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인간의 냄새가 가장 짙게 베어있는 정서이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그것의 실체를 어떤 이는 피속에서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휴머니즘에서 찾기도 한다. 인간적 사랑일 수도 있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예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분명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은 인간의 체온이 식지 않는 한, 영혼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 지지 않는 한 그것은 늘 우리의 호흡과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존재함으로써 알게 되고, 알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경배한다. ‘정’이 인간의 영혼을 잇는 고리라 하면, ‘미’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고리이다. 설레임, 고독, 죽음보다 강렬한 유혹. 추구하되 소유하면 잃게 되는 마르지 않는 욕망. 그 중심에서 꽃피는 예술은 탐닉을 일삼게 한다. 아찔하게 비척거리는 정체성은 파고드는 나의 욕망으로 서서히 잠식되는 자아의 발견으로 확인된다. 참을 수 없는 욕망과 인간 정서의 공통분모. 그림 읽기는 그 둘의 결정체를 다듬고 새기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접근한다. 알아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면 보인다. 보이는 것에 모든 답이 있으니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림과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 그림은 나직이 속삭임을 내뱉는다. 속삭임은 나의 감각을 울리고, 나의 기억을 불러온다. 사랑, 관심, 감사, 지혜, 열정, 희망, 고독, 번뇌, 투기, 질투, 실패, 고통… 그림은 이 세상의 저편에서 자신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술가의 재능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차이에 변화를 줄 뿐이다. 예술이란 벽은 무관심으로 다져진다. 우리의 삶, 이웃의 삶에 대한 무관심은 척박함을 낳고, 잔인하게도 그림의 대화를 닫아버린다. 생각하는 그림들 ‘정’, 이 책은 닫아버린 대화의 창을 여는 창문이다. 하얀 벽지에 작게 열린 창으로 고개를 내밀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이 그림은 나에게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구나. |
| 1. 일단 그림이 커서 마음에 든다. 시원 시원하다. 얼마전 예경에서 나온 <천년의 그림여행="">의 경우 일부 독자들로부터 소개된 그림의 도판이 너무 작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작은 그림을 좀 자세히 볼려고 책에 코를 박고 눈알이 빠져라 보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작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림이 너무 커서 양페이지에 걸쳐 있을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양페이지에 걸쳐 인쇄된 그림의 가운데 부분을 자세히 볼려고 책을 무리하게 펼치다 보면 책이 무슨 수박도 아니고, 모세의 홍해바다도 아닌것이 양쪽으로 똑 따갈라지면서 설상가상 밥상위에 엎어지는 격으로 책이 두권으로 세포분열하는 그러한 난감한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 생각에는 큰 그림도 좋지만 될 수 있으면 한 페이지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2. 그림관련 책일 경우 문제가 되는 중요한 것은 그림크기와 아울러 도판의 선명도 내지는 인쇄상태가 될 것이다. 학고재에서 출간된 소위 기념비적 저작이자 전세계적 기획 출판물인 "중국회화사 삼천년"의 경우 판권 소유자인 예일대학 출판부가 한국어판을 기획하면서 한국의 인쇄술이 못미더워 전량 홍콩에서 인쇄하는 조건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본 바 있지만 거금을 들여 이 책을 구입한 본인이 목도한 이 책의 인쇄상태란 것이 생각하는 그림들에 나오는 그림의 인쇄상태나 별 반 차이가 없더라나. 3. 책에서 시종 사용되고 있는 경어체 문장(작가소개까지 경어체로 되어 있더라)은 마치 선생님이 초등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다소 부담스러웠고, 또 그림에 대한 설명이 너무 도덕적이고 원론적인 것 같아 지루한 느낌이었다. 188페이지의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부그로, 밀레, 보갱, 르누아르, 샤르뎅, 마티스 등은 두 번씩 언급되었으며, 윤석남은 생각하는 그림 오늘에도 소개되었던 화가이다. 얇은 책에 한 화가의 그림을 두 번씩 소개하는 것보다는 다른 화가를 한 명 더 소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화가인명사전이 뒤에 붙어 있어 - 처음에는 화가 소개가 없는 줄 알고 투덜거리다가 나중에야 뒤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책을 읽다가 보면 한 페이지 읽고 뒤에 가서 찾아보고 다시 두페이지 읽고 또 뒤쪽을 뒤적여야 하니 오뉴월 개보다 게으른 본인에게는 고역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다소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천년의> |
| 이주헌씨의 책은 거의 빠지지 않고 필독하고 있다. 처음 50일간의 유럽...이라는 책을 보았을 때만 해도 그저 잘 써진 미술기행문정도 생각했는데 갈수록 이분의 책들 멋지고 빛이 난다. 생각하는 그림들 정은 이주헌씨가 좋아하는 화가들..가령 그의 여타 다른 책에서 봤던- 의 작품이 나온다.간혹 너무 이쁘기만 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지만 생각하는 그림들..이라는 테마로 그림을 선택하는데 빠짐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작가의 설명도 물론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그림이 많아 그것이 걸려있는 미술관에 한번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실려있는 그림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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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림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꺼내들게 된 ‘생각하는 그림들 – 정’은 작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글의 내용만 봐서는 조금은 섬세한 감각의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물론, 글로만 사람을 판단할 수 없겠지만.
지 금까지 읽어왔던 그림을 소재로 한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주제로 깊이 있게 파고들기 보다는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서 여러 감정들과 사물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감정과 존재, 관계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를 들려주고 있으며, 좀 더 나아가서 그것을 갖고 자세한 논의를 이끌기 보다는 간략하게 언급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여지를 남기며 짧은 글(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각각의 그림들을 통해서 개인적인 감상과 떠올려지는 생각들을 짧게 적어둔 수준이라 크게 관심을 둘만한 내용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저자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그림들과 그의 언급들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 있어도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쉽게 잊고 지내던 것들을 혹은 계속해서 뒤로 미뤄두는 것들을 잠시 생각해보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내용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은 개인적인 감상들로 채워져 있지만 읽는 이들도 쉽게 저자의 논의에 공감하고 동의할 것 같기에 보편적인 울림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짧고 간단하게 쓰면서도 누군가를 쉽게 설득하는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참고 : 여러 그림들 중에서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기도 했지만 그림이 느끼게 만드는 강렬함도 인상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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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느껴지는 미술을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서도록 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전 학고재 관장 이주헌의 최근작 중 한 권이다. ‘생각하는 그림들 오늘’과 시리즈로 출간된 책인데, ‘오늘’에는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뤘고, 이 ‘정’에는 대체로 18-9세기 서양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식의 연대별, 장르별, 작가별 정리 방식을 벗어나 ‘주제’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전작인 ‘명화는 이렇게 속삭인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제를 달리 하고, 작가의 범위를 한국과 서양으로 나누었다는 점에서는 보다 확장된 폭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제’를 다루는 미술입문서에서 놓치기 쉬운 것은 저자의 글을 보느라 정작 ‘그림’은 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글쓰기와 미술에 동시에 조예가 있는 이주헌을 비롯한 뭇 저자들의 글솜씨에 매혹되는 것은 좋지만, 자칫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이유중의 하나가 주제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그림들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이다. (물론 곰브리치 류의 서양미술사 입문서는 종종 더욱 심하게 그림의 크기를 줄여버린 나머지 산만해보이기까지 할 정도이니 주제 중심의 미술교양서적만 탓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정’은 상대적으로 그림을 키우고 글을 최대한 줄인 흔적을 보여준다. 저자가 나서서 설명을 해주기 보다 어떻게 봐야 할 지 뒤에서 슬며시 가이드만 해주는 식이다. 이주헌이 쓴 기존의 미술 교양서를 지속적으로 쫓아온 나같은 독자에게도 ‘정’은 반가운 책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같은 일반인에게 익히 알려진 작품이나, 르느와르, 고흐와 같이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작품들로 꾸며진 미술 교양서는 그 내용의 질은 차치하고라도 신선한 감흥을 얻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사적인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생경한 서양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보여주려 노력하는 ‘정’에서는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물론, 도중 도중 독자의 좌절을 막기 위해서 밀레나 모네, 고흐 등의 작품을 주제에 맞게 소개해주는 센스! 도 잊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부터 시작하는 미술사를 훓어보는 것은 엄두를 못낼 일이고, 또 커다란 도판들이 실린 화집을 사서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일반 독자층에게 ‘정’은 가볍고 즐겁게 그림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편안한 책으로 다가올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