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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톨스토이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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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하게 살아온 네흘류도프라는 젊은 공작은 어느날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게 된다. 재판정에서 마주친 피고 마슬로바가 10여년 전 자신이 농락했던 카튜사라는 걸 안 순간부터 그는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로 인해 점차 그의 내면에 잠자던 양심이 깨어나게 되고 그는 마슬로바에게 용서를 빌기로 결심하고 속죄의 의미로 그녀에게 청혼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한편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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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하게 살아온 네흘류도프라는 젊은 공작은 어느날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게 된다. 재판정에서 마주친 피고 마슬로바가 10여년 전 자신이 농락했던 카튜사라는 걸 안 순간부터 그는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로 인해 점차 그의 내면에 잠자던 양심이 깨어나게 되고 그는 마슬로바에게 용서를 빌기로 결심하고 속죄의 의미로 그녀에게 청혼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한편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인간사의 모순과 불합리를 하나하나 정직하게 대면하게 되고 현실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시작하게 된다. 그런 그를 아니꼽게만 바라보던 마슬로바 역시 점차로 자신의 내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어떤 영혼의 움직임과도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톨스토이'라는 거장의 작품 <부활>, 1권의 이야기이다.

 

러시아라는 광활한 대륙의 이미지에서 오는 무게감,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그러한 러시아 문학의 2대 지주로 꼽힌다는 것, 애매한 감은 있지만 일단은 기독교 작가라는 둥의 이유로 톨스토이는 내 전작 독서 목표 작가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라는 거장의 이름에서 오는 다소의 압박감을 느끼며 책을 손에 쥐어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톨스토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권위에의 오류 때문에 그런거 아냐?' 하는 반감, 일종의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말 만큼이나 그에 대한 뒷담화도 적지 않게 들었기 때문에 톨스토이를 향해 가지는 내 감정이 존경과 반발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역시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나왔다. 네흘류도프와 카튜사, 그 각각의 이야기와 관계 속의 이야기 외에도 위선과 특권 의식으로 얼룩진 어두운 인간 본성에의 신릴한 비판과 풍자, 배심원 제도를 넘어 당시 러시아 재판 제도의 모순, 교도소의 부조리한 운영과 관행 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며 조목 조목 비판하는 톨스토이의 문장들.

또한 인간이 인간을 죄인이라 선고할 수 있는가, 누가 진정한 죄인이며 누가 의인인가 등등 인간에 관해서도 심오한 통찰을 그득 담고 있는 문단들을 읽으며, 삐딱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거장>이라는 단어의 울림과 무게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제목의 부활이란 일종의 영혼의 부활을 이야기한다.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 이 두 사람은 이들도 한때 청년다운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있었으나 욕정을 이기지 못해 죄를 저지르고 그로 인한 수치를 덮고 죄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더욱더 진창 같은 삶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지만 우연같은 운명에 이끌려 다시 마주치게 된 그들은 서로를 통하여 점차 잊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깨우치고 듣게 되는데 이러한 영혼의 각성이 제목을 통해 잘 설명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참 .. 역시 친구를 잘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환경의, <지배>라고 할 만치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아무리 홀로 고고한 양심을 유지하려 해도 환경이 미치는 영향력은 파급력이 크다. 환경에 대해 현명해야,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볼꺼리도 참 많고 가끔은 계도적이기까지 하게 느껴지는 톨스토이의 목소리가 그닥 싫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책의 후반부에 네흘류도프가 농부들의 삶의 질을 위해 개혁을 단행하는 부분을 보며 그 위로 너무나, 지나칠 정도로 이상적이었던 톨스토이의 삶의 모습이 겹쳐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글쎄 네흘류도프의 이런 행동들이 정말 옳은 것이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 그들을 그런 열악하고 모순된 사회 제도 속에 계속해서 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땅히 네흘류도프처럼 행동하는게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이성의 마땅한 도리일 터다. 하지만 과연 그런 개혁을 단행하여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는걸까? 그래봤자 인간의 악한 본성은 그대로일진대 환경이 개선되었다고 사람 자체가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궁극적인 해결책까지 네흘류도프에게 기대하는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가 중얼거린대로 그는 다만 <지금><이 시공간>에서 하느님이 그에게 바라실법한 일을 하는 게 그에게 최선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이 결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간과하고 지나치고 싶지가 않은것이다.

시궁창에서도 사람은 죄를 짓고 번쩍번쩍한 궁전 속에서도 사람은 죄를 짓는다. 결국 <최고>이자 <최대>의 문제는 환경 자체보다 인간 영혼 그 속에 기인하는게 아닐까 .. 하고.

 

그리고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재산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농부들에게 도움을 주려하는 태도 또한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건 개인적으로 내가 희생이라는 덕목을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네흘류도프의 영혼의 각성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 카튜사도 그렇고. 글쎄 뭐 사람이라는게 워낙 변화무쌍하고 알 수 없는 존재이다보니 얼핏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앞서 말한 대로 <톨스토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무게의 부담감 때문에 다소의 지루함을 각오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생각 외로 유연하게 물 흐르듯 나가는 진도가 새모이만큼의 허탈감을 주기까지 했다.

번역을 쉽게 한 건지 톨스토이의 문장이 원래 이런 건지 분량의 차이 때문인지, 재미는 있으나 다소의 난해함과 싸워야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과 비교하면 이 책은 술술 읽히다고 해도 좋을 만치의 가벼운 난이도를 띤다. 

이런 비교가 가당한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도스토에프스키와 비교하자면, 읽고 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적함과 싸워야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달리, 개나리꽃처럼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건전하게까지 느껴지는 소설이 마음에 평안함과 일종의 숭고함의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준다.

도스또예프스키 소설보다 좀 더 속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순수하게 재미 면에서만 따지면 도스또예프스키가 한 발 앞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책도 꽤나 재미있다. 고전이 재미없다는 편견은 버려요~

톨스토이나 고전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의외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책이니, 나처럼 지레 겁을 먹고 슬슬 멀리하던 분이 계시다면 용감히 집어드시길. 오히려 최근의 내면을 어지럽게 소설하거나 뭐가 뭔지 알수 없게 현실과 초현실을 몽롱하게 넘나드는 몇 몇 경향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고전인 이 책의 현대의 어떤 소설들보다 훨씬 쉽게 읽힐 것이다..

j********e 2009.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부활' - 말년의 톨스토이가 하고 싶었던 말: 셰익스피어와 유사한 점
"'부활' - 말년의 톨스토이가 하고 싶었던 말: 셰익스피어와 유사한 점" 내용보기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와 비교해 보았을 때, 글의 길이도 가장 적고 가독성도 가장 뛰어난 소설이다. 그리고 가장 만년에 쓴 작품이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년에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수작을 남긴 것에 비하면, 부활은 전작인 두 작품보다 못미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두 전작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쌍벽을 이룰만큼 정말 환상적이다.^^)   정말 쉽게 읽
"'부활' - 말년의 톨스토이가 하고 싶었던 말: 셰익스피어와 유사한 점" 내용보기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와 비교해 보았을 때,

글의 길이도 가장 적고 가독성도 가장 뛰어난 소설이다.

그리고 가장 만년에 쓴 작품이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년에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수작을 남긴 것에 비하면,

부활은 전작인 두 작품보다 못미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두 전작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쌍벽을 이룰만큼 정말 환상적이다.^^)

 

정말 쉽게 읽히고, 네흘류도프의 양심적인 회심과 이를 계기로 한 카튜사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숨쉴틈 없이 전개되다 책의 2/3선을 넘으면서 갑자기 재판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을 나온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한참을 의아하게 생각할 때, 말미에서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약간은 허탈하기도 했고, 이 이야기를 위해서 그렇게 긴 지면을 재판과정에 할애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말년에 하고 싶은 말을 하려다보니 기승전결식의 균형감각을 약간 상실한 듯 한 이 소설, 그래서 결론에 대해 반은 경탄에 마지않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래도 심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카튜샤와 네흘류도프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현실에 입각한 것이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행히 다른 옵션이 있었기에 그들에겐 더 좋은 결말이 가능했던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이 소설은 적고 있다. 정말 많이 공감한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가 있으니 지금은 그 때보다 재판이라는 제도가 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그보다는 용서가 훨씬 더 큰 힘이 있음을 톨스토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말년의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에서 이야기한 것과 톨스토이가 말년에 부활을 통해 한 이야기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P.S. 톨스토이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전쟁과 평화에는 많은 오탈자로 실망이 컸으나, 이 책은 오탈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굉장히 깔끔하게 나와서 소장용으로도 좋다고 여겨진다.



YES마니아 : 골드 s*******1 2010.06.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