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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은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변화할까요? 우리글로 만든 작품이라면 작품 자체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작품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르게 읽혀 작품에 변화가 있는 듯한 느낌을 갖지 않을까요? 번역된 작품은 어떨까요? 원본은 변화가 없을지 모르지만, 번역된 작품은 분명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연구자가 아닌 다음에야 원본을 찾아보는 수고는 않을 것이니 독자 입장에서는 시대가 다른 번역본을 비교할 때 그 변화를 부인할 수 없을 듯도 합니다.
너무도 유명하여 읽지 않아도 읽은 듯한 작품들입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영국의 대문호(여전히 어색한 표현입니다. 갑자기 맘모스급 대식당이라는 광고 문구가 기억납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릭,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입니다. 옮긴이 진영종 선생이 설명하길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표현은 당시 인도를 보석에 비유하였다고 하여 실제 인도라는 나라와 바꾼다는 표현이 아니라, 어떤 보석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설명에 귀가 트이고 관심이 갔습니다.
사실 과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따분하고도 상투적인 이야기여서 읽기에 힘이 들었던 기억만 있습니다. 서가에 꽂힌 책을 찾았습니다. 1970년 출판된 ‘컬러판 세계의 문학대전집 1’권이 ‘셰익스피어 햄릿 외’입니다. 책의 정가가 1,500원이었다는 걸 보면서 세월의 가벼움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구입한 책은 정가가 44,000원입니다. 1,500원이 44,000원보다 훨씬 가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재번역했을 법한 책에 비하면 진영종 선생의 번역본은 읽기에 번거롭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책을 열었습니다.
책은 모두 893쪽입니다. 조그만 벽돌이 연상됩니다. 과거 기억이 살아나 읽어낼 수 있을까 염려를 했지만 ‘어~ 이거 이상하게 책장이 잘 넘어가네.’ 놀라면서 읽었습니다. 햄릿의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3막 1장)를 찾았지만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번역한 이유를 선생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첫째로 햄릿이 아직까지 아버지의 복수에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를 밝힌 적이 없고, 마지막 그의 죽음도 우연에 의한 것이지 자신의 결의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연극의 진행을 염두에 두면 햄릿의 고민은 유령이 털어놓은 비밀을 홀로 간직한 채 괴로워할 것인가, 아니면 그 비밀을 입증하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의 대사에서 죽음과 잠 등의 비유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이대로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변화를 꾀할 것인가, 이것이 햄릿이 고민하는 핵심이라고 보고 이렇게 번역하였다.” (140쪽)
극의 전개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번역한 것이 효험이 있어서 그런지 햄릿을 읽어 가면서 부담이 가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1600년대 그 시절의 대사에 대한 옮긴이의 설명은 친절했습니다. 뚱딴지 같은 표현이라는 과거의 기억은 조금씩 풀어져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며 주인공들의 대사가 현실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셀로가 어떻게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오해하여 죽이기까지 하는지를 안타까움을 가지고 읽습니다. 아침 드라마를 보며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와 악역 배우에게 욕을 하던 할머니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오해가 부른 치정극을 몰입하며 보았습니다. 벌써 499쪽이 넘었습니다. 반을 훌쩍 넘긴 겁니다. 그래도 지겹지 않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리어왕의 처지를 보면서 과거 부모들이 하던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자식에게 재산을 절대 먼저 주면 안 돼. 죽으면 어차피 유산으로 받을 건데 그걸 미리 주면 말년에 고생한다.” 우리 세대야 줄 것이 있어도 내 살길 먼저 생각하고 주는 세대가 되었습니다만, 그때 그 시절은 이런 걱정으로 스스로 세뇌해야 할 정도로 가치관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1600년대를 살았던 셰익스피어는 1900년대를 미리 살았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타임슬립’ 그런 드라마가 있지 않았나요
권력 찬탈, 쿠데타, 내란을 감행하게 맥베스를 추동한 인물은 그의 아내입니다. 맥베스 부인이 맥베스에게 왕을 죽일 것을 추동하면서 하는 대사가 압권입니다. “당신은 힘이 빠지는군요. 아기 젖을 먹인 적이 있죠, 젖을 빠는 아기의 사랑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알죠, 아기가 내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짓는 동안에도, 내 젖꼭지를 부드러운 아기 잇몸에서 빼내고선, 아기를 집어던져 머리통을 박살 낼 수 있어요. 당신이 이 일을 맹세했듯, 내가 맹세만 하면.”
부인의 추동에 덧붙여 마녀들이 그의 미래를 예언한 사실도 내란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주술과 아내의 등쌀에 못 이긴 가련한 남자. 어디서 본 듯한 놈 같습니다. 맥베스는 늘 악몽에 시달립니다. 지금 그놈도 그래야 하는데, 그런지 안 그런지는 기자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에게 물어야 하겠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 세상사는 시대를 불문하고 비슷한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책입니다. 다시 읽는 번역문학은 전문가를 찾아야 할 듯합니다. 전문가가 많은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한국은 분명 선진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