리를 따르며 그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간다. 주어진 환경의 것에 안주하며 그러한 삶의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임무라고 여기지만 누림을 해가는 입장의 존재가 아닌 그의 딸 샤바누는 통속적인 그들의 여자 아이들과 다른 생각의 트임을 해가는 성장을 해간다.
그러한 행동과 언행의 것에 불만스러운 엄마는 늘상 언니 풀란과 비교케 되지만 아직은 열두 살인 샤바누에게 자연의 활동과 자유스러움의 것이 너무도 행복하기만 하다. 부자연스런 인습에 얽매여 있지만 그것이 온전한 자신의 행복인양 받아들이며 조심스런 성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언니와 다르게 그러한 미래의 것에 희망을 품지 않는 샤바누는 독립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샤르마 이모처럼 종속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리를 찾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운하에서 물을 떠오다가 만난 나지르 일행과의 만남으로 인해 소동이 생겨나게 된다.
나지르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행한 언행으로 인해 힘겨웠을 폴란과 샤바누의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이 당한 모욕 때문에 겪어야 한 샤바누 가족의 대가는 언니의 결혼 상대인 하미르의 죽음과 작은 엄마가 아기를 유산하는 혹독한 아픔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한 갈등의 것으로 인해 샤바누는 강한 의지를 세워 나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신의 결혼 상대였던 무라드와 언니가 결혼을 하게 되고, 샤바누는 문제를 일으켰던 지주 나지르의 형 라힘에게 네 번째 부인으로 거래되는 희생을 당하게 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삶에 필요한 물길을 위해서...., 비싼 값으로 삶의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샤바누는 받아 들여지는 것들만큼의 절망을 느끼게 된다. 샤르마 이모가 단호하게 샤바누의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들어가며 잘못된 결정의 것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판단의 것에 힘겹지만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아빠와 다르게 이모는 가슴속에 자리잡은 영혼의 비밀을 품어야만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을 것이며 만약 그러하지 않을 경우가 오더라도 당당한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세워갈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현명하게 그의 애정을 지켜 내게 할 수 있는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도 불안한 마음의 것으로 미투를 타고 스스로를 지켜가려는 중대한 결정과 탈출을 하지만 자유의 순간은 여의치 않은 문제로 인해 중단되고 재회하게 된 그녀는 당당함으로 이모 말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신의 인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안겨준다. 보다 이른 삶의 성장을 해가야 하는 샤바누가 분명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의미를 찾아가게 될 것이란 짐작처럼 모두가 스스로에게 그 책임과 역할의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사회적 고정관념에 따른 편견과 무시의 것에 맞서 제 몫의 것을 주장하기까지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것인지를 알기에..... 주어진 순리에 따른 삶의 순탄함에 익숙해 무언가 자신과는 상관없는듯 평가하는 많은 것에 대해서도 노력할 것이라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