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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베르토씨의 비밀 노트, 그리고 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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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이다.   하나의 현실을 두개의 판타지로 묘사하는 기술이 일품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세상 종말 전쟁’의 거친 문장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할양이면 몇 개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에로티시즘 때문만은 아니다. 지성 때문이다. 지적 유희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 에로티시즘과 충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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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이다.

 

하나의 현실을 두개의 판타지로 묘사하는 기술이 일품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세상 종말 전쟁’의 거친 문장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할양이면 몇 개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에로티시즘 때문만은 아니다. 지성 때문이다. 지적 유희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 에로티시즘과 충돌하면서 대뇌와 아랫도리를 팽팽히 붙잡고 늘어진다.

 

애인 바꾸기(마누라 바꾸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을 절묘하게 피해가는 필치. 낭심(囊心)이 터질듯 팽팽하다. 그리고 철저한 절제를 여체의 곡선처럼 리드미컬하게 그려나간다. 그 가벼운 터치.

 

○○사에서 연말 초대장이 왔는데 우선 NO라고 결정을 내렸었다. 그런데 여자가 전화를 했다. ○○사다. 선생의 글이 좋다. 이 번 초대에 꼭 와라. 나는 선생을 좋아할 것 같다. 선생이 오면 그 옆자리 꼭 내가 앉겠다. 완전히 미인계다. 웬만하면 못들은 체 일축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평론을 쓰는 지성이다.

 

현대여성의 필요충분조건은 구닥다리 현모양처가 아니다. 관능적이고 절도가 있어야 하며 지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갔다. 늦는 바람에 그녀를 못 볼 뻔 했다. 애써 찾으니 미인이다. 말도 시원시원하다. 주간(主幹)이 미인계로 내세울만한 여자다. 그러나 그 날 나는 물만 먹었다.

 

글 속의 지식은 객관 타당해야 한다. 그러나 남들이 모르는 것, 한두 개는 있어야 한다. 그게 빠지면 글도 아니다.

 

자유분방한 시각. A의 시선에서 어느 틈에 B의 시선으로 이동하고 어느덧 작가의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변하는 문체. 이런 시각들이 글을 환상 속으로 빠지게 한다. 언젠가 써야 한다면서도 쓰지 못하고 자꾸만 잊어버리는 제임스 조이스, 또는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비슷한 것. 그러나 지루하지 않고 고답적이지 않은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던 또 다른 문체가 아닌가.

 

이 소설은 관능 또는 에로티시즘이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박물지라 해도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일반지식에 대한 향연.

 

시간 건너뛰기. 작가는 현재시제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미래를 현재에 끌어들여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이런 글쓰기를 왜 수필에서 쓰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수필은 독자가 읽기 편하게 써야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작년 ‘난소공’을 읽었다. 글이 왜 당당한지. 독자가 따라오거나 말거나 이해하거나 말거나 작가는 처음에서 끝까지 자기 속도를 유지하며 당당히 가고 있었다. 그 오만함. 시류에 물들지 않고 선과 악에 혹하지 않는 그 건방짐. 그 오만불손함에 독자는 매료되는 것은 아닐까.

 

왜 독자에 아부해야 할까. 요즘 독자는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을 읽던 일방적으로 받아 드리기만 하는 독자가 아니다. 이리 재고 저리 재, 일일이 쪼개도 보고 합쳐도 본다. 더욱 난감한 것은 논평까지 마다않는 건방짐으로 도도해져서 작가 앞에 알랑거리는 글은 즉석에서 배척하기도 한다. 독자는 작가의 안목을 주시한다. 작가의 지적수준을 끝까지 감시한다. 독자는 작가가 아는 만큼만 작가가 느끼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써주기를 바란다. 독자도 당당하고 작가도 당당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 당당할 수 있다. 그래야 독자가 작가를 믿고, 작가는 글을 써야하는 이유에 확실한 !을 붙일 수 있다.

x*****k 2007.04.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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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1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1" 내용보기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염소의 축제 , 도시와 개들등 실패가 없는 작가라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그간 읽었던 작품들처럼 유머러스한 매력도 여전하고 왜 사랑받는 작가인지 알게된 작품입니다 출간된지 오래된 책이러 디자인이 좀 올드하긴 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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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염소의 축제 , 도시와 개들등 실패가 없는 작가라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그간 읽었던 작품들처럼 유머러스한 매력도 여전하고 왜 사랑받는 작가인지 알게된 작품입니다 출간된지 오래된 책이러 디자인이 좀 올드하긴 하네요 ㅎ
YES마니아 : 로얄 4*****5 2025.01.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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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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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아이들의 교육지표로 삼고 있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보다 더 치사한 거짓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정신'이 우리의 이상이라고 누가 말했단 말입니까? '건강한'이라는 말은 이 경우 바보 같은 것, 판에 박힌 것, 상상력의 부재, 영약함의 부재를 말하는 겁니다. (중략)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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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아이들의 교육지표로 삼고 있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보다 더 치사한 거짓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정신'이 우리의 이상이라고 누가 말했단 말입니까? '건강한'이라는 말은 이 경우 바보 같은 것, 판에 박힌 것, 상상력의 부재, 영약함의 부재를 말하는 겁니다. (중략) 풍요롭고 완전한 정신세계는 궁금증, 영악함, 환상, 충족할 수 없는 욕구를 요구하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더러운' 정신, 음흉한 생각, 금지된 상상력의 개화, 감추어진 것을 파헤쳐 보고 싶은 욕구, 알려진 것을 뒤집어보고 싶은 욕구, 전통적인 사상이나 조작된 사실이나 유행하는 가치를 건드려보고 싶은 욕구를 요구한단 말입니다.

일주일간 <악령>에 아주 혼나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이 급하게 필요했다. 그렇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선택. <새엄마 찬양>의 후속작이다. <새엄마 찬양>을 작년 가을 즈음에 읽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요사의 파격적이면서도 세련되기 그지없는 관능미만 기억난다. 이것 역시 그런 관능의 찬양이 나오는데, <새엄마 찬양>에서보다 더 철학적이다.

리고베르토 씨와 그의 아들 폰치토, 새엄마 루크레시아 부인, 부인의 하녀 후스티니아나 - 실제와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의 경계가 모호하다. 몽상과 현실의 애매모호함... 이번 작품에서 요사는 실레의 그림을 주로 차용했는데 글과 그림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참 좋았다.. 형식에서도 메인 스토리와 편지가 섞이면서 진행되는데 익명의 편지는 하나의 시 같았으며, 리고베르토 씨의 편지는 철학적 칼럼 같았다. 개인적으로 리고베르토 씨의 편지 하나하나가 보석 같은 글이었다. 얼마나 멋진 글인가. 모든 인습을 타파하고 하나의 독창적 개인으로서 관능과 쾌락 -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글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얼추 서른 살이 되면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의식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사람들은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의 고단함에 압도되는 삶을 살게 된다. 라고 적었다. 리고베르토 씨는 평범한 보험쟁이지만 자신을 사회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스스로를 지키며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지난번 글에서 요사가 삶과는 별개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내 이야기이다. 아름다움이 삶과 동의어인 리고베르토 씨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한편 요사의 글은 스스로 만든 형식을 깨고 튀어나올 정도로 생동감 있다. 리고베르토 씨의 편지를 보면 하나의 독립적 글이 될 수 있어서, 전체의 작품을 뛰어넘는다고 느껴질 때조차 있었다.. 아 그리고 메인 내러티브에서조차 (요사가 자주 사용하는) 회고식이라 천편일률적인 다른 작가의 내러티브와 비교된다.

요사는 어떤 작품을 선택하든 실패하는 일이 없는 듯... 이렇게 모든 작품이 좋은 작가는 매우 드물다.. <새엄마 찬양>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 작품은 에로티시즘 결정 그 자체라고 느꼈는데, 이 작품은 관능을 바라보는 법, 육체의 소중함, 대체될 수 없는 개인 등등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줘서 그렇다. 각각의 인간은 집단으로 나뉘고, 사회적 기준에 따라 항목화되면서 독자성을 잃어버린다.. 요사는 독자성의 회복을 육체적 관능으로 되찾고자 했다. 어떻게 '나'를 회복할지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요사가 그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꼭 한 번 읽어볼 만하다. 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리고베르토 씨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노력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할튼 뭐 꼭 그런 게 아니어도 무진장 재미있으니까 필히 읽어보시길. ㅎㅎ

그건 그렇고 새물결 짜식들은 총 456쪽의 작품을 2권으로 분권했다. 게다가 1권에서 6장 중간, 2권에서 6장 마무리 - 이렇게 대책 없는 분권을.... 그래도 요사 작품 많이 내놓는 곳이 여기뿐이라 따따부따하지 않겠다. 요사의 다른 작품 더 번역해달라는 애원만...ㅋㅋ

 

 


 

 

이 작품은 마치 헬레니즘의 조각상 같다. 형식 안에서 자유로운 내용을 갖고 있는.. 헬레니즘의 조각상을 보면 육체와 영혼의 생동감이 깃들어있다. 그리스인들은 삶의 허무함을 직시하면서도, 존재의 근원을 여는 열쇠를 의도적으로 던져버린다.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 그 지혜와 명랑성. 요사도 답도 없는 삶과 죽음을 끝없이 성찰하지 않는다. 물론 그도 그럴 수 있지만 그런 길을 택하지 않는다. 삶이란 무엇이지, 인생이랑 어떤 의미이지 - 이런 고뇌에 빠져서 막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역설. 요사는 그런 질문은 던져버리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전부인 '삶' 자체를 움켜쥔다. 그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한없이 누리고자 한다. 하긴 우리가 내적으로 갖고 있는 기쁨과 환희를 전부 다 소진하려고 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찌 그 힘을 답도 없는 질문에 소모하는가. 우리가 가진 힘을 오롯이 삶에 쏟아부어 삶을 더 밝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y****5 2020.07.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