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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어렵다. 공자도 죽음에 대해 묻자 삶을 잘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래도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책을 사서 읽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뭔가 놀라운 것이 틀림없다. 삶이 그런 것처럼,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다. 슬픔·아픔·고민·기쁨·터무니없는 생각들·소유·질투·사랑·외로움이라는 견딜 수 없는 불행 - 이 모두가 삶이다. 그러니 죽음을 이해하려면 삶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우리들처럼, 그중 한 가지만 가지고 그렇게 단편적으로 살면 안 된다. 삶에 대한 바로 그 이해 속에 죽음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 둘은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저자의 말, 1962년 런던에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다. 저자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의 의식이 변화함으로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메시아적인 이미지를 단화하게 거부하고 자기 주위에 형성되어 있던 크고 부유한 기관들을 해체했다고 한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내용이 어려워도 과연 삶고 죽음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싶었지만 그리고 책의 마지막으로 가면 무엇인가 손에 쥐어주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읽었지만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없었다. 위에서 본 저자의 말처럼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간과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본 좋은 시간이었다. 사실 죽음은 잘 모른다. 죽음을 잘 모르면서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기 싫은 애착이나 아집일 것이고 시간의 영속성을 믿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매일 매일 죽으면서 살아가는 나가 아닌 이상.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고통이 많을까 보아 두려운 것이다. 어린 시절에 주사를 처음 맞을 때 앞의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볼 때는 그 고통이 매우 클까봐 두려움이 앞섰지만 실제로 주사를 맞을 때는 그만한 고통이 아닌 것과 같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대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중략) 그대는 정말로 모르는 것 즉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잃어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을 일으키고 그대의 기쁨과 만족을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다. 두렵게 만드는 것은 아는 것이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중략) 아는 것 즉 경험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미래는 어떤 것일까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50쪽). 생각은 아는 것이며, 생각은 시간이고, 생각은 낡은 것이며, 생각은 전혀 자유롭지 않다(87쪽).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애착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중략) 죽음은 바로 그 애착의 최후다(115쪽). 우리는 비참하고 서로 다투는 일상생활이라는 실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구의 세계, 신과 상징과 관념과 이미지의 세계를 만들어 현실 세계로부터 애써 도피하려 한다(16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윤회와 부활을 믿거나 몇몇 다른 형태의 신앙에 매달린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신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믿기만 하는 것은 미숙한 짓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심리적으로 어떻게 죽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20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