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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 한줄평 : 27세 청년, 헤르만 헤세가 노래하는 우정과 사랑과 자연의 순수함 27세 청년 헤르만 헤세의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 호수는 옛날과 다름없이 푸르고, 태양은 전에 못지않게 맑고 따스했다. 때때로 나는 노랑나비를 바라보며, 내가 그때와 별로 변함이 없이 여전히 마찬가지로 산의 풀밭에 누워서 다시 소년의 몽상에서부터 부화되어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일생의 상당한 기간을 소비했으며, 다시는 그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을 매일 얼굴을 씻으면서 녹슨 양철 대야에 뻣뻣한 코와 쓸쓸한 입을 가진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204) 이 글이 어찌 27세 청년이 쓴 글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놀랍다. 마치 80년 인생을 살아본 것처럼 그 표현이 섬세하다. 헤르만 헤세는 첫 작품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앞으로 그가 그려낼 많은 문학작품의 원형을 제시한다. 방랑과 귀환. 자연과 도시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의 회귀.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책 제목이 모두 사람 이름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수레바퀴 아래서'는 예외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페터 카멘친트, 싯다르타, 데미안, 크눌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별명으로 불린 황야의 이리까지. 그는 시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열두살 때부터 자연을 함께 사랑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의 예찬 글들이 무궁무진한데,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도 곳곳에 나타난다. 그리고 남풍이 지나가고 마지막 남은 더러운 눈사태가 녹아버리면 그때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찾아온다. 곧 꽃으로 물든 누런 목장이 사방에서 산을 향해서 퍼진다. 눈이 덮인 산봉우리나 빙하는 높고 깨끗하고 엄숙하게 솟고, 호수는 푸르고 따스하며, 태양과 하늘 높이 히르는 구름을 비춘다. 이러한 모든 것은 이미 어린 시절을 채우기에 넉넉하며 때로는 일생을 충족시키기에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모두 사람의 입에 아직 오르지 않은 것 같은 신의 이야기를 소리 높이 솔직히 말하기 때문이다. (19)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 구름을 더 잘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니면 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구름은 흘러가며 눈에 위안을 준다. 구름은 축복이요, 신의 선물이요, 노여움이요, 죽음의 힝미다. 구름은 갓난아이처럼 정답고 부드럽고 평화롭다. (...) 구름은 누런빛과 푸른빛을 띠며 꼼짝도 않고 쉬기도 한다. 구름은 살인자처럼 음침하게 천천히 다가온다. (23) 페터 카멘친트는 긴 여정의 인생에 잊지 못할 두 친구를 만난다. 바로 리하르트와 보피다. 대학시절에 만난 친구 리하르트와는 정신적 교류를 통해 페터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2주가 지난 후 그는 보잘것없이 자그마한 강에서 헤엄을 치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그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매장할 때도 가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그가 이미 관에 들어서 땅속에 누운 후, 처음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 방 마루에 쓰러져서 신과 인생을 천하고 무섭고 험악한 말로써 저주하며, 울고불고 미칠 듯이 날뛰었다. 그때까지 몇 해 동안에 내가 얻은 확실하고 단 하나밖에 없는 재산이 우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06) 두 번째 친구 보피는 꼽추 장애인이다. 페터는 길거리에서 보피를 보고 동정심아 생겨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를 보살피기 시작하면서, 보피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보피가 가진 세상을 선물로 받는다. 마지막 보피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키는 굳건한 우정을 보여준다. 헤세는 그의 첫 작품 <페터 카멘친트>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 사랑과 우정의 무상함, 자연의 숭고함 등을 적절히 녹여낸다. 책의 첫머리에서 만나는 페터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끔찍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 이유도 없이 페터를 폭행했다. 나는 날마다 구타맞는 생활을 군에 가서야 경험하며 공포에 치를 떨었는데, 페터 카멘친트는 아무 이유도 없이 아버지에게 맞았다. 거의 2,3주마다 아버지는 저녁에 집을 나서기 전에 나의 손을 끌고 나와 같이 아무 말도 없이 외양간 뒤에 있는 말먹이 창고로 들어갔다. 그러면 거기서 이상하게 죄와 벌을 씻으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죽도록 매를 맞았지만, 아버지나 나 자신이나 내가 무엇 때문에 매를 맞는지 알 수 없었다. (21) 나는 폭력과 폭행을 증오한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상이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훈육이라는 말은 다른 개념이지만, 어떤 모양이든지 그것이 폭력이 된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은 폭력을 당함으로써 내면에 씻지 못할 상처를 평생 안게 된다. 책에 정확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페터가 도시 생활에서 사랑을 갈구하며 방황하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은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느낌 같은 것이다. 나는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온 동네 사람이 다 내다볼 정도로 거창하고 시끄럽고 요란하게 꽤 오랜 시간 무저항적으로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이나 되었을까? 대낮이었는데 꽤 술이 거나해진 아버지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키던지 노래를 부르지 못하자 마당으로 나를 내몰고는 온몸을 두들겨 팼다. 그때 어머니는 집에 없었고, 주변 동네 사람들이 다 고개를 내밀고 나보고 도망가라고 소리를 쳤지만, 나는 울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저항하듯이 일부러 온몸으로 그 폭행을 견뎌냈다.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처였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처는 내 속에 깊이 패여 있다. 그러나 현명하고 경제에 밝은 인생은 아무 말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내버려두었다. 인생은 나에게 별로 폭풍우를 보내지도 않았고, 그저 내가 다시 자신을 죽이고 꾹 참으며, 내 고집을 굽히기를 기다렸다. 내가 거만하고 아는 체하는 희극을 하게 시키고는 모르는 척 거들떠보지도 않고, 헤매던 아이들이 다시 어머니를 찾기 기다렸다. (107) 페터의 인생관은 이제 허무로, 무상으로, 마구 내버려둠으로 흘러간다. 자기를 방치하는 것은 자기폭력이다. 자기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기무책임함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가? 친구 리하르트의 허무한 죽음 때문일까?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행복 때문일까? 그가 다시 자연을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지나간 뒤의 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 때묻지 않았던 그 소년의 동경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는 말없이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서 강하고 애달픈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또 한없는 생명과 동경이 치밀어오르며, 알아주고, 이해해주며, 사랑해주기를 원했다. (127) 그리고 책은 보피와의 우정, 사랑의 모습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는 장애인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여운 마음, 동정심, 불쌍히 여김 같은 것으로 시작된 돌봄이었지만, 사람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외형적인 것이 사람의 본질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친구 보피를 통해 깨닫는다. 잔잔하고 청명한 가을 호수를 보는 것 같은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앞으로 어떤 세계관을 그려갈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순수함과 자연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27세 청년 답지 않은 인생에 대한 관조가 격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폭풍처럼 밀려오게 한다. 멋진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를 알아가기에 이보다 좋은 책은 없다. 사랑은 행복을 주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 (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