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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영성에 관련된 책은 사실 처음 접해보았다. 개혁주의 전통의 교회에서 영성이 강조되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영성이란 개념 차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영성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개혁주의의 관점에서는 영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2. 영성이란 무엇인가? 사실 영성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필자 역시 간혹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영성의 개념은 잘 몰랐다. 책의 제목 앞에 ‘하나님과 참된 사귐을 나누는 영성 훈련’이른 부제가 붙어 있어서 영성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필자처럼 영성의 개념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자는 서론에서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서론에서 저자가 내리고 있는 영성의 정의는 부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저자의 정의를 요약해 보면 ‘성령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서 신뢰와 우정을 더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영성의 정의를 통해서 우선은 영성이 단순히 어떤 신비적 능력이나 체험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비적 능력이나 에너지가 아닌 인격체이신 삼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차원의 인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 하는 전인적인 차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노력과 훈련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령을 통해서 영성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정의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의에는 나오지 않지만 서론의 뒷부분에서 영성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기 위해 취해야 하는 정보의 근원은 성경이라는 언급을 통해서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영성이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영성이라는 용어는 다른 종교들에서도 사용하고 있고 개신교 보다 카톨릭에서 먼저 사용한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가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저자가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물론 다른 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해서 우리가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성경의 용어에는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있고 세상의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선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영성이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표현이 성경에는 없는지, 혹은 개신교만의 독자적 표현을 만들 수는 없는지 고민해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고려에도 불구하고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했다면 다른 종교에서 사용하는 영성의 개념과 기독교적 영성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대조해서 설명해 주었다면 기독교적 영성이 무엇인지 의미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3. 공동체적 영성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영성은 한마디로 공동체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2장에서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이라는 관계성을 통해서 영성을 쌓아가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3장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겸손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훈련할 수 있으며 겸손이야 말로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8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기도 역시도 다른 사람과 함께 기도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영성이라고 하면 홀로 수행하는 어떤 일을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영성을 쌓아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성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인식과는 다른 접근이어서 새로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 개개인은 본질적으로 그 몸의 지체로서 함께 자라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영성만 키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성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공동체적 영성은 성경적으로도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갈수록 교회 내에서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있는 오늘날 교회 현실을 생각해 볼 때 공동체적 영성을 강조한 것은 시의 적으로도 적절했다고 본다. 그런데 영성이 공동체를 통해서 드러나고 형성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진전되는 것이 반드시 하남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깊어지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그것이 표현되게 마련이며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증명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요일 4:11-12, 20).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 ‘겸손’과 같은 덕목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라는 의미로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의 기우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글을 잘 못 이해하면 이웃 사랑을 키워나가면 자동적으로 하나님 사랑도 자란다는 의미로 해석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C.S. 루이스는 그의 책 『네가지 사랑』에서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는 물론 ‘유사성에 의한 가까움’이며, 그것 자체로서는 결코 ‘접근으로서의 가까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유사성에 의한 가까움’이라는 상태를 어떤 사람이 고향마을로 가고 있는데 고향마을과 매우 가까운 곳, 바로 아래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어떤 절벽에 도착한 그런 상태로 설명한다. 돌을 던지면 바로 그 마을로 떨어질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그 절벽을 타고 내려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다시 먼 길을 돌아서 고향으로 가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고향 마을에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웃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그 사람이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혹은 무신론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덕목이다. 심지어는 기독교인 보다 그 부분에 더 탁월한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이웃 사랑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된 이웃 사랑이 아닌 이상 그 무엇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을 극대화 시키면 하나님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것이 열매로 드러나는 것이며 하나님 사랑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수단이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자체를 키워주는 수단은 아니다.
4. 훈련으로 자라는 영성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은 영성이 훈련을 통해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영성’의 정의를 내릴 때 기본적으로는 영성은 성령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사람 편에서 해야 할 일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원하는 마음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4장에서는 물리적인 세계만을 인식하고 사는 것을 넘어서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5장에서는 그 하나님과 보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분주함을 내려놓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6장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삶의 순간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에 필요한 실제적인 지침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8장에서는 기도에 대해 말하면서 기도에 대한 정보적 지식을 통해서 기도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기도의 깊이가 깊어짐을 강조하고 있다. 기도를 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가며 기도를 수정해 가는 가운데 기도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딤전 4:8’에서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했다. 영적 성장을 위한 훈련은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로 수동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해 오지는 않았는지 이 부분을 통해서 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잘 몰라서 못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다양한 실제적 지침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구체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5. 나가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기독교 영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영성을 쌓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다. 애초 책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 대해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이론이 실천을 뒷받침하고 실천이 이론을 증명해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만하고 생각한다. 영성이라는 주제는 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저자는 방대한 저작을 소화해서 영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7장에서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에도 불구하고 악이 왜 존재하는가 하는 신정론의 문제는 학문적인 깊이가 없으면 다루기 힘든 어려운 주제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주제를 피해가지 않고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연구해서 이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후에 저자 개인의 경험은 물론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가 제시한 지침을 자신도 실행해 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이제 남은 관건은 이 책의 내용을 잘 파악하는 정보적 독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 내용을 통해 내가 변하는 형성적 독서의 수준까지 나아가는 일일 것이다. 결국 영성은 영성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어가는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라가기 때문이다. |
| 이 책을 갖게 된지 두 달이 되어간다. 왜인지 맘에 드는 표지였다. 생소한 작가이기는 했지만 이 작가의 책에 대한 다른 추천한 이들의 이름들을 보며 신뢰감이 생겼다. 제임스 휴스턴의 추천사를 읽으며 꼭 읽고 싶어졌다. 다른 출판사라면 큰 글씨와 양장본으로 해서 20,000원은 족히 되었을 분량의 책이 예상보다 책의 분량과 내용에 비해서 훨씬 싼 금액이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된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그래서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1/3도 읽지 못한 채로 글을 쓰고 있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기가 힘들다. 한 장을 읽고 그 한 장의 내용 속에 있는 의미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 머물게 된 장소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멈춰버리고는 했다. 분명 이 책은 많이 안 팔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쉽게 읽혀지는 수많은 다른 기독교 서적들, 그래서 빨리 읽어 치울 수 있는 그런류의 책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직 읽어 내려갈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책의 전체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다. 아직 다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 하지만 이 책의 특징에 대해서는 이제 조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지적’이다. 최근에는 감성적인 글들이 인기가 많다. 어렵지 않아야 하고 어려우면 안된다. 그리고 ‘쉽게 쉽게’라는 말이 기독교 서적의 코드인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어려워야 할 부분에 대해서 ‘쉽게 쉽게’라는 말로 넘어가지 않는다. 어려운 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근래의 신학자들의 주장과 영성작가들의 여러 책을 통해서 밝혀낸 글들, 최신의 학문적인 틀을 제공해서 설명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도표를 포함하고 더 필요하다면 참고서적을 추천하면서까지 작가는 이 ‘하나님과 거니는’ 새로운 영적 우정관계의 발전을 위한 조언들을 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 속에서 오는 지적인 만족감이 있다. 그리고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진지한 고민들을 읽어가게 한다. 이 책은 ‘성경적’이다. 책의 논리가 많은 신학자들의 인용과 경건한 선배들의 영적 유산과 현대 신학의 인용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이 책의 모든 영적 훈련의 여정과 방법의 기본적인 원형은 모두 성경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말씀의 근거 위에 우정, 겸손, 믿음, 헌신, 의사소통, 도제의 삶, 동반자 라는 개념들이 주어졌고,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탐구해 가고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과정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성경의 권위’에서 끌어 온다. 의심이 간다면 서점에 이 책을 펼쳐보라. 어느 책장을 펴더라도 책의 주장과 내용을 풀어내기 위한 ‘괄호 안의 성경 구절의 출처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경건 서적의 집합체’이다. 이런 용어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는 가운데 이전에 하나님과 동행에 대해서 쓰여졌던 그래서 많은 경우 읽혀졌던 대부분의 경건 서적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종합적인 성격을 지녔다. 이 영역에서 의미를 지녔던 많은 청교도의 서적들에서 현대의 필립 얀시나 헨리 나우헨과 달라스 윌라드의 글에 이르기까지 이 한권의 책에서 접근해가고 있다. 자칫 산만해지기 쉽지만 저자는 이 모두를 소화해, 자신의 첫 장에서 말한 8가지 소주제 속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도록 인용되고 있다. 끝으로 ‘실제적이다.’ 각 소주제들의 제목만 보면, 이 책의 내용이 현실적이기보다는 이론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느 부분은 이론적으로 그 부분들에 대해서 접근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저자가 밝히는 바와 같이 실제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과 누리는 관계의 깊이에의 추구였기에 저자는 실제적인 훈련의 영역과 구체적인 훈련의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책의 각 주제의 결론부이다. 다른 인격들과 상호작용이 필요한 영역과 홀로 훈련할 수 있는 부분들을 나누고, 구체적으로 각 영역 속에서 훈련의 방법을 이야기 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신뢰할만한 선배를 만났다는 신뢰를 보내기에 충분했었다. 책의 부제가 “하나님과 함께 시간 낭비하기” 였다. 그러며 저자는 “경건의 독서를 할 때는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집중력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읽는다.”(피터 툰) 라는 이의 독서법에 대한 글일 인용했다. 이 책도 그렇게 읽혀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 나가고 있는 나 역시... 그렇게 밖에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시인하게 된다. 오래 두고, 깊이 읽어 나갈만한 책이다. ivp에게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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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에 별을 5개 주고 싶었지만 애매한 성격? 때문에 때문에 별이 4개다.
이 책은 내용이 매우 빵빵하다. 어렵다면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서 썼다.
하지만 뭐랄까 이 책은 언급한 내용에 비해 "과하게" 쉽게 쓰여진 감이 있는 책이다. 그 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한번 더 읽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데 워낙에 쉽게 썼기에 다시 책을 읽는다 해도 처음 읽었을 때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저자의 경험이 일천한 탓인지 혹은 저자가 특정한 교파의 신자를 목표로 책을 썼든지- '피정'만 강조하고 '렉시오/성독'은 없다. -
아니면 읽는 쪽에서 쉽게 쓰여진 책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은 꽤 진지한 책들이 많다. 그런 책들을 소개하는? 책으로도 볼 수 있는...그런 책이다. (제 리뷰에 보면 이 책에 언급된 책이 몇 권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총 결론으로 "기도"를 언급해서 약간 허무?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이 쉽게 쓰여진 영성책임을 감안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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