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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로서 불교에 대해 무지했었고, 또한 불교에 대한 오해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와 깊은 이해로 비롯된 탁월하고도 쉬운 내용으로 독자를 이끈다.
사실 불교 용어가 생소하여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로 상관이 없다. 기독교와 불교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관점이 제시되며 단순히 문제제기나 호기심 유발의 차원이 아닌 진리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내용이 전개된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나오는 귀한 산물이요, 일종의 창조물이다. [인상깊은구절]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 죄인과 의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완벽한 사랑을 본받는 예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요, 무차별적 사랑이요, 무아적 사랑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얻기 위한 사랑, 대가를 바라는 사랑,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사랑,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입니다. 보살의 자비 또한 공관(空觀)에 근거한 무연자비(無緣慈悲)로서 무차별적인 자비입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재물의 상을 떠난 순수한 자비이며 베풂없는 베풂, 자비 아닌 자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아가페와 보살의 자비는 확실히 상이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종교 전통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구체적 표현과 실천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초월적 지혜와 무아적 진리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그것은 일찍이 인류가 실현하고자 했던 가장 순수하고 숭고한 도덕적 힘이며, 무지와 탐욕으로 병든 세계를 살리는 유일한 구원의 힘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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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있어 전쟁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책은 불교를 전공한 크리스챤의 글이다.
특히 기독교는 사랑과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서 불교에서
서로의 종교를 잘 이해하고 또 존중하는 사회가 결국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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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저자의 깊고 넓은 불교이해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흥미로운 주제를 쉽게 풀어썼기 때문에 부담없이 접할 수 있다. 본문 내용에도 잠깐 나오지만 이렇게 해박한 불교이해를 보여주는 저자가 왜 불교로 개종하지 않았는지 약간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저자는 기독교 신자이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완전히 다르다. 큰 틀에서 모든 것의 근원으로서의 하느님을 믿을 뿐이지 그 하느님이 인격성을 띠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불교와도 얼마든지 통하고 모든 종교와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근원으로서의 하느님만 빼면 불교도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깊은 이해라기 보다는 불교에 대해 흥미있으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앞에 언급한 대로 그의 기독교 신앙은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아무 상관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독교 신앙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한가지 인상 깊게 받아 들였던 불교이해 한가지! 불교 역시 100% 자력 신앙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인간은 절대 홀로 살 수 없고 불교식 대로 이해를 해도 모든 것과 연결되어져 생존이 가능한 인연과 인연의 연결체 속에서 생존이 가능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해탈 역시 이 모든 인연의 도움으로서만 가능한 것일 테다. 원불교에서는 네가지 은혜라고 해서 천지,부모,동포,법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 천지 자연과 부모 조상들과 함께 사는 모든 인간들과 진리인 법계의 은혜의 자양분을 통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일테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어느 종교이든 순수 자력으로 행복해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한다면 기독교와 불교와의 접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