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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개를 산책시킨 남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전민식 작가의 새로운 소설, '불의 기억'이 나왔다. 후기에 보면 작가가 어떻게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밝힌 대목이 있다. 더운 여름 친구와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걷다가 가득한 쇳내와 함께 보게된 철공소의 풍경이 그로 하여금 이 소설을 낳게 한 산파였다. 때로 어떤 광경은 이상하게도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마치 내 뿌리가 된 양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 내린 뿌리가 깊고도 깊어서 어느 시간 어느 자리마다 오롯이 떠오르게 된다면 우리는 이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예감하기도 한다. 아니, 정말 운명을 그렇게 찾아오는 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별 다른 접점도 없이 우연한 한 순간의 만남으로. 제목 '불의 기억'은 바로 그런 것을 가리킨다. 작가가 뜻하지 않게 찾아든 그 철공소의 골목에서 1년간 골방에 갇혀 이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동주 역시도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운명은 더욱 불가사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주에게 세상은 불가사의였다. 동주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백일무렵인 것 같다. 그 때의 일을 기억한다는 게 불가사의하지만 동주는 그 순간, 정확하게 백일날 맡았던 냄새를 기억했다. 혀가 아릿할 정도로 강렬하고 매웠던 쇳물의 냄새. 그 날 용해로에서 걸쭉하게 끓는 쇳물의 냄새를 맡고 동주는 진저리를 쳤다. (...) 피보다 붉게 끓는 쇳물에는 저주스러울 정도로 무서운 광기도 담겨 있었던 것 같다.(p. 171)
제목인 '불의 기억'은 백일날 동주에게 각인된 그 기억을 가리킨다. 그건 백일의 동주가 몸서리쳤던 그대로 저주의 기억이었다. 그대로 이 소설은 그 저주의 기억으로 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었던, 한 마디로 운명의 노예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동주의 아버지 한위와 동주가 사랑하는 해원의 아버지 규철이다. 이야기는 해원과 한위의 실종으로 시작된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들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동주는 그들을 찾으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실마리조차 건질 수 없다. 그러던 차에 해원의 아버지 규철과 재회한다. 규철은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다. 그래서 10년간 형무소에서 복역을 하다 이제 출감한 것이었다. 규철은 동주에게 해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아버지 한위와 동주가 해원의 인생을 망쳤다고 원망한다. 그래서 해원이 사라진 게 아니냐고 다그친다. 동주는 반박한다.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겠느냐고. 해원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인 당신 때문에 사라진 것이라 말한다. 거기서 이제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정확히 2002년. 한국이 월드컵으로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을 때로. 그 때 규철은 한국에서 종을 만드는 최고의 장인이었다. 그는 월드컵을 기념하여 2톤짜리 쇠종을 만든다. 그리고 그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득 받으며 상암경기장에 걸어둔다. 하지만 종소리에 지극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동주는 첫 타종하는 날. 종이 내부에서 부터 금이 가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규철은 그런 우려를 불식하지만 결국 종은 종대에서 떨어져 구르고 많은 사람을 다치게 만든다. 종을 만드는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규철을 그 일로 인해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가족을 등한시 한 채 술만 마신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이자 해원의 어머니 정화가 살해된 것이다. 하지만 규철은 절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하면서 해원을 찾는 한 편, 정화를 살해한 장본인 역시 찾아다닌다. 물론 그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동주의 아버지 한위였다. 원래 자기 아내 정화는 한위를 사랑했다. 한위 역시도 정화를 사랑했다. 규철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정화를 빼앗았다. 그렇게 자신의 아내로 만들었지만 정화는 한위를 잊지 못했고 한위 역시 정화를 잊지 못했다. 규철의 최고의 소리를 내는 종에 대한 집착은 아내가 사랑하는 한위를 이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한위와 규철은 원래 한 스승의 제자였다. 한위 역시 나름대로 최고의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 위해 비법이란 비법은 다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 사이의 사랑과 종에 대한 신념은 같았다. 그 모두가 '불의 기억'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운명의 노예로 만들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 망집을 허허롭게 내려놓지 못하고 그저 더 움켜쥐려고만 한 자들에 대한 것이다. 한 마디로 과거에 묶인 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과거를 지혜롭게 흘려보내지 못하면 결국 어떤 비극이 찾아오는지 그걸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결코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존재는 시간에 의해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쉼없이 흐르니 결코 지금의 존재는 이전의 존재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는 필연이다. 과거의 상처를 흘려보내 비워놓지 않으면 새로운 내일의 치유 역시도 들여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규철은 마지막 순간에 과거의 상처, 의심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내내 그것에 빠졌던 자신을 후회한다. 그리고 아내 정화와 딸 해원 그리고 단 하나밖에 없는 친구 한위와 그의 아들 동주까지, 그 모두를 이러한 비극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역시도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다. 바로 여기에 소설이 전하고픈 진심이 있다. 손을 벌려 놓아주지 않고 움켜쥐려고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버림으로써 얻는 자유로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주요한 소재는 종이다. 그런데 종은 절대 소리를 가두지 않는다. 마치 민들레 홀씨들이 바람을 타고 끝간데 없이 날아가듯이 그렇게 아주 넓게 넓게 소리를 흘려 보낼 뿐이다. 과거의 망집과도 같은 '불의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집착하지 않아서 좀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종소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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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통해 전민식작가를 알게 되었다.일정한 직업이 없는 청년백수가 개를 산책시키면서 생계를 꾸려 가는 애달픈 이야기였다.작가 또한 그 작품을 통해 '2012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길고도 어두컴컴한 터널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신산스러운 글쓰기 작업이 이 영예로운 상을 통해 작가는 그간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한 구실을 이제야 풀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기에 나 또한 감동적인 장면이고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이번 두 번째 대작 <불의 기억>은 작가의 작품이 한층 더 성숙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글에는 다양한 소재가 존재하게 되는데 소재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길을 나서 걸으면서 바람과 공기,산과 내,사람과 건물들을 주의 깊게 보고 느끼면서 오래도록 잊혀져 머리 속에서 소실되어 버린 것들을 순간적인 영감과 감흥에 의해 작가는 '바로 이거야'라고 심산의 심마니를 캐내는 쾌거를 맛보는 순간이 얼마나 전율스럽고 짜릿한 흥분을 안겨 줄 것인가.글쓰는 작가만이 느끼는 고유의 체험이 아닐까 싶다.전민식작가는 <불의 기억>을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동료와 지나치다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들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주인공 동주와 혜원 그리고 동주 아버지 한위,혜원 어머니 정화,규철이 나오고 있다.또한 공간적 배경은 종(鐘)을 만드는 용해로 현장,폐차장이 주가 되고 금형리와 월롱이라는 장소가 교차적으로 나온다.그리고 시간적 배경은 '2002 월드컵 축제 무렵이 되고 있다.
종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규철과 한위 이 둘은 죽마고우일지도 모르는데 이 둘은 종을 만드는 기법에서부터 의견 차이가 있다.규철은 종은 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한위는 철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그리고 주철의 아내 정화는 번연하게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위와의 애틋한 관계가 지속되는데 규철이 만든 밀랍형 종이 월드컵장으로 옮기려는 도중에 박살이 나면서 아내 정화와의 관계도 악화되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나머지 그는 아내 정화를 목졸라 죽인다.아내를 죽인 기억은 필름이 끊긴 상태라서 그런지 나지를 않고 그 아내를 죽인 범인을 친구 한위로 몰아가게 된다.
한 편 동주와 가깝게 지내던 혜원마저 실종이 되고 종을 만들어 먹고 살아왔던 금형리를 떠나 월롱으로 터전을 잡아 가게 되는데 감옥으로 간 주철장 규철이 부재중이라 한위,동주 등은 폐차장에서 일거리를 찾아 생계를 꾸려 가게 된다.동주의 아버지 한위는 살아 생전 정화를 둘도 없이 아끼고 사랑했던 터라 그녀의 딸 혜원을 찾으려 백방을 수소문한다.사랑했던 마음 속의 연인에게 못다한 회한을 혜원에게 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그리고 규철은 살인죄로 15년의 형을 살아야하지만 감형으로 10년 만에 출소하면서 새롭게 종 제조에 몰두한다.마치 신이 내린 예술가의 관록과 심성을 갖은 것처럼 독특한 자기만의 종 만들기를 시도하지만 규철은 혜원이 실종되고 혜원이 남긴 일기장이 없어진 것을 동주와 고아원 출신인 화진에게 몰아가고 정화를 죽인 것도 자신이 아니라면서 한위를 힘껏 밀어 붙인다.
봉덕사에 안치된 성덕대왕 신종의 비록(秘錄)을 찾아낸 규철은 흥분의 도가니로 가득하다.그것은 춘추 무열왕에서 법민 문문황,종 주조 실험 - 박향이라고 적혀 있는데 마흔 번째 실험까지 기록되어 있다.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몸 시주자가 등장하고 있는데,규철은 종 만들기의 희생양을 동주와 화진이로 삼으려 하는 찰나 한위가 용해로에 등장하면서 둘은 광기어린 실갱이를 벌이다 쇳물이 이글거리는 용해로 속으로 빠지면서 종의 화신으로 변한다.그것을 곧이 믿으려는 주철장 규철의 광기어린 맹신과 자신의 아내를 죽인 자신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사이코 기질이 과연 종을 만드는 자로서 예술가적인 자질이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종 만들기를 통해 주철장들의 각고의 노력과 신비스러운 체험 등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자주 등장하지 않은 종 만들기라는 소재는 관심밖이었지만 한국의 전통의 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갖게 되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고 규철과 같은 인물을 통해 과연 예술이라는 본령은 어디에 있는가도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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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억>은 특이하게도, 혹은 보기 드물게도 ‘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책에서나 잠깐 보았을법한 ‘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여, 그것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인고의 시간과 고뇌가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책을 펼치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종의 각 부분에 대한 명칭이 표기된 종의 이미지다. 이게 왜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책을 읽다보면 곧 이해가 된다. 내용 가운데 종을 제작하는 과정이 소개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용뉴’나 ‘상대’처럼 평소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건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화를 중심에 둔 규철과 한위의 대립, 규철과 한위 등 아버지 세대와 갈등하는 해원과 동주 그리고 이들을 모이게 만드는 ‘종’ 등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은 마치 운명처럼 묶여져 있다. 운명이 있다면 작품 속 규철과 한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늘이 내린 숙명처럼 그들은 종을 만드는 일에 집착한다. 마치 절대신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처럼 그들에게 있어 종을 만드는 일은 살아가는 의미이자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며 성장하는 동주는, 그들의 모습이 곧 벗어나고 싶고 벗어나야 하는 올가미인 셈이다. 그래서 서울로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동주의 입장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해원을 그 올가미로부터 벗어나게 만들고픈 희망도 이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운명은 한 사람만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듯, 한위와 규철 그리고 정화가 고리처럼 얽혀있는 것처럼 그들의 자식들인 동주와 해원도 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고리의 출발점은 모두 ‘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의 제작과정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다소 더디었던 초반부의 읽기 속도는 동주와 해원의 성장이 보이고, 규철과 한위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빨라지게 된다. 비록을 찾아 헤매던 한위가 등장하고, 방황하는 해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더욱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말로 향할수록 제목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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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아니 부모님의 보살핌과 감시의 눈을 피해 친구들과 낯선 장소로의 여행이라는 설레임과 처음 타보는 기차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수학여행이엿지만 막상 경주에 도착한 내게 그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온 착각에 빠지게 했다. 도시 전채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며 곳곳에 전설이나 이야기 한자락씩 담겨있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조상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그 곳을 부지런한 발걸음과 호기심가득한 시선으로 하나라도 빠뜨릴까, 기다랗게 늘어선 줄을 혹여 놓칠까 싶어 종종걸음을 옮기며 얼마나 집중했었는지 모른다.
그 후에도 여러번 경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내 관심은 불국사도 설국암도 첨성대 등 이름난 유적지와 유물이 아닌 온통 주조과정에서 어린이를 바쳐 종이 울릴 때 어머니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설이 있는 '에밀레종' 에게 가 닿았다. 신라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구리 12만 근(27t)을 들여 완성한 성덕대왕신종은 모양도 아름답지만 그소리는 태산을이 무너지는 듯한 장중한 소리이면서도 옥처럼 맑은 소리가 긴 여운을 가지고 멀리 퍼저나간다고 한다, 그 소리가 절대자의 목소리요 부처님의 소리라 하였다. 서울 보신각종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냈으나 훼손이 우려돼 타종이 중단되 애석하게도 실제소리는 들어보지 못하고 녹음한 소리만 듣곤 했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었고, 독특한 구조에 소리의 비밀이 숨어있는 이 에밀레종은 종교와 과학 그리고 장인의 예술혼이 빚어낸 위대한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책은 두 종쟁이와 그들의 자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그들의 삶을 네 명의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금속공예학과의 졸업전을 앞두고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동주는 불쑥 찾아온 낯선 남자의 방문에 당황해 하지만 곧 그 사내가 아내를 살해한 죄로 징역을 살다가 갓 출소한 자신이 사랑하는 헤원의 아버지란 걸 알게 된다. 사내와 아버진 친구이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적이며 종쟁이로 최고의 장인이자 맛수였다. 최고의 주철장이자 무형문화재였던 사내는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현장에서 채포되고 살인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사내의 친구인 동주의 아버지가 사내의 딸을 맡아 키우게 된다. 사내는 딸을 찾아 왔으나 이미 그녀는 자취를 감춘 뒤였으며 동주의 아버지 역시 그녀가 사라진 후 실종되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는 청년과 실종된 딸을 찾는 살인자의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쫓는자와 그들보다 한 발 앞선 진실을 밝혀지는 걸 두려워하는 그녀의 숨막히는 여정속으로 동행하며 점차 다가오는 진실과 마주하기게 된다. 그들이 칯아 헤메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녀가 그토록 숨기고자 하는 비밀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해는 또다른 오해를 부르게 마련이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복수를 꿈꾸는 와중에도 종과 소리에 대한 집념을 놓지 못하는 사내,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완벽한 종을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 여기며 대대로 내려오는 비서를 찾고자 하는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소리에 대한 간절함이 광기에 이른 장인의 고뇌찬 절망를 마주하며 섬뜩함과 동시에 애잔함이 느껴진다. 감히 신의 소리를 탐내다 끝내는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간 장인들의 이야기에 왠지 숙연함 마저 든다.
쇠 냄새와 용광로의 이글거리는 불에 대한 기억이 세상과의 첫 대면으로 더오르는 동주는 천재적인 음감을 타고났으나 종쟁이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쳐보지만 도망치면 칠수록 운명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늪 위에 세워진 폐차장 겸 동주와 아빠의종의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곳은 장마가들면 늪이 가둔 물뿐만 아니라 늪 속에서 시간을 먹고 쌓여 온 낡은 물건들을 헤집어 올려 토해 놓는다. 폐차직전의 교통사고 난 버스의 핏물 속에서 건져낸 온갖 물건들과 절단 난 신체의 일부, 말다툼 끝에 충동적인 칼부림은 피를 부르게 되고 인간 본능과 광기는 스산하고 음침한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평생 종을 만들어 왔듯 한 여자에 대한 간절한 사랑은 아름답고 가슴시리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품고 있다. 작가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종의 완성까지의 과정을 염원을 담아 오롯이 한마음으로 지키는 외골수 인생을 통해 인간에 대한 속죄와 구원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미움과 애증의 세월을 녹이고 두 목숨의 희생으로 탄생한 종소리의 울림이 마치 에밀레 종소리와 닮았으리라. 죽음은 소멸이 아닌 소리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움을 으로 영원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종소리처럼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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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불의 기억>에서 마음껏 펼쳐진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머릿속 그리고 가슴속에 담겨진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다.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는 예술가로서의 모습들을 다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에 작품을 만드는 데 기초적인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성덕대왕 신종 우리가 잘 아는 에밀레종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졌을 <불의 기억>이 고려나 조선이 아닌 현대라는 시대와 만나 더욱 긴장감에 쌓이게 한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축구로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었던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10여 년 전으로 우리는 함께 떠난다.
“강규철”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주철장에 오르는데, 문화재청 주철장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면 ‘쇠를 녹여서 범종을 비롯한 각종 쇠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주철장이라고 한다. 그는 아내 “정화”와 딸 “해원”, “규철”과 친구이면서 그의 아내 “정화”를 사랑하는 “한위” 그리고 “한위”의 아들 “동주”는 그들의 고향 금형리에서 종을 만든다.
붉은 기억 속에 거종의 실패 그리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규철”과 “한위” 그리고 “해원”과 “동주”의 슬프고 잔인한 인생이 펼쳐진다. 같이 자라온 친구였지만 작품을 만들거나 또는 “정화”에 한해서 늘 경쟁자였던 그들에게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고달픈 일이었다.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질투는 늘 함께 했다.
그들은 금형리를 떠나 월롱리에 자리 잡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고통을 가져 오고, 진실을 향해 되살아난 기억은 이별이라는 아픔을 낳았다.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한 사람이 떠나면 또 그를 찾아 떠나게 되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돌아온다.
종 관련 비록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한위’, 과연 비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자신이 최고가 되고 싶은 승부욕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고 뺏고 싶은 소유욕 등 인간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비법을 훔치거나 뺏고, 다른 사람의 목숨마저 노리는 잔인함마저 느껴진다.
이 책에는 미스테리적인 부분도 있어 더욱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살인 사건에 대한 의문점들이 점차 생겨남으로서 우리에게 범인에 대한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쇳물을 끓이기 위해 용해로를 지피던 불은 금형리에서 그리고 월롱리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혈투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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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종 만드는 것이 삶 자체인 두 남자들의 이야기. 종에서 울려 퍼지는 깊은 소리가 흙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규철과 쇠에서 깊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위, 두 사람은 평생을 대치 상태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그것이 '정화' 라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서까지 이어가게 되고, 급기야 두 사람의 집요함이 '정화'를 죽음으로 몰고가고 만다. 종내에는 종의 깊은 소리를 얻지 못해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두 사람이 종의 깊은 울림을 적어 놓은 비록대로 우여곡절 끝에 종의 재료로 섞이게 된다. 마치 성덕대왕신종의 신비로운 울림을 위해 어린아이가 시주되었다는 전설처럼 '불의 기억' 또한 두 주인공의 희생이 뒤따른다.
초반부와 중반부의 '불의 기억' 읽기는 속도감도 좋았고, 화진이 불러 제끼는 육자배기 부분에선 동주의 가슴에 일고 있는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응어리가 풀어지고 가슴 아리게 하는 옛 기억마저 드러나게 만드는 게 나한테까지 전해져 왔었다. 그래서 읽기 좋고, 전민식 작가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가면서 소설속에 펼쳐지는 여러가지 형식에 이야기를 종잡을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아마도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잊혀지고 있는 종쟁이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우리들에게 들려줄 것이 많아서 그랬을까? 아무튼지 뭔가 한 가닥을 이어가지 못하고 여러가닥으로 뻗어가는 이야기에 살짝 실망감도 안게 된 작품이었다.
작가의 최신작 [13월] 전에 이 [불의 기억]을 먼저 읽었어야 한다는 후회가 막 밀려오고,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가 자꾸만 떠오르고, 그래서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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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집착의 끝이 어디까지일까요.우리는 그것을 예술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최종 목표가 미, 그것도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이미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무엇일 지도 모릅니다. 그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진입하고자 광기라는 이름의 악마를 이용하지만 그것을 견뎌내기엔 인간이란 존재는 그리 강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끝에는 자기파멸을 맞게 됩니다.
예술이란 것이 결과가 나오기 위해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있는대로 다 쥐어짜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가운데 머리 속 잡념까지도 증폭 된다는 거겠죠. 물론 인간인 이상임에야 잡념 하나쯤 없지도 않겠지만, 이것을 예술가들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무엇으로 규정합 니다.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지요. 예술을 위해 고뇌하고 작품과 사투를 벌이기에도 죽을 것 같은데, 잡념까지도 괴롭힙니다. 흔히 그렇듯 그 원인은 돈과 사랑 그리고 집착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작품은 만들어집니다. 고된 과정을 거쳐 부정한 상념들을 이겨내고 오롯이 예술혼과 미를 담아 하나의 명작이 됩니다. 작품의 탄생을 통해 예술가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이 화해가 별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극기의 시간 속에서 예술가가 이미 보살이 되어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가지거나 혹은 이미 광기가 자신을 집어삼켜 버린 후라 그렇습니다.
오직 예술만 하고 싶은데 발목을 잡는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뜩이나 작업이 잘 안되는것도 죽을 지경인데 나를 힘들게 하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네요. 그런 것들중에서도 갑 중의 갑이 바로 인간의 욕망입니다. 결국 이게 다 부덕한 인간의 문제입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종쟁이, 종을 만드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불의 기억> 입니다.
종을 만드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종을 만드는 철학도 품성도 다르지만 목표는 같습니다. 아름다운 모양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드는거죠. 둘이서 같이 큰 종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종을 얻는 데에는 실패하고 이들의 사이가 틀어집니다. 한 친구는 자신의 부인을 살해하는 사건을 저지르고 다른 한 친구는 혼자서 다시한번 큰 종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부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쳐가는 노력와 함께, 완벽한 종을 만들고자 하는 종쟁이들의 광기가 책을 지배합니다.
이 책은 스릴러라는 측면과 예술혼을 그린 소설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모두 다 매우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스릴러 소설에 예술혼이라는 소재를 섞은 것인지, 아니면 예술혼을 그린 소설에 살인이란 소재를 섞은 것인지 애매모호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쪽을 생각해도 멋진 소설이며 책읽기가 즐겁다는 거죠.
예술혼은 언제나 좋은 작품들의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서편제가 그렇고, 취화선이 그렇고 블랙 스완이 그렇죠. 달과 6펜스도 있구요 오르가니스트도 있습니다. 화가 나 음악가의 생애를 그리는 작품들 역시 그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술과 광기라는 불가분같은 소재가 사람들을 매혹시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비이성의 세계에 문을 두드리는 그 무엇 이기 때문 이겠죠. 독자는 창작의 고통과 시련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끝내 탄생하고야 마는 작품에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느낄 줄 안다는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거니까요.
아,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진실을 알게되면서 솟구치는 화를 참기 힘든 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화를 내면 작가에게 지는 겁니다. 어찌 이러시는 겁니까 전민식 작가님? ㅠㅠ 작가의 프로필에 대필작가라는 이력이 좀 이채롭습니다. 이제는 남의 작품 쓰지 마시고 작가님 작품 좀 더 내어 주셨으면 합니다. 학수고대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도 좀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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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운명과 광기에 휩싸인 두 종쟁이와 그에 희생당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에 대한 집착과 광기, 사랑에 대한 질투와 오해, 그로인해 운명의 굴레에 갇힌 슬픔과 기억에 대한 오류가 두 종쟁이와 가족을 파멸로 이끈다. 또 세대 간의 갈등, 뒤늦은 후회와 회한, 그리움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자란 규철과 한위, 정화는 친구 사이다. 두 남자는 정화를 사랑했고, 또 절대음의 소리를 찾는데 미쳐 종 만드는 일에 일생을 바친다. 어느날, 규철이 정화를 범하고 그에 절망한 한위는 금형리를 떠난다. 타지를 떠돌다 쇳가루 냄새와 정화를 잊을 수 없어 다시 돌아오니, 주철장의 자리도 정화도 모두 규철의 몫이었다.
2002년 월드컵 타종에 쓸 종을 맡은 규철은 실패를 맞보고, 문양을 맡았던 한위가 자신의 실패를 위해 일부러 일을 그르쳤다 생각하고 증오심을 키워간다. 스페인과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의 열기로 마을이 들썩이던 그 날 밤, 실패의 좌절감에 술에 취한 규철의 손에 정화가 죽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딸 해원은 그것을 목격한다. 이때부터 아슬아슬했던 그들의 관계에 비극의 서막이 비춘다.
규철이 교도소로 들어 간 뒤, 한위는 해원, 동주와 함께 금형리를 떠나 월롱으로 이사를 한다. 아마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아닌가 싶다. 10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친 뒤 출소한 규철이 동주와 만나 월롱 폐차장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사라진 딸 해원과 한위를 찾아 해매는 여정이 시작된다. 규철은 자신이 정화를 죽이지 않았다는 믿음과 정화를 사랑한 한위가 해원마저 범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점점 광기로 물들어 간다.
한편, 갑자기 곁을 떠난 해원을 찾아 헤매는 한위는, 곳곳을 찾아가 해원의 흔적을 찾는 동시에 옛 시조로부터 들었던 절대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종을 만들 수 있는 비법이 들어 있다는 비록을 찾아 헤맨다. 규철 또한 해원과 한위의 행방을 수소문 하면서도, 갇힌 교도소에서 머릿속에서만 종을 만들었다 허물었다 한 자신보다 10년간 직접 종을 만들고 소리를 들으며 실험했을 한위에 대한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다. 그들은 종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도 기꺼이 내팽겨 칠 수 있는 판박이 같이 똑같은 인간이었다.
동주의 표현대로 규철과 한위는 미쳤다. 그들의 말대로 종을 만들 수밖에 없는 운명, 어찌할 수 없이 이끌리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종에 관한 집념과 끈기, 좀 더 나아가 무서운 집착과 광기가 그들을 외롭게 했고, 잔인하게 했다. 과연 그들이 결국 파멸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면서까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이토록 어리석단 말인가?
해원의 닫은 입처럼 꽉 막힌 답답함, 비로소 열린 과거에 대한 진실, 죽음으로밖에 끊을 수 없었던 운명의 쇠사슬과 같은 비극은 숙명을 느끼게도 한다.
규철과 한위를 먹어버린 종은 신라 진흥왕 때 지어져 사람을 제물로 바쳐 종을 주조했다는 전설을 지닌 절 명주사 종각에 걸렸다. 그 종의 울림에서 동주와 해원은 규철과 한위, 정화의 모습을 떠올린다. 평생 종을 만들고, 그 소리를 찾는 것에 일생을 바친 두 남자. 두 남자 사이에서 기구하게 살다 간 정화. 그 비극적 운명의 쇠살슬이 동주와 해원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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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기에는 잔잔하고 모호했던 책이다. 전민식 작가는 제 8회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등단했다. 그의 등단작에 관심이 갔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게 됐다. <불의 기억>은 종을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이게 꼭 종이어야만 하나?'라는 의문이 남는다. 소설의 제제가 작품의 주제와 착 달라붙게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제를 종 말고도, 다른 예술로 정했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불의 기억>과 비교되는 작품을 최근에 하나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이다. 이 책은 터키 오스만 제국에 사는 세밀화가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제는 세밀화인데, 세밀화가 아니면 작품이 성립되지 않는 소설이다. (이런 비교는 무리일까.) 여하튼, 소설과 제제도 그렇고 인물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행동의 원인들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가 읽기에 잔잔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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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금속공예과 출신의 동주. 아버지이름은 박한위. 친구 규철 은 종을 만드는 주철업자, 대장장이라고 해야 하나 규철의 딸 해원. 글구 규철이 죽인 해원엄마 정화.
첨부터 규철은 정화를 죽이고 10년간 수감생활에서 나온 뒤 종적을 감춘 딸 해원을 찾아 내라고 한다. 한위는 옛날에 죽은 정화와 몸을 섞고 재미를 본 사이. 딸 해원도 건드렸는 지 소설을 봐도 모르겠다.
첨부터 과장된 이야기. 막무가내인 규철, 술주정에 시비. 계속 예기가 진행되면서 시골 금형리에서 상경 한위와 동주는 고물상에서 재료를 얻어 다 종을 만들다 다시 금형리로 내려 오고...
뭘 주장하려는 지. 내용을 전혀 모르겟다. 400페이지 넘게.. 불륜에 삼강오륜을 거슬르는 예기인지. 그런 저런 삶을 종을 만들기 위해 철을 녹이는 불속에 다 묻어 버린다는 예기인지. 종잡을 수 없다. 무슨 예기를 하려는 지...
홍보문구는 예술을 향한 광기와 인간실존의 부조리 서정과 우수로 그려 낸 파멸과 구원의 서사다.. 잘도 지어냇다. 좋은 말을 다 가져다가. 근데 광기,부조리,서정,우수는 도데체 어디 있는 지... 나는 못찾겟다... 읽고 나서도 머리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깝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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