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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하드라마가 소설을 다시 읽게 한다. 해신, 토지. 불멸의 이순신은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읽는다. 또 이 대하드라마에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바닥에 깔린다는 것도 좋다. 이런 이순신이 영화에서는 실패를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무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물론 블록버스터이긴 하지만 알렉산더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영화계도 이런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만들었으면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김태훈이 지은 이순신의 두 얼굴을 같이 읽으면 더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그 책에는 이순신이 싸워서 연전연승한 모든 해전에 대한 지도가 잘 나와 있고 아군과 적들의 배들의 위치도 잘 나타나고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이순신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까지의 느낌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아산 현충사에서도 그렇게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좀 달라진 것 같다. 곧 부안에도 가 보아야겠다.
장편소설을 요약하는 것은 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연 어떤 장수가 두 번이나 백의종군을 할 수가 있을까. 지금의 장군이 흰 옷을 입고 죄인처럼 일하라면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이순신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백의종군을 한다.
나 같으면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하고 나서 명량해전이 있는 다음에는 일본군이 돌아가도록 놔두고 한강으로 배를 몰아가 쿠데타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이성계도 쿠데타의 주인공이 아닌가.
나는 군인의 쿠데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이 되지 않는 가정이다. 하지만 선조의 의심은 지나쳤다. 토사구팽이 아니고 무엇인가. 의병장 김덕령을 사형시키고 난 선조가 이미 전라도의 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밤을 제대로 보냈을까. 특히 선조는 그때까지의 왕 중에서 후궁출신으로 처음이었던 것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도대체 몇 번이나 왕 자리를 세자인 광해군에게 넘긴다고 했던가. 그것은 꼭 자신이 궁지로 몰리면 내놓는 카드였다. 그렇게 한 마디만 하면 광해군은 자신의 잘못이 없어도 죄를 빌어야 했고, 신하들 역시 그렇게 되었다. 그 시대에 신하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장수라는 길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황진이라는 소설을 보면 황진이가 연인이 된 사내에게 내가 목숨을 건 것처럼 당신도 목숨을 걸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사내가 무관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무관도 남해에서 왜구에게 죽어가고 만다. 그 시대 무관의 길은 이랬다. 그러면서 문신에게 무시를 당하고. 오죽하면 고려시대에 무신정변이 일어났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농담으로 해방 후 군인들이 정권을 잡을 때 고려 무신정권의 연장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순신은 필승의 확신이 없으면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조정이 요구하는 전쟁도 필승의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았다. 그것이 왕을 무시하는 것으로 되어 죄를 짓게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해전에 유례가 없는 연전연승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순신이 왜 갑옷을 벗고 붉은 옷을 입고 마지막 전쟁에 임했을까. 나는 이것이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니 마지막 전쟁에서 몸을 불사르고 싶은 이순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역사에 남은 이순신의 마음이 다가온다. 다시 한 번 이순신을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칠년 전쟁 내내, 선조는 전쟁 영웅으로 부각된 이순신에 대해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이순신도 물론 이런 어심을 알았고, 또 최초로 전혀 새로운 근심을 시작해야만 했다. 휘하 장수들 역시 류성룡의 실각과 함께 이순신을 향해 조여 오는 운명의 피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이순신은 끝내 쿠데타의 유혹을 왜군과 맞서 싸우다 관음포에서 장렬히 전사했지만, 평생 이순신과 나폴레옹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던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1권 345쪽 작가의 말 중에서).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평화를 유지하려고 애쓴 우리 노력은 비굴함으로 간주되겠지요. 청사(靑史, 역사)를 살펴보아도 전쟁 대신 평화를 주장한 대신들, 창이 되기보다 방패를 자임한 장수들은 결코 목숨을 잃었습니다.”(6권 297쪽 이덕형의 말 중에서) 친국을 하기 전까지는 선조도 김덕령이 반란에 참여했다는 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걸걸한 음성과 짙은 눈썹, 도끼눈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를 직접 보는 순간 김덕령을 무죄 방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건을 유야무야 덮으면 김덕령은 고난 받는 민중에게 영웅이 될 것이고, 선조 자신은 그 영웅을 핍박한 무능한 군왕이 되는 것이다. 하삼도 의병장 중에서 민심을 가장 많이 얻은 장수가 김덕령과 곽재우 아닌가!(7권 22쪽) “하나 왜 그 많은 신하들이 이순신을 삭탈관직 하라고 요구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는 이순신이 가진 능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니라. 전라도 백성은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든다는 풍문이다. 과인이 임명한 관리들 명은 어기더라도 이순신 군령은 틀림없이 지킨다는 것이다. 세자! 이제 이순신은 그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왕실 안녕을 위협하는 화근이 되었다. 화근은 뿌리를 잘라 버려야 한다. 군왕에게 이런 불안을 안긴 것도 장수의 도리가 아니야. 아니 그러냐?”(7권 100쪽)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를 살려 둘 수는 없다. 명량에서 거둔 승리도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야. 지금 전라도에는 이순신이 용상에 올라야 한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이순신은 마치 군왕처럼 소금을 생산토록 하고 세금을 거둬들이며 사사로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런 자를 살려 둬야 하겠는가?(8권 24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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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다른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불과 몇십년전 군부정권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거의 대부분의 남자 어린이의 롤 모델 0순위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아니 그냥 장군만으로도 부족해서 구국의 영웅인 성웅 이순신이었다. 과거 시험장에서 낙마했지만 부러진 다리를 동여메고 끝까지 과업을 완수한 불굴의 의지력과 일본과의 7년전쟁 동안 단한번의 패배도 없었던 전승의 신화를 기록한 탁월한 리더십과 전략, 그리고 마지막 전투인 노량 앞바다에서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그 피날레를 날렸던 그의 삶은 한국사 역사상 그 어떠한 위인에게 찾아볼 수 없는 모델로서 유소년기의 남자아이들에겐 그야말로 다른 대안이 있을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화된 현상에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정학적 요인이나 정권 홍보적인 요인등으로 인해 이순신은 상당히 왜곡되기 시작했고 이순신 그 자체보다는 그를 둘러싼 뿌연 안개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등대와 같이 세상과 동떨어진 인물로 말들어 버렸다. 국가공인 교과서나 위인전 그리고 정보홍보용 자료(현충사를 비롯한 각종 기념유적물등)등 마치 똑같은 활자체에서 찍어내는 인쇄물처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정말 일맥상통하게 같은 점만을 들어내고 있고 우리는 그런 필요성에 의해 왜곡된 이순신의 형상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하나의 형식으로 영원히 봉인해 버렸다. 그래서 이순신에 대한 조그만한 부정적인 요인이라도 제기된다면 발끈하게 되고 그런 제안자는 사회속에서 공공의 적으로 매장되기 일쑤였고 아예 그런 발상 자체가 국민적인 정서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이순신은 인간을 뛰어넘어 신으로 자리매김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 이순신을 다루는 문제는 국민제인들의 어느정도 똘레랑스와 더불어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은 김훈의 <칼의 노래>와 더불어 인간 이순신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으로 사료된다. 비록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로 만나게 되는 이순신이지만 역사적인 고증과 사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순신의 삶과 그가 살았던 당시 에포크상을 그려보는데 이만한 작품도 드물 것으로 보여진다. <칼의 노래>가 임진왜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불멸의 이순신>은 평전에 가까울 정도로 이순신 일대기 전반을 다루고 있어 성장배경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선조와 유성룡,원균등을 비롯한 동시대인들의 사유와 더불어 심리적인 묘사가 심도깊게 펼쳐져 있어 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正과 反, 善과 惡의 구도로 각인 되었던 원균과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그동안 경직되어온 사고에 유연성을 가미해 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면에서 허균이라는 인물을 비중있게 다루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작가의 후작이 될 <허균 최후의 19일>에서 펼치질 허균의 사유를 프롤로그하는 형식으로 미리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보너스적인 역활을 하게 된다. 절대왕권을 꿈꾸는 선조(광해군)와 이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허균 그리고 무엇보다 민의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이순신의 3자구도를 통해서 정치가 가져야 정도가 어떤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슬그머니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구도 설정은 그동안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숙히 각인된 이순신과 그외 인물들이라는 극단적인 구도에서 이순신을 비롯한 당시대 모든 이들에게 저마다의 논리와 사유가 존재했고 그러한 사유들을 선과악, 정과반이라는 시각으로 볼수 없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구도설정이 인간 이순신의 삶을 제대로 고찰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하고 그러므로서 인간 이순신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멸의 이순신>은 역사적 인물간의 대립구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가공의 인물간의 절묘한 매칭으로 한결 맛깔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일종의 심리물이라고 해도 그다지 큰 범주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소설이라는 커다란 메타포속에 담겨진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묘사가 역사적 배경과 시의 적절하게 연결되어 한층 내러티브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제목속에 내제되어있는 '불멸'이라는 뜻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영원토록 멸하지 않는 영생하는등으로 직역될 수 있는 불멸의 메타포는 아마도 이순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이는 그동안 성웅, 구국의 영웅등으로 비쳐진 이순신의 공적 내지는 겉모습의 상징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내면적인 모습을 투영한 표현으로 이순신 그 자체를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순신이 시종일관 지켜왔던 중용(중도가 아닌)이라는 사유의 기반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내부의 편가르기, 왜라는 적군과 아군, 통제영 내부의 갈등, 군주와 군주의 명에 대한 갈등... 이순신에게 수많은 갈등과 고뇌가 부여되지만 이순신은 이쪽 저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이 바로 불멸의 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광화문사거리에 표호하고 있는 추상적인 상징요소로서의 이순신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영생하고 있는 실제적인 이순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를 최대한 완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역사적이든 비역사적이든간에)을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절묘하게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부각으로 인해 자치하면 사건중심으로 편중될 수 있는 역사소설의 한계를 말끔이 걷어내고 사건과 인물(내면적 심리구도)을 유효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내러티브를 한결 더 깔끔하게 끌어가고 있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특히 이순신과 동시대를 살았을법한 역사라는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초들(임천수,박초희,날발...)을 거의 조연급 이상으로 발탁함으로써 이순신의 가치를 더 부각시키고 동시에 이러한 민초들의 삶을 어깨에 지고 가야하는 불멸의 당위성을 표출하게 하는 스트럭쳐가 인간 이순신을 적확하게 바라보는 시각임을 넌즈시 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하드웨어적이고 국가 공식적인 이미지로 봉인되어 정체되어버린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기억들이 새롭게 재탄생하는 계기가 충분히 되리라 여겨진다. 공이 추구했던 불멸의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순간 이순신은 영생불사하는 진정한 불멸의 영웅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자리잡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