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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킬로미터면 거의 8천리에 이르는 거리다. 우리나라를 일컬어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말한다. 함경북도에서 전라남도까지 한 차례 걸은 후 다시 함경북도로 올라갔다가 서울까지 내려온 거리. 저자가 이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바람이라 해도 쉽지 않은 길이며 비라고 해도 그 길을 갈 수 없는 길이다. 프롤로그를 본 후에야 충분히 8천리를 걸을 수 있는 기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시인이라니... 걷는 데에는 자신이 있지만 오랜 시간 저자처럼 먼 길을 걸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기껏 걸어봐야 한 나절 한강변을 따라 걷는 정도다. 그 길을 걷다보면 여러 고민들로 부터 벗어나곤 했는데. 그가 가진 번뇌는 얼마나 크길래 그토록 긴 거리를 걸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며 단순한 번뇌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며 걸었다는데. 이건 왜 살아야하는지 모르지만 존재하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우주적 섭리의 말이기도 했다. 내 고향은 부산이다. 어머니의 고향은 남해라 어머니 생신 때마다 고향에 가고 싶어하셔서 모시고 해남부터 시작해 여수를 거쳐 남해를 지나 거의 백세에 가까운 이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간다. 그 길을 차 타고 휑하니 지나갈 뿐이니 곳곳에 무엇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그런 내게 남해를 새롭게 알려준 책이었다. 이 책은 내게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주었다. 걷다보면 당신에게 가까워진다는데 나도 맘놓고 걸을 수 있는 날이 주어진다면 내가 사는 곳에서 시작해 아래로 걸어내려가고 싶다. 내가 사는 곳에서 어머니 고향 남해를 거쳐 내가 태어난 부산 태종대까지 걸어보기. 부산에서 시작해 충청도를 거치고 경기도까지... 책이 알려준 곳마다 찾아가 감상에 젖어보기. 이게 나의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걷다보면 나 역시 어느 누구에게 가까워질 것이라라. 이 책이 내 맘에 쏙 들어온 이유는, 책 시작이 남파랑길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남파랑길'이라는 단어를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의 길이 있다는 사실은 매력적이었다. 한편으론 남파랑길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봤을 정도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봄이 오기 전에 배낭도 하나 장만하고 신발도 하나 장만해야겠다. 봄이 와 집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집 밖으로 나서 먼 길을 걷다 보면 내가 평생 그리워했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책 곳곳에서 만난 사연들과 사진들이 보여서 여행에세이라 말하는 듯한데 이 책은 인생의 메시지를 담은 인생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속에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맘이 보였다. 혹 길을 찾지 못해 잠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 한권 안내서 삼아 8천리는 아니어도 남파랑길이나 서해랑길 한번 걸어보면 어떨까. 새삼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스웨덴 속담을 실감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