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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용 함량에 비해 책가격이 너무 비싸다. 여기서는 알 수 없겠지만 실제 편집상태는 한 페이지에 절반 정도만 글이 실려 있다. 따라서 실제 분량이 206페이지가 아니라 100페이지 가량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내용이라도 한 문장 문장 주옥같은 내용이라면 이 가격이 어느 정도 용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게 특별히 와닿는 내용이 없었다. (읽고나서 신문에 보니 엄청난 과찬의 문구들로 장식된 광고가 실렸다. 하나같이 무슨무슨 신문들의 평이었는데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문구들이었다.)
"그림에 관한 전설". 과연 그럴까?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중국화가보다 거울로 그 그림과 그 앞의 사람들을 함께 비춘 그리스 화가가 더 훌륭한 것이었을까? 공감이 안 간다. 차라리 나처럼 '과연 그럴까?'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아이러니컬한 어조로 끝냈다면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두 향연". 것두 과연 그럴까? 신성한 것은 단지 최상의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뭔가 보다 단순화 되고 핵심을 요약한 절차라야 하지 않을까? 최고의 만찬을 어떻게 매번 반복한단 말인가?
"빵에 관한 전설". 초콜렛 심지가 과연 거친 딱딱한 빵의 자손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냥 초콜렛 심지 빵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본 silly little story같이만 읽힌다.
"음악과 춤에 관한 전설". 요건 좀 와닿는 구절들이 있었다. 아닌 부분들도 많았지만. (태초에 인간이 암수 한 몸으로 창조되었으면 생식은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상상하는데 너무 불편했다. 과연 그렇게 불편하게 창조하셨을까?) 태초에 우주에 음악이 있었다는 생각은 훌륭했지만, 그리고 인간들이 자신들이 발명해낸 음악에 열중하면서 우주의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됐다는 것도 멋진 얘기였지만, "하늘과 별들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라든가 (번역 탓인가?) 이후로 하늘이 침묵을 지켰다는 대목 등은 좀 별로였다.
"향수에 관한 전설". 이것 역시 프랑스제 향수들의 기원에 관해 생각해본 silly little story라 할 수 있다.
"짚북데기 위의 아기". 현대인들이 병원중독에 걸린 이유는 병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 나도 병원에서 출산하는 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논리에는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불꽃화약 제조술". 변역 때문인지, 원저 때문인지 참 집중하기 힘든 글이었다. 그리고 그에 비해 허무한 결말이었다. 왜 질은 앙주가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 매번 8월 11일날 사고를 당하면서도 더 이상의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을까. 마지막 앙주의 편지 대목은 상상력 제로로 너무 실망스러웠다. 전체 내용도 반전 제로의 맹맹한 내용이었다.
마지막 "앵거스"는 아직 못 읽었다. 혹시 이 글에서 나를 사로잡는 대목이 있다면 밑에 꼬리말을 달아보겠다.
사실 이세욱 씨의 번역에 대한 믿음을 갖고 훑어보지도 않고 책을 구입했는데 실망이 컸다. (물론 책 가격에 대한 불만 때문에 실망이 더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 번역자 후기에는 이 책에 실려 있지도 않은 단편에 대한 얘기를 장황히 늘어놓으면서 그 작품을 통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니, 어쩌란 말인가. 11000원이나 주고 책을 사고서도 이 책을 이해하려면 원서 내용 중 나머지 절반이 실린 또 다른 번역서를 사야 한단 말인가. 중복이 되든 어쨌든 이 책에는 전체 내용을 실었어야 했다. 다른 번역서는 아동 및 청소년 도서라면서 왜 남의 사정까지 생각해주는지 모르겠다. [인상깊은구절] 그리하여 빛이 생겨났다. 하지만 생겨난 것은 빛만이 아니었다.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서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천체들이 함께 연주하는 잔잔하고 그윽하고 황홀한 음악이 끊임없이 천공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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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에 관한 전설'은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정말 이 전설을 믿고 싶다. 내가 즐겨 먹는 빵이 이런 상황에서 생겨났다고 믿으면 괜히 즐거울 것 같다. 이 글로 지난 여름방학 때 방과후수업도 했으니, 이 책을 읽은 보람 하나는 확실히 건졌다.
예전에, 오래 전부터 이 작가의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학 때 본 것 같기도 한데, 증거가 없으니. 하기야 이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설사 읽은 적이 있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을 일이다. 새로, 지금부터 내 기억에 새긴다. 작가의 이름을.
쉬운 글은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다. 쉬워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놓으면 내가 뭘 읽고 있었던가 하는 멍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상상의 즐거움이라는 게, 그 상상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러울 때가 이런 책을 읽을 때다. 나는 아무래도 상상력이 부족하든지, 상상력을 글로 옮기는 재주가 없든지, 둘 다이든지 그런 것 같다.(아니야, 어쩌면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몰라. 시간만 있으면 나도 나의 상상 세계를 싸돌아다니면서 글로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오로지 시간이 없어서, 잠이 많아서, 게을러서 못 쓰는 것일지도 몰라, 아후)
편집도 우아하다.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함을 갖지 않도록 해 주려는 것이었는지 그림들을 담아놓았다. 예쁘고 우아한 그림들이다.(물론 추상적인 그림이라 보는 사람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글의 분량이 많으면 또 지루해 할까봐 그랬는지 위쪽 1/3은 여백으로 남겨 놓았다. 처음 책을 잡으면 분량이 적다 싶어 금방 읽어버릴 것 같았는데, 나는 끝내기까지 만만치 않았다. 시작은 6월에 했던 것 같은데 이제야 리뷰를 올리고 있으니.
가을에 어울리는 글모음집이다. 생각에 잠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잘못 빠지면 한참을 머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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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예상했던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의 글쓰기가 마음에 든다.
신성함, 반복, 그리고 거룩함
늘 곁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잘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다.
신성하고 거룩한것은.. 반복에 의해 완성된다.
우리의 일상도 별 의미 없이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 듯 하지만
새삼, 그 반복속에서 신성함을 발견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책도 예쁘게 나왔고 다 만족스러운데
아쉬운 점은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될때의 글들 중에 몇개만을 실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변형되어 출판이 되버린 것이다.
실제로 작가가 편집하고 엮은데로 출판이 되었더라면 더 깊은 감동과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감흥들을 잘 느낄수 있었을 텐데
몇가지 이야기만 실리고, 순서도 바뀌어서 못내 아쉬움을 지울수 없다.
제대로 출판되길 바라며, 그때 다시 읽고 싶다.
작가의 글은 매우 만족스럽다. [인상깊은구절] 그렇소, 나는 신성한 것을 원하오. 신성한 것은 오로지 반복을 통해서만 존재하고, 매번 반복될 때마다 거룩함이 더해지는 거요. - 미셸 투르니에, 사랑의 야찬 중 '두 향연'에서 - |
| 투르니에 아저씨의 소설보다는 짧은 글들, 수필에 더욱 끌리는 건 무슨 이유인고? '철학적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는 그의 소설들은 솔직히 읽기에 버겁다. 읽는 중에도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읽고 나서도 내가 정말 이걸 읽긴 읽은 건지 한참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의 소설 한두개는 추후 독서 목록에서 저만치 떨어진 구석에 방치되어 있으니. 이번 책은 짧은 이야기들 모음이다. 단편도 아니고 掌篇소설, 콩트의 모음이다. 역자 후기에 보면 소설을 크게 콩트와 누벨로 나눌 때, 그중 투르니에 아저씨가 진정한 소설이라 여기는 것은 콩트라 했단다. 콩트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투르니에 아저씨의 콩트 모음집이다. 최고의 화가 또는 요리사를 선택하는 이야기, 창세기의 새로운 변형, 복수에 관한 이야기 등등 술술 넘어가는 동화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읽고 나면 뭔가 생각할만한 '꺼리'가 생기는 이야기들, 그리고 꼭 해피엔딩은 아닌 이야기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편집방식엔 정말 불만이다. 다양한 삽화가 들어간 것은 좋으나, 책 한페이지에서 절반은 그냥 텅 비워두고 아랫부분에만 글씨를 인쇄해 놓은 건, 단순히 장수 늘리기를 위한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일반적인 책과 같이 편집했다면 아마 이 책의 두께는 1/2 또는 1/3까지 줄었을텐데...그런 얇은 책을 그 가격에 팔 순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투르니에 아저씨의 글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온다는 건, 맹렬 열혈 독자까지는 아니어도, 그를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긴 하다. 이제 슬슬 저기 방치된 그의 소설을 찾아 읽어야 할텐데.. |
| 우연하게 보게된 책인데 내게 무슨 점지력같은게 있나 신기해할만큼 탁월한 책이었다. 알고 보니 투르니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프랑스 작가로 인정받는 사람. 본래 철학도였다가 교수임용에서 낙방한 날 문학적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들에는 짧지만 강렬한 철학적 통찰 같은데 담겨있다. 야찬이란 우리에게 낯선, 아니 없는 표현이다. 풀어쓰면 ''한밤의 식사를 겸한 잔치''(?) 정도가 될텐데, 세끼 챙겨 먹기도 벅찼던 우리에게는 사치스런(?) 낱말이다. 이 책에는 머리말에 해당하는 [말없는 연인]편이 생략되어 버렸지만(다행히 역자후기에는 요약돼있다.) 이걸 들어야 왜 제목이 ''사랑의 야찬''인지 이해할 수 있다. 공허한 수다와 달변에 지친 여인이 과묵한 어부에게 매료되어 결혼을 하지만 결국 ''침묵'' 또한 공허함을 느끼고 결별을 약속하고 이를 주위 사람에게 선언하기 위해 야찬을 벌인다. 이 잔치에서 손님들은 저마다 사랑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19개의 짧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원판인데 우리나라에 출판된 것은 이중 9개만 추린 것이다. ''곤란한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짜증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정작 마지막 장에서야 우리는 제목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헛헛 짧은 이야기들은 결코 ''사랑''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다. 신화와 전설에 뿌리를 두어서 깊고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았던 것은 한가지 이야기를 두고 두고 곱씹어 볼수록 여러 해석이 가능한 다층적 구조라는 것. 기회가 된다면 투르니에의 다른 저작들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