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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 창비 / 성석제
20대에 늘 내 곁을 따라다니던 소리는 '차갑다, 말붙이기 무섭다, 지나치게 단정하다, 건방지다, 어렵다' 뭐 이런 수식어들이었다.
밝고 명랑했던 나를 변하게 한 건 10대 후반의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를 겪고부터였다. 더 이상 동화책 속 세상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내게 큰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여간해서 아물줄을 몰랐다. 그랬으니 상처에 상처를 덧입히지 않으려 애를 썼을밖에. 그런 내면의 움츠림이 나를 경직되게 했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게 했을테지.
세상을 향해 안하무인격이었던 내가 변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내면의 상처가 크면 클수록 그 자리에서 새록 새록 돋아나는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같은 시기였으며 비로소 그동안의 자신감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던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상처 위에 딱지가 앉으면서 빳빳하게 치켜들었던 고개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성숙한 인간의 모습과 내면의 움직임들에 대해 눈뜨게 되었다.
그 때, 내가 가까이 두고 싶었던 사람이란 단정하며 날카롭고 빈틈없어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겸손하기 보다 자신있고 당당한 사람이 좋았다. 덕분에 우리는 자주 충돌했고 사사건건 의견이 대립되었으며 서로 지지않으려 애를 썼다. 우리는 상대를 위할 줄 몰랐으며 사랑해 주는 방법도 몰랐다. 오히려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입힐 뿐 어루만져 주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십수년의 시간이 지나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 않지만 이제와서야 먼저 져주지 못했음을, 먼저 어루만져 주지 못했음을, 먼저 세워주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아직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난날의 내 모습이 상대방을 얼마나 피곤하게 했을지, 얼마나 외롭게 했을지...
그래서 일까. 무장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장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만큼 편안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람이 좋다.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이웃집 아저씨나 오빠 같은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 성석제를 좋아한다.
그의 글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보이고 혼자 낄낄거리며 웃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맞다, 맞아.' 무릎을 치며 동조하기도 하고 괜히 흥분도 하다가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아득한 쓸쓸함이 와락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주변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모습들, 그러면서 중요한 뭔가를 빼놓은 듯한, 우리들이 지나쳐 버린 면면들을 이 사람은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누가 했는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슬쩍 한 마디 거들면 우리는 마침네 구멍가게 아저씨의 시선에서 간과한 그것의 실체를 눈치채게 된다.
성석제표 책 한 권이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덥썩 그 손을 잡았다.
멀리 떠났던 큰오빠를 다시 만난 기쁨이 이러할까.
2년을 기다려 온 기쁨이 크다.
[인상깊은구절] 길을 건너고 나서 정대는 노인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차문을 열려다 정대는 멈칫했다. 뭔가 빠뜨리고 온 것 같았다. 지갑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대는 바지 뒷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때 오원식당의 간판 곁에 있던 수박만한 백색 등이 익은 열매가 툭 떨어지듯 불이 꺼졌다. 정대는 갑자기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에 왼쪽 가슴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 현대문학 2004년 5월호 소풍 중 - "참, 간단한 인간이 아니네." "간단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미시타 숑이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했다. 그러자 곧 "아이, 씨발"하는 그의 말소리와 쑥스러워하는 듯한, 소년처럼 해맑은 그의 미소가 떠올랐다.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 너는 어디에 있느냐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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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한 작품씩 읽어나갔다. 이전의 성석제와는 좀 다른 것 같다는 느낌? 아주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각 작품들의 끝 마무리가 조금 더 허무한 것 같다는. 하지만, 그게 모던하고 쿨한 그런 허무주의가 아니라, '아~'라는 나즈막한 감탄이 따라나오면서 '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이 당해야 하는 건가?'라는 약오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허무감들이다. 여러 차례 이 작가의 글을 보면서, 그리고 새롭게 잡으면서 가지던 기대는 해학이었다. 넉살 좋은 이야기 꾼이 풀어놓는 재밌는 보따리 말이다. 그런 재미에서 오히려 쿨한 느낌들이 더 많았다. 작가만의 독특한 천연덕스러움과 기발한 발상과 구성을 가지고 '아~!'하는 감탄을 이끌어내던 웃음들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앞에서 말한 허무적 결말이 하나씩 반복되는 것을 보고... 당연히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하지만, 서너 작품때부터 그 무게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도 언듯 있었던 감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독특한 설정이면서도 배경은 정말 흔하디 흔한 우리네 엣마을들이었던 것도 동일하고, 때로는 억울하게 때로은 불가피하게 당하면서도 잘 살아남은 민초들의 삶을 그리다보면, 어쩔 수 없이 허무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다만, 적어도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은 기존의 해학들을 지긋이 눌러주는 결말을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결말들이 참 짠하다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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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씨의 소설은 스타벅스 유리창 소파 자리에 앉아 까페라떼를 홀짝거리며 재즈를 들으며 분위기있게 읽는 세련된 문장이라기보다는 명절 차례를 모두 지낸 후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듣는 걸죽한 입담으로 유명한 친척 아저씨의 농이 섞인 맛깔진 이야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막걸리라도, 아이들은 오밀조밀한 약과와 달달한 식혜라도 앞에 두고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귀를 쫑긋하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무언의 애원을 보내면, 슬그머니 웃으며 마시던 막걸리 사발을 내려놓고는 "옛적에 황가라는 성을 가진 이가 있었는데 말이지 .. 그치는 소를 쳤어."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글서글한 눈매의 영락없는 인상 좋은 아저씨 같다.
하지만 인간, 그것도 초라하고 소외되고 얼핏 찌질해보이기까지 하는 작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 따스한 시선, 동정 어린 공감의 눈빛.. 그렇게 인간을 이야기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하 부드러워 아저씨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조금은 버릇없이 굴어도 괜찮겠다 .. 하는 생각까지 하며 장난을 칠 궁리를 하는 찰나, 갑자기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앞서와 달리 이번에는 옹색한 인간들, 특히나 권위라는 방석으로 바벨탑마냥 높은 탑을 쌓아 그 위에 올라앉은 인간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쏟아내어 순간 찔끔 하게 하는. 그래서 아무래도 장난은 치면 안되겠다 ..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아저씨 같달까.
또한 성석제 씨의 소설은 마치 주머니에서 끝없이 색색의 끈이 연결되어 나오는 마술 같다는 생각도 든다. 딱히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다거나 절정의 사건이 터져나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한순간도 호기심의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알록달록한 색의 끈들의 향연이 끝없이 연결되어 나오고 또 나오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성석제 씨의 소설은 구수하고 맛깔스럽고 재미나다.
이 소설을 빌려 볼때 내 생각은 이 풍진 세상 성석제 씨의 유머를 보며 깔깔대나 보자는 요량이었다. 막상 이 책은 거의 웃기질 않았다. 난 성석제 씨가 기본적으로 '웃기는' 소설가라고 생각해서, 웃기지 않는 소설을 보면 '어, 이번에는 웃기지 않네.' 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어본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가 쓴 웃기지 않는 소설을 만나면 '어, 이번에는 웃기지 않네.'라고 해야 하는게 아니라 그가 쓴 웃긴 소설을 만났을때 '어, 이번에는 웃기네.'라고 해야 맞는것 같다고.. 그리고 이 소설집은 다른 책, 특히나 <도망자 이치도> 같은 소설과 비교해서는 언어유희와 문장의 수식이 많이 줄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웃기든 웃기지 않든 문장이 어떻든, 전해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농밀해지고 깊어지고 고상해진 느낌이다. 여기서 고상하다고 하는 건 부잣집 마나님의 취향을 이야기할 때 쓰는 고상이 아니다. 시골에서 평생 소를 키우고 밭을 매었던 할아버지의 손에 깊에 패인 주름살도 얼마든지 고상할 수 있다.
예전에 내셨던 소설집 <홀림>에서 작가는 '인간'을 이야기하려 했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정작 나는 그 책을 읽을때보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을 더욱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참말로 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좋다. 재미있는 이야기, 약자에 대한 따스한 연민, 억센 강자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의 칼날. 이런 소설가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
| ㅇ잃어버린 인간 ㅇ만고강상 ㅇㅈ녁의 눈이신 ㅇ인지상정 ㅇ소풍 ㅇ너는 어디에 있느냐 ㅇ내 고운 벗님 ㅇ본래면목 ㅇ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성석제 하면 떠오르는 글은 내게는 무어라 해도 ''순정''이다. 성석제 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내게는 무어라 해도 ''재미''이다. 성석제 하면 떠오르는 특징은 내게는 무어라 해도 ''어법''이다. 내게도 그렇지만 여러 평들을 읽어보면 많은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길이 끝나''도 시작의 지점이 보이지 않을 때 그 공허함은 정호석의 해설처럼 탈리얼리티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서과정의 그 몰입만큼은 리얼리티가 주는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감 못지 않다. 그 긴장감이 나는 그의 어법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성석제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전라도 말이 생각난다. 분명 그는 경상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사람들 특유의 무뚝뚝함이 아니다. 왠지 수다스럽고 에둘러쳐 말하는 전라도 말같다. (이렇게 얘기하면 전라도와 경상도에 대한, 각 방언에 대한 편견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런 문제 지적을 달게 받으면서 단지 내가 느끼는 방언의 느낌이 그러하다는 것 뿐이다.) 어디로 튀어갈지 모르는 그 특유의 수사법. 뭐라 딱 잘라 말할 만큼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 그러면 어때 문학평론가도 아닌 일반독자인데 - 반어적이고,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열거와 대조의 수다스러운 나열, 짧은 호흡. 이런 그의 문체적 특성은 그의 서사적 내용보다 더욱 흥미롭다. 사실 그의 서사 내용은 볼품없다. 볼품없다는 것이 부정적이라는 것이기보다는 워낙 앞뒤 한 장면을 인과 없이 끊어서 들여왔기에 둑후의 공허감일 수도 있고, 계몽적 서사에 익숙한 독자의 온전하게 사적인 불만 정도라 할까. 성석제... 재밌다. |
| 모처럼 맛있는 도시락 반찬을 싸간 날, 누가 뺐어먹을까 전전긍긍하고, 조금씩 아껴 먹으며 밥 다 먹을때까지 마지막으로 남겨 놓았던 것처럼, 석제 아저씨의 책 한권을 그동안 아껴 놓고 안 읽고 있다가, 드디어 큰 맘먹고 꺼내 읽었다. 그의 최근작-물론 나온지는 한참 되었지만-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도 역시 예닐곱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쾌활하면서 리듬감 있는 문체, 잘 나가가다 갑자기 휙 틀어지는 말투, 농담인듯 진담인듯 '아니면 말고'라는 듯이 가볍게 넘겨버리는 석제 아저씨 특유의 화법이, 이번에는 조금은 절제된 듯하다. 간만에 읽어서 그런지 조금은 색다른 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다양화를 시도하는 새로운 모색인지, 아님 원래 아저씨의 소설들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거나, 석제 아저씨가 늘 한결같이 관심을 갖고 이야기 하려는 건, 바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 듯하다. 거의 모든 소설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그 '인간'이 과연 어떤 인간인가에 따라 소설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겠다. 위대한 인물, 전형적인 성격의 독특한 인물,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인물 등등 진짜 '소설'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소설'같은 이야기들도 있겠고. 하지만 석제 아저씨가 주로 쓰는 인간은 그런 인물들과는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생의 성공이나 행복 등과는 좀 거리가 있는, 뭔가 조금은 부족하고 무기력한, 햇볕 아래의 따스한 삶이 아닌 약간은 그늘진 응달에서의 삶을 사는, 그래서 동경의 대상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런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우리 자신이 바로 석제 아저씨의 그런 '인간'이기에 그의 소설들에 더욱 쉽게 빠질 수 있는 것 같다. 쉽게 쉽게 읽히는 (당연한 얘기지만, 쉽게 읽힌다는 것과 쉽게 쓴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읽혀질 수 있도록 쉽게 글을 쓴다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저씨의 문장들과, 우리 인간들에 대한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은 아저씨의 시선이 석제 아저씨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
| 성석제 소설에는 배꼽잡는 해학과 뒷통수를 치는 결말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질스런 표현이 아니라 소설로의 품위를 지키면서도 재미있고 잘 읽히며 등장인물의 성격과 줄거리가 유기적으로 잘 살아 움직이며 독자들을 책 속으로 흡입시킨다. 세상에 이런 인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성적인 인물 창조는 그만의 장점이다.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그만의 인물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상식선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범인들의 눈과 입이 커지게 만들고 여러가지 포복절도하는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며 작품 속에서 산화한다. 그러나 그가 꼭 코믹쪽에만 강한 건 아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노래같은 작품은 서글픈 대하 소설의 한 자락처럼 한이 뚝뚝 묻어나온다. 자유자재로 칼을 다루는 주방장처럼 그가 만들어낸 소설은 늘 새롭고 먹음직스럽다. 정식으로 한 상 잘 차려진 음식을 대할 때처럼 우리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는 동안 그냥 즐기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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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대할때 우리는 선입견을 갖게된다. 그 대상이 친숙하다고 생각하면 그 선입관은 더욱 배가 될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친숙하다고 생각했던 성석제의 새로운 작품을 대할 때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그에대한 강한 인상을 내 안에 가두어 두었던 것 같다. 그로인해 내 안에 갇혀있던 그의 모습과 조금이라도 빗나가게 되면 나는 거침없이 말해버린다. '그가 변한것 같다' , '전과 같지 않다' 등등..... 하지만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작가는 작가자신일 뿐. 그의 변신또한 당연히 그의 한 모습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변신이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성석제의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후 2,3년간 질펀하게 잘 놀았다는 작가, 자신이 말하는 그 시기에(2002년 ~ 2004년) 발표한 작품 9편을 모아 놓고 있다. 거침없는 말투와 예상을 뛰어넘는 뒤통수치기 , 그 속에 담겨있는 서글픈 군상의 아픔들이 내가 느낀 성석제의 강한 특징이었다. 톡톡 튀는 그의 언어들은 한여름 갈증을 해소해 주는 시원한 청량음료와 같고, 그 속에 가득배어있는 인간살이의 외면할수없는 아픈 모습들은 청량음료속에 숨어있는 송글송글한 포도알갱이와 같다. 음료수도 포도알갱이도 어느 것 하나 버릴것 없이 시원하고 맛난 것이 그의 특징이다. 물론 그 속에 숨어있는 작은 포도씨를 먹느냐 뱉느랴는 먹는 사람의 자유이다. 유독 이 작품집에는 포도씨가 많이 숨어있다. 없는 것 같아 무심코 씹으면,작지만 단단한 씨로 인해 치아에 느껴지는 울림이 결코 만만치 않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은 그 반대에 비해 훨씬 크기 마련이다.
신명나게 펼쳐지는 그의 말솜씨는 웃음을 지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운율까지 느껴지게 한다. 마치 한 편의 신나는 마당놀이를 보는 듯 하다. 마당놀이의 대표적인 특징중의 하나가 해학이라고 하니 그의 작품에 마당놀이를 견주는 것도 그리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성석제의 작품을 읽다 보면 작중화자가 아예 무시되거나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문득문득 들어난 화자의 특징은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첫번 째 작품 [잃어버린 인간]에 나오는 , 역시 직업이 작가의 '그'또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모습이 결국은 읽는 사람 모두가 될수 있도록 만든 작가의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집에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리 신명나는 웃음을 느낄수는 없지만, 결코 성석제가 아니라고 할수 있을 만큼의 색다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배꼽을 잃어버릴 위험이 없어진 대신에 찡한 웃음, 허탈한 웃음 그로 인해 씁쓸해 질수 밖에 없는 감정의 기복은 상당부분 감수해야만 한다.
쌍팔년도에 벌어진 청렴한 경찰관의 결코 청렴하지 못한 지팡이질이 등장하는 [만고강산]과 ,이겨서는 안되는 절대 져야만 하는 어느 무명 축구부의 가슴시린 결승전 이야기를 그린 [저녁의 눈이신]은 산처럼 높은 절대권력 앞에 작아져만 갈수밖에 없는 나약한 양심들의 슬픔을 잘 그려내고 있다. 죽음을 앞둔 재벌 아버지의 유산을 위해 몸부림치는 아들들의 슬픈 이야기 [인지상정] , 멋지게 포장된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펼쳐지는 수면 아래의 치열한 몸부림을 잘 보여준 [소풍], 밉지 않은 듯 , 어수룩한 듯, 순박한 듯 하지만 자신의 이익은 꼼꼼히 챙기는 미스타 숑의 이야기 [너는 어디에 있느냐]등은 인간성 상실이라는 아주 도덕적이고 고리 타분한 이야기를 적절한 손맛을 가미해 그럴듯한 일품요리로 재 탄생시키고 있다. 이 책의 표제작인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추풍감별곡]이라는 이야기속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가족간의 눈물겨운 사랑을 ,전혀 슬프지 않은 듯 아주 멀지감치 떨어져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또한 성석제의 특징일 것이다.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듯한 능청스러움. 우리는 어느 덧 그의 능청스러움에 많이 익숙해져 있고 , 그런 모습들이 그저 정겹게만 느껴진다.
하나의 알암에서 떨어진 밤알처럼 9편의 비슷한듯한 이야기들은 성석제라는 특유의 이야기꾼을 통해 각기 다른 독특한 맛을 지닌 일품요리로 태어났다. 한 상 가득히 차려진 그의 맛난 요리를 먹고나면 배가 터질듯 하지만 어쩐지 그 사이로 느껴지는 야릇한 공복감은 뭔가가 빠진게 아닌가 하는 불분명한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일까? 아니면 아쉬움일까? |
| 희대의 이야기꾼인 성석제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저 먼 옛날 할머니들이 소곤소곤 쏟아내던 이야기 한 보따리의 고름을 푸는 행위이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혹은 어머님의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이야기들처럼 수선스러우면서도 단촐하고, 단촐하면서도 얄팍하지 않다. 뜻 모를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그렇게 밭이랑의 끄트머리까지 엉거주춤 기어가다보면 후련섭섭 풍성하게 열매 맺는 기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잃어버린 인간」. “터미널 바깥의 공중전화 곁에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져내렸다. 그게 무슨 먹을 것이라도 되는 듯 찢어진 보자기 같은 날개를 접으며 비둘기들이 내려앉았다...” 묘사도 묘사려니와 옛 이야기는 그래도 역시나 등장인물과 그들이 이어나가는 스토리가 있어야 제 맛... 작가가 되어 있는 내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시골집의 재종형, 그 재종형으로부터 전해들은 봉대 아주머니의 죽음, 그리고 그 봉대 아주머니의 남편이었던 이봉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혹은 그의 독립운동기), 이와는 별도로 나의 기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봉대 아주머니의 쌍둥이 형제들... 우리들의 깊은 역사에 슬쩍 한 발을 걸쳐놓고 그동안 그 역사를 모르쇠한 우리들 모두에게 가하는 따끔한 일침... 「만고강산」. 강산이라는 동네에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 남상만 총경, 전임서장과는 달리 ‘부패 근절’, ‘폭력과 비리의 추방’, ‘민생 안정’이라는 모토를 세우고 갖가지 개혁을 단행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러한 그의 개혁의 의지 때문에 이래저래 피곤하다. 하지만 그의 개혁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군사정권의 그것처럼 어거지에 권위적이기 일쑤이고 아랫사람들만 좌충우돌 헷갈리게 만들기 일쑤다. 결국 그 또한 전임서장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경멸조차 하지 않는다. 강산에서 우리끼리 잘살고 있으니까. 아으, 만고강산.” 하면서 남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 그 부패의 고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 그 사람들을 휘두르는 권력에 대한 성석제식의 풍자극... 「저녁의 눈이신」.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할 고장의 대표를 뽑느라 낙양읍에서 벌어진 낙상국민학교와 중앙국민학교의 축구 경기... 그리고 그 축구 경기의 와중에 터진 ‘1972년 5월 16일 오후 3시 18분 현재, 대한민국 하고도 양산도 하고도 낙양군 하고도 낙양읍 남단의 낙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구경기의 첫 골’에 대한 소설... 칠십 평생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그 때 그 순간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뒤돌아보게 되는 억지춘향의 역사... 「인지상정」.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부자인 최회장이 지은 삼락병원, 그 삼락병원에서도 특별한 사람들만이 입원할 수 있는 특별병동의 특층... 그 특층에 머물고 있는 최회장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물밑 어둠 속의 부자’인 또다른 최회장... 이제 임종을 앞두고 있는 최회장 우식은 백수, 천수, 만수라는 세 아들에게 자신의 병실로 가지고 올 수 있는 만큼 돈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하달하는데... 죽으라고 돈을 모으는 데 자신의 전생애를 투자하고, 그들의 자식들은 그렇게 쌓인 돈에 득달같이 달라붙어 안달복달하고... 돈의 사회와 인간의 사회, 그 간극에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전생애와도 같은 돈을 움켜쥐고 흩뿌리는 우식 같은 사람의 손이 있는 것... 「소풍」. 자신 이외의 것에는 철저하게 비하로 응대하는 박중현... 그리고 그 박중현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박중현의 고향 근처인 백운산으로 여행을 떠난 정대... 일단은 갸우뚱... 세상에 초나 치고 다니는 이런저런 인간군상들을 비웃자는 것이 의도인 듯도 하고... 「너는 어디에 있느냐」. 미시타 숑... 이름만 공장으로 남아 있는, 그래서 대부분 그 공장의 주인들과 이런저런 안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고스톱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장에서 고스톱판의 개평을 뜯어가며, 대략 관리인으로 살고 있는 미시타 숑... 그렇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가며, 간혹 “아이, 씨발.”하는 소리나 낼 줄 알던 미시타 숑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고운 벗님」. 성석제 특유의 비아냥... 권력을 가진 자와 그 권력에 아첨하는 자, 양쪽을 모두 향하고 있는 비아냥... 국방산업의 에이전트를 하고 있는 예비역인 이 대위, 그러한 이 대위의 낚시를 위하여 온통 소란을 떨어대는 이장천 예비역 중사와 장도룡 예비역 병장의 고군분투... 세상에 통달한 듯 구는 이 대위와 그를 위해 저수지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풀어버리는 일까지 서슴치 않는 예비역 중사와 병장... 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가 있다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 법... 그러니까 그런 인간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성석제 특유의 비아냥... 「본래면목」. 도시는 아닌 듯한 어느 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나... 그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어 알게 된 황봉춘이라는 예술가... 하지만 그 황봉춘이라는 작자에게 묘한 이질감을 가지고 거리를 두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이상하게 자꾸 황봉춘이라는 작자와 엮기기만 하는 나...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언젠가 이야기한 바, PC 통신 시절 채팅방에서 우연히 성석제를 만난 적이 있다. 느닷없이 한시를 주룩주룩 파란 화면에 흰색 글자로 내뱉던 그는 또 그렇게 홀연히 방을 나갔던가... 성석제의 도저한 유머, 그 이면에는 은연중에도 항상 자중하는 선조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고 여기게 되었던 것도 같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소설은 개명의 시기, 어머님에게 다음날이면 시집을 갈 딸 재희가 읽어주는 사랑의 이야기「옥단춘전」과 그 어머니와 딸을 둘러싼 그들 가족의 심란한 삶의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된다. 할 말도 많고, 그 말을 잘 꾸며내는 재주도 그득한 성석제가 자신의 재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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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던 어느밤... 라디오를 청취하다 우연히 이 책의 선전을 듣게 되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두번 웃고 한번 울게하는 책이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작가는 성석제... 그는 누구인가? 당연히 모를수 밖에 라디오 광고를 통해 처음 들었으니.... 하여간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라디오 광고까지 할까? 하는 맘에 시험기간 도중에 빌려 보게 되었다. 제목은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노래로 처음 이 제목을 봤을때 어머니 와 관련된 슬픈 옛이야기 정도로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왠걸.. 이 책은 성석제의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써 마지막에 실려 있는 단편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오랫만에 읽어 보는 소설다운 소설 책이었다. 하지만 별달리 특징적인 것도 내용면에서 유별나게 흥미를 끄는 것도 없는 그런 책이었다. 평범한 독자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혹시 읽어 본 책 중에 추천할 만한 책을 알려 달라고 묻는다면 우선 이 책 은 제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진정 어렵고 정말 문학적 문체로 두 껍게 포장된 것이냐?? 그건 아니다. 그냥 평이한 소설이었다. 단지 지극히 평범한 독자인 내가 작가의 문체를, 작가의 세계를, 작가의 문학관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앞으로 성석제의 다른 책을 읽 어봐야 조금은 그의 세계를 이해 할수 있을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하나 특징적인 것은 사투리로 적힌 대화체가 읽 기가 버겨웠다. 부산에 26년 남짓 살며 정통은 아니더라도 어느정 도 경상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생각했는데.. TV에서 사투리를 들었을때의 어색함 처럼 책속에서 사투리로된 대화체를 읽는 것이 나에겐 힘겨운 일이었다.. 지금 빌려놓은 또다른 성석제의 단편모음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 다를 읽어 보면 조금은 이 사람에 대해서도 알수 있지 않을까?? *********************************************************** (윗 글을 쓰고 얼마후) 반납하기전 간단히 책을 훑어 보았다. 그제서야 이 책에 대해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책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이름과 유머러스한 상황설정과 이야기 전개... 그러고 보니 그렇게 지루한 책은 아니었던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