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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가 생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역사책까지 읽어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사이즈 더즈 매터"란 캐치프레이즈를 겉으로 가장 경멸하는 듯 제스처를 보이는 이들도 그들인데, 아마 그 이면에는 짧은 역사에 대한 컴플렉스가 어느 정도 자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짧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한" 불안, 조급함에 시달리는 쪽이라면 우리의 컴플렉스 역시 내재한 바 적다고는 못하기에, 분량이 짧다고 해서 우리 입장에서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게 미국의 역사 아닐까 합니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요즘 할인판매에 나선 시공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OO 역사> 시리즈 중에서, 이 책 볼륨이 가장 두껍더군요. 프랑스사, 독일사, 중국사 세 권 중 두 권을 합친 것보다 더 두꺼웠습니다. 게다가 하드커버판..... 원서 중에서 이런 부류로는 <옥스퍼드 일러스트레이티드> 시리즈가 유명한데, 생긴 게 비슷해서 그 소속인 줄 알았더니 아니더군요. 미국에서 아동용 백과사전, 참고서 편찬으로 유명한 DK 시리즈 중 한 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수준이 아동용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책의 원서는 아직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300년이 채 되지 않는 미국의 역사를 이 정도 두께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벌써 "아동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만, 역사적 사실의 취사선택, 배열, 편집도 그러하거니와, 심도 있는 평가와 코멘트들에서 "아동용"을 멀찌감치 비껴가고 있음을, 책을 펼쳐 숙독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어요.
제목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 >이니, 정말 내용 이해에 요긴하게 많은 도판이 제시되고 있는가. 답은 "그렇습니다"입니다만, 사실 도판에는 눈이 덜 가는 편입니다. 물론 인쇄 상태도 최상이고, 도판의 크기도 충분히 넉넉해서, 가시성이 떨어진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텍스트 자체에 워낙 비중 있는 내용이 많이 담긴 터라, 글을 읽는 통에 사진에 차라리 소홀히하게 되더라는 의미입니다. 양과 질 모두에서, 책의 도판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대전 전까지 세계를 궁핍의 도가니에 몰아 넣었던 대공황 파트, 그리고 그 초기에 나라를 이끌었던 허버트 후버에 대해 어떻게 적고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후버에 대해 정부 불개입 정책 일변으로 가다 사태를 망친 국적(國賊) 정도, 비웃음이나 조롱거리 정도로 평가하는 게 보통이지만, 자유주의 성향의 문건에선 "오히려 과도한 개입이 거품과 부실을 제때 제거 못하고 키운 셈이 되어, 경제 사정을 악화시켰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의 논리적 귀결은, 루스벨트의 뉴 딜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기어이 전쟁이 터지고서야 과잉생산의 청산이 이루어져 경제가 제 궤도에 올라섰다는 결론이 나오죠.
그런데 이 책은, 후버의 공과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 평가를 내 놓습니다. "개입이 없지 않고, 있었으나, 다만 친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기울었기에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했다. 만약 기업이 아닌 가계 소비를 지원하는 쪽이었다면... " 의 취지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굳이 인용하는 건, 그만큼 책의 서술에 있어 깊이와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는 걸 부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책은 결론적으로 아동용이 아니고, 교양 있는 성인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알찬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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