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철새는 봄과 가을에 이동한다. ‘가을 이동’이 가을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늦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이동한다. 따라서 ‘번식 뒤 이동’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봄 이동’ 또한 ‘번식 앞 이동’이라고 해야 한다. 철새의 이동에 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아리스토렐레스는 “많은 새는 땅 속으로 숨는다. 새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따뜻한 나라에 건너가지 않는다. 황새와 지빠귀와 종달새도 전부 땅 속으로 숨는다.”고 말했고, 카를 린네(1735년)는 “흰털발제비는 유럽의 인가 처마 밑에서 살다가 겨울 동안에는 물속에 들어가 있으나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난다.”고 말했다. 철새의 이동에 잘못 알고 있었다. 이에 반해 우리 민족은 철새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가을에 제비가 보이지 않으면 “강남”에 갔다고 여겼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완연한 봄이라고 여겼다.
철새는 왜 이동하는 것일까. 철새의 이동은 30%가 사고사를 당할 만큼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동하는 까닭은 비용(사망률)보다 이익(번식률)이 크기 때문이다. 철새의 이동은 비용 대비 이익이 큰, 진화에서 승리자가 된 멋진 방식이다. 철새의 이동은 계절이 바뀌면서 먹이가 부족해지고 날씨 또한 혹독해지자 이를 피해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아가면서 시작되었다. 즉 새들의 이동은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진화했다. 대부분의 새들은 먹이만 풍부하다면 추운 날씨쯤은 이겨낼 수 있다. 즉 먹이가 부족해질 때 새들은 이동한다. 북반구의 온대지방과 극지방 주변에서도 비록 그 기간은 짧지만 생물들이 자라는 동안은 먹이가 풍부하다. 그곳을 철새가 찾는 까닭이다.
새들은 아마도 3단계로 이루어지는 방향, 항법 설정 시스템의 작용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듯하다. 1단계에서는 정해진 시간 동안 목적지를 향해 벡터항법이나 시간과 거리 프로그램에 따라 이동한다. 그리고 목적지에서 수백 킬로 내에 도착하면 자장과 냄새의 지표로 만들어진 체내 지도에 따라 목적지 근처까지 찾아간다. 그것이 2단계이다. 마지막 3단계는 지형의 특징을 탐지해 번식지나 월동지가 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새가 이동을 한 번 완수하고 나서 여행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알아야만 작동하기 시작한다.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이동을 능숙하게 해내는 원리이다. 그 해에 태어나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목적지를 찾아가는 어린 새의 놀라운 능력은 벡터항법설로 설명될 수 있으며, 어른 새에게 이동의 코스와 거리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는 가설로써 설명할 수 있다. (213쪽)
이동이란 수백 가지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다. 이동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옳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실수는 이동을 지연시키고, 심지어는 죽음을 부른다. 나는 지금까지 새들이 하나의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무수히 강조해 왔다. 언제 날아오를지, 속력은 얼마나 낼지, 어느 높이로 날아갈지, 어느 방향으로 전진할지, 어디에 내려앉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267쪽)
새는 무척 용감하고 경이로운 목숨이다. 무리지어 낮에 이동하는 철새가 있지만 홀로 밤에 이동하는 철새도 많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생명이다.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새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많은 종의 새가 줄어들고 있고 몇몇 종은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사람은 예로부터 새를 음식으로 또는 하나의 흥밋거리 로 도살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만든 탑, 조명등, 송전선, 창문 등에 부딪혀 죽는다. 유리나 자동차가 철새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에게 먹이를 찾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을 빼앗는 것도 고의로 죽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특히 서식지 파괴는 가장 심각하다. 개발 광풍 대신 환경 보호 산업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철새 교육 등이 시급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