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숀 펜. 그의 연기는 단순히 말과 몸의 연기가 아니라 영혼의 연기라 불린다. 그에 이견을 달 사람은 할리우드에도 한국에도 그리 많지 않다. 연전에 박찬욱 감독이 그랬다던가. 할리우드에 <올드보이>의 리메이크 판권을 팔고 난 뒤 "오대수(최민식 분)역은 숀 펜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숀 펜이 나오는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공연히 흥분되고 마음이 급해지는데 <21그램>의 포스터에는 숀 펜의 이름 옆에 할리우드 또 다른 연기파 배우 '베네치오 델 토로'의 이름까지 붙어 있다. 이쯤되면 더 이상 망설이거나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숨막히는 영화의 감동에 빠져들 마음의 준비,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독일 준비, 그 외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영혼의 무게는 얼만큼인가?" 너무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한 탓일까. 영화는 정공법을 포기하고 스토리를 앞으로 뒤로 때론 이야기의 한 중간으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활보한다. 카메라 워크도 현란해 때론 몽타쥬로 때론 비전과 오버랩으로, 그리고 이따금 들고찍기의 떨림으로 관객의 마음을 혼란스레 흔들어 놓는다. 그 흔들림 속에서도 분명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법, 타란티노의 그것도, 왕가위의 그것도 아닌 전혀 새로운 문법. 뭐라 쉽사리 규정당하기를 거부하려는 듯 온갖 요소들을 망라한 이 새로운 문법에 가장 어울릴 법한 말은 아무래도 '정지된 떨림' 혹은 '정체 속의 진행'쯤이 아닐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로지 심장 이식만을 고대하고 있는 대학교수 폴 리버스(숀 펜 분)는 어느날 문득 이식받을 심장이 확보됐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는다. 이제 그는 새로운 심장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한편 크리스티나 펙(나오미 왓츠 분)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두 딸과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 허공을 부유하듯 약물에 의지해 하루하루 삶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다. 거기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전혀 연관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그저 두 사람을 엮어주기 위한 장치이자 매개자로서 잭 조단(베네치오 델 토로 분)이 등장한다. 그는 영화 속 자신의 존재 이유에 걸맞게 한편 범죄자이며 한편 구원의 상징인 종교인의 중의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 이제 이 세 가지의 재료를 넣은 믹서기의 전원을 올려보자. 크리스티나 펙의 남편은(둘 딸과 함께) 범죄자 잭 조단의 트럭에 치여 처참하게 죽고, 노사상태의 그의 몸에서 떼어 낸 심장이 폴 리버스의 가슴에 달리고, 절망에 빠진 펙에게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은 폴이 찾아오고, 서로 몸을 섞고, 새로운 삶으로의 이행을 위해 혹은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통과의례로서 새삼 잭 조단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폴 역시 마치 자신의 원한(자신의 몸에 붙인 심장의 원한)인 듯 복수에 나서고, 안그래도 죄책감에 시달리던 잭 조단은 기다렸다는 듯 죽여달라고 절규하고, 그렇게 뒤엉키고 꼬이고 어긋나고 비틀린 셋의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 종착지에서 또 다시 세 사람의 모습을 모두 비추는 필름의 낭비일 것. 영화는 애초 예정됐던 대로 죽음을 맞고 있는 폴의 시점에서 새삼 질문을 던진다. "삶의 무게는 얼만큼이며, 영혼의 무게는 얼만큼인가?" 시종 마음조리며 세 사람과 고통을 함께 했던 관객들은 새삼스런 폴의 질문 앞에서 그저 망연해질 뿐이다. 동전 한 개, 벌새 한 마리, 초콜릿 바 한 개, 어쩌면 영혼의 무게… 21그램 우리는 몇 번이나 태어나는 걸까? 그리고 몇 번이나 죽는 걸까? 사람이 죽는 순간 21그램이 줄어든다고 한다. 예외는 없다. 21그램은 얼만큼일까? 잃는 것은 얼만큼일까? 얻는 것은 얼만큼일까?올드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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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숨이 멎을 때 함께 사라진다는 2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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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제는 익숙해진... 시간의 순서를 무시한 교차편집을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어지럽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파편된 장면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그런 식상한 류의 편집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범죄의 재구성'도 사실 별로였습니다. '웰-메이드' 영화임엔 틀림이 없지만... 전 그저 그렇더군요. 박신양이 싫기도 하고 -_-;;; 무..물론 염정아는 오랜만에 이뻤었지만 ㅎ) 이런 편집이 '반전'을 노린 것도 아니고 '매그놀리아'처럼 하나의 주제로 모으기 위함도 아니었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 장면 장면마다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의 상황, 느끼고 있을 감정들... 아마 순차적으로 배열을 했다면 이러지 못했을 거 같네요.
Life goes on... 삶은 계속됩니다만.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겪고 무엇을 느끼고... 또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걸까요?... 21그램. 사람이 죽을 때 줄어드는 무게랍니다. 이게 영혼의 증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 무게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요. 증오, 사랑, 복수심, 우정, 회계, 행복, 불행, 슬픔... 삶과 죽음이라는 엄청난 간극 속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때로는 삶과 죽음이라는 괄호를 뛰어넘기도 하지요..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은 종이 한장보다 앏은 차를 두고 붙어있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그것도 여러 방식으로 말이죠..) 마지막... 드디어 딸의 방에 들어가 평온한 표정을 띄고 있는 여배우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삶의 무게라는 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21그램... 너무나도 하찮을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나도 소중하더라도 쉽게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무게. 그러면서도 숨을 쉬고 있는 한은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하는 무게.
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_-;;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나, 착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그런 영화보다도.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집으로 걸어와서 혼자 상차려서 풋고추 찍어먹으며 밥 한그릇 씩씩하게 뚝딱했지요.^^;) 영화가 제게 준 단상들도 그렇지만, 배우들의 연기나 각 장면장면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말 그 상황에 저를 투영시킬 수 있게끔 했습니다. 이런 영화 오랜만이네요. 모든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이해가 가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착한표 사람들이 아니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모든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항상 좌절하지만, DVD 먼저 사면 정말 후회밖에 안한다는.. ㅠ.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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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1grams" 은 최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를 연출한 멕시코 출신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가 만든 2003년 개봉작입니다.
그는 이 영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6년작 "바벨" 2010년작 "비우티풀" 을 통해 깊이있는 예술성을 표출했으며, 2014년작 "버드맨" 과 2015 년작 "레버넌트" 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하게 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출연배우로는 연기력 '갑'으로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배우 '숀 펜' 과 2000년 영화 "트래픽" 으로 이름을 알린 뒤 영화 "씬시티"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주연급 배우로 성장한 '베니치오 델 토로' 에 이어 영화 "킹콩" "투 마더스" 의 '나오미 왓츠' 가 함께 등장합니다.
영화를 KeyWord로 설명드리면
"뫼비우스의 띠"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용서" 로 나눌수 있습니다.
우선 "뫼비우스의 띠" 는
주인공 세 사람 모두 하나의 사건인 교통사고 사망에 이은 뺑소니 사건으로 이어져 있는 데 우선 나오미 왓츠는 두 딸과 남편을 잃게됨과 동시에 남편의 심장을 숀 펜에게 이식하게 되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숀펜은 심장 이식을 통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게 되며,
베니치오 델 토로는 신앙을 통해 범죄자의 낙인을 지우려던 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 자신에게 커다란 죄책감을 지우게 된 교통사고와 뺑소니를 일으키게 됩니다.
각자의 다른 삶과 생활을 하는 세 사람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어느순간 함께 연결되는 이야기 전개구도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다른 면에 있다가 만나게 되는 그러한 느낌을 전달해 줍니다.
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다른 영화
"바벨" 에서도 비슷한 영화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 바 있는 데 본 영화에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데뷔작 "메멘토"
와 같은 시간의 역순장면을 중간중간 삽입시켜 전반부는 시간의 흐름순으로 후반부는 짧게 끊어
삽입시키는 독특한 영화 흐름을
전개시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 는 영화속 세 사람 모두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고통스러운 삶을 겨우 이어갈 정도로 힘겨워 하며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건이 있기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사건이후 나오미 왓츠는 약물과 알콜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버티내고 있으며, 베니치오 델 토로는 가족곁을 떠나 노동을 통한 자기학대를 통해 속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타인의 심장이식으로 잉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숀 펜은 기증자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금기시된 기증자 정보를 몰래 알아내서 교통사고로 연관된 세 사람 모두를 한자리에 모이게 합니다.
그만큼 영화속 주인공들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너무나 가깝고, 차이는 영화 제목처럼 21그램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울 뿐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삶과 삶과도 같은 죽음의 두 세계 사이를 방황하며 흔들리는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이 자연스레 생겨납니다.
끝으로 "용서" 는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복수와 용서를 오가는 복잡미묘한 심리들 사이로 영화는 끝없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데 어떤 행동을 해도 마음속 깊은 상처는 치유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숀펜은 "연민 & 죽음" 나오미 왓츠는 "복수 & 용서" 그리고 베니치아 델 토로는 "죄 & 신앙"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영화를 본 후 느낌을 담은 곡은 Bryan Adams 의 "Please Forgive Me" 입니다.
Bryan Adams 는 캐나다 출신의 락뮤지션으로 80 ~ 9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 바 있고, 현재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에겐 "Heaven" "All For Love" "(Everything I Do)I Do It For You" "Summer Of 69" "Do I Have To Say The Words"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유의 허스키한 중저음의 목소리와 더불어 애절한 발라드 곡들이 지금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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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much dose soul weigh?
"우리가 가까워지도록 지구는 자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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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은 뒤 무게를 재면 죽기 전보다 21그램이 줄어든다네 이걸 영혼의 무게라고도 하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인생이 얽히게 되는데 사고로 남편과 두 딸을 잃게 되는 크리스티나 사고를 당한 크리스티나 남편으로 인해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살게 되는 폴 그리고 사고를 일으켜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잭 이들의 얽힌 실타래는 결국.....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지 않고 앞과 뒤를 오고 가서 좀 난해한 감을 준다. 마지막 결말이 좀 하무한 느낌 인연의 고리라는게 참 무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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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그램 21 Grams> 긴 이름을 가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2003년에 만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영화로, 세 사람의 꼬인 삶을 통하여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이 죽을 때 21 그램이 줄어들기 때문에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고 한다. 5센트 짜리 쇠돈 5개나 벌새 한 마리나 쵸콜릿 바 하나와 무게가 같다니 참으로 그럴까? 믿기가 어렵다. 나는 영혼의 무게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그냥 머리 속이나 마음 속에 있을 뿐이므로...
2. 폴 리버스(숀 펜)는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지만 심장병으로 죽어간다. 그러면서도 담배는 틈나면 피운다. (배우기는 쉬워도 끊기는 무척 어려운 게 담배다. 누굴 골탕 먹이려면 담배를 피우게 하면 된다. 나중에 끊으려 무척 애를 먹을테니까...)
그 아내인 메리(샬롯 겐스부르)는 폴의 아이를 가지려고 애쓴다. 옆지기가 죽더라도 아이를 혼자 키우고 싶어 폴한테 말하지 않고 일을 벌인다. 그런데 폴이 뜻밖에 의사한테 이 이야기를 듣고 놀란다. (아니 내 허락도 없이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괘씸한지고...)
우리나라라면 아이를 안 갖는 아내가 오히려 꾸지람을 듣겠지만, 미국이니 옆지기가 바라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 몰래 아이를 가지려다 들킨 메리는 꾸중을 듣는다. (사는 나라에 따라서 같은 일이라도 칭찬과 꾸중을 오가다니, 알수록 문화는 어려워~)
3. 크리스티나 펙(나오미 와츠)은 옆지기 마이클(대니 휴스턴)과 두 딸을 키우며 알콩달콩 즐겁게 산다. 이런 행복이 끝없이 이어지길 바라면서...그런데 하늘은 시샘이 많은가 보다. 아낙네의 소박한 꿈마저 앗아가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열여섯 살 때부터 차를 훔치거나 다른 이를 꼬셔 돈을 빼앗거나 마약에 빠져 지냈던 잭 조단(베니치오 델 토로)은 이제 마음을 고쳐먹고 교회를 다니면서 착하게 살려고 애쓴다. 아내 마리앤(멜리사 레오)과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나름대로 바르게 살려고 발버둥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망나니 아이를 가르치려고 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본디 바탕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저기 있는 트럭 있지. 하느님이 나한테 주셨어" 그런데 아이가 대꾸를 한다. "에이, 아저씨. 저건 훔친 차잖아요" "아냐, 주든 가져가든 다 하느님의 뜻이야" (...이 고약한 녀석아! 내가 하느님이 주셨다면 주신거야. 뭘 자꾸 따져...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댄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 맞아?)
잭이 착하게 살려고 버둥대지만, 잔치가 열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크리스티나의 옆지기와 딸 둘을 차로 치고만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몸은 그게 아니다. 또 큰 집에 가서 콩밥을 먹긴 싫어...그냥 집으로 가버린다. 그러니 세 사람 다 죽을 수밖에. (에이 나쁜 놈, 옛날 일을 뉘우치며 교회를 다니면 뭐 하나. 다친 사람을 살리려 하지 않고...)
4. 크리스티나의 죽은 옆지기 염통을 받아 살아난 폴한테는 죽든 살든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메리와 힘겹게 혼자 사는 크리스티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어떻게든 아이를 가지려고 애쓰는 아내가 아니라 거친 삶속으로 빠져든 크리스티나한테 더 끌린다. (이래도 되나? 아무리 문화가 다르다지만 제 아이를 가지려 애쓰는 옆지기를 두고, 죽으면서 염통을 준 사람의 아내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 영화라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처음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도 않을 것이므로 그냥 두었으나 생각할수록 성이 올라와 옆지기와 딸을 죽인 잭한테 앙갚음을 하려는 크리스티나와 차에 묻은 피를 씻어내면서 잭을 큰집에 보내지 않으려 애쓰는 옆지기 매리엔의 모습은 잭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마음을 보여준다.
제 잘못을 알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하지만 질긴 목숨이라 죽는 것도 쉽지 않은 잭이다. 잭은 아내한테 뒤늦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나는 죄값을 치러야 해" 그런데 듣는 아내는 말린다. "우리는 당신이 있어야 해요"
물고 물리는 사람 사이와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속마음을 보여준다.
5. 영화가 어렵다. 첫 장면은 방에서 벌거벗은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같이 잔 이는 침대에 누워 있다. 이들이 누굴까? 이 장면은 한참을 지나야 다시 볼 수 있다.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중을 먼저 보여주고 일어난 일을 되짚어 보여준다. 몇 장면이 이렇게 되돌려진다.
그러니 처음 보면 이야기를 따라 가기가 힘든다. 뭐가 뭔지 머리 속에서 이어지지가 않는데, 보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하나씩 머리에 들어온다. 마치 <메멘토>를 보는 듯 하다. 만든 감독은 생각을 많이 하고 만들었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영화에 쉽게 빠질 수가 없다. 게다가 삶과 죽음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보게 하므로 쉬운 영화가 아니다.
나오미 와츠는 <킹콩>에 나온 깔끔한 모습이 아니라 잠자리에서 가슴을 다 드러내 보여주고, 즐거운 삶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망가지는 삶까지 잘 보여준다. 눈길을 끄는 이는 숀 펜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짓지만 벗으려 애쓰는 베니치오 델 토로의 모습이다. 미워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각도를 달리하면 내 눈에는 꼭 탤런트 권오중 같기도 하고...
디브이디는 화면은 좋으나 우리말이 좋지 않다. 자막 가운데 네모로 칸이 나올 때가 있는데 안에 넣은 글이 틀렸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만든 디브이디에 대해 살펴보지도 않고 파는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 값이면 보너스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어야 하는데, 꽝이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