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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엔 유리로 만든 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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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이 소설은 '스물 다섯'이란 나이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스물 다섯이 '여자들이 처음으로 희망을 잃는 나이'라 말한다. 결혼을 택해 아이에게 십년쯤 붙들리거나, 일에 빠진 채 결핍을 피할 수 없는 독신을 택하거나, 연애나 문화적 사치에 빠지는 노마드적 삶을 살거나. 스물 다섯은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나이란 말이다. 주인공 은령은 스물 다섯. 가족은 자신이 열한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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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이 소설은 '스물 다섯'이란 나이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스물 다섯이 '여자들이 처음으로 희망을 잃는 나이'라 말한다. 결혼을 택해 아이에게 십년쯤 붙들리거나, 일에 빠진 채 결핍을 피할 수 없는 독신을 택하거나, 연애나 문화적 사치에 빠지는 노마드적 삶을 살거나. 스물 다섯은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나이란 말이다. 주인공 은령은 스물 다섯. 가족은 자신이 열한살 때 재혼한 엄마와 양아버지, 이복 오빠 둘, 그리고 새로 태어난 막둥이. 은령은 독립을 원한다. 흔히 그 나이가 그렇듯. 그래서 바다 마을로 흘러들어간다. 방송작가라는 불안정한 직업 하나를 소개 받고서. 거기서 만나게 되는 시인 문유경. 선글라스를 꼭 챙겨쓰며 괴팍한 말투를 즐기는 유경은 사실 여린 남자다. 상처를 두려워해서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그리고 그의 친구 이진. 유경과는 열여섯살이나 차이나지만 어쨌든 그 둘은 친구다. 이혼하고 더 잘살게 된 부모가 남긴 유산 덕분에 떵떵거리고 사는 이진에게서는 늘 고급스러운 향취가 풍긴다. 은령이 사랑했던 건 유경이었을까 진이었을까. 둘 중 하나였을까, 둘 다였을까. 아니 그들을 사랑하긴 했을까. 떨림과 설렘이 있는 유경과의 관계는 언제나 뭔가 아쉬웠고, 돈과 상류사회지향형 욕망은 물론이고 육체적 욕망까지 속속들이 채워주는 진과의 관계는 무도덕한 면과 자기파괴적인 면이 있었다. 마지막에 결국 은령에게 남은 건 유경도 진도 아닌, 막둥이 동생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한 기대'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아쉽다. 무언가 더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전경린은 계속 묻는다. 스물 다섯. '너는 뭐해서 먹고 살 거니?',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 거니?', '어떻게 부모로부터 독립할 거니?', '네가 말하는 사랑은 뭐니?'.... 나는 아직 아무것도 확실히 답할 수가 없다. 아직 스물 다섯이 아니어서 그런건지, 스물 다섯이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는지 모를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이란 동시성을 잃고 시간 밖에서 생각하면 늘 그렇듯이 의심스러운 거요. 그건 어느 시기에 두 사람의 발이 한데 묶였던 어떤 사건일 뿐인지도 몰라. 발이 풀리고 난 뒤에 생각하면 그런 공속은 아무런 실제성도 없어요. 에테르처럼 증발되어 버리지. 두 사람이 사랑했는데도 추억 속엔 자신밖에 없어. 자신조차도 어딘가 변형되고 과장되어 있어. 서글픈 모노드라마지......." - 유경의 말
y********1 2005.03.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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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나의 레이스를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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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삶이란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삶 뿐만이 아니라 사랑도.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모르는 곳을 유영하는 일. 위험천만하고 낯선 느낌, 그게 우리가 삶과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센티해진 건 분명 나의 하루를 잡아먹은 이 책 덕분이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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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삶이란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삶 뿐만이 아니라 사랑도.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모르는 곳을 유영하는 일. 위험천만하고 낯선 느낌, 그게 우리가 삶과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센티해진 건 분명 나의 하루를 잡아먹은 이 책 덕분이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주인공인 은령을 따라 한없이 내 속으로 침몰해 있는 일 외에는.

 

전경린 작가를 만난 두 번째 책이었다.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쓸쓸한 느낌. 그 당시의 나는 지독하게 외로웠다. 사람 사이에 있어도 슬펐고 내 아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생의 어느 시기보다 밝고 아름다워야 할 대학교 1학년때였다. 그리고 지독히도 날씨가 맑았던 일요일. 하루를 다 바쳐 다시 읽었다. 주인공 은령의 나이인 스물 다섯에 조금 더 가까워진채로.

 

양부와 자신에게 소홀한 친엄마의 그늘을 떠나 지방의 소도시로 내려온 스물 다섯 여자 은령이 주인공이다. 방송국 작가 일을 하던 그녀는 일 관계로 유경이란 시인을 알게 된다. 타인과의 친밀함이 어색하다는 공통점으로 서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으로 느끼는 두 사람. 그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마흔 중반의 가진 것 많은 사내 이진. 처음엔 어리고 가난한 은령과 유경을 돌봐주는 듯 보이던 이진은 어느새 세 사람의 관계를 휘잡기 시작한다. 과거 유경의 여자들처럼, 은령은 검소한 모습에서 사치스럽고 속물적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결국 모두에게 최악의 결말을 남기고 그저 그런, 하찮은 삶으로 은령은 돌아간다.

 

스물 다섯 여자의 몰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삼각관계 이야기다. 결국은 모두를 파탄으로 이끄는 결말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아니 읽은 후조차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어부가 펼쳐놓은 그물에 허우적대는 물고기처럼, 소설 속 세 인물들의 얽히고 얼킨 감정의 타래에 묶여있었다.

 

사실 불과 3년 전 이 책을 읽을 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단지 책이 가진 잠식될 정도로 깊은 슬픔에만 몰두해있었다. 그러나 다시 본 책 속에는  삶과 사랑에 대한 지리멸렬함, 그럼에도 살아가는 아둥바둥함이 아프게 꾹꾹 눌려 담겨있었다. 그리고 스물 다섯이란 나이 속에서 생의 탈피를 한 꺼풀 벗겨내는 한 여자의 모습. 그랬다. 이 책은 어떤 여자의 허물 벗기에 대한 아픈 고백록이었다. 일반화될 수 없지만 우리 중 누구도 어떻게든 같은 과정을 거쳐 스물 다섯을 넘기게 될 거라는 암시와 같은. 물론 그 과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은령의 말을 빌리자면 '넘쳐보지 않고는, 자신을 바닥까지 뒤집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있'기에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한편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허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랑. 전경린은 사랑에 대해 칼날같은 서늘함을 내보인다.

[사랑이란 동시성을 잃고 시간 밖에서 생각하면 늘 그렇듯이 의심스러운 거요. 그건 어느 시기에 두 사람의 발이 한데 묶였던 어떤 사건일 뿐인지도 몰라. 발이 풀리고 난 뒤에 생각하면 그런 공속은 아무런 실제성도 없어요. 에테르처럼 증발되어 버리지. 두 사람이 사랑했는데도 추억 속엔 자신밖에 없어. 자신조차도 어딘가 변형되고 과장되어 있어. 서글픈 모노드라마지...... . p.73-74]

그러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이진 또한 여전히 사람의 살을 그리워한다. 사랑과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은령에게 가르치려 하지만, 끝까지 돈으로밖에 상대를 휘어잡을 수 없던 그는 어쩌면 사랑을 모르는, 불쌍한 위인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도 그처럼 오만하게 사랑을 무시해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란, 아니 남녀 사이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 어떻게 시작하든, 어떻게 끝나든 아니 그 과정 중에도 사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조차 없다. 그럼에도 우린, 이전에도 앞으로도 아마 언제나 사랑을 하게 되지 않을까.

 

사랑을 가지지 못해 양부를 떠났고, 어느 사랑에도 확신을 갖지 못해 결국 두 사랑을 잃었던 은령. 그녀는 결국 비밀스레 자신의 이복 동생을 자기 아이처럼 키우게 된다. 누군가의 눈에는 은령의 결말이 허접스레기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눈엔 드디어 유리배를 육지에 착륙시킨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 방식이 일반적이진 않다하더라도. 은령은 자기 방식대로 사랑을 온전히 이해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나의 스물다섯을 이미 넘겨버렸는지 모른다. 아니면 여전히 진행중일수도 있고. 혹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물다섯이 언제가 되건 그 유리밭같은 시간을 겪어낼 때 이 책이 옆에 있으리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은령에게 있어서의 레이스뜨기가 나에겐 이 책을 읽는 것과 같달까. 오랜만에 힘겹게 다시 펼친 책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거리와 안식을 주었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몇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또 어떤 느낌을 전할지 그 때가 벌써 기다려진다.

 

 

 

 

 

YES마니아 : 골드 z*****x 2009.06.28.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