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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역사에 남은 인물들도 많다. 유행마냥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인물 체 게바라 역시 그렇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조차도 꿈을 꾸었던 인물, 우리는 그를 두고 리얼리스트라 말한다. 어찌 보면 그의 삶은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의사로서 그는 편한 삶을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혁명을 위해 사용했다. 마치 처음부터 혁명을 위해 점철된 존재마냥. 게다가 그는 거의 평생 그를 괴롭힌 천식과도 싸워야만 했다. 어쩌면 혁명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천식은 그를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체의 마지막 기록이다. 어쩌면 이는 훈련된 의사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강박적인 기록일지도 모른다. 매 순간 그와 동료들은 죽음을 마주대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의 문체에서는 그와 같은 긴박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억제된 감정은 오히려 비극을 극대화시키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대오가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으며, 쿠바에서부터 함께 한 동지들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죽음도 임박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낳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록은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감정을 숨김으로써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담담히 아버지의 생일, 아들의 생일을 기록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투쟁을 뒤돌아보는 철저함. 그러한 태도가 없었다면 애당초 그는 혁명가가 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의 기록은 고뇌와의 싸움이었다. 가시적인 적과 마주하는 순간도 물론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오히려 나는 교전 없는 평화로부터 치열함을 느꼈다. 좌파는 자신의 양심뿐 아니라 상대방의 양심도 지켜야만 한다고 했던가. 의견이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때론 혁명 이후 주도권을 두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던 그 한복판엔 어느 누구보다도 혁명에 익숙한 인물 체가 있었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존재했기에 그들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함께했던 이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보다 충만한 사기를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혁명이 성공하고 말리라는 의지 역시도 그와 같은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비록 정부군의 포위망은 점차 좁혀져 왔으며, 그들은 분명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탈출해야만 하는 위치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대가 괴멸하기 불과 이틀 전, 10월 7일에서 그의 기록은 끝나고 있다. 마지막 그 기록에서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긴박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머지 않아 죽음을 맞이할 이의 기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혁명가로서 그가 ‘삶’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쿠바에서 혁명영웅으로서 평온한 삶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던 그가 볼리비아 산악지대로 자신의 몸을 내던졌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함으로써 그는 무모했지만, 그래서 더욱 절실했던 무언가를 갈구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싸움, 오늘날 그의 이름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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