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히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소설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장편이냐 단편 혹은 중편이냐, 따위의 분량으로 소설의 가치와 의미를 평가하려는 것 역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재미있는 소설은 그것대로, 그렇지 않은 것은 또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을 게 아닌가. 분량 역시 소설의 맛과 의미를 가늠할 잣대라고 볼 수는 없다. 단편은 단편대로 맛이 있고 장편은 또 장편대로의 별도의 맛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학상 수상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작품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예단하는 것 역시 엄청난 편견이요 무식의 소치일 뿐이다. 더구나 특정 문학상에 대한 지나친 편견과 찬양 역시 작품의 보편적 평가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하물며 문학상이라는 것을 평가하는 데도 상의 역사가 어떻고, 어디서(주관 단체) 시행하는 것이며, 누가 주는 것인지 따위를 놓고 그 상의 가치와 의미에 서열을 매기려는 태도 역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행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출판계와 문단에서는 특정 문학상 수상 작품집들이 출간될 때마다 그 상의 권위와 역사와 전통, 심지어는 상금의 액수까지 밝히며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와 견제자로서 혹은 대안으로서 정신활동의 산물인 문학의 위상을 바로 잡기는커녕 스스로 배금사상의 주구이기라도 한 양 알량한 치맛자락을 간들거리며 매출 올리기에 급급한 꼬락서니라니, 한심하다 못해 차라리 가련타. 이제는 좀 알아야 할 때다. 그런 문구들이 문단 내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별반 시답잖게만 들린다는 사실을. 현대문학상이 항용 내세우는 말이 유구한 전통이다. 하긴 작년말 50회째 수상작을 내었으니 척박한 문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자랑할 만도 한 일이라 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상의 위상이라는 것이 결코 역사성과 전통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혹시 잘 팔리는 게 우선이냐, 하고 대들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문학상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전제 혹은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조건도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 시급하고도 긴요한 문제는 바로 평단이 바로 서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당대의 문화적 지형이 강건하고 드넓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평단의 수준과 역량과 열정과 전문성과 진지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우리 문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회복(?)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엄정한 평가와 살아있는 비평정신으로 좋은 작품을 고르려 한다면 최소한 쓸데없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좌고우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 그래도 작품의 양과 질, 양쪽 측면에서 빈약하기 만한 게 우리 문단의 현실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 몇 개 안 되는 작품을 놓고 이리 나눠먹기 저리 찢어먹기 식으로 상과 상금을 배분하고 있으니 그 알량한 배려가 곧 문학상의 위상과 전통과 의미에 먹칠을 하는 일임을 이제라도 제대로 알렷다! 작품집에 뒤따르는 주례사 비평들은 모조리 종이와 잉크 낭비다. 50회 현대문학상 수상작가 윤성희와 수상작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에게는 정말이지 미안하기만 하다. 객쩍은 서설이 너무 길어졌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한 데 엉켜 파릇파릇한 싱그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신선도 높은 작품이다. 경쾌한 속도감을 유지하면서도 긴장을 늦췄다조였다 하는 작가의 구성솜씨가 제대로 살아있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속도를 너무 내다 너무 일찍 종착역에 다다르고 말았다는 점이다. 속도도 좋지만 때론 완급조절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야밤에 내달리는 폭주족의 표정을 확인할 길 없듯,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너무 빠르게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내달리는 바람에 명확한 캐릭터를 갖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만다. 좀 더 느껴보고 싶은 매력을 가진 인물들인데 정말 아쉽다. 시간의 완급조절이 적절한 건 뒤편에 실린 역대수상작가 최근작 편에 나오는 윤대녕의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이다. 역시 실재성이 떨어지는 가공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거기엔 분명한 완급조절기가 달려 있어 읽는 이에게 때론 생각할 여유를 주고 때론 급하게 내달리게 하고 때론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가게도 한다. 그러고는 역시 홀연히 현실을 뛰어넘는 환상성 속에 숨어든다. 하여 두 개의 소설은 전혀 다른 작가의 전혀 다른 성격의 전혀 다른 이유로 한 권에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쌍을 이뤄 여운을 돋우어준다. 참으로 신기하고 절묘한 편집상의 조화다. 그게 맛이라면 맛일까만... 역시 안타까움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반세기 전통의 현대문학상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과 그 무관심을 부추기고 있는 문단의 정치적 행태, 너무 느린 기성과 너무 빠른 신인의 괴리, 그 가운데서 허허로워 하는 독자들, 그 중의 하나인 내가 보는 이 답답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