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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타계가 믿기지 않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이야기꾼
"아직도 타계가 믿기지 않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이야기꾼" 내용보기
이문구 선생은 지난 2003년 타계한 우리 문단의 거목이다. 엊그제 읽은 '관촌수필' 표지에 이문구는 한국전쟁 와중에 집안이 풍비박산 난 '빨갱이 자식'으로 문인이 되면 난리통에도 개죽음은 면할 수 있다 여겨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소개돼 있다. '장한몽'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매월당 김시습' 등 굵직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관촌수필'은 선생이 70
"아직도 타계가 믿기지 않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이야기꾼" 내용보기
이문구 선생은 지난 2003년 타계한 우리 문단의 거목이다. 엊그제 읽은 '관촌수필' 표지에 이문구는 한국전쟁 와중에 집안이 풍비박산 난 '빨갱이 자식'으로 문인이 되면 난리통에도 개죽음은 면할 수 있다 여겨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소개돼 있다. '장한몽'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매월당 김시습' 등 굵직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관촌수필'은 선생이 70년대에 발표한 8편의 단편을 묶은 연작소설이다. 발표년도는 72년에서 77년까지 걸쳐있고 '현대문학' '창작과비평'에서 '문학과지성' 신동아' '월간중앙'까지 문예지와 월간지를 넘나든다. 작가의 유년기였던 일제말기서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의 시골(관촌)을 배경으로 각종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맛깔나게 그렸다. 극히 자전적인 소설이어서 대부분은 작가 자신이 직접 겪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라고 짐작된)다. 촌스런 촌에도 다양한 인간들이 부대끼며 살아간다. 갖가지 고민으로 힘들어하고 예상못한 행복에 즐거워한다. 대쪽같은 유학자인 할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에선 장난끼 넘치는 묘사가 입가에 웃음을 번지게 하지만, 주인공의 집 부엌일을 도맡아 하며 주인공을 업어 키운 옹점이가 전쟁을 겪으며 남편을 잃고 마침내는 정처없이 떠도는 약장수 패거리에 들어가 시장바닥에서 그 구성진 노래가락을 뽑아내는 장면에선 한없이 처연해질 따름이다. 주인공이 30대에 접어들어 다시 찾은 고향의 모습은 어쩌면 그렇게 어색하고 안타까운지. 8편이 각자 나름대로의 완결성을 갖췄지만 한편의 소설로 묶여 내뿜는 매력은 비의도적이었기에 더 빛난다. 작가 이문구는 자신의 유년시절이 훌륭한 얘기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문구는 장면 장면을 정밀하고 해학적으로 포착할 줄도 알았다. 그 구수한 사투리와 척척 들어맞는 묘사의 절묘함이란. '관촌수필'은 한 작가의 어린시절 경험과 뛰어난 글솜씨가 빚어낸 우리 문단의 소중한 보물이다. 오래 전에 읽은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여러면에서 좋은 비교가 됐다. 이문구의 작품중에선 몇 해전 동인문학상을 받은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견주어 볼 만하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주변 인물들을 실감나게 그렸다는 점에서 작품을 읽는 내내 장차 우리 문단의 기린아로 떠오른 은희경의 '새의 선물'도 뇌리를 스쳐갔다. 은희경도 '새의 선물' 쓰기 전에 '관촌수필' 쯤은 읽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 내 기억이 맞다면 SBS 개국 초기에 '관촌수필'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텍스트의 탄탄함으로 미뤄 아주 엉터리는 아니었을 것 같다. 연작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드라마로 만들기에 딱이었으리라. '관촌수필'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판이 유명하지만 이번에 랜덤하우스중앙에서 이문구 전집을 펴내며 깔끔하게 만든 것을 새로 내놨다. 어휘해설과 권영민 교수의 해설도 읽을 만하다. 감각을 빙자한 잔재주에 놀아나는 2000대 문학계에 식상했다면 적당히 묵어 알싸한 이문구의 소설을 읽어보자.
l******a 2005.01.17.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