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묵의 건축이란 이름으로 묶여진 김개천교수의 글은 다른 모든 오해를 차치하고서라도 내게 몇가지 유용함을 준다. 제일 먼저는 그동안 익숙해왔던 소위 ‘아카데믹하게 고건축을 보던 버릇’을 고쳐주었다. 내가 알아 왔던 고건축을 대하는 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철저히 분석적이었다. 지형의 생김새가 이러할 때, 이러 이러한 배치로 이러이러한 효과를 가져오니 감동적이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글들은 그런 분석적인 설명구도를 넘어서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한국건축의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있었던 내게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건축의 이상은 자연의 경지를 이루는 것, 자연에 일획을 보태어 완성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건축의 완성에 대하여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그래서 진남관은 '지상에서 우주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허공'이 되고 심검당은 일체를 털어버리고(어쩌면 털어버린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산다는 것이, 존재자체가 수행이 되는 자의 범범한 공간으로 생명력을 발휘한다. 24채의 우리건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각 공간에 부제를 달아두었다. 수원화성에 '실용과 무용', 면앙정에 '자연과 건축' 이런 식이다. 그래서 실체와 개념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24채의 건축은 좋은 사례임에 분명하다. 관조스님의 좋은 사진을 통해 명품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솔솔하거니와, 24편의 글에서 제시한 화두는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는다. 진리란 세상에 유용한 무엇이며, 건축은 자연과 조화되는 것이 이상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시키는, 그래서 자연의 경지를 이룩하는 것이라는 등, 건축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이를 통하여 본 '아름다움의 세계와 그에 다다를 수 있는 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글의 각편에서 마지막 문장을 유심히 보면, 뜻밖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명묵의 건축을 읽어내면서 진입과 축, 축의 엇갈림, 겹침 등의 흔한 고건축 해설용어를 넘어서 아름다움과 실용과 사유를 일시에 묶어내는 <문기>넘치는 장면을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다. 디자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조형의도가 아닌 인문에 묶여지는 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아카데미에 경직되어 있던 우리 건축은 살아있는 현실이 되어 내 속으로 들어왔다. 암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절차를 요구하는 아카데미의 시각으로는 절대로 전할 수 없는 우리 고건축을 보는 진짜 눈을 이 글들은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보고, 또 느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무한히 변형 해석 가능하며 역설적인 수사를 포함한 시적인 언어가 섞여 있는 이 글들은 발문의 권유처럼 경전 읽듯이 읽으면 오히려 쉬워질 수 있다는 점에 한표. 발문에서 일독, 재독, 삼독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 아카데믹한 고건축 해석이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이 글의 덕목이 하나 더 있다. 말만 학술적이고 <전공자>의 것이지, 물리적으로 정해진 시간과 공간의 질료적 한계를 결코 뛰어넘지 못하는 학술적 글들에게서는 결코 충족될 수 없었던 지적만족을 명묵의 건축은 준다. 저자는 문(文)으로 귀결되는 <성리학적 이상="">에 대하여 줄곧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 고건축을 바라보는 핵심개념이다. 더 정확하게는 고건축을 통하여 효과적이고 세련되게 표현될 수 있었던 동양의 정신세계에 시공간을 초월해 감응할 수 있는 통로다. 그는 건축공간을 이야기하면서 진리(철학)와 아름다움(예술)과 쓸모(기능)가 하나가 되는 문화로서의 <인문>을 먼저 내민다. 건축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효용성이란 그것이 이룰 수 있는 미의 경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 때문에 완전한 인문의 미적이상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 공감한다. 오히려 건축보다는 건축을 매개로 하여 자신이 이해하고 깨달은 세계에 관한 관심을 나누고 싶었던 듯 하다. 그렇게 명묵의 건축을 통해 우리 건축공간은 언어와 이미지조차 초월한 예술로 우리 앞으로 내밀어졌다. 이 책을 얻은 뒤,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꽤 오랜 기간동안, 조금씩 천천히 읽어오다가 어느날 밤 홀린듯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되었는데, 이것 참 이상한 체험이었다. 스스로 <현재 자라는="" 중="">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는가. 그날 밤이 그랬다. 동양의 문화 전반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인지하게 하였다는 점 (깨달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정도를 인지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 자신 정진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 이점, 특히 고맙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나의 스승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저자는 ‘배움이란 자기 안에서 생득되는 것, 이것이 가장 세련되며 치밀하게 배움을 구하는 길’ 이라는 옛어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글들은 본인 스스로 그것을 실천한 결과다. 그는 힘을 다하여 보고, 본 바를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전하여 들은 독자 중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구하여 다시 힘을 다하여 보고, 본 바를 또 담담히 말할 것임을 믿는다. 현재>인문>성리학적>전공자>문기> |
|
그간 건축가들이 쓴 우리건축에 대한 책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
한국 전통의 명건축 24선
1. 천강이 흐르는 예적 질서 - 병산서원 만대루 [허와 질서] 13. 경으로 허명한 천계 - 도산서당과 전교당 [주관과 객관] |
| 전자공학을 전공한 본인으로서는,이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음을 밝힌다. 인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수많은 철학용어와 인문학용어로 구성되어 술술 읽어내려가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사 놓고 한 번에 읽기보다는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틈틈이 생각날 때 일독,이독,삼독함으로써 아~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와닿게 된다.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는 때는 대부분 30대를 넘어서야 되는 것 같다.저자 또한 20대에는 우리 건축이 왜 서구건축처럼 화려하고 정교하지 않은지, 같은 동양의 일본이나 중국의 건축처럼 장엄한 맛이 부족한지 의문을 품었다. 이 의문은 유럽여행을 체험한 대다수 20대 젊은이들이 품는 의문일 것이다. 서구의 공간의 개념과 우리 건축의 공간의 개념은 사뭇 다르다. 서구에서는 공간을 단순히 비어 있는 곳으로 보지만, 우리 건축에서는 공간을 공기가 흐르는 곳,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연의 에너지 氣가 꿈틀거리는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흔히 자연과의 조화를 우리 건축의 미학으로 알고 있지만, 저자는 우리 건축이 자연과의 조화를 넘어서서 새로운 우주와 자연을 창조하여 자연경관 속에 다시 돌려주는 역할을 하는 최정점의 철학과 미학을 지니고 있다는 극찬을 보낸다. 이 글을 쓰는 본인 또한 30대로서,궁궐이나 한옥,사찰을 찾았을 때 느껴지는 아늑한 마음의 고요와 평화,오랜 명상을 했을 때 나올 법한 뇌의 알파파 상태같은 禪의 향기를 느껴 보았다.도심의 초고층 빌딩숲에서 느낄 수 없는 이런 각성상태에 여러 번 놀란 본인은,그 원인을 찾기 위해 우리 건축에 관한 여러 책들을 뒤적거리게 되었는데 이 책이 그 중 하나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이지만,곱씹어 여러 번 읽어보고 싶고 아름다운 한옥에서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며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사는 도시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