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산책. 복거일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일단, 그의 古語스런 말투부터 권위적인 냄새를 풍긴다. 아주 짜증나는 말투. "...사정이 그러하므로..." 그는, 온갖 보주수의 일색의 다양한 외국저널의 인용구로 책을 도배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정의로운 핵심적인 것은 개인이 '이기적인 심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질="">이라는 것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타주의'도 결국은 이기적인 심성을 발현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개인의 사적이익 추구에 대한 '재산권'은 많은 서구의 종교나 이론들이 이미 옹호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의 인위적인 '평등'보다 더 효율적이고 인간의 본성에 맞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심지어 저자는 '기회의 불균등' 또한, 이전에 '노력한 개인이 이루어 놓은 하나의 평등한 결과'로 묘한 뉘앙스로 해석한다. 200페이지도 않되는, 포켓용 문고판 책 속에서 '인용한 문구'는 거의 절반 이상 수준. 꼼꼼히 읽어 들어가더라도, 논리의 흐름을 편하게 따라갈 수 없는 많은 표현들. 책을 다읽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중간에 그가 제시하는 논리에서 앞에서 제시한 논리와 따로 노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복거일은, 자본주의 체제가 '효율성' 뿐 아니라, <자연스럽기>때문에 정의롭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논의 부분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집단들의 특징이 <합리적인 이성="">보다는 <직관>에 의존한 판단과, 기존에 부유층들에 데한 <질투>의 요소가 한데 섞여 자본주의 체제의 정의로움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직관'은 아주 낮은 수준의 사고과정이며, 매우 감정적인 평가를 동반한 것이라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저자가 주장한 자본주의 체제의 정의로움의 근거로 사용했던 <자연스러움>은, 필연적으로 '직관'을 수반한다. 반면에, 합리적인 이성은 자연스러움 보다는 인위적인 과정을 이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고의 프로세스를 저자는 우악스럽게 논리를 비틀어 버린다. 전체적인 글의 전개도 그다지 현실논리에 맞지 않다. 예를 들어, '경쟁의 본질'부분에서, <사회안전망>을 통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런 자원을 잘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것은 현재의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자본가들에 의해서 직접적인 반발이 거세진 정책들이고, 이론상에서만 존재하지, 저자가 책속에서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개인적인 이익추구의 자연스러움"의 논리에 의해 보더라도, 인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재의 완전경쟁 체제로는 부적당한 시스템인 것이다. 만일, 현재의 한국사회 내에서의 '자본주의 체제'가, 어느 한 시점에서 '준비..시~~작..'해서, 시작을 하였고, 그래서 똑같은 원칙을 가지고 자본주의가 진화해 왔다면, 그의 논리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현재의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완전히 그의 노력부족에서 오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고,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다량의 부의 축적과 잉여자본은 '권력과의 유착'관계나 정확한 게임의 룰을 지키면서 생겨나지 않았다. 현재, 유일한 박사의 유한양행과 같은 대기업이 인정받는 것은 그런 깨끗한 기업이 그리 흔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자본주의 체제="" 옹호론="">은 기존의 한국사회에서 잘먹고 잘살던, <수구 기득권="" 세력="" 옹호론="">으로 들린다. <성공한 개인="">의 입장에서, 주변사람들은 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자신의 성공함에 대한 질투하고 시기하는 인간으로 비춰질지 모를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시각은 인간이 가지는 '상호성'과 '관계성'에 대한 기본적인 맥락을 전혀 이해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무지막지한 변호'는 핵심적으로, <정당함에 대한="" 가치="">가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그 <올바른 가치="">가 가지는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머리속에서 한국사회는 '서울대 안나온, 영어못하는 무능한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비이성적인 직관적인 주장'만 해대는 말도 안되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올바른>정당함에>성공한>수구>자본주의>사회안전망>자연스러움>질투>직관>합리적인>자연스럽기>자연스러운>정의로운> |
| 가장 좋은 사람들은 확신이 전혀 없고, 가장 나쁜 사람들은 열정적 강렬함으로 가득하다. -예이츠, The Second Coming에서- 서문을 읽기 전에 보라고 왼쪽 첫페이지에 위 詩를 옮겨 놓았다. 이 책이 다루려고 하는 주제를 제목에서 그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위 인용문은 빛난다, 저자의 생각을 단 한방으로 정리해주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사람들은 열정적 강렬함으로 가득 차야 하는가? 그러는 순간 혹, ‘나쁜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열정적 강렬함이 자주 동반하는 독선과 아집의 깊은 수렁에 빠질 우려는 없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본주의가 효율적이어서 사회적 번영과 개인적 자유를 함께 허여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고 정의로운 체제라는 사실은, 실은 그런 자연스러움과 정의로움에서 그것의 효율이 나온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시도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현답을 해준다. 즉 자본주의는 필요악이라는 심리적 반감에 대해서까지도- 60-70년대에 태어난 대다수 한국사람들이 가진 생각일 듯- 다양성의 옹호라는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수용되어서는 안되며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정의로움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감정들은 수정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감한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자본주의 반대론자들에게 ‘그러나 자본주의가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해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고, 자본주의에 대한 올바른 변론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 지점에서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오래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세간에는 자본주의의 높은 효율은 인정하면서도 정의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안착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자본주의가 정의롭기까지 하다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자본주의체제를 지키는 근본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체제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 사안인 재산권의 문제와 관련해 재산권이 본질적으로 정의로운 법적, 역사적, 철학적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동량가치설, 진화론에 기초한 진화심리학 evolutionary psychology이 밝혀낸 도덕성의 정체, 평등주의의가 타당하고 정의로운 재산권 추구에 미친 악영향 등을 깊이 살피며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또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본디 자본주의가 자기 파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큰 영향력을 가진 대중매체의 힘을 더한 민중주의의 득세라고 말하며 반자본주의적 사고의 틀을 걷어내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수용가능한 자본주의 이해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복거일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본질을 보는 눈과 그것이 본질임을 밝히는 근거의 적합성에 대해 언제나 경의의 박수를 보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다만 좀 쉽게 읽혔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송병락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자본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범시민 대상의 교양서를 더욱 많이 집필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교양서로 'MIT경제학 보이지 않는 마음'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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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은 시인이자 소설가이지만 실상 시인이나 소설가로서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의 업적과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은 몇몇 지식인들을 거쳐 복거일에 닿게 해주었으며, 복거일은 내게 미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식인이 되었다. 대개 개인에 따라서 지지, 동의, 공감하는 지식인과 이와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지식인으로 나눌 수 있다면, 복거일은 그 어느쪽도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반대에 위치되는 지식인일 것인데, 그의 의견에는 반대할지라도 그의 문제제기는 들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는 기존에 다른 지식인들이 주장하던 것을 반복해서 언급하지 않고, 항상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또한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인들 사이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점을 지적하며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관점을 취한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선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거센 물살이 되었다. 활기찬 자본주의 체제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난 한 세대에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런 사정은 반어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반어를 느긋한 마음으로 음미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러기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우리의 안녕과 복지에 너무 큰 위험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책이다. 복거일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의 가장 큰 비판은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며, 이를 제대로 옹호해야만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정의로움과 도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효율성을 언급하며 자본주의를 옹호했으며, 복거일은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기에 '정의로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정의로운가? 자본주의 이전에 "그것을 떠받치는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을" 밝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복거일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재산권의 정의로움을 밝히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 제도에 바탕을 두었고사유재산 제도는 재산권을 통해 세워지고 유지되므로, 재산권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만일 재산권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른 면들에서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재산의 형성에 대한 공헌에 바탕을" 두고 있고, 재산의 형성에 공헌한 이들이 공헌 정도에 따라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며, 그것 말고 우리는 다른 어떤 기준도 생각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노동가치설에 근거를 두며, 노동으로부터 재산권이 나온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는데, 사회주의의 대표주자인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이 논파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재산은 그것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옳다는 사회주의의 근본적 가정" 뿐 이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더 잘 옹호해주고 있다 한다.
복거일이 이 책에서 펼치는 자본주의 옹호론의 구도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기본은 사유재산권에 있으며, 사유재산권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우며, 고로 자본주의 또한 정당하다는 식이랄까. 그러나 중간에 좀 더 보충되고 언급되어야 할 것이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에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뽑아내는 부분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복거일은 평등과 정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불과 30-40년 전의 롤스와 노직 등의 논쟁과 관련해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는데, 복거일은 노직의 롤스비판을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롤스의 노직에 대한 반박을 그 근거로 삼는다면 복거일의 주장은 쉽게 논파당한다.
평등에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있으며, 기회의 평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결과의 평등에는 다수가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거일은 기회의 평등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버트 노직의 <무정부, 국가, 그리고 이상향>에서 "기회의 평등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존재하는 것은 특정한 사물에 대한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권리들 뿐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기회의 평등이 정당하다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라는 것이다.
잠시 이 책을 벗어나 롤스와 노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복거일은 책에서 노직의 입을 빌려 롤스를 비판하면서,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연결짓는다. 그러나 롤스 비판자인 노직의 눈에는 롤스의 이론이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노직이 말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이익을 증진하는 동안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으며, 고로 자신이 증진한 이익을 타인에게 나눠줄 정당한 근거로 없고 궁극적으로 누진세와 같은 세금의 적용은 재산권에 대한 배타적 권리의 박탈인 동시에 세금에 해당하는 양만큼 국가가 개인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롤스에 따르면 개인의 이익 개선이라는 부분이 순전히 개인 활동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타자와 연관되어 있다. 후생경제학자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차등원리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근거를 언급한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인데 "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분배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어느 한 사람의 효용도 증가시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고로 복거일이 앞서 자본주의에서 노직의 입을 빌려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을 옹호한 부분은 롤스와 센에 의해 논파된다. 복거일은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비판에 대해 자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적극 옹호해보려 했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 진행되었던 서양에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논쟁 안에 다 들어있던 내용이라 더 언급하거나 옹호할 꺼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롤스와 노직의 논쟁에 대해 공부 중인지라 더 깊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한 학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데 그친다는 점에서 그다지 효력이 없다고 본다.
이 책은 매우 얇지만 읽기는 어렵다. 가볍게 읽으려고 했다간 큰 코 다친다. 이 책의 목차 순서상 중간 부분에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잘 모르는 이들이 등장하는데다가 생소하지 않은 언어로 생소하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지라, 그치만 그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은 아니라는 판단에 꼼꼼히 읽지 않고 넘어갔다. 분량에 상관없이 어렵게 쓰여진 책에 대해 꼼꼼히 읽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자신없으나 이 책에서 복거일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논증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주로 생각하고 언급하는 것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한 가지, 복거일은 이 얇은 책자 안에서도 꽤나 많은 인용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 인용구들이 전부 다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짧게 짧게 끊어 인용하거나 복거일이 본인의 입을 통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책의 난이도만 높아지게 길게 늘어뜨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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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일반경제학이론보다는, 진화생물학적인 면에서 연구,고찰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종류의 경제학서적이나 연구서보다도 독자에게 쉽게 다가 갈수 있다.
자연스럽다. 반면에 사회주의는 그런 자연적 질서가 인공적 과정을 거쳐 바뀐뒤에야 비로소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성립에 동원된 강제력과 자원이
정의감은 선험적 존재가 아니다. 다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우리의 생물적진화에서 나온 산물이다.
걸까?
진화한 기구이지 세상의 움직임을 총체적으로 깊이 파악하기 위해서 나온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가치에 바탕을 둔 제3의길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고, 때때로 그런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신적가치를 물질적 가치보다 앞세우는 대안적사회들 가운데 실제로 세워진 것들은 더물었고 제대로 기능해서 오래 살아 남은 것은 없었다. '대안공동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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