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는 구렁이 아이.
날 때부터 구렁이 아이.
구렁이랑 밥을 먹고
구렁이를 타고 놀고
구렁이를 베고 자는
나는 나는 구렁이 아이.
우리 아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듣는 옛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옛이야기의 폐해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이분법적 구도나, 여우나 뱀이나 늑대 같은 동물들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모습을 그린다거나, 지나친 충효사상을 그린 이야기 같은 것들이 곧 그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행복하게 끝맺는 구조를 통해 아이들이 낙관적 인식을 하게 된다거나, 선과 악의 대립으로부터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같은 긍정적 작용 또한 큽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옛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슴으로부터 전해지는 사랑과 지혜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그림책이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하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그려보게 됩니다.
『물이, 길 떠나는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의 특장을 훌륭하게 살려낸 수작입니다. 주인공 ''물이''는 물동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늘 선녀의 실수와 제 어머니의 말 독으로 인해 영혼의 한 조각을 잃고 태어납니다. 그리하여 구렁이와 함께 평생 떠돌아다닐 운명이 됩니다. 세상을 떠돌게 되지만 ''너’와 ‘나’라는 글자를 구별하지 못해 글방에서 쫓겨나고, 구렁이와 우는 아이를 달래 주다 요물이라며 몰매를 맞으며, 겉모습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사내아이와 길동무가 되는가 하면, 쥐 떼를 몰아주다 되레 오해를 받아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는 등 세상의 편견에 부딪칩니다. 하지만 물이는 그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완성을 위해 삶을 개척합니다. 이해를 받지 못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할 바를 다하면서 마침내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을 찾게 됩니다. 구렁이에게 머리카락 일만 팔백 올로 옷을 짜주어 잃었던 영혼을 찾는 감동의 장면입니다.
물이는 은베틀에 머리카락을 걸어 옷감을 짰다. 바늘귀에 머리카락을 꿰었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옷을 지으니 바늘땀마다 눈물이 방울방울 덜어졌다.
어느새 머리카락 옷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매듭짓기를 남겨 두고, 물이는 구렁이를 끌어안았다.
"잘 가. 내 동무야. 네 자리 찾아가서 이젠 편히 살아."
마침내 마지막 매듭을 묶으니 동무 구렁이 옷이 다 되었다.
머리카락 옷은 저절로 움직여서 동무 구렁이 몸에 가 찰싹 들러붙었다. 구렁이는 온몸을 뒤틀었다. 옷은 밤하늘처럼 까맣고 아름다운 구렁이 비늘을, 살갗을 파고 들어갔다.
구렁이 몸에서 푸른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푸른 연기는 공중에 퍼지지 않고 한 줄기 연기 되어 물이 쪽으로 날아오더니 물이 몸을 휘감았다. (170 - 172쪽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