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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동네 서점에 갔다가 아이들을 만나서 책 선물을 한 후 내가 읽을 책도 하나 골랐다. 요즘에는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다 보니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마침내 ‘그래, 바로 이 책이야.’하며 한 권 골라 들고 나오는 잔재미를 잊고 산다. 하지만, 불현듯 그런 잔재미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땐 무작정 서점에 가는 것도 기분 전환이 되고 좋다. 인터넷 서점의 10% 할인 유혹이 발목을 잡을 때도 있지만, 서점나들이는 분명히 10% 못지않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겠지.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 -- 문제해결 능력을 100배 높이는 비결’이란 책에서 ‘고독’이란 단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처세술 강의 같은 부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잠시 머뭇거렸지만, 책 뒷장을 읽으며 낙점을 했다. 뒷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혼자만의 시간, 혼자 있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외로움은 사치지만 고독은 가장 친한 친구이다.’
‘고독의 시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실존의 시간인 것이다.’
대학 시절 나는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이란 단어에 매혹되었었다. 비록 철학적 사유가 얕고 독서의 깊이와 넓이도 부족하여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고독’이 ‘외로움’과는 다른 차원의 ‘홀로 있음’임을 감지했다. 고독이란 단어는 한없이 편안하게 읽혔다.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나의 성격이 특별히 모난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경주 여행길에서 읽은 황동규의 ‘홀로움’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고독’이 바로 ‘홀로움’일 거라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값은 8천 원이니 요즘 책값치고는 싼 편이었다.
목차
1. 고독의 적극적 의미
2. 고독이 사람을 만든다.
3. 내가 고독의 구원을 받았을 때
4. 고독을 완성한 사람들에게 배운다.
5. 집단의 시대에서 개인의시대로
6.고독의 힘
7. 고독을 즐기는 법
저자는 고독을 두 가지로 분명히 구분하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독이란 사실 외로움, 고독감 같은 다분히 정서적인 느낌인데 이것은 ‘어두운, 소극적 고독’으로 론리니스(Loneliness)이고, 진정한 고독이란, ‘밝은, 적극적인 고독’으로 솔리튜드(Solitude)라 하였다. 론리니스는 우리를 나약하게 하고 한없이 미궁에 빠뜨리고 인간관계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솔리튜드는 우리의 내면에 귀기울여 자신의 자아에 대하여 눈뜨게 하고 이 자아를 성숙시켜 결국은 여럿 가운데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영혼의 틈새를 느낄 줄 알게 되고 홀로 있으면서도 세상과 단절된 고통에 빠지지 않게 된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까지 오해해왔거나 무시해왔던 고독의 적극적인 측면이야말로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비책을 담고 있다’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에서 고독을 음미하는 능력을 활성화시켜나가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솔리튜드의 기쁨에 일찍 눈뜨는 어린 아이들도 있단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는 가운데 그 사랑을 느끼면서 자기만의 시간에 몰입하는 능력을 터득하고, 그런 아이들은 일찍이 내면의 영감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른 이상적 소견이 발견되지 않는 한, 단순히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아이들을 무조건 정서적 고립아로 진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대표적 인물이란다.
저자는 혼자 있음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리적인 공간은 단순한 보조적인 장치에 불과하고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향해 말을 걸고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 세태에 휩쓸려 자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자기 안의 영감과 창조적 에너지를 발견해내는 것 등이 솔리튜드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고독을 두려워하거나 몹쓸 질병처럼 백안시하는데 이것은 고독에 대한 오해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거나 병들게 하는 론니리스를 솔리튜드로 승화시키는 훈련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일본의 어떤 청소년 캠프에서는 솔로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의외로 이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우주 속에서 수많은 별보다 더 작은 자기 자신을 깨달을 때 인간은 비로소 겸손해지고, 타인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솔리튜드 타임을 일상 속에서 확보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전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과연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 ‘어느 정도는.....’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은 그런 대로 잘 한다. 혼자 밥도 잘 먹고, 쇼핑도 잘 하고, 영화도 잘 가고, 등산도 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혼자 있는 솔리튜드 타임에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대하여 직면하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시간에 나는 과연 내면의 소리를 들었는가? 내면의 소리에 의도적으로 귀 기울였는가? 창조적 에너지를 이끌어 냈는가?’ / ‘별로.....’
어쩌면 지금 나의 좌표는 론리니스와 솔리튜드 중간 어디쯤일 것 같다. 어중간한 그 지점에서 나는 계속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차 6과 7은 요즘 흔히 논의되고 있는 ‘웰빙’의 여러 가지 방법들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건성으로 넘어가며 읽었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들을 일상에서 실천해 나갈 때 진정으로 솔리튜드의 기쁨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될 것 같다.
일요일 젊은 친구 ‘쥐죽은듯’을 만났다. 오전에 그녀를 기다리며 종로타워 지하에서 이 책을 읽었다. 10 분 남짓 되었을 그 시간이 충만하였다. 오후에는 와글거리는 인사동을 걸으면서도 소란스러움에 부대끼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덕분일까?
[인상깊은구절] * 적극적 고독(솔리튜드, Solitude)은 어둡고 소극적인 고독(론리니스, Loneliness)와 다르다. 솔리튜드는 삶에 빛과 자신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며 해방감을 가져다 준다. * 솔리튜드 속에는 자신의 영혼을 발효시켜주는 시간이 흐르고 차분히 귀기울이면 고요의 소리가 들려온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섬세하고 오묘한 고요를 깨닫는 체험은 눈부신 행복감이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을 통해 수많은 결단과 창조적 생각이 떠오른다. * 솔리튜드를 활용해 새로운 무엇을 잉태할 수 있느냐는 그 사람 자신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에 달려 있다. 텍스트란 각자가 지니고 있는 지혜, 지식, 경험 등을 말한다. *내면의 텍스트들을 잘 합쳐 조화시킨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 혼자 있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자기발전과 자기실현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에 존재하는 욕구나 감정, 충동 등의 자각과 연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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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위사람들과 나의 삶에 대한 큰 회의감을 느끼게 되어 이 책을 사게 되었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주위에 환경에 질려가고 있는 나에게 그 제목은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한마디로 뭐랄까. 이 책은 앵무새 같았다.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솔리튜드와 론리니스에 개념에 관해 토로하고있다.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이 책 전체에 담겨있는 내용은 솔리튜드와 론리니스 그 내용이 전부라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앞 장에서 말했던 내용을 뒤에서 또 얘기하고 또하고 또하고... 책을 읽으면서 인내심의 시험을 당하고 있는 기분조차 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앞에 썼던 문장을 토씨 하나도 안틀리고 뒤에 수록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지막 까지 그는 솔리튜드와 론리니스의 개념을 들먹이며 앵무새마냥 외치고 있었다. '고독을 즐기는 자가 성공합니다! 아셨나요?' 작가는 나름대로 솔리튜드와 론리니스를 이론적으로 인정하고 연구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눈에 작가는 '솔리튜드와 론리니스를 맹신하는 추종자' 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작가는 중간중간에 솔리튜드와 론리니스를 긍정적고독 과 부정적고독 으로 바꿔부르기도 한다. 또는 솔리튜드를 비타민S! 라고 상큼한 이름 까지 붙여주기도 한다. 더욱 기가 막힌것은 뒤에 '마치며'라는 란에 '나는 독자가 어느부분에서부터 읽기 시작하던지 편하도록 책을 구성하였다'라는 말이었다. '아하. 그래서 계속 한말을 또 했던 거로군. ' 그때서야 나는 작가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내용에 있어서는 긍정적으로 수용할만한 내용도 있다. 한번쯤은 혼자있어보라든지, 핸드폰을 잠쉬 쉬게 해보라든지 것들이 급박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동안의 휴식시간을 만드는 계기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사회에 맞추어살아야하고 왜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혼자있는것이 왜 부정적인 의미로 박혀 버렸는지에 대한 작가의 불만 또한 평소에 나의 생각과 잘 들어맞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며 '혼자있는 것'에 대한 위안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용에 별하나를 선사하며, 바쁜 생활에 찌들어 살다가 문득 자신이 혼자 남았음을 깨달았을 때에 느끼는 그 고독함을 순화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S씨는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옆 교실의 그림책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옆 교실에 들어가 책을 빌릴 수 없었다. 어느 날, 태풍의 영향으로 유치원에 결석한 아이들이 많아, S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옆 교실에 들어가 그토록 염원하던 신데렐라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힘들게 유치원에 왔으니까 밝고 명랑하게 모두 다 같이 놀도록 해요! " 강요 아닌 강요에 책을 읽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S씨는 다른 아이들과 섞여 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의 슬픈 기억을 어른이 된 후로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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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그 어떤 구원의 손길도 없는 고독이라는 벽에 갇혀본 적이 있다.그때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조르지오 데 키리그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수>라는 그림을 만났다.흔히 고독이라고 하면 이렇게 어두운 색채를 떠올리기 쉽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역시 한 가족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된 고독을 말하고 있다.하지만 이 책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고독의 소외감을을 뜻하는 loneliness와 또 다른 의미의 고독의 해방감과 상쾌함을 뜻하는 solitude 라는 고독의 양면성을 만나게 해 준다.고독이 한 사람의 내면에 끼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인 solitude에 초점이 맞춰진다.그래서 고독은 창조적인 색체를 띠게 된다.
고독이 고독한 것인줄만 알았는데,의외로 고독은 고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내가 지나왔던 어두컴컴했던 loneliness의 고독은 승화되어 solitude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좋아한다.<데미안>은 내게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상을 깨트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알을 깨는 데는 아픔이 따른다.고통이 없는 성장은 없다.그래서 나는 고통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내가 매일 바라보았던 노을도 내 고독의 일부였음을.내가 매일 바라보았던 하늘도 내 고독의 일부였음을.내가 매일 읽었던 책도 내 고독의 일부였음을.고독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사랑의 속성 중 하나인 불안도 분리불안 이라는 사실을.엄마와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내 아이의 분리불안과 내가 앓고 있는 통증도 한줄기 라는 것을.
그러나 여전히 나는 고독하다.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어차피 인생은 홀로 견뎌내야 하는 것.하나님도 외로워서 가끔은 눈물을 흘리신다는 사실을.나는 오늘도 내게 주문을 건다.' 나를 가두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그 누구도 너를 새장 속에 가둔적이 없다.오직 너 자신만이 너를 날게 할 수 있단다...너를 상처받게 하는 것도 너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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