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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그날도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도서관을 뒤척이고 있었다. 뭐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을 때, 눈 속으로 확 들어오는 낱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체’였다. 음..나체라..
호기심이 발동하고 정신을 모은 후 서서히 책의 제목을 보았다. 나체와 수치의 역사. 음..나체와 수치의 역사라...책을 꺼내어 들고, 여느 때처럼 어떤 내용일까 책을 한번 휘리릭 보았다. 역시! 제목만큼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사진들...음~이런 훌륭한 책이 여기 이 구석에 숨어있었군! 책을 얼른 꺼내어 대출을 한 후, 바로 앉아 읽기 시작했다.
첫 장을 넘기자 들어오는 글귀.
“우리는 지금 하나의 노선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노선도 조만간 다른 노선에 밀려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그것에 맞서 벌였던 우리의 논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논의를 벌여야만 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비트겐슈타인”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시 작가의 이름을 보았다.
‘한스 페터 뒤르’
독일 사람이었다. 독일이라..
책을 읽어감에 따라,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가벼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있었다. 세계의 각 종족과 흐르는 시간에 따라, 사진과 그림 속에 존재한 수많은 여성의 나체를 들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인간의 나체와 수치라는 것이 인류의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변함없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의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논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한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을 읽어봤을 것이다. 이 책은 문명화이론의 선구라고 불리며, 이미 사회학계에서는 그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노베르트 엘리어스의 저서 <문명화과정>-이 책은 우리나라에 매너의 역사라는 이름으로도 번역되어있음-에 대한 철저한 비판서이다.
이 책의 서문에도 나오지만 엘리어스의 주장은 이런 것들이다. 예컨대 근대 이전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 초까지만 해도 벌거벗은 남녀가 어울려 노닥거리는 욕탕 또는 옥외 천연탕 장면을 볼 수 있다든가, 여러 사람이 서슴없이 한 침대를 썼다든가, 17세기에만 해도 어떤 귀족들은 “변기”에 앉은 채로 알현에 임했다든가, 또는 지체 높은 귀부인이 욕탕에 앉아서 남자 하인 앞에서 주책없이 가랑이를 벌렸다든가 하는 기록의 사례를 가지고 그의 문명화 이론의 근거를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옛날에는 동물적인 본성에 대하여 사회적인 규제가 심하지 않던 것이 16세기 이후로 들어서 인간들의 동물적 본성이라는 것들을 스스로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인간들 모두는 야만인, 그리고 이후 문명화 된 인간들은 문명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담론체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스 페터 뒤르는 과감하게 자기의 주장을 한다. 120페이지가 넘는 각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년에 걸쳐서 모은 방대한 자료와 실제 원주민들을 찾아가서 겪은 살아있는 정보와 현존하는 민속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그의 논리를 치밀하고도 꼼꼼하게 전개한다.
가령 이런 것 이다.
<문명화과정>을 펼치면,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한 장 있다.
여인 하나가 하얀 온 몸을 들어내어 놓고 목욕탕에서 앉아있는데, 여종이 그녀의 발을 씻기고 있다. 그런데, 저 쪽 그림의 한 쪽 끝에는 남자둘이서 그녀의 알몸을 훔쳐보고 있다. 이러한 그림의 아래에 이러한 설명이 붙어있다. “16세기까지도 자신의 알몸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었다. 심지어 목욕탕까지 알몸으로 거리를 달려가기도 했다.(‘Susanna Bathing’, 틴토레토,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이러한 그림에 이러한 설명은 정말 그럴 듯하다. 하지만, 한스 페터 뒤르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당시 훔쳐보기라는 잠재해있는 욕망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 말고도 수많은 그림과 사진이 <나체와 수치의="" 역사="">안에는 존재하고 있는데, 그림 하나하나에 따른 그의 설명을 실고 있다. 단순하고 너무나도 근시안적인 엘리아스 및 그가 만들어 놓은 일단의 학파에 대하여 한스 페터 뒤르는 주장한다. 인류의 창조이래 수치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해 왔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명인과 야만인이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음흉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나의 독서열이 소중한 책을 한권 발견했었다. 몇 년전 도서관에서. <나체와 수치의="" 역사="">이외에 <은밀한 몸="">과 <음란과 폭력="">은 그의 3부작으로서 그의 이러한 주장을 더욱 뒷 밧침 하는 뛰어난 역작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담을 쫒아내신 다음 하나님은 동쪽에 거룹들을 세오시고 돌아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음란과>은밀한>나체와>나체와>문명화과정>문명화과정>문명의>문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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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두르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만났을 때 상당히 혼란스럽고 황당할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읽고 풍속의 역사를 만나는 사람 역시 느낌은 비슷할 것 같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이 늘 그렇지만 한정된 자료를 놓고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비슷한 쪽에 관심을 가진 서적을 보면 제시되는 자료들이 상당히 많이 겹친다. 그러면서도 같은 자료를 놓고도 주장하는 이론이 다른 경우를 왕왕 만나는데 이 책과 풍속의 역사는 그 방향이 서로 극과 극을 달리는듯 하다.
풍속의 역사에서 개방과 문란의 상징으로 제시됐던 그림과 문서가 한스 페터 뒤르의 나체와 수치의 역사에선 오히려 절제와 사회적 규제의 증거로 채택되어 있다. 제목은 나체와 수치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세인들의 개방적인 성모랄과 원시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던 그런 내용이 아니라 (그런 내용은 오히려 점잖은 제목의 풍속의 역사에서 충족이 될듯) 엄격한 규범 아래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중세과 근세인들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는 초야 공개는 상징이었다는 주장으로 남녀 혼탕은 보이지 않는 엄격한 규제 속에서 행해졌고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 제시되는 증거들이 아까 말했던 풍속의 역사에서 보았던 증거물이라는데 독자로선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푹스의 글을 보면서 머리에 담아뒀던 내용들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 솔직히 제시된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듣는 입장에선 어느 쪽이 맞다를 말할 수는 없고.... 이 책을 괜찮다고 보는 이유는 뒤르의 주장 역시 설득력있게 다가왔다는 것.
과거에 어땠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의 가치관과 생활만이 진실이지 어느 것이 보편인지 확실한 정답을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반대의 입장을 가진 책을 본 독자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혼란을 준다는건 뒤르의 주장 역시 나름대로 확고한 논리를 갖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최초의 혼란이 사라진 다음에는 다양한 관점을 만나는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마지막에 조금 황당했던 것 하나. 총 470여쪽의 두께인데 주석과 참고문헌 소개 부분이 170여쪽.... 자료를 많이 찾아봤단 얘기도 되겠고 자신만의 소리가 적었단 얘기도 되겠고.... 쪼끔은 허탈했다. [인상깊은구절] 1256년에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 교훈시집 [이국의 손님] -탈리아에서 교양을 쌓은 중세 고지독일어의 시인 토마스 폰 제르클레레가 쓴 10권의 방대한 교훈시집. 보수적 시각에서의 궁중 및 서민의 덕목론이 담겨 있음-에 삽입된 한점 그림 을 보면 허풍선이에 대한 알레고리로 벌거숭이 남자가 그려져 있는 점이 괄목된다. 그만큼 허풍은 타인 앞에 알몸을 보이는 것과 똑같이 파렴치한 짓으로 치부되었다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