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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박범신 작가는 '물의나라' '불의나라'를 썼고 왠지 운동권 냄새가 가득했다. 조금 잊고 지내다 '은교'로 다시 알게 되었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사실 책은 읽지 않고 박해일 주연의 영화로 봤는데 야한 걸 떠나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즐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어클럽 개근상으로 받은 이 책을 보면서 박범신 작가가 가까이 느껴졌다. 작가로서의 고민도 들어있고 사람과의 관계, 남편으로서의 모습 등 사람냄새 나는 그런 책이라 참 편하게 읽힌다.
2011년 겨울, ‘왜, 나는 논산으로 가려는 거지?’ 어느날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풍류가 넘치는 조정리 집을 짓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쓴다. 논산에서 혹은 서울을 오가며 페북에 쓴 글을 바탕으로 엮은 이 책은 스스로가 페북일기 혹은 취북일기 라고 말한다.
그 병이 어디 갈라고. 오고 싶을 때 와. 난 늘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그는 떠나기도 잘했고 돌아오기도 잘했다. 그의 표현대로 부인은 이불짐을 싸고.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면 좀 황당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소위 잘 나가는 작가가 절필선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떠나버린다면?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공인인데 조금 참으면 안 되었을까라는 속 모르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는 무사히 돌아왔고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문학은 무엇인가' 글에 대한 고민 (호수는 고요한데 내 안은 지금 폭풍전야 같다. 저 고요한 호수가 안으로 들어와 내 영혼의 주인이 돼야 한다. 그것이 관건이다.) 자신의 방향은 유지하며 새로운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모습 (‘촐라체’를 네이버에 처음 연재했고, 은교를 낼 때 처음으로 종이책과 동시에 만들지 않았던가. 중략.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배타적이면 그게 죽음이다. 풍향계처럼 외부의 새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나의 이데올로기는 굳세게 지켜가는 것이 내가 ‘늙은 청년’으로 살고자 하는 방식이다.) 사람과의 관계 (끝없이 사람 사이로 가고 싶은 욕망과 끝없이 사람을 등지고 가고 싶은 욕망의 간극 사이에 내가 서 있다. 그 두 가지 욕망은 마치 찰나의 영광과 불멸의 꿈처럼 멀다. 하나의 길은 현실에 있고 다른 하나의 길은 초월에 닿아있다. 삶은 이 근원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지난한 도정인지 모른다.) 등 그의 다양한 생각들이 들어있다.
명지대 출신 작가들이 마련해준 장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출판 기념회에서'를 읽으면 그가 작가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의 작품과 그의 인생관 등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박범신이라는 작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1973년에 데뷔하여 운동문학류를 썼고, 1980년대 민족문학적 흐름의 좋은 표적이 되었고 1993년에 절필선언을 하고 유랑과 회귀를 끝없이 반복하며 흘러다녔는데도 여전히 고독한 알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가. 문학이 아니라 인생자체에서 승리하고 싶은 작가 박범신.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
사랑하는 고향이 누군가는 다 있다. 나의 고향은 논산이다. 그것도 아주 시골 양촌 이란 곳이다. 시골에서 뛰어 놀고 자라서 그런지 어릴 때 추억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근처를 둘러보면 그 추억들이 가득하다. 친구들과 학교 다니면서 몰래 갔던 장소들, 뒷동산, 수영하던 곳, 영화 보러 몰려간 논산, 쇼핑하러간 곳, 부모님이 살고 계신 그곳, 모두다 추억의 일부분들이다. 그런 좋은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게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 조용히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만든다. 이렇게 나의 추억은 행복하고 좋았다. 물론 아픔과 슬픔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저자인 박범신님이 논산에 내려가면서 쓰게 된 일기이다. 처음부터 막연하게 좋아한 작가님이라 그런지 특히 논산일기라는 점에서 너무나 읽고 싶었다. 나의 사랑 논산을 어떻게 표현 했을지 궁금했다. 지금은 일기를 안 쓰지만 그래도 추억이 가득한 그런 곳이니 말이다. 박범신님의 멋진 작품들은 다들 알 것이다. 그 작품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논산 일기에 빠져 보고 싶었다. 2011년 11월~ 12월 홀로 가득 차고 따뜻한 빈 집에서는 고향이 강경인데 왜? 논산 가야곡면 조정리 집으로 가신지 나온다. 거기는 탑정호가 있고, 맞은편으론 대명산과 계백 장군의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논산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하신다. 내가 생각해도 탑정호는 사계절 멋지고, 아침과 저녁 다 다르고 특히 봄에 보리가 나올 시기에 탑정호에 낀 안개는 머라 표현 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사실 나는 그래서 탑정호를 사랑한다. 언젠가 친구와 같이 가서 본 안개 자욱한 호수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사랑할 것이다. 늦여름 저녁놀에 보이는 호수 풍경의 어느 바다를 표현 못하는 최고의 아름다움 이었다. 그건 본 사람 많이 알 것이다. 아마 박범신 작가님도 그 호수를 사랑하리라 믿는다. 집에 살림을 장만하고 물품을 들이고 주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신다. 작가님의 작품들도 소개해 주신다. 그 배경들, 그리고 논산의 여러 유적들, 대둔산 수락계곡, 신기리 고인돌,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다 이렇게 책으로 내게 된 거란다. 탑정호에서의 낚시, 아주 소소한 소재들이 다 일기다. 서울과 논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어난 일들 만난 사람들이 다 일기다. 사실 논산은 만이 춥다. 그렇지만 마음은 훈훈한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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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월 그리고 3월 하루는 외로운 ‘한 시기’의 봄날을 꾼다. 후배들과 만남이나 고향사람들 만남 누님과 조카의 만남, 조정리 집에서의 나날들이 나온다. 그리고 펴낸 책 소개도 중간에 나오고, 작가님이 읽던 시가 소개가 되는데 거기서 한편을 올려본다.
섣부르게 이기려는 흉내 내면서 살아왔다 발아래 자욱한 눈물천지 빈 가지 눈 맞고 선 나무들 지면서 살아간다. <마흔> 전문, 고광헌 시집 <<시간은 무겁다>> 이 시를 읽다가 잠드셨단다. 그리고 책에다가 먼가를 흘리셔서 작가에게 미안하시 단다. 이렇게 일상이 일기에 나온다. 그리고 배고파서 잡을 먹었다. 50대의 조카가 죽은 일,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광석면 ‘노광서원’들르고 조용하고 한적한 조정리 집 사진도 나온다.
(조정리집 사진-아주 시골집이다)
강경 젓갈 축제도 나오고 엄홍길 대장과 대둔산에 간 것도 나온다. 대둔산은 우리 친정집에서 탑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 리뷰 끝에다가 대둔산 사진을 올릴 것이다. ‘새처럼 내 육체가 가벼워졌으면. 탑정호 물처럼 내 영혼이 언제나 안정된 수평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새해 소망이다.’ P232 아버지의 제사를 맞이하면서 어릴 때 추억을 썼다. 논산에선 노상 서울생각. 서울에선 노상 논산 생각뿐이다. 몸과 맘이 한곳에 있어야 삶이 안정될 텐데, 평생 그것이 따로 노니까 어디,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 삶은 벼랑과 벼랑 사이다. 그렇지만, 벼랑위의 길을 걷지 않으면 갈망도 깊지 않을 터이다. 내가 작가로 살아가는 연원이 거기 있다. 작가는 그리움이 많은 자들이다. P243 작가로서의 마음이 나타나는 것 같다. 항상 외로움이 그리움이 많은 자들이라는 것 , 인간은 모두 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게나마 리뷰를 쓰는 나조차도 말이다.
어느 햇빛 좋은 날 내가 빈 겨울 숲으로 들어갔더니 숲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앉는다. 제가 내 주인인 것처럼 쓸쓸하게 차 있고 따뜻이 비어 있구나. <서시> 전문, 박범신 시집 <<산은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중에서 중간 중간에 시와 여러 가지 책들이 소개가 된다. 역시 일상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보다.
![]() ![]() (아이들과 같이 간 대둔산과 엄홍길대장과 박범신이 같이 간 대둔산)
2011년 6월은 작가로 살아갈 새날을 내다보며는 작가님의 작품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이야기와 마흔한 살에 어머니가 작가님을 낳으신 이야기 왠지 모를 어릴 적 가족들의 ‘불화’,작가로 데뷔한 1973년 이야기, 그리고 여러 주옥같은 작품들, 작가생활 39년째 39번째 작품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소개해 준다. 읽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청년작가’로서 글쓰기에 여전히 미쳐 있다는 식으로 속단은 하지 마십시오. 고백하거니와, 나의 마지막 꿈은 문학에서가 아니라 인생, 그것 자체에서 승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작가님의 멋진 인생을 기원해 봅니다. 이렇게 소소한 일기가 작품이 된다는 자체도 부럽지만 아마도 박범신이라는 작가님이 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멋진 일기를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인생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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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누구야 ? "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왔으면서 나는 " 재"를 아직도 도통 모르겠다. 내가 가장 사랑했고 또 내가 가장 미워했던 자인데. 책 중에서 "194" 박범신 작가가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혼자말을 한 대목중 하나이다. 이책은 논산에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소통의 단절, 자신의 외로움등등을 페이스북일기를 통해 썼던것을 모아 올린것이다. 일기를 출판한 책, 남의 일기를 들여다 볼때의 그 짜릿함이 있다. 군더더기 없는 일상들을 진솔하게 바라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네번의 자살, 절필, 베스트셀러작가, 최근에는 은교라는 소설로도 그의 명성은 자자하다. 소설가의 삶은 선택되어지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의 명성에 베스트셀러작가라는 수식어만 기억해지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냥 보통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에세이를 통해 한결 더 친숙해진듯한 느낌이 든다.
사람때문에 아파하고 , 어릴적 자신의 환경에서 도망치려 해도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수 밖에 없는 작가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자신안에서 무수히 많은 자신의 자아가 있음을 나이가 들어가며 인식하게 되는 우리들과 같은 작가의 서글픔이 잘 나타나 있다. 논산으로 다시 오면서 서울과의 괴리감때문에 또는 외로움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진솔한 모습까지 보여진다. 그중에서 한겨울 마당앞 금붕어중 동사할뻔한 한마리 금붕어를 방안에 데려다두고 자신의 모습처럼 아파하고 돌봐주면서 세상의 얼음안에서 시리도록 아프고 힘들었던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곧 죽을것 같았던 금붕어가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 자신도 아직도 살아갈수 있음을 살아냈음을 다독이는 것처럼 말이다. " 이제 내문제를 알겠다 쓸 때만 " 생각" 할 뿐 나의 일상은 거의 정서적 " 충동"에 지배받는다" 라는 말처럼 충동에 지배받는 일상에 힘들어 하면서 그충동이 우리의 감정의 해방이라면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의 말로 서 위안을 얻게 된다.
불온한 짐승인 그가 면도날 같은 위험한 시간속으로 항상 떠나고 있다는 그의 책의 끝부분의 말처럼 우리 모두 면도날 같은 위험한 시간으로 끊임없이 빠져들자. 불온한 짐승이든 , 순한 양이든, 고요한 괴물이든 ... 살아있으면 살아지게 되고 힘들어하는 만큼 좋은 날도 오고 있음을 알게 될테니 말이다. 그러다 그속에서 어느날 나의 존재 안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내자신을 만나게 될것이다. 이 힘든 면도날 같은 시간위에서 상처생기고 다시 딱지가 않고 다시 상처가 나도록 나를 다독여온 내자신이 바로 별이고 별을 빛나게 하는 광채가 있음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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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광스럽게도 논산시 블로그 기자단으로 선정되어 선생님댁에 방문을 했다가 이 책을 선물 받았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제목 만으로도 선생님의 논산에 대한 사랑이 어떤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꼭 논산이 고향이거나 논산에 살거나 논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마음에 고향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가는 글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선생님의 소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소설들을 조금씩 만나볼 수 있을것이다. 소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시진 않았지만 현대 사회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소금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조금은 짐작도 됐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논산 훈련소에 대한 악몽을 갖고 살며 논산방향으론 오줌도 누지 못하는 분들께도 논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다. 논산은 훈련소만 있는 곳이 아니라 예가 스민 고장이며 아름다운 곳이 많은곳이란걸 알게 될것이다. 사실 논산에 오랫동안 살았으면서도 몰랐던 부분이 많아 알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겼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관촉사,계백장군 유적지,돈암서원,백제군사박물관)
선생님 댁을 방문하고 반나절동안 짧게 논산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새록 새록 피어났다. 더욱이 짧은 논산 여행을 마치고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로 또 다시 떠난 논산은 잊고 지냈던 유년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선생님께서 강사로 계셨던 강경여중을 졸업했고, 강경여중에 있는 동안 서울로 떠나는 기차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강경 여중은 교실 창 밖으로 기차가 오가는게 보인다. 아이들은 기차를 통해 하루 점을 보기도하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그리고 옥녀봉과 채운산으로 자주 놀러 다녔던 기억과 독서 소녀(ㅎㅎ)였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처음 중학교에 입학해서 놀랐던것은 강경 아이들은 독서를 참 많이 했다. 바로 옆에 강경도서관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14살이라는 어린나이에도 성숙한 어른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물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형편이되지 않았고, 내 방하나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 방과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건 당연한거였는지도 모르겠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금강,옥녀봉,선생님댁 금붕어,탑정호)
사실 선생님댁에 방문했을때 서재를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무례한것 같아 말씀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선생님의 서재를 보았다. 나도 하나, 둘 책장에 채워가고 싶은 책들이 많이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저서들도 읽고 싶어졌다. 아직 몇권 읽어보지 않았는데, 논산에 대해 많이 쓰신듯 하다. 어린시절, 책 읽기를 좋아하셨던 나의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논산에 서점하나 차리는게 소원이셨다. 늘 아버지라는 책임감의 무게감에 짖눌려 사셨는데, 정년퇴직 후에도 그런 무게들 때문에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우리 고장에 소설가 선생님께서 사신다고 정말 좋아 하셨을텐데.. 짧은 인생,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삶들을 어쩌면 동시대를 같은 장소에서 살아오신 선생님의 책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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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은 내 기억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풀잎처럼 눕다>,< 죽음보다 깊은 강>,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그러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 이 작품에 대한 내용들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들이다. 작가가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는데,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를 못했다. 당시에 박범신의 작품들에 대해서 문학성보다는 대중성이 강하다고 이야기되곤 했지만, 인기작가들 중에 최인호도 그런 평을 듣는 작품들을 다수 썼기에 그저 지나쳐 버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그들이 쓰는 연애소설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더 달콤한 소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그가 절필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작가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쓴 작품들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고. 1980년대의 한수산의 필화사건은 작가를 절필을 하게 만들었고, 그를조국을 떠나서 오랜 세월을 타국에서 살도록 하였다. 이후에 <용서를 위하여 / 한수산 ㅣ 해냄 ㅣ 2010>을 읽으면서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인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칠십 년이 걸렸다' 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1980년, 1990년대 작가들의 절필은 그들의 작품을 아끼는 독자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박범신은 길지 않은 시간들을 보낸 후에 다시 집필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그 당시의 작가의 마음은, 작가에게 글을 쓰지 않는 시간들이란 글을 쓰는 시간들보다도 더 힘겨운 고통임을 그는 이야기한다. 오죽했으면 용인의 한터 산방에서 깊은 밤에 홀로 앉아 시를 썼을까.
2000 년대에 출간된 소설인 <나마스테>, <촐라체>을 읽으면서 히말라야를 헤매는 작가를 만날 수 있었고, <고산자>를 읽으면서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보다는 외로운 고산자 (孤山子)를 만날 수 있었다.
'촐라체' '고산자'를 거쳐 '은교'에 이르러서 작가는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 은교 p.406)'노라고 말한다. '은교'는 연애소설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한다면, 명망있는 70을 바라보는 노시인 '이적요' 와 17살 푸르른 젊음의 '은교' 의 사랑, 그리고 이적요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지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은교'의 사랑.... 그리고, 이 두 사랑을 둘러싼 끊임없는 서로의 탐색(이적요와 서지우)과 불신, 배신,그리고 마음속 깊숙히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은교로 인하여 서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힘겨운 이적요와 서지우의 삶의 종말, 즉,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심리적 분석을 하듯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한 편의 '심리소설'처럼 잘 쓰여져 있다. 더군다나 '박범신'작가의 문장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신예작가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표현들이 적확하며, 문장이 감수성이 돋보이고, 탐미적이고 섬세하고 예리하다. 수식어를 많이 쓰고 있음에도 쓸데없이 붙여진듯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들이다. 문학에 일생을 바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무르익은 글들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담겨있는 적확한 시(詩)는 소설속에서 또다른 문학장르인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흔히, 시집을 읽게 되면 한 편의 시를 읽은 후에 그 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한 편의 시로 옮겨가게 되는데, 소설속의 시는 소설의 느낌과 함께 시의 여운이 오래도록 소설속의 문장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들이 그 상황이나 심리묘사에 너무도 딱 맞아 떨어지는 시들이기에 그 느낌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이다. 노시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용의 주도하게 설계되어 얻어진 '가짜'위에 또다른 '가짜'..... '죽음뒤에 살아 남는 자'가 되기 위해 죽음후의 전략까지 꾸며 놓고 죽었던 것이다. 갈망..... 그 끝은 어디일까. 나는 영화 <은교>는 보지를 않았지만, 이 소설은 심리적 묘사가 뛰어나기에 그런 것들은 영화 속에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가 가지는 대중성과 흥행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설 <은교>가 가지는 섬세함을 관객들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에 한참 '멍'때리는 기분을 느꼈으니까.
이처럼 <촐라체>, <고산자>, <은교>는 갈망의 3부작이라고 하는 작품들인데, 이번에 읽게 된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역시 작가의 갈망이 깃들여 있는 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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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일기, 2011 겨울'이란 부제가 나타내듯이 박범신이 명지대 교수직을 떠나면서 자신의 고향인 논산으로 낙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일기들이 고스란히 한 권의 책으로 옮겨진 것이다. " 고향이라는 패찰이 붙어 있을지라도 나는 옛날의 그곳으로 '돌아 온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시간의 레일을 따라 새로운 공간에 처음 온 것이었다. 새로 출발할. " (p. 18)
어쩌면 나에게는 이 책의 배경인 논산, 강경, 연무. 이런 곳들이 친근한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고향이 논산 성동면 원북리였다. 그래서 논산, 강경, 연무에는 이모들이 살고 계셨다. 이모부들이 농사를 짓는 분들은 아니고, 공무원, 법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이었기에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시절 여름방학에 몇 번 놀러 갔던 곳이다.
작가에게 논산, 강경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 그리고 그의 문학 작품 속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등장인물들이 이곳에서 성장하기도 한 그런 곳이다. 추운 겨울을 난방시설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조정리에서 지내는 작가의 모습은 왠지 더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작품을 쓰지 않고 지내는 9개월이란 시간을 그는 그렇게 논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일기에 남겨둔다.
![]() 집앞에 유유히 흐르는 호수를 조용히 내려다 보면서 계백을 생각하고 계백 휘하 졸병을 생각한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그들은 작가에게 말을 건낸다. 아마도 이런 구상이 작가로 하여금 계백의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소설로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작가에게는 수천 년이 지난 그때의 시간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글로 씌여질 수 있는 것이기에.... 책 속의 사진들은 힘있는 작가의 글들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집앞의 잔잔한 호수처럼 작가의 마음이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로운 사진이 한 장 소개된다.
이 사진은 작가의 내면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한 장의 사진. " 집필 중에 작가는 그러므로 때로 짐승처럼 울부짖고 때로 폭포처럼 투신하고 때로 바람처럼 솟구친다. " (p. 120) 많은 것을 내려놓은 지금의 작가. 그에게 이 한 장의 사진은 열정을 가지고 또 다른 작품을 쓰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갈망이 담긴 듯하여 마음이 짠해 옴을 느끼게 해 준다. " 삶에 대한 어떤, 인식의 깊고도 혁명적인 전환을 갈망한다." (p. 76) 역시 작가는 논산으로의 낙향을 통해서 혁명적인 전환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은교>의 이적요의 모습이 작가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작가는 '나무는 늙을수록 아름답다'고 말한다. '청년작가'다운 기개로 늙어 가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죽을 때까지 날 시퍼런 '현역 작가'로 살고 싶은 꿈을 말한다.
나이듦의 외로움. '청년작가'로 인기를 누리던 작가의 지난날들. 몇 개월 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음에서 오는 창작에 대한 갈망. 그 모든 것이 페북 일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아닌, 일기이기에 더 진솔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글들이고, 작가의 일상과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는 글들이다.
책 속에 나오는 금붕어. 어느날 배를 뒤집고 죽기 직전까지 갔던 그 금붕어는 이 책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힘겹게 살고 있다. 가끔 지느러미를 파닥이면서. 금붕어를 살피는 작가의 그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이 느껴진다.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처럼 장편 <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출판기념회 인사말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글은 작가가 걸어온 발자취를 말해 주는 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해 본다. 작가 자신이 논산에서 자신의 '마지막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논산은 그의 고향인만큼, 그곳에서 지금 느끼는 외로움, 허전함은 조만간 사라지고 힘찬 그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는 것이다. 그땐 또 그의 작품에 심취되는 독자의 몫을 할 것이다.
힘내세요 !! 박범신 작가님~~ 당신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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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 작가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해 문제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던 박범신 소설가의 수필이 발간되었다. 이는 2011년 7월 명지대학교 교수직을 비롯해 맡고 있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고향 논산으로 낙향해서 틈틈이 SNS ‘페이스북(FACEBOOK)’에 썼던 일기를 모은 것인데, 이 책의 끝자락 쯤에 이 책을 내게 된 경위도 담겨있다.
논산에 훈련소만 있는 게 아니야. 조선 사대부의 기개를 지켜온 곳도 논산이고, 금강문화권의 중심도 따져보면 우리 논이었어. 사람들 참, 이리 오해가 깊으니 책을 낸다면 더욱더 지명을 꼭 제목에 넣어야겠네!
솔직히 나 또한 '논산'일기라고 해서, 훈련소가 있는 그곳에 무슨 문학적 감수성을 담아낼까 생각했다. 아마도 글쓴이가 박범신, 그이가 아니였다면 읽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렷다. 그러나 그이기에, 으레 사람들이 평가해대는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소설가 박범신이기에 나도 읽어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책이라곤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촐라체』『비지니스』이번에 영화로도 등장하는 『은교』정도일까. 그러나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했다. 『은교』는 영화로도 보지 말아야겠단 마음을 먹은지 오래고, 다른 산악소설정도는 읽어볼까 망설이고 있는 수준이니, 아마도 그의 이야기를 읽어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한 독자일게다. 그래도 그 유명한 '논산'에서 문학적인 감수성을 뿜어낼 작가 한 사람을 알고 있는 것도 내 정신건강상으로도 좋지 않겠느냐며 나 스스로를 위안한다.
생각해보면 내게 책 읽기란 사회를 비판하거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아는 통로이거나 호기심 충족, 혹은 재미를 느끼기 위함 그 이상은 아니였다. 그가 페북에서 40번째 작품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생각을 갈무리할 때, 혹은 앞으로의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한 글쓰기를 고민할 때 나는 무척이나 많이 안일한 생각으로 책을 읽을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소설가를 '동경'하며, 다른 편으로는 세상에 뛰어들기보단 세상을 '관조'하는 그들의 비겁함을 조롱했던 것은 아닐런지. 뭐, 그래도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인간은 그 처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오롯이 그 상황을, 그런 처지를 이해할 순 없는 종족이니까 말이다. 내가 작가가 되어보지 않는 한, 항상 작가들의 고독과 고통을 가벼이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한번쯤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을 좀더 원숙한 언어로 표현해내는 작가 군단들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는 있다. 그들이 아니였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 이 지구 땅에 살아 숨쉬고 있었는지도 영영 알 길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소소한 삶의 일상과 문학적인 갈망이 어우러진 글이 처음보다는 많이 재미있고 쉽게 다가오긴 했지만, 한 가지 불만인 것은 '술'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렇다고 말할 계제는 아니지만,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내적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작가' 종족들은 아니, 넓게 말해서 '영혼이 자유로운 종족'들은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자유로운 영혼을 드러낼 수 없고, 심각하게 현실에 대해 토로할 수 없고, 문학에 대해 교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본다. 요즘 세태는 이상한 표현을 통해, 예를 들면 '취중진담'이란 표현을 통해 취해 있을 때가 더 자유롭고 진실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만, 나는 아니라고 확언한다. 술에 기대야만 할 수 있는 말 정도로면, 그 정도의 자신감밖에 없다면 평생 입 밖에 내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예술을 논한답시고 흥청망청 혹은 적당하게 취기가 올라올 정도로 취해있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맨 정신으로는 사람을 혹은 예술을 사랑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혹은 맨정신으로 바라봤을 때 상대가 아름답지 않아서, 보아 넘겨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것이야 기쁨이 넘치는 일이지만, 그 사이에 왜 술이 끼어야 하는지는 정말 이해해줄 수가 없다. 좀 까다로워 보이지만, 페북에 한 장 걸러 한 번씩 '술'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첨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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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차이는 무엇인가? 트위터는 페이스북에 비해 항해하기나 업데이트 하기가 용이하다. 페이스북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거나 캐치하기가 트위터에 비해 어렵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에 비해 폐쇄적이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에 비해 깊은 교류를 할 수 있다 등등...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는 트위터보다 페이스북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 140자로 용량이 제한된 트위터의 특성은 내가 관여할 바 아니지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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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에서 그가 집을 떠나 고향 논산으로 향하는 길을 동행취재한 기사를 읽었다. 연어가 먼 바다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듯 그는 그렇게 논산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박범신 작가가 논산으로 돌아오기 전과 그 이후 2011년 겨울을 지난 올해 최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논산일기 2011 겨울"이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이 책은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그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추억이 함께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논산의 연무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청소년기를 강경에서 보냈단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강경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니 작가는 진정 논산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어릴적 부유함 넘쳐 흐르는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빈곤을 경험했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간혹 가족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작가의 아내 이야기는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데 그의 방랑자같은 삶을 눈물을 훔치면서도 막지 않았던 아내의 모습이 한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때도 아내는 그의 이불 보따리를 쌌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들의 그런 아내의 이해와 배려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논산 이곳 저곳의 풍경들을 간간히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논산과 작가 박범신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의 소설에서 보여준 사회고발적인 내용들이 담긴 책이 아니다. 오히려 초로의 작가가 그의 일상들을 적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자 독백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잔잔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이야기와 그 작품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흔히들 박범신 작가를 논산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책의 곳곳에 담긴 논산 이야기와 그가 책에서 표현한 그의 이야기는 그가 논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그곳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지 간에 누구라도 추억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박범신 작가의 글 속에 나오는 논산과 예전의 모습은 보통의 평범한 우리네 모습같기도 한 점이 많기에 이 책 속의 글들이 와닿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아마도 그의 논산 이야기와 작품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읽은 이 책은 마치 작가 박범신이 그동안 살아온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야기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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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를 읽고 박범신 작가를 향한 나의 애정은 무한대. 은교를 끝내자마자 <갈망 3부작> 을 구입했고, 그 즈음 이 에세이집을 만날 수 있었다. 2011일 겨울, 자신의 고향 논산에서 보낸 그의 일기. 노트에 적은 것이 아니라 간단한 sns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과를 기록한 것이 이렇게 묶여 한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에 맡고 있던 교수직을 내려놓으시고 돌연 논산행을 택하신다. 그렇게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집 앞의 잔잔한 호수, 그리고 키우게 된 금붕어 이야기, 서울집과 논산을 오가며 생활해 온 그의 일상들 그리고 고향 논산에 대한 무한 애정을 여과없이 기록하신다. 그의 어린시절과 청소년기 시절 논산에서 보낸 삶까지도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햇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곳이 말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은교를 읽은 것이 다이기에 그의 작품속에 보여지는 고향에 대한 그림은 알 수가 없었다. 고향에 대한 짙은 그리움에 자신의 작품 어느 곳의 배경으로 하나씩은 꼭 생각하신다는 작가님. 더 이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소설을 통해 읽고 내가 느끼었던 작가님에 대한 환상? 이라고 해야할까? 그 느낌은 상당히 어렵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에세이집의 특유의 성격 때문일까?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동네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마음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하릴없이 보이는 그의 논산의 삶, 사실 부럽기까지 했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동네 선후배 모두가 친구가 되고 호출을 하면 어느 누구나 당장에 달려와주는 인간관계, 그리고 작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묵묵히 뒷바라지 하는 그의 아내. 그 모두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끊임없는 작품에 대한 열정은 느낄 수 있었고 그렇기에 영원한 청년작가 라는 타이틀이 존재하는 이유지 싶었다.
논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장마다 펼쳐져 있다. 그리고 작가님이 손수 찍으신 휴대전화 사진까지. 깨알같은 재미 또한 빼놓지 않으신 이번 에세이집,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의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인받은 듯 했다. 하나하나 차근히 다른 작품들을 읽음으로써 나도 작가님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