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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와르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실존주의'라는 철학의 사상가이며, 내가 관심은 있으나 역시 제대로 이해하는지 자신이 없는 '여성 해방'의 운동가이다. 그가 1947년이라는 흥미로운 시점-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미국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세계 최강국으로서 자유진영의 대표자임을 내세우기 시작하던-의 미국을 여행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는 보통 관광객 같았다.
미국에 왔으니까, 뉴욕에 왔으니까 그 도시에서 유명한 박물관에 가 보고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 보고,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곳을 찾아 헤매다니는 등 아마 내가 미국에 가더라도 그렇게 했을 법한 행동들을 하였고, 이런 부분은 그냥 가볍고 즐겁게, 가 보지 못한 먼 도시의 풍광을 읽을 때 항상 그렇듯이 읽혀진다. 그는 미국의 인종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뉴욕의 할렘을 방문하면서, 또 인종차별이 좀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지속되는 남부를 돌아다니며 그 부당성에 대해 분개하고, 스스로에게도 기만적인 방식으로 그 부당성을 무시하며 불쾌하고 복잡한 것에는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대다수의 백인 미국인에게 실망감을 나타낸다. 그의 눈에 미국인들은 한편으로는 활달하고 온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무기력해서 자신이 무언가를 바꾸고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 듯이 비춰지는 것 같다.
세계 최강국의 국민에 대한 평가로는 상당히 의외였지만 타임머신이라도 타기 전에는 나로서는 확인해 볼 기회가 없으니까... 1947년, 내가 알 수 없는 미국을 타인인 보부와르의 눈을 통해, 역시 타인인 내가 여행하였다. 해 볼 만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뉴욕의 심장부에 자리한 할렘은 기독교인들의 양심에 원죄가 그러하둣이 백인들의 선량한 양심을 짓누르고 있다. 미국인은 자신과 같은 인종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활달한 기질, 온정, 우정의 꿈을 품고 그러한 덕목들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할렘 가장자리에서 죽고 만다. 세상과 화합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고심하는 보통의 미국인은, 그 경계만 넘어서면 가증스런 압제자의 얼굴, 적의 얼굴이 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얼굴이다. 그는 스스로 증오받는다고 느끼며 증오받아 마땅하다는 걸 안다. 타협적인 그의 마음속에 박힌 이 가시는 확실한 외부의 위험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