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이 넘게 책을 손에서 놓고 있었다. 이 가을 책 많이 읽으리라 외치고 다녔건만... 정작 가을엔...책을 읽지 않았다. 10월이 넘어가는 길목에서 잡은 책이 바로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이라는 책이다. 한번씩 사람들이 묻는다. 책을 살때 고르는 기준이 뭐냐고...쩝..없는데요...라고 답하지만.. 사실...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ㅋㅋㅋ 할인폭이다. ㅋㅋ 5000원짜리 책을 5000원에 사는것보다 10000원짜리 책을 5000원에 사면 분명이 같은 돈을 지불했어도 왠지 돈을 번 것 같은 기분...그래서...어떤땐 내가 읽고 싶은 책도 할인을 할때 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ㅋㅋ 암튼 그리하여 선택된 책이다. 이 책도... 22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고 하드 커버에... 딱 요즘 나오는 전형적인 책의 모양을 하고 있다. 내용은 그냥 그랬다. 일요일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그리고 그 사람들을 공통으로 연결하는 집나간 아이 2명... 특이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그런데...이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이제 일본 소설은 그만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본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묘한 그 그낌이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읽었던 가오리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이 책도 재밌었다. 그리고 읽었던 무라카미 류의 <69>.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랑 <하드보이드 하드럭="">... 다들 읽을 땐 재미있었다. 그런데...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을 읽으면서...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바로...일요일같은 느낌이란 생각이 들었다. 몽환적이고 나른하고 앞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 동양에 있지만...서양을 지향하고... 그래서 공간이 도쿄나 일본의 어느 도시로 설정되어 있어도.. 느낌...안개낀 서구의 어느 도시를 떠올리게 되는... 딱...일본인의 느낌...이 들었다. 그렌데 나의 성향이 그런 일본인의 성향과 참 비슷하단 거다. 그래서...일본 소설들을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데...문제는 읽고 나서인데... 책을 읽고 뭔가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맥이 풀어지게 한다. 그 나른함이 나를 주저 앉게 만든다. 그 느낌이 마약 같아서 또 읽고 싶을런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일본 소설을 놓아야 겠단 생각을 했다. 지금 나의 삶으로도 충분히 나른하거든...^^ 일요일들>하드보이드>키친>냉정과>상실의>일요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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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은 칠일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일요일이 있다. 매주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느끼는 일요일의 공통점은 느긋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날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매주 기다려지는 날 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오지 않기를, 아니 지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날 이기도 하다. 일요일이 지나감에 따라 때로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날이 되기도 한다. #1 지금이야 주5일제라 하여 일요일 보다는 토요일이 더 마음 편하게 하지만, 예전에 토요일까지 근무하던 때는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 일요일뿐이었기에 지금보다 일요일을 더 기다렸던 것 같다. 일요일이 돌아왔다고 하여 특별한 것은 없지만 말이다. 다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뿐인데, 일요일이 없는 날들을 생각하는 것은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일요일에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지만, 그렇게 쉬었다는 것이 또 한 주일을 버틸 수 있게 만들었던 것 같다. #2 집에서 떨어져 지방근무를 한지 만 2년이 되었다. 처음엔 할만 하더니,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난다. 주말에 집에 올라와 월요일 새벽에 내려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시점인가부터는 일요일 날 저녁에 내려간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부터 허둥대기 싫어서이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저녁때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억누르고, 그러다 보면 묘한 쓸쓸함과 외로움이 갑자기 엄습해온다. 두시간반 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세상에 일요일이 싫어지다니.. 일요일과 관련된 짧은 소설 다섯 편을 만났다. 아니 소설들은 일요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요일 날 저녁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고, 일요일 날 음식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일요일 날 이삿짐을 꾸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원인이 되어 과거 어떤 날들이 생각났을 뿐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설들이 큐슈에서 엄마를 찾아 도쿄로 상경한 어린 형제들을 통해서 하나로 완결된다. 다섯 편의 소설 속에 나오는 화자들은 한번쯤 이 어린 형제들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하여 나는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에야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즉 파견사원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고뇌가 일본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나타났다. 그들의 생활을, 아니 그들의 사고 자체를 한정 지어 버리는 새로운 직업형태에서 어쩔 수없이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체념 어린 고독과 함께 진한 외로움을 읽는다. 비록 저자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지라도.. 또 하나는 집 나온 어린 형제들과 [일요일들]의 노리코로 대변되는 가정폭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행스럽게도 내 주위에는 가정폭력의 폐해를 입은 사람들은 없다. 그렇지만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인지는 이미 군대에 있을 때 경험해 보아서 안다. 작품 속에 나오는 노리코의 말이 소설을 읽는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상황에나 길이 들게 마련이다. 맞지 않는 날이 계속되면 속으로는 이제 슬슬 맞을 때가 됐다고 각오를 하게 된다. 그렇게 맘만 먹고 있으면 폭력도 견딜 수가 있다. 오늘 맞으면 내일은 맞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저자 요시다 슈이치는 전에 [도시 여행자]란 작품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읽고 난 느낌은 허탈했었다는 기억이다. 아마 이 책 [일요일들]의 제목이 특이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짧은 소설들이지만 읽고 난 다음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나의 젊은 시절을 발견하는 것 같아, 아니 이 땅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책 읽은 소감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일요일은 아니지만 휴일이다. 이따 저녁때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아니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 것 같다.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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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자상한 남자라고 해도 여자와의 싸움에서 수가 틀려지면 힘을 쓰게 마련이다. 대개 남자들은 말로 하는 싸움에선 여자를 이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애처가이고 자식한테 무척이나 자상한 우리 아버지도 이런 틀에선 예외일 수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셨다. 왜 화가 나셨던 것인지는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그때 아버지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셔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셨고 전화기까지 때려 부수셨다. 그리곤 화를 삭이지 못하시고는 밖으로 뛰쳐나가버리셨다.
이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 심한 충격을 받으셔서 집을 나갈 생각까지 하셨지만 울며불며 매달리는 동생들이 너무 안쓰러워 그러지 못하셨다. 대신 이번 기회에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을 고치시겠다며 동생들에게 실제론 목욕탕에 가는 것을 어머니가 집 나갔다고 아버지가 오시면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셨다. 동생들은 어머니의 지시를 잘 따라서 연기를 했는데 이 소리를 듣자마자 아버지는 몹시 당황하셔서 맨발로 온 동네를 다 뒤지셨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었겠는가! 끝내는 못 찾으시고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진짜 목욕을 마치고 오셨고 아버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두 손 싹싹 빌어가며 자신의 잘못을 백배사죄하셨다. 그 후론 집안에서 아버지가 폭력을 쓰는 것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 책은 각자 다른 곳에서 저마다의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시간만큼은 같은 일요일을 보낸 사람들에 관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주축은 어린 형제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가출한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형제는 같은 일요일이지만 제각각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어떤 이들은 이 형제를 불쌍히 여기 밥을 사주기도 하고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편의만을 생각해 아이들을 냉대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세상이 각박해져 다 남의 일에는 무관심할 것 같고 전혀 도움 같은 것은 주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세상엔 아직 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 살만하다는 것을 이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저자는 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가정이 파괴될 수도 있고 애인사이도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형제의 사연과 노리코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부부사이의 폭력은 개인적인 일이니까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까지 팽배하지만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 심각한 일임이 틀림없는 만큼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대처방안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총 5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집중한 것 위주로 해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일본인들의 아이러니한 특성이다. 일본인들도 다른 나라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집단을 이루고 있지만 개인적인 특성이 유난히 강한 민족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요일의 엘리베이터라는 소파트에서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이런 일본인들의 특성을 대변하듯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식사를 하는 것을 비위에 안 맞아한다. 자기가 뭔가 먹고 있는데 그 모습을 누가 빤히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사람 앞에 발가벗고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혼자서 식사를 해결하는 편의점의 도시락이 발달한 것은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이 혼욕 노천탕을 상당히 즐긴다는 것이다. 남에게 식사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아 혼자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사다 먹는 일본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훌러덩 다 벗고 들어가 목욕을 하는 혼욕 노천탕을 즐긴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이래서 난 일본민족 자체가 싫은 것이다. 이런 이중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민족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일본은 다시는 우리나라를 쳐들어오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해놓고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역사를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기억의 선택성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사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까지 언급한다는 것이다. “다만 다음날 오사카에서 지낸 밤만큼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다.” 라든가 “그때 초밥집 스탠드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게이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부분, 또한 “처음 센터로 전화를 건 날 밤,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노리코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왜 다른 건 다 기억하면서 특정 부분만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소설을 실제 일처럼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아 보인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일본인들도 서툴다는 것이다. 마지막 파트인 일요일들에서 보면 주인공 노리코가 남자친구인 교이치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폭력을 휘두른 교이치의 말이 가관이다. 교이치는 “내가 때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네가 사람을 때리게 만든다고.” 말하면서 여자 친구를 때리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납득이 된단 말인가? 이렇게 말을 하더라도 노리코는 폭력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했다. 하지만 노리코는 “지금의 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만,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것뿐이에요.”라고 상담기관에 이야기한다. 이런 태도를 취했으니 남자친구의 폭력이 근절되기는 커녕 계속 됐던 것이다. 노리코는 사람은 좀체 몸에 밴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20살이 넘게 먹도록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사랑으로 해결되는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을 노리코는 잘 몰랐던 모양이다. 어쨌든 다행히 상담기관을 통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맞으면서 맞는 것에 길들여지기까지 했던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폭력에 대처하는 법을 교육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가정은 사회의 뿌리다. 만약 사회의 근본인 그 뿌리가 흔들리면 당연히 사회는 흔들리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붕괴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를 더 이상 안이하게만 바라보지 말고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길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부조리한 괴로움은 내일을 기다려도 해결되지 않는다.” |
| ‘일요일은 태엽을 감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한 말이다. 그만큼 일요일은 태엽인형처럼 바짝 조여진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요시다 슈이치가 그의 소설에 ‘일요일들’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그 역시 예외적인 여유 공간으로서의 일요일을 염두 해 두었을 것이다. 평소의 관성으로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에서 문뜩 자신을 뒤돌아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 그런 시간 말이다. ‘일요일들’의 주인공들은 특별히 대단한 점도 없고, 이런저런 약점들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까운 친구의 아픔에 둔감하기도 하고, 딱 부러지지 못해서 연인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후회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할까.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소설은 인물들의 생각을 좇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7,8년 전 만났던 어떤 형제를 기억해내고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으며, 독자들은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이던 주인공들 - 즉, 평범한 우리들 - 이 사실은 작은 선행들로 엮여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요시다 슈이치가 풀어가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상당부분 훌륭한 번역 탓이기도 하겠지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구어체와 역시 현대적인 유머 감각, 그리고 ‘엄마 찾는 형제’를 매개로 교묘히 이야기를 얽는 구성이 뛰어나다. 이는 전작인 퍼레이드에서도 비슷하게 시도되었던 것으로 읽는 이에게 깊은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그래서 결론은? 이 책의 가장 처음 문장과 가장 마지막 문장의 차이, 그것 아닐까? (첫 문장) “지지리 운도 없는 날만 계속된다,고 다바타는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 “그래,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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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 우연하게도 일요일에 읽게 된 책이다. 《일요일의 운세》, 《일요일의 엘리베이터》, 《일요일의 피해자》, 《일요일의 남자들》, 《일요일들》 이라는 다섯 개의 단편으로, 도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이다. 모든 단편의 제목에서 '일요일' 이라는 공통된 시간적 요소가 들어가지만, 여기서 '일요일'은 그 자체가 아닌 각 주인공들을 이야기들을 통해서 지나쳐 버린 어떤 하루에 대한 '회상' 등의 확대적인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이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재각기 다른 그 들의 삶에서 그들은 언젠가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회상 속에 차지하는 비중은 재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한 큰 배낭을 맨 어린 형제가 등장한다. 퍼즐을 맞추거나, 조각들을 붙여서 하나의 유적을 복원하는 것 처럼 다섯 개의 단편을 종합하여 그 어린 형제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그 어린 형제는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피해서, 엄마가 산다는 주소만을 가진 채 도쿄로 가출을 한다. 도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츠키라는 여자를 잠시 만나기도 한다《일요일의 피해자 編》. 어린 형제는 엄마가 산다는 아파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게이코를 만나게 되고, 형제를 가엾게 여긴 게이코는 형제에게 초밥을 사준다《일요일의 남자들 編》. 형제는 엄마가 산다는 아파트 문을 두드리게 되지만, 엄마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현재 그 방에 사는 다바타는 집 주인을 통해 엄마의 주소를 알아내어, 형제들을 엄마의 새 집까지 안내한다《일요일의 운세 編》. 하지만 엄마는 아이들을 매몰차게 돌려보내고, 결국 도쿄에서 편의점을 훔치기도 하며,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된다. 그들이 떠돌다가 굶주리고 있을때, 파칭코 앞에서 우연히 만난 와타나베는 이 아이들을 가여워해서 타코야키를 사주기도 한다《일요일의 엘리베이터 編》. 하지만 어린 형제는 결국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에 이끌려, 자립 자원 센터에 오게 되고, 그 곳에서 노리코를 만난다. 어린 형제는 동생이 다른 곳에 입양이 되어 둘이 헤어질 것을 염려하여 도망을 치려 한다. 노리코는 귀걸이 두 쪽을 빼서 형제들에게 한 쪽씩을 나눠주며, 결코 헤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결국 형제는 이별을 하고 만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노리코는 우연히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형제의 재회 장면을 바라보게 되고, 형은 그런 노리키를 보고 자신의 왼쪽 귀에 달려있는 귀걸이를 톡톡 튕기며 노리코에게 고개를 끄덕인다《일요일들 編》 .
이 어린 형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츠키, 게이코, 다바타, 와타나베, 노리코는 모두 각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이다. 이들은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함에 공통적으로 어린 형제를 떠올린다. 그들이 현재 어떻게 살았을 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실제로 현재에서 만난 누군가를 그들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섯 단편의 주인공들은 이웃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쓰지 않는 삭막한 도쿄에 사는 서로 관계 없는 사람들 이지만, 어린 형제는 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유물로써,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비록 그들은 그들이 하나의 사건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지는 못할 지라도, 그들은 어린 형제를 통해서 조합을 찾을 수 힘든 사회에서의 하나의 집합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음악에서 개별적인 음표들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만, 작가에 의해 오선지에 올려진 음표들의 조합은 리듬이 되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듯 말이다.
우리가 지나쳐온 과거의 어느 날. 우연하게 지나친 무언가. 경험한 어떤 것들. 분명히 내 머릿 속에 남게된 수 많은 기억들의 작은 파편이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공유될 수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는 것 이다. 다시말해서 작가는 삭막하고,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 작은 기억들이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끈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또한 어린 형제들이 부모들에게 버림받게 되고 거리로 내몰리는 사회 풍토에 대해서 고발하고, 마지막에 그 형제의 재회를 통해서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져 있진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지 않아서 외롭다. 혹은 힘들다. 아마 누구나 한번 쯤은 갖게되는 고민들이고, 이런 고민들로 인해서 현재 고통받고, 상처받는 사람들도 아마 꽤 많을 것 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조장하는 삭막한 사회라는 구조에 스스로 장막을 쳐두고, 그것들과 소통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그 고민을 해결해 줄 많은 인연들을 놓치고 말 것 이다. 먼저 장막을 열어제치고, 용기를 내서 내 앞을 지나는 그 누군가와 차이점 대신 공통점을 찾아보도록 해보자.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보자. 아무리 사소한 끈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일요일. 새로운 인연을 위한 새로운 한 주를 위해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보자.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됐다 싶어 이쪽에서도 단념한다. 생각해보면 늘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을 어느 시점에선가 단념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 따윈 됐다고 우기는 사람이, 실은 얼마나 그 친절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상대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신을 위해 중간에 포기해왔다는 것을 짧은 순간에 깨달았던 것이다. (p.41)
좀 더 간단히 말하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점점 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누군가를 싫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p.61)
이렇게 아직도 사진을 올려두고 있는 것도 죽은 애인을 향한 마음이 한결같아서가 아니라, 분명 언젠가는 잊어버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치우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이고는 무언가를 잊지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그 무언가를 절대 잊고 싶지 않았다. (p.159)
처음엔 자기보다 몇 배나 더 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신이 그렇게 변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괴로움의 끝에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로 그 차이였다. 부조리한 괴로움은 내일을 기다려도 해결되지 않는다.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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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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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들을 읽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작가 중의 하나가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이다. 나도 그의 작품 중에서 <일요일들>, <퍼레이드>,<악인>, <요노스케 이야기> 등 4권 - 국내에 출간된 작품을 헤아려 보니 20권 내외가 된다 - 을 읽었으니 그래도 꽤나 읽은 셈이다. 읽은 책 중 <악인>과 <요노스케 이야기>는 기억에 남지만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요시다 슈이치가 어떤 작가라고 이야기할만한 게 없어 작가 소개글을 검색해보니 도시의 일상과 인간에 대한 탁월한 묘사, 눈앞에 영상을 보여주는 듯 한 섬세한 문체 등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작가(YES24 작가 소개 발췌)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네 작품 모두 도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된다. 특히 <일요일들>은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평범한” 일요일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되는데 이번에 새롭게 개정되어 출간한 <일요일들(원제 日曜日たち/북스토리/2011년 4월)>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읽은 지 벌써 수 년이 되다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그렇다고 딱히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먼저 “일요일의 운세”의 다바타는 고등학교 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가 1지망이 와세다 대학이라는 말에 덩달아 공부해서 자신은 와세다 대학에 덜컥 합격했건만 여자 친구는 오히려 떨어지는 바람에 헤어져 버린 그런 남자다. 대학 졸업 후 도쿄에 있는 어느 증권회사에 취직했건만 이번에는 회사에 자주 드나드는 생명보험회사의 영업사원, 당시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여자와 불륜관계를 맺어 도망치자는 말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센다이(仙臺)로 같이 도망쳤다가 결국 일 년 만에 버림받고는 센다이에 남아 파친코 종업원에 호스티스 클럽 종업원을 전전한다. 그러던 어느날 클럽 마담이 지배인을 제안해오고, 같이 동거하던 여자 친구는 가수가 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데 같이 나가자고 이야기해온다. 해외로 나가기로 결심한 나에게 모범생 형이 전화를 해와 갑작스레 행복하냐고 물으며 너처럼 살아도 한평생, 나처럼 살아도 한평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뜬금없이 이야기한다. 다바타는 그런 형에게
"태양은 말이지,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더 이상 눈이 부시지도 않고, 뭐 아무렇지도 않게 되더라." - P.48
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좋은 대학을 나와서 보란 듯한 직장을 다니다가 결국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린 자신의 인생과 비교하면 모범생으로서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는 형의 인생이 지금은 눈부셔 보일 뿐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은, 형의 말대로 이래도 저래도 한평생인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일 것이다. “일요일의 엘리베이터”의 와타나베는 일용직 아르바이트 하는 자신과 달리 의사가 된 여자 친구 - 한국인으로 나온다 - 때문에 괜히 상심하고, “일요일의 피해자”에서 나츠키는 강도를 당했다는 치카케의 소식을 듣고 불안한 나머지 한밤중에 자신의 남자친구 집으로 가면서 오래전 자신과 치카케, 아야 세 친구와 함께 했던 여행을 떠올린다. “일요일의 남자들”에서는 일치감치 집을 남아 도쿄에서 혼자 살아가던 게이고에게 아버지 마사카츠가 동료 아들 결혼식 때문에 찾아와 함께 머물게 된다. 몇해 전 사고로 죽은 여자친구의 사진을 아직도 못 버리고 간직하고 있는 게이고에게 아버지는
“아니, 그러니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인간이란 건 말이다, 잊으면 안 되는 걸, 이런 식으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 - P. 163
라고 말씀하신다. 게이고는 무뚝뚝한 줄 만 알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마지막 편인 “일요일들”에서는 이삿짐센터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던 교이치와 동거를 하던 노리코는 교이치에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립지원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얻게 된다. 결국 교이치와 헤어지고 센터에서 자원봉사일을 시작한 노리코는 몇 년 후 고향에 새로 설립된 센터에 발령받게 되어 일요일에 이삿짐을 고향집에 보낸다. 이렇게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다섯 사람이지만 모두 엄마를 찾는 어린 형제와의 만남이라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어린 형제에게 이사 간 엄마의 집을 찾아주고, 초밥을 사주며, 아이들이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자리가 중복되기도 하고, 지원센터에서 두 형제가 헤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귀걸이를 주기도 하는 등 다섯 사람을 한번씩 스쳐간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처럼 다섯 가지 사연 하나 하나가 평범하다 못해 밋밋하게까지 느껴지면서도 이 책에 눈을 떼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게 만드는 건 바로 다섯 명이 한번씩 만나게 된 어린 형제들 때문일 것이다. 개개인의 사연 속에서 마주치는 엄마 찾아 떠도는 어린 형제들의 정체와 과연 엄마를 만났을까 하는 궁금증때문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마지막에 이르러 몇 년 후 훌쩍 커버린 형과 동생의 만남, 그리고 노리코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형의 귀에 노리코가 약속의 징표로 주었던 귀걸이를 하고 있는 장면을 읽으면서 아마도 노리코가 느꼈을 안도감과 함께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했던 다섯 번의 일요일이 누군가의 삶에서는 특별한 어떤 날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도 평범한 어느 일요일 오후에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나 버스 정류장, 혹은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 한 귀퉁이에서 저 형제들을 만났었을 것만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의 평범한 일요일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일요일이 되어준 적이 있었을까 하는, 혹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라도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일요일 선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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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은 일단 소설의 기본적인 재미를 갖춘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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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장 인상적이었던것은 두 아이가 5개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이야기 구조였다. 얼핏보면 단편소설을 그저 묶어 놓은것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잊어버릴만 하면 두 아이가 등장하고 또 등장해서 소설을 다 읽을때 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사귄 애인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관심이 없는 와타나베, 마찬가지로 자기 가족의 얘기는 물론 와타나베의 가족에대해서도 물어보지 않는 게이꼬, 아래층에 살고 있는 사람도 몰라 엄마를 찾아온 아이들을 도와주지 못한 게이고를 보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부산도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되는 도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3년째 같은집에 살고 있으면서 옆집과 아래층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혹 지나치다 마주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냥 그나치기 일쑤다. 다음에 마주친다면 인사를 ‘해야지..해야지..’하는데 그게 잘안된다. 마주치는 상대도 한번쯤 인사해줄만한데 그 사람도 나랑 마찬가진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 “일요일에 운세“에서 다바타는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됐다싶어 이쪽에서도 단념한다. 생각해 보면 늘 이런식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을 어느 시점에선가 단념해온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따윈됐다고 우기는 사람이, 실은 얼마나 그 친절을 필요로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는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상대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신을 위해 중간에 포기해 왔다는 것을 짧은 순간에 깨달았던 것이다.」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역시 그런것이 아니었던가 돌아보게 됐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한번 하지 못했던 내가 그동안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이나 한번 내밀어 봤던가..라고 돌이켜보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것은 그전까지 팽배했던 소외된 현대사회에서 인물들의 모습들이 “일요일들”의 등장인물인노리꼬와 형제들이 서로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화해라고 생각한다. 다른인물들도 큐슈에서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엄마를 찾아서 도쿄로 온 형제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하지만 그 도움과 관심이 너무 표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어서 형제들은 그들을 우선 경계의 눈초리로 본다. 물론 나중에는 경계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연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리꼬는 자신의 깊은 상처때문인지, 자립지원센터에서 동생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아이들을 가슴으로 막으며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맹세를 했다. 결과적으로 형제는 보육시설에 보내져 동생은 입양되어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 노리꼬는 형제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챙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진실된 맹세만으로 형제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을 7년후 거리에서 우연히 성장한 형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큰 아이가 노리꼬를 알아보고 깊숙이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리에 멈춰서서 다시 노리코 쪽을 돌아보고는 왼쪽 귀불을 손가락으로 톡톡 튕겨보였다.특이할 것도 없는 은 귀고리가 청년의 왼쪽 귀에 달려 있다.」그 귀고리는 노리꼬가 형제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준것이었다. 도쿄를 떠나면서 도쿄에서 나쁜일만 있었던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장면에서는, 그 웃음과 감동이 어느새 내 얼굴에도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의 남자들”에서 상실의 아픔을 당한 부자가의 이야기에서 아버지 마사카츠가 “잊으려고 하는건 말이야 참 어려운 일이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잊으면 안되는 걸 , 잊어야지 잊어야지 노상 애를쓰면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아들 게이고 역시 죽은 애인의 사진을 버리지 못한 자신의 아픔과 아버지의 아픔이 같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아픔을 이해하게되고, 의지하며 편안히 잠을자는 이야기도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 [인상깊은구절] “잊으려고 하는건 말이야 참 어려운 일이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잊으면 안되는 걸 , 잊어야지 잊어야지 노상 애를쓰면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