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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인생은 둥글게 살고 볼일이라는 신조를 가진 나로써는 까칠한(?) 지식인들에게 묘한 컴플렉스(?)혹은 경외심 같은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인 살만 루시디 또한 예외는 아니라 할 만 한데, 가끔씩은 루시디가 우리로 치면 이문열(?)과 비슷한 유형의 컴플렉스를 겪고 있는 지식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개인적으로는 그간 그닥 가까이 하고픈 작가는 아니었다.(구체적으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아랍권 비판은 지당하면서도 종종 뭔가 핀트가 안맞는 경우가 가끔씩 보인다는 개인적인 '느낌'때문일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동생이 모 북클럽 가입 선물(?)로 본서를 구입한 터라 나도 겸사겸사 우연찮게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뭐 사실 이거 딸랑 한권 읽고 그를 접해보았다고 말 할수 있는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튼 그가 이란의 호메이니로부터 파트와(이슬람의 종교적 판결이라고 한다)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망명과 '은둔생활'(그가 각국의 '근본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망명'정도(?)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을 하던 도중 쓰게 된 첫번째 작품인 본서는 애초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이 늘상(?) 그렇듯 책은 단순히 아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 읽힌다. 이런 계열(?)의 소설은 처음이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 읽는 내내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 '네버엔딩스토리'를 보는 듯 뭔가 환상적이고 꿈결같은(?)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주인공 '하룬'의 말마따나 아버지의 그 '사실도 아닌 이야기'가 알고보니 사실이었던, 때문에 주인공이 '수다'족과 '잠잠'족 사이에서 수많은 모험을 겪게되는 본 내용은 몇년 전 나름 인상깊게 봤던 영화 '빅 피쉬'가 생각나기도 했고. 흥미로웠던 것은, 읽던 도중-이런 류의 이야기가 흔히 그렇게 결말을 내듯-주인공이 꿈을 깨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 않을까 예상을 해보았으나, '너무도 당연하게' 실제 벌어진 일로 서술된다.(그런 면에서 저자는 자신의 말을 뒤집지 않았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이것이 모두 '꿈'으로 결말이 났으면, 이야기 속에 나왔던 그 수많은 '뼈있는' 정치적 우화들은 살짝 빛이 바랠 뻔 했다.) 하지만 작가가 처한 극한적 상황의 산물이랄 법한 본 작품은, 작가 본인의 그 극한적 상태 만큼이나 설정자체도 극한으로 밀고들어간 면이 없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물론 그건 저자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필연적인 결과였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는 한다.) 번역자 말마따나 언론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에 관한 정치적 우화로도 읽히는(아닌게 아니라, 굉장히 '노골적'이다ㅋ) 본서는 시종일관 아군과 적군, 선과 악을 극단으로 분할한다. 침묵은 나쁘고, 수다는 건전하다는 식의 극단적 이분법은(물론 수다족의 왕자 허랑과 바락공주, 잠잠족의 무드라라는 예외적인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부차적일 따름이다.) 솔직히 아쉬움이 남았다. 잠잠족 하나하나에게도 침묵의 악덕만큼 미덕이 존재하고 있으며, 수다족 하나하나에게도 대화의 미덕만큼 악덕이 존재함을 드러내 주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전쟁과 화해 속에서 양자간의 일종의 변증법적 결합(?)을 이루어내는 식의 결론이 아쉬웠다는 것은 동화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었을까? 저자의 재치있고 명랑한 표현만큼이나, 엉성한 직역투의 번역으로 자칫 '동화'로서의 본분이 잊혀질 뻔한 본 작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재미있고 생동감있게 읽혀 질 수 있게 된 데에는 역시나 성실하고 적절하고 재치있는 번역을 해준 번역자의 공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별 생각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무언가 하나 건질 것이 있을 법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본 작품은 '재밌다.' 때문에 일독을 권함~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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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액체일까요, 고체일까요, 기체일까요? 만약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형태를 띄고 있을까요? 그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타고난 이야기꾼인 살만 루시디(Ahmed Salman Rushdie)는 ‘이야기’를 어떻게 상상했는지 같이 한 번 봅시다. ^^ 물 속을 들여다본 하룬은 바다가 10억하고도 한 개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많은 흐름이 저마다 다른 색깔이었고, 놀랄 만큼 복잡한 테피스트리처럼 서로 얽기설기 엮여 있었습니다. 만약은 그것이 ‘이야기 흐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흐름 한 가닥이 이야기 하나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이야기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부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 바다’는 사실상 우주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야기가 액체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자신을 새롭게 변형시키고, 다른 이야기와 결합하여 또 다른 이야기로 탈바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과는 달리 ‘이야기 바다’는 단순한 이야기 저장실이 아니었습니다. ‘이야기 바다’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94). 어때요? 참 근사하고 멋진 상상이죠? 커다란 바다에 이야기들이 물고기떼들처럼 유영하고 있군요.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상상만 해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보는 바닷속처럼 말이죠. 더군다나 이 이야기들은 액체 상태라서 무궁무진하게 변할 수 있대요. 이야기들은 스스로 변형되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와 결합되면서 탈바꿈하기도 한다는 군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것, 그게 살만 루시디가 생각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 에 대한 살만 루시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을 좀 더 찾아 볼게요. “ (전략) 어떤 이야기도 무에서 생겨나지는 않아. 새로운 이야기는 낡은 이야기에서 태어나지. 새로운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새로운 결합이야. 그러니까 우리의 예술적인 다구어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소화기관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그들이 얼마나 메스꺼울지 상상해 봐! 추잡하게 오염된 이야기들이 지금 그들 몸 속을 통과하고 있어. 앞에서 뒤로,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 아가미 주위가 초록빛이 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 (112) 이바구의 남쪽에 있는 ‘고전 구역’은 최근 들어 아무도 가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을 흐르는 옛날 이야기들은 이제 수요가 거의 없었습니다. “수다족이 어떤지는 너도 알겠지. 새로운 것, 늘 새로운 것만 찾아. 옛날 이야기에는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아.” 그래서 ‘고전 구역’은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 흐름’은 ‘이야기의 원천’인 샘에서 바다를 건너 북쪽으로 흐르는 해류에서 오래 전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우너천은 전설에 따르면 ‘달의 남극’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원천 자체가 오염되면 바다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모두 어떻게 될까 ” 만약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원천을 무시했어.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113) 이 작품은 동화의 형태를 띠고 있고, 살만 루시디의 삶과 어울려(이 작품은 살만 루시디가 은둔 생활을 할 때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들려주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우화로도 해석되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공감하고 느낀 건 살만 루시디가 생각하는 ‘이야기’ 혹은 ‘문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은 무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이전에 있던 이야기에서 태어납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이야기들과의 결합을 통해서 변형되기도 하고 탈바꿈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고전’이 중요한 건데, 사람들은 ‘고전’엔 관심이 없습니다. 고전이 바로 ‘이야기의 원천’인데 말이죠. “원천 자체가 오염되면 바다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모두 어떻게 될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원천을 무시했어.” 살만 루시디의 안타까움과 반성은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도 함께 생각해볼 문제가 됩니다. 루시디의 부모는 둘 다 이야기꾼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족보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조상과 역사에 해박해서, 어머니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고 하고 아버지 역시 밤마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조금 개작하여 루시디가 잠들 때까지 들려주곤 했다는 군요. 루시디가 근래에 보기 드문 이야기꾼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런 부모의 영향일 겁니다. 어릴 적부터 친숙해진 《아라비안 나이트》와 힌두 설화의 무궁무진한 세계가 그의 이야기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살만 루시디는 ‘고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이야기가 무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거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독서할 수 있고,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썩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동화입니다. 이 이야기속 주인공 하룬의 아버지는 이야기꾼인데, 하룬은 아버지를 공돌리기 곡예사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룬은 아버지를 공 돌리기 곡예사로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곡예사가 여러 개의 공을 한꺼번에 돌리듯, 라시드는 다양한 이야기를 현기증 날 만큼 어지럽게 돌리면서도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그 많은 이야기가 어디서 왔을까? 라시드가 입을 벌려 미소만 지으면, 마법 이야기, 사랑 이야기, 공주 이야기, 못된 숙부 이야기, 살찐 숙모 이야기, 콧수염을 기르고 노란 체크 무늬 바지를 입은 악당 이야기, 환상적인 경치 이야기, 겁쟁이 이야기, 영웅 이야기, 전쟁 이야기가 가득하고, 재미있고 흥얼거리기 쉬운 대여섯 곡이 들어간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18). 이런 신나는 이야기로 가득한 동화, 공돌리는 곡예사를 보듯이 아슬아슬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바로 《하룬과 이야기 바다》입니다. 1990년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나온 루시디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라비안 나이트》나 《스타워즈》 혹은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미국의 인기 작가인 스티븐 킹은 “시공을 초월한 놀랍고 훌륭한 소설, 문학 천재의 명작”이라고 평했고, 나딘 고디머(199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설가) 여사는 “환상적이고 재미있다. 드라마와 코미디, 선과 악 사이를 핑핑 놀아다닌다. 유쾌한 것에서 오싹하게 기분 나쁜 것까지 온갖 생물이 등장한다. 이 즐겁고 뛰어난 책에는 온갖 상상력이 가득하다.”고 감상을 말했다고(7-8)하니 동화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험을 떠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신나고 즐겁고 설렙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동심의 시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주기 때문이죠.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보았던 구니스나 피터팬을 떠올렸답니다. 자, 하룬과 함께 이야기바다를 모험할 준비가 되셨나요?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 * 간접인용한 부분들(작품이나 저자에 대한 설명)은 역자인 김석희씨가 쓴 '들어가기 전에'에서 가져왔습니다. |
2007-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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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서 나름 상상력을 잃게 된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살만 루시디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를 실감했다. 내게도 이런 상상력들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작가가 처한 상황들이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는 사람을 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능력만큼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
| 살만 루시디는 ''악마의 시''라는 소설로 인해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이란 정부의 사형 선고를 받았던 작가있다.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어서, 수많은 암살자들을 피해서 10년이 넘게 은신처를 전전했던 비운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살만 루시디에 대해서 알고 있던 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하룬과 이야기 바다''라는 동화는 살만 루시디의 이미지와는 별로 맞지 않다. 그에게는 강직하고 적나라한 스타일이 어울릴 것 같은데, 이 책은 환상적인 세계를 여행하는 동화인 것이다. 왜 살만 루시디가 이 책을 쓴 것일까? 바로 그의 두 자식을 위해서라고 한다. 비록 자신은 암살범의 위협 때문에 은신처를 벗어날 수 없지만, 마음만은 자식들을 위해 이런 이야기들을 직접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왠지 끈끈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하룬의 이야기 바다''는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다. 상상의 나라로 떠나 악당을 물리치는 꼬마 하룬과,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 여러 등장 인물들과의 모험은 참 흥미롭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여러가지 생각할 점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이나 배척주의, 언론에 대한 탄압과 같은 요소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기 떄문에, 댓구를 이루는 인물이나 장치를 찾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번역가가 고심해서 선정했다는 ''하지만'',''만약'',''너복설과''와 같은 단어들은 기발한 것 같다. 살만 루시디가 원본에서 그랬듯이, 번역가는 한글로 번역하면서 언어유희적인 측면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한 티가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