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얘기지만 어느 진보단체 사이트에서 ‘니어링 부부’와 관련한 게시글에 ‘수십만 평 농장을 가진 그 부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며 부정적인 관점의 댓글이 올라온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며 금세 잊어버리고 있다가 <새벽의 건설자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공동체를 소개한 글인데요. 미국사람인 글쓴이들은 그들 특유의 꼼꼼한 조사와 체계적인 정리를 통하여 공동체에 대하여 보기 좋고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대개의 경우 종교를 중심으로 한 영성공동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의식 공동체 그리고 노동이나 생활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로 나뉘는데 거의 자급자족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공동체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곳도 있네요. 그 형태도 각자 따로 생활하면서 전체적인 테두리를 유지하는 느슨한 형태부터 공동생산 공동분배 등을 통하여 철저하게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생활을 최소화하는 공동체까지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구성원의 숫자도 몇 십명에서 많은 경우 몇 백명까지 차이를 보이는데 놀라운 것은 미국의 경우 이들이 보유한 땅의 규모가 작게는 몇 만평에서 대개 수십만평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좁은 땅에 조금이라도 땅을 불려보겠다고 엄한 갯벌까지 메우고 난리를 치는 우리 입장에서는 제대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 이들은 엄청난 땅부자가 되는데 실제로 이들이 이용하고 살아가는 터는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지요. 그러니까 땅이 투기나 부의 개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앞에서 말한 ‘니어링 부부’의 농장도 이해가 되지 싶습니다.
이런 공동체 얘기에 있어서 어차피 그 초점은 이 땅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고 보면 이러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처럼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것이고, 또 구체적으로 공동체의 성격이나 크기, 구성원의 의식이나 기술적 숙련도, 공동생활의 정도 등 실제 공동체를 꾸려가는 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많이 있겠는데요. 그럼에도 이보다 앞서 이 땅에서 공동체를 꾸려나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꼼뮨주의(공동체) 논의처럼 공동체와 사회의 관계, 주로 지역과 관련하여 지역자치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의 문제 등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앞선 사례와 달리 실제로 땅을 확보하는 문제부터 공동체를 꾸리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매우 불안정한 이 땅의 정치사회 (경제적 문제까지 포함한)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누군가의 말처럼 ‘모든 문제는 정치적이다’는 지금 이 땅에 있어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속세는 속세’고 ‘공동체는 공동체다’는 입장을 가져야 하는데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볼 때 더더욱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