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의 태평양 요리사! 제임스 쿡은 콜롬버스나 마젤란 처럼 처음으로 태평양을 항해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콜롬버스나 마젤란 보다도 오히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업적은 최초로 어떤 대륙이나 섬을 발견한 것이라기 보다는 알려져 있던 섬일지라고 그가 측량해서 완벽한 지도를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지금시대에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 지도를 그가 만든 것이었다. 쿡은 실상 영웅이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지명도 많이 있을 뿐더러, 그의 리더십, 미지의 세계를 향한 정력적인 호기심 등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이 지구상에 널리 알려져 있게 한 원동력들이 많이 있다. 그리도 또한 그의 인간적인 미까지도 이 책에 나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그의 일기를 그대로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이름에는 항상 선장이라는 낱말과 함께한다. 아마도 최고의 뱃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태평양을 항해하는 기간 중의 일기를 기본으로 하여 쓰여진 책이다. 두 사람이라고 하면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과 케오르크 포르스터(Georg Forster)이다. 레절루션(Resolution)호는 두 사람간의 수업이 이루어진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바다의 학교’였다. 수업이 이루어진 기간은 1772년부터 1775년까지 3년 동안이었다. 보통은 쿡선장의 2차 항해라고 부르는 기간이었다. 레절루션호의 임무 태평양의 지도 그리기, 미지의 남방 대륙의 확인, 여러 곳의 원주민에 대한 인류학•민족학적 조사와 동식물의 분포까지도 밝히는 과학적 탐험도 포함하고 있었다. 게오르크 포르스터의 임무는 같이 탑승한 과학자이자 그의 친 아비지인 라인홀트 포르스터의 연구를 돕는 역할이었다. 이 책은 기존에 많이 발간된 쿡의 탐험을 중심으로 한 책이 아니고 쿡과 게오르크의 만남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항해 기간 중의 두 사람 일기가 번갈아 가며 적혀져 있다. 44세의 선장과 17세 소년의 만남, 그리고 이 만남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게오르크의 모습, 17세의 소년에 비쳐진 항해 속에 나타나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신비한 탐험지의 풍경과 원주민들과의 교류 등 17세 소년의 눈에 비친 호기심이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읽다보니 마치 레절루션호에 동승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배에 같이 타고 있는 아버지 보다는 오히려 쿡선장을 더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춘기 소년의 반항심마저도 나의 경험에 비교할 수 있었다.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유럽에서 중국으로 가는 교역통로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됨에 따라 유럽인들은 중국으로 가는 육로를 포기하고 해로를 찾기 시작했다. 콜럼버스와 같은 초기 항해가들은 마르코폴로가 방문했고 유럽에 소개한 중국을 찾아 교역을 하기 위해 동쪽 육로를 포기하고 서쪽의 바닷길을 선택한다. 콜롬버스는 대항해 시대를 열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중국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가 발견한 곳을 죽을 때까지도 인도로 알았다. 그래서 그 지역은 아직도 서인도제도라 부르고 있으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항해 시대를 열었건만 제대로 된 지도도 없이 오랜 기간의 항해는 많은 선원들을 죽게했다. 하지만 항해에 성공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는 많은 명예와 부가 줘여졌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땅은 그들의 식민지가 됨으로 인해 그들의 나라는 부국이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럼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더 넓은 바다로 어떤 유럽인도 발길을 닫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물론 이에는 국가적인 지원이 풍족히 따랐음을 물론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이후 거의 170여년이 지난 시기에 시작된 쿡의 항해시대 까지도 태평양의 정확한 해도 및 각 섬에 대한 측량도 정확히 이루어있지도 않았으며, 남방대륙의 존재에 대해서도 밝혀진 것이 없었고, 장기간의 항해로 말미암아 신선한 야채를 먹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질병으로 선원들이 사망하는 현실은 타개가 되지 않고 있었다. 영국인을 일컫는 별명 중에는 ‘Limey’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에는 lime이 들어있다. 즉 오랜 기간 동안의 향해로 인해 선원들이 비타민 C의 부족으로 괴혈병으로 죽는 것을 막기 위해 라임을 그들에게 먹임으로 인해 그 후로는 장기간의 항해에도 그 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이 방법을 최초로 활용한 이가 바로 쿡선장이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단어가 생겨났고 영한 사전에도 이 단어가 등재되어 있다. 이렇듯 쿡 선장의 항해는 대항해 시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