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국 시인을 생각하면 설악산 아래 인심 좋은 작은 마을의 이장이 떠오릅니다. 크고 작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떠맡아 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따스한 기운을 전하는 검은 얼굴의 손 큰 이장 말입니다. 그런 느낌은 그이가 설악산 아래에서 태어나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곳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은 이력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이의 시가 풍기는 풍모 때문에 더 그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곽재구 시인의 말마따나 이상국 시인은 ‘독설과 키치, 온갖 소외와 불화로 얼룩진 궁핍한 시대에 쉽고 어질고 따뜻한 꿈으로 버무려진 시’를 쓰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이의 ‘시를 읽는 동안 내일이면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어질고 선한 기운들이 마음 안에 모락모락 피어나’거니와 ‘천지사방 흩어진 만물의 삶이란 게 한통속으로 이어진 별밭 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이번 시집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를 읽다 보면 ‘아무래도 세상에 오길 잘했다는’(「오길 잘했다」) 생각이 듭니다. 리필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세상에서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쓰는 시인이지만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시인은 어느덧 생의 저녁에 다다랐음을 ‘덥석’ 깨달으니 말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 골목길에서 누가 덥석 손목을 잡아끈다 / 새로 온 저녁이었다 / 자기네 집에서 쉬었다 가라는 거였’(「어둠과 놀다」)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새우깡 한 봉지와 / 소주를 받아가지고 / 학교마당 나무 아래 저녁의 집에서 / 한 시간이나’ 놀다 옵니다. ‘그가 데리고 가라는 / 새로 온 어둠의 손을 잡고’ 말이지요. 그런 뒤부터 시인은 ‘날마다 저녁을 기다’리기까지 합니다. ‘나는 저녁이 좋다 / 깃털처럼 부드러운 어스름을 앞세우고 / 어둠은 갯가의 조수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 어떤 날은 딸네집 갔다오는 친정아버지처럼 / 뒷짐을 지고 오기도 하는데 /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어둠속에서는 누구나 건달처럼 우쭐거리거나 / 쓸쓸함도 힘이 되’(「저녁의 노래」)기 때문이랍니다. 시인은 생의 저녁에서 어둠과 놀며 ‘어딘가 깊은 곳을 건너간다는 것’(「입동(立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나무를 베면 //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어둠」) 궁금해하기도 하고, ‘이 별에서 내리면’‘또다른 별에서 만날 수는 없는지 / 이보다는 훨씬 못하더라도 / 내리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별은 없을까’(「이 별에서 내리면」)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하늘을 날던 새가 떨어진다’는 ‘아! 영하 40도, / 그 깨끗한 하늘에서 떨어지고 싶다’(「결빙(結氷)」)고 하기도 하고, ‘해 지고 나면 / 땅거미가 들과 마을을 차례로 덮어오듯 / 한발 다가오는 거대한 그 무엇과 / 겁 없이 맞서는 형님의 적막한 싸움을’‘천치처럼 바라볼 뿐’(「벽에 기대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밭을 지나다가 / 군데군데 솎여나간 자리를 보면 /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 손을 넣어보고 싶다’(「무밭에서」)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어둠의 깊은 곳’조차 그이에게는 긍정의 공간입니다. 그이에게 그곳은 생을 긍정하게 하는 힘이자 생에 대한 따뜻한 의욕이기 때문입니다. 아범은 자니? 지난해 태풍 루사가 왔을 때 나하고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양양의 어느 농협 조합장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뉴스에 나오던 저녁 영랑동 숙모님이 전화를 하셨다 아내가 받았는데 한참 딴 얘기를 하시다가 아범은 자니? 하시길래 잔다고 했단다 이 모든 은유로 된 세상에서 나는 계속 자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