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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읽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망설여진다.
네 파트로 나뉜 몇 줄의 문장과 한페이지의 그림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었다는 표현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몇 줄의 문장은 밤새도록 타이핑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뒤에 가지고 있다.
오에카키라는 작은 컴퓨터그림으로 봤던 내용들이 세심하게 다듬어져서 책으로 나왔다.
책 속에서 작자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84p-'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 거리낌 없이...'하고 말하는 작자의 심정과 일치한다)
머릿속에 빈 방만이 가득한 것은 자신의 얼굴이 텅빈 신발장처럼 둘로 갈라져있는 모습을 그렸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있지만 자신은 볼 수 없는 '내가 모르는 나'는 뒷머리카락 뒤에 숨은 자신의 또다른 얼굴을 그린다거나, 화려한 의상 안에 돋아난 가시에 찔리는 것으로 자아도취와 자기비하가 함께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식이다.
목차도 없이 읽어가다 보면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요즘에 유행하는 다이어리들이 대개 너무 감상적이거나 유치하거나 그야말로 공개된 개인잡담에 불과한데 반해 정유미의 이야기는 아주 정직한 자기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24살이란 자기정체성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는 나이가 아닐까.
그녀에게 그림그리기는 자기치유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자기성찰을 간명하게 표현해낸 그림은 작자에게 자기문제점을 알게 해주고 그것은 그것의 위치의 좌표를 알아낸 것과 같다는 것이다.
(좌표를 알았으니 그것에게 다가갈 수가 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제기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은 그 나이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녀가 그것들을 찾아내서 바라보니 그 문제들이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문제들과 대면하는 일,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는 일, 그것을 책으로 묶어 두고두고 펼쳐보는 일. 그것을 이렇게 유연하고 재치있게 이뤄낸 것이 놀랍다.
'모든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은 네 마음이다. 마음이 힘들다면...그건 그른 것이다'
하고 말하는 정직한 사람이 펴낸 이야기.
어떤 사람은 버스에서 읽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버렸다고 한다.
아무 페이지나 펴면 당신과 내가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가 나온다.
작자가 그녀 자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당신과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그것은 때로는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게도 하는 그런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갈고 닦는 일을 시작하기 바란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휴지인간, 소모되기를 두려워하다. 가진 카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숨을 쉰다. 자아도취는 자기비하와 함께 움직인다. 게을러지는 건 우울해지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등등 이 책은 그림과 글을 함께 읽어야 한다. 커피와 도넛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