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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성탄 예배 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에 대한 다함 없는 감사의 마음이 들어서였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 성탄 메세지의 전부'라는 말을 되새겨 보면서 마굿간에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고난 속에서 살다가신, 참으로 고난받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며 큰 은혜를 경험하였다.
크룸마허의 <고난받는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고난의 장면을 카메라로 이동해가며 포착하듯이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모두 53개의 장면이 나오는데, 바깥들, 성소, 지성소로 공간이 이동해가면서 고난 받으시는 주님에 대한 심층적인 묘사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스케치를 하고 있어서, '거기 너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을 못 하도록 만드는 것만 같다.
참으로 주님의 고난의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고, 그 은혜를 감당할 수도 없다는 생각과 주님의 고난에 방관자이며 주님을 대적하는 무리들 중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은 흔치 않았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을 알기 전에 십자가에 부으신 하나님의 진노를 알아야 하듯이, 주님과 함께 할 영광을 누리기 전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면, 이와 같은 아픔의 묵상과 그에 따른 성찰은 우리 삶이 다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순교자 기롤라모 사보나롤라의 마지막 외침이 생각난다.
"주가 큰 고난 받으셨도다!"
진실로 우리는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의 증인인 것이다.
나도 생명 다하는 날까지 이 일에 증인이 되어, 고난받으신 주님을 전하고 싶다.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 잊을 죄인"이기에.. [인상깊은구절] 주님은 죄의 혐오할 만한 본질 외에도 죄의 저주를 체험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어째서 무서워하셨는지에 대한 두번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피고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은총을 박탈당하고 하나님의 애정을 탈취당하며 진노의 자식이 되는 것이 함축하는모든 것을 깊고 내밀하게, 거의 죽을 정도로 느끼십니다. 마치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듯이 말입니다. 그는 그러한 느낌을 더욱더 느끼게 되어 저주받은 자의 재앙을 받은 사람처럼 되고, 더 나아가서 시편 22편에 있는 예언적인 슬픔의 소리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지옥의 공포 속으로 내려 갑니다.고난받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