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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퇴역자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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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내부의 허무하기까지 한 위선과 허황된 본질을 풍자한 <오피셜 스토리>의 감독 루이스 푸엔조가 연출한 (대략 또 그 무렵이기도 한) 1989년 작품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 원작이 있으며, '그링고'는 워낙 영화(그것도 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인지라 아마 모르는 이가 없겠고, 따라서 소설이건 영화건 대략 어떤 진행일지는 제목만 봐도 각이 나오는 편이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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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내부의 허무하기까지 한 위선과 허황된 본질을 풍자한 <오피셜 스토리>의 감독 루이스 푸엔조가 연출한 (대략 또 그 무렵이기도 한) 1989년 작품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 원작이 있으며, '그링고'는 워낙 영화(그것도 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인지라 아마 모르는 이가 없겠고, 따라서 소설이건 영화건 대략 어떤 진행일지는 제목만 봐도 각이 나오는 편이다. 어떤 걸 상상했다면 거의 그 루트로 간다고 봐도 좋다.

그레고리 펙이, '타이틀 롤'인 OO(스포-이러면 가리나마나 아닌가?)로 나오며, 대략 그와 부녀지간 정도 나이 차가 나는 제인 폰다가 가정 교사 신분으로 멕시코에 건너가다 판초 비야의 혁명군과 엮인다는 스토리다. 오십대 초반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한때 反戰 아이콘으로 선명히 각인도 되었던 그녀 답게 영화 곳곳에서 웃기기도 하고 정치색 어디 갖다 안 버리는 신조와 본색을 드러낸다. 여기서도 여전히 멋진 그녀지만, 나는 이때로부터 8년 전 <황금 연못>에서 친부 헨리 폰다와 세기의 명우 캐서린 헵번과 함께 공연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본래 잘 벗는 편인 그녀지만 저 영화에서는 비키니 자태까지 특별히 관객에게 서비스하는 대목이 있었다.

판초 비야는 그 낭만적인 생애 때문에 멕시코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서 더 자주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이다. 혁명가라 존경하는 이도 있고, 일개 간활한 산적에 지나지 않는다며 괜한 미화, 과대평가가 금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 실존 인물을 맡아 연기한배우들은 율 브리너, 텔리 사발라스 같은 이들이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머리를 완전히 밀고 강렬한 개성을 표현한 걸로 유명한데, 후자가 나온 <버트 랭카스터의 추적자>, <아테네 탈출> 두 편의 출연작에 대해 내가 모두 리뷰를 올린 적 있고 거기서 간단한 배우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판초 비야 역은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주니어가 맡았고, 대략 제인 폰다와 비슷한 또래이다. 판초 비야가 거느리는 장군 중 한 명이 토마스 아로요이며, 지미 스미츠가 이 역인데 사실 제인 폰다와는 나이 차가 꽤 나는, 당시만 해도 팔팔한 젊은이였다. 그러니 그레고리 펙(수수께끼에 싸인 노인) - 제인 폰다(가정 교사 일 하러 가다가 도중에 자발적 납치를 당하며 평생 소원이던 혁명가 놀음에 가담)- 지미 스미츠(제 상처도 간수 못하는 주제에 남을 구하겠답시고 설치는 얼치기)가 세대를 초월한 삼각 로맨스를 펼치는 셈인데, 활극도 활극이지만 이들 사이의 미묘한 애증의 심리 대결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포일러)
나중에 드러나지만 아로요 장군(지미 스미츠 扮)은 미란다 가문의 사생아였고 어려서 부친으로부터 버림 받은 한이 평생 동안 그 영혼을 갉아먹은 불운한 젊은이의 한이, 어설픈 혁명가 흉내에 아까운 생을 탕진하게 밀어붙인 동력 구실을 했었다. 한편, '올드 그링고'란 별명을 지닌 노인은 알고 보니 해리엇(제인 폰다 扮)이 애독했던 명작 여럿을 쓴 유명한 작가였으며, 다만 오래 앓아 온 지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젊은 장군 아로요를 고의로 자극한다. 이걸 두고 자살, 혹은 자가 안락사의 한 방편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친으로부터 받은 학대, 그에 이어진 존속 살인'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영혼에게, 아예 drastic cure 를 제공한 호의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아로요는 제 깜냥이 그것밖에 안 되기에, 결국 가장 구질구질한 방식의 파멸을 자초한다.

앰브로스 비어스(나중에서야 드러난 노인의 정체)는 생전 그토록 큰 명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불만과 동요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이유는 단지 '대중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자체 평가에 있었다. 몸이 좋지도 못했지만, 결국 그는 극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죽음을 통해 결코 자신이 속물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한 셈이었다. 판초 비야의 역할은 '두 남자의 죽음'에 대한 면피성 꼬리자르기 정도인데, 이로써 원작자(카를로스 푸엔테스)나 감독이나 이 역사적인 大盜에 대해 끝까지 박한 평가를 거두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한 셈이다.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인데 사실 영화보다는 이 무렵 유행하던 미니시리즈 5회분 정도로 만들었으면 더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사시 포맷이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데, 여튼 사내답게 화끈한 삶을 살다 불꽃처럼 사그라들고 싶었던 아로요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제 머리통을 쥐어박는 미친 보모 같은 실업자가 비실비실 눈치나 살피며 잡놈의 주접을 떨다가 개맞듯이 처맞고 썩은 내장을 드러내며 죽는 등 별 희한한 촌극이 펼쳐지기도 한다. 상한 생선이 노망한 닭과 함께 자신들은 끝까지 동물이 아닌 낚시꾼으로 살았노라며 착각 속에 죽어간다면, 어떨까, 이런 사경을 헤매는 한심한 낙오자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는 게 그나마 성한 자의 자비가 아닐까.

s****o 2018.06.07.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