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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여러국가가 등장한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소련이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1922년에 세워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준말이다. 러시아 영토를 비롯하여 북유럽, 중앙아시아 내부까지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인류사 최초 공산주의 연방국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을 장악한 히틀러 조차 막아냈던 나라가 소련이었다. 이렇게 보면 소련이라는 나라가 우리 근현대사와 무슨 연관이 있나 싶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상기해보자. 미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소련 붕괴를 세계사적 흐름에 따른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제국’이라는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제국’을 표방한 소련은 붕괴될 수 밖에 없었다고. ‘제국’에 반발한 연방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 열망도 거기에 더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고르바초프라는 위대한 인물이 소련에 민주주의 라는 대의를 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미국 역사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말했다. 그렇게 소련 붕괴는 당연한 역사적 흐름이며, 대의를 위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위대한 희생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다. 많은 학생들이 교과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배웠다. 정말일까? 소련은 역사적인 흐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붕괴된 것이며, 고르바초프는 소련에 민주주의 씨앗을 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위대한 영웅인걸까? 이 세계사책 『소련 붕괴의 순간』 저자는 그런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인정받는 고르바초프의 공인 전기를 쓴 미국 작가 윌리엄 타우브먼은 “고르바초프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타우브먼은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변화시키려고 했으며,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지만 새로운 국가, 사회, 경제를 건설하는 데는 당연히 실패한 유례없는 “비극적 영웅”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p 041 미국과 서방에서 가르친 고르바초프와 실제 책 속에 비친 고르바초프는 극과 극을 달린다. 개인적으론 책 속에 보여지는 고르바로프가 사실에 가까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고르바초프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만들어난 환영이다. 오롯이 소련 붕괴를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눈으로 만들어낸 환영인 것이다. 고르바쵸프의 헛발질이 소련에 암울한 미래를 가져다주든 말든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관심없었다. 심지어 고르바초프가 소련에 민주주의를 일으키고자 미국의 도움을 원했음에도, 미국은 그저 관망했다. 미국 입장에선 ‘이념’에 따라 공산주의는 사라져야했으며, 따라서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미국은 소련을 해체한 고르바초프를 위대한 영웅이라 일컫고,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저자는 이 책 『소련 붕괴의 시간』을 쓰기에 앞서 무려 30여년간 자료를 모았다. 출처 미국, 러시아 문서고 등 정부기관에서 확인한 각종 보고서를 포함해서 과거 KGB 및 MIC 요원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 인터뷰를 망라했다. 신레닌주의적 웅변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집권하고 첫 2년 동안 어떤 개혁 전략을 취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 놀랍게도 안드로포프가 소련의 거시 경제 안정성에 관해 제기했던 시급한 문제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식량 수입을 줄이고, 무역수지 군형을 회복하고, 그림자 경제를 강력히 단속하고, 노동력을 규율할 필요성 말이다. 고르파초프의 작성문은 소련 경제를 괴롭히는 경제적, 재정적 문제점에 대한 진단은 담지 않았다. p 044 예측에 따르면 5년 내로 소련 경제는 재편되어 국내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고 해외로 수출할 만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과거에, 소련의 현대화 시도는 서방의 회사를 끌어들여 신규공장을 지었던 1930년대나 1960년대에 최상의 성과를 낳았다. 신규 기업에는 새로 훈련받은 기술자와 노동자가 필요했는데, 그들은 싫든 좋든 외국의 관행과 표준을 따랐다. 이는 경쟁과 여타 시장 추진 요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후한 공정과 화석화된 작업 관행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1986년 고르바초프의 조치는 기존 국영기업의 장비 교체에 돈을 투자했다. 대규모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이었다. 오래된 공장의 경영자와 노동자는 보수적으로 행동하며 혁신에 저항했다. 값비싼 서구 장비는 대부분 구공장과 시설에서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p 047 고르바초프는 레닌을 영웅시하며, 소련을 구할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눈 앞에 보이는 소련의 문제점들을 급진적인 방법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가 끌고가야 했던 소련은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위기에 직면한,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힌 문제점들을 개혁을 하지않으면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다. 누가봐도 시급하게 개혁을 진행해야 했다. 소련의 불행은 그 개혁을 진행할 사람이 고르바초프였다는 점이다. 그는 그야말로 탁상머리 행정가의 표본이었다. 진짜 어둠은 겪어보지 못했으나, 글로써 어둠을 배웠으며, 글로 배운 어둠을 급진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이상주의자 그게 바로 고르바초프였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그의 이상에는 ‘현실(또는 현장)’이 없었다. 그의 이상은 책상위, 책 속에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선호한 정책, 인텔리겐치아를 달래고 공화국의 지배 엘리트에게 책임을 이양하는 정책은 더 나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는 발트 지역과 남캅카스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핵심 슬라브 공화국들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리주의를 가능케하고 정당화했다. (…) 1988년 후반, 고르바초프의 부관들 일부는 세금과 재정을 중앙이 통제하는 단일국가, 최소한 강력한 대통령을 둔 연방을 헌법상으로 긍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 대신, 고르바초프는 눈에 뻔히 보이는 유고슬라비아의 나쁜 사례에도 불구하고 ‘더 강한 공화국들’이라는 치명적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그는 인민대표대회와 최고소비에트같이 대의제 기구지만 다루기 힘들고 통치 능력이 없는 기관의 권한을 강화했다. (…) 당 독재를 대체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은 해방과 자유화를 의미했지만, 견제와 균형을 제공하지 않고 특히 러시아연방에서 악성 포퓰리즘과 민족 분리주의로 가는 관문도 열었다. 유사한 참사가 경제에도 일어났다. p 389 물론 그가 소련을 이끌고 나가는 동안, 무능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그 기회들을 스스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무능한 이상주의자가 이끌던 소련은 끝내 회생이 불가능했다. 그의 무능함은 소련에 잘못된 개혁방안, 연방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열망, 포퓰리즘, 발트 3국의 독립투쟁, 막대한 부채, 권위주의, 사회보장제도 파괴, 대규모 탈산업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련은 붕괴했다. 연방은 해체되었고, 연방의 중심이었던 러시아는 살아남아야 했다. 온갖 오물을 유산으로 떠안은 러시아가 살아남는 방법은, 놀랍게도 소련 시절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는 길이었다. 그렇기 소련 시절 유산을 물려받은 러시아는 혼란기를 지났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소련의 잔재를 밟고 선 러시아의 현재는 어떠한가. 뭐, 남의 나라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세계사책 『소련 붕괴의 순간』을 읽다보면,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분명 내가 살던 나라도 아니고, 내 조상들이 살던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책 전문가, 관련분야 정치가들은 전부 배제한 채 측근 엘리트, 검사들만 기용하던 대통령. 현실에 눈 돌린채, 자기만의 이상을 펼치려던 대통령. 줄곧 잘못된 정책을 펼치며 자신의 무능함을 자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보이던 대통령.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곳이 파괴되었다. 그다마 다행인 점은 대한민국은 소련과 달리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고, 정당한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파괴가 되었어도, 어찌저찌 삐걱대며 돌아는 가고 있다. 문제는 이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언제쯤 대한민국에 진짜 “봄”이 올까. 우리 딸 만큼은 진짜 “봄 날”을 살게 하고 싶은, 간절한 엄마의 소망을 하늘이 들어주려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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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들 중에서도 소련의 붕괴만큼 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냉전의 마지막 퍼즐, 소련의 비극적 해체를 파헤친 <소련 붕괴의 순간>. 블라디슬라프 주보크 교수는 20세기 후반 가장 극적인 정치적 변혁을 마치 스릴러를 읽듯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작을 내놓았습니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어떻게 거대한 제국을 내부에서 무너뜨렸는지 세밀하게 추적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소련 붕괴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우리 가족은 소련으로 귀국하지 못했다. 우리가 탄 귀국행 비행기는 1991년 12월 31일에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국제공항에 착륙했지만, 그때는 러시아연방,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벨라루스) 및 여타 공화국의 지도자들이 이미 소련을 해체한 후였다. 어둑어둑한 셰레메티예보국제공항은 텅 비어 있었다. (중략) 불변의 국가 구조가 증발해버린 듯했다. 몇 달 전 8월에 내가 떠났던 나라는 갑자기 사라졌다"라고 말입니다. 이 책은 30년간의 방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을 담은 역작입니다. 소련 고위 정치인, 외교관, 군, KGB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터뷰, 문서, 개인 일기 등을 분석했습니다. 저자는 소련 붕괴가 냉전의 필연적 결과였다고 간주하는 기존의 견해에 도전합니다. 그는 소련의 붕괴가 단순히 경제적 실패나 체제의 모순 때문만이 아니라, 고르바초프라는 지도자의 성격과 선택,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합니다. 역사를 단순히 필연적인 흐름으로 보는 결정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선택과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해석을 보여줍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의 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렌즈가 됩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제국은 없다"라는 통찰은 현대 지정학적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를 다룬 <소련 붕괴의 순간>.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소련(소비에트 연방)은 1922년에 설립된 15개의 구성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였습니다. 정식 명칭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었습니다. 소련을 구성하는 15개 공화국 중 가장 큰 공화국은 러시아공화국(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었습니다. 면적이나 인구, 경제력 측면에서 소련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지도자였고, 보리스 옐친은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1991년 8월, 보수 세력이 고르바초프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쿠데타 실패 후, 소련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일로 소련의 권위는 크게 약화되었고 소련을 구성하던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독립국가연합(CIS)' 설립에 합의하면서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소련 붕괴의 간략한 역사 줄거리입니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소련 붕괴의 순간>의 전반부(1장-6장)에서는 1983년부터 1990년까지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재건)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어떻게 소련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는지 분석합니다. 레닌의 숭배자로서, 소련 사회와 경제를 소생시킬 수단을 모색해야 했던 고르바초프의 딜레마. 공산주의 이상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침체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저자는 고르바초프의 성격이 소련 붕괴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고르바초프는 이데올로기적 열정과 정치적 소심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비전이 넘치는 외교 정책을 펼쳤지만, 국내에서는 결정적인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모순된 성격은 그의 개혁이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소련의 붕괴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고르바초프는 집권 초기에 소련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록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이 목록에는 품질, 금주 투쟁, 빈곤층, 과수원과 텃밭을 위한 토지, 의약품과 같은 표면적인 문제만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전 지도자 안드로포프가 강조했던 무역수지 균형 회복, 그림자 경제 단속, 노동력 규율 같은 근본적인 경제 문제는 간과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겁니다. 소련 붕괴의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민족주의와 분리주의라고 합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억압되었던 민족 감정과 분리 독립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었습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은 소련 붕괴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서방 국가들이 당시 소련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고르바초프가 동포들에게서 왜 그렇게 많은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라는 문장은 서방과 소련 내부의 시각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저 역시 TV로 봤던 고르바초프는 그저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였을 뿐입니다. 서방에서는 고르바초프를 개혁가로 칭송했지만, 정작 소련 내에서는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던 겁니다. 후반부(7장-15장)에서는 1991년 소련 붕괴의 직접적인 과정과 미국의 영향을 다룹니다. 특히 1991년 8월에 보수파, 군부, KGB 고위층이 벌인 쿠데타는 소련 해체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KGB 장교들은 휴가 중인 대통령의 별장을 둘러싸며 쿠데타 동안 대통령을 사실상 가택 연금했습니다. 쿠데타는 3일 만에 실패했고 고르바초프는 권력을 회복했지만, 이미 그의 정치적 명성은 무너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옐친을 비롯한 러시아 공화국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고르바초프의 사임으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는 역설적으로 소련의 종말을 앞당겼습니다. 저자는 소련 붕괴를 통해 역사의 우연성과 선택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소련의 붕괴가 단순히 체제의 내재적 모순 때문만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특정 지도자들의 선택과 행동, 우연한 사건들의 조합 때문이라고 말이죠. 다른 선택과 상황이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역사가 결정론적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저자의 분석은 오늘날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안겨줍니다. 소련 붕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러시아'가 권위주의로 회귀한 것이 필연적이었는지, 아니면 기회를 놓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더불어 겉으로 강력해 보이는 제국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소련의 붕괴가 20세기를 뒤흔든 지각변동 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속성의 '외관상' 확실성을 믿지 말라는 교훈을 던집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영원할 것 같은 체제도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오늘의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어제의 소련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르바초프의 선의가 가져온 의도치 않은 결과는 초강대국의 몰락입니다.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해체로 이어지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의 시기를 담은 <소련 붕괴의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의 결정이 국가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탄핵 정국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민주적 제도와 공적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기게 됩니다. 권력의 본질, 지도자의 역할, 인간 사회의 취약성에 대한 교훈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