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내가 생각하던 김지하가 아니다. 물론 저자는 줄탁이라고 한다. 줄탁이란 생명의 때가 무르익어 달걀 속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고자 쪼아대는 한 부분을 어미닭이 정확히 부리로 쪼아주어 안팎이 동시에 열리는 새 생명 탄생의 오묘한 때를 이르는 말(11쪽)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강연했던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니 겹치기도 하고 성그럽기도 하다면서 겹치면서 안으로 수렴하고 밖으로 무궁무궁 확장하는 확충법을 염두에 두고 읽으라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책으로 묶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특히 문학과지성사라는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출판사가 이런 정도 수준의 책을 낸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닌지 묻고 싶다. 물론 새로운 화두를 내고 생명과 평화의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평소에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니 이런 내용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의 화두요, 후배를 위한 화두라 해도 이 책은 심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여러 곳에 강연을 한 내용이라면 나름대로 정리하는 곳에서는 원전을 제대로 밝히고 체계를 잡아야 할 일이 아닌가. 이전의 김지하는 아닌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책 하나를 써도 치열한 맛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김지하의 과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책을 강연집이라고 해서 출판했다면 알고 샀을 것이지만, 산문집이라는 제목은 좀 심하다. 산문집이라는 것이 산만한 문장의 준말인지는 모르지만. “인류 문명의 대전환기에는 반드시 새로운 삶의, 혼돈한 삶의 새로운 원형을 가르쳐주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꼭 태어난다. 로마가 지배했던 지중해 문명이 쇠퇴할 때 새로운 삶의 원형을 제시해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중해 문명보다 더 혼돈스러운 대 전환기, 에포크, 인류 문명사 전체의 전환, 심각한 이 전환기에 성배의 민족이 필연코 나올 텐데, 그 민족이 어디에 있겠느냐. 극동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찾아봐라.”(185쪽)고 했다는 것은 유럽의 대신비주의자인 루돌프 슈타이너가 죽기 전의 유언의 내용이고 제자인 일본인 다카하시 이와오는 일본이 그곳이 아닐까 10년간 연구하다가 이제는 한민족이 성배의 민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희망의 소리로 들으면 될 것이다. 몽고민족 운운하면서 침략성을 옹호하는 자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모심(侍)에 대해 수운 최제우는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으며, 한세상 사람이 서로 옮겨 살 수 없음을 각각 깨달아 실천한다고 세 가지로 해설한다고 한다. 세 번째는 동학에서 ‘서로 따로따로 옮겨 살 수 없는 우주 총유출을 개인개인들 자신이 모두 다 각각 자기 나름대로 깨닫고 실현한다는 ‘모심’의 마지막 명제에 대응한다(209쪽)고 한다. 저자는 홍익인간, 최치원의 풍류, 최수운의 동학사상, 혜강 최한기, 김일부, 고대 유학과 역학, 노장학, 동학 우주관인 조화 등을 나름대로 논하고 있다. 그 중에서 책의 내용으로 보아 최수운의 내용에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민족과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내용을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미래를 위한 철학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 제정구 의원의 말처럼. ‘생명의 메시지는 과학을 대신해서 미래 세계를 이끌고 가는 새 척도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책을 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책의 발간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책 한 권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 없이 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독자에 대한 배신이 될지도 모른다. 사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