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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된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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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만 그 여름을 뜨겁게 달군 또 하나는 유영철의 체포 소식이었습니다. 유영철은 21명이라는 가공할 만한 숫자의 사람들을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유영철의 범행 방법은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따위로 노약자나 여성들을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체에 불을 지르거나 사체를 토막내 야산에 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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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만 그 여름을 뜨겁게 달군 또 하나는 유영철의 체포 소식이었습니다. 유영철은 21명이라는 가공할 만한 숫자의 사람들을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유영철의 범행 방법은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따위로 노약자나 여성들을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체에 불을 지르거나 사체를 토막내 야산에 묻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살해한 여성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내는 것 같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국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적개심으로 들끓었습니다. 유영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연쇄살인사건들처럼,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얼마나 잔혹한 방법을 썼는가에 모아졌습니다. 그가 살인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그와 같은 원인을 뿌리뽑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안마사와 결혼하였으나 부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뒤부터 여성 혐오증을 보이다가 나중에는 교제 중이던 여성들로부터 전과자와 이혼남이라는 사실 때문에 절교를 당하자 복수심을 갖게 되었다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차원의 어떠한 노력도 없었습니다. 만약에 부처가 유영철을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유영철을 두고 들끓었던 2004년 여름의 우리와는 분명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영철보다 더 잔혹한 앙굴리말라에 대한 부처의 대응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사람손가락(앙굴리)으로 만든 목걸이(말라)를 하고 다니기에 앙굴리말라라고 합니다. 자비를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는 손가락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닙니다. 힘세고 노련하고 대담한 자이며, 교활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마을과 읍내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자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읍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인적이 뚝 끊기게 만듭니다. 그러나 부처는 아무런 보호 없이 읍내를 돌아다니고 앙굴리말라가 숨은 숲으로 거침없이 갑니다. 부처에게 ‘두려움 속에 사는 삶이란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의 사랑과 우정과 자비는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화禍와 무지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도 나아가야 ’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부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에 앙굴리말라를 만나 깨달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난 그대가 날 죽일 수 있다는 걸 안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부처는 말했다. “하지만 그대는 누군가를 죽일 때 다름아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로 다름아닌 그대이며, 그대가 바로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그대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 앙굴리말라.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대는 죽이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대는 사랑할 수도 있고, 자비를 베풀 수도 있다. 그대는 변화할 수 있고, 우정을 맛볼 수도 있다.” (26 - 27쪽) 부처는 폭력과 테러를 일삼는 자에게 ‘자신이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함으로써 스스로 변화하게 만듭니다. ‘무자비는 자비로, 증오는 사랑으로, 불의는 용서로’ 극복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앙굴리말라는 부처의 제자가 됩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심오한 통찰력과 이해력’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설법을 하게 되기까지 이릅니다. 부처의 가르침과 앙굴리말라의 깨달음을 보며 유영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생각해 봅니다. 그때 우리의 관심은 폭력과 테러의 현상에만 관심을 집중했지 폭력과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근본 원인의 치유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처는 피해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런 가르침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 가족 중에 살인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폭력은 폭력으로 결코 멈출 수 없고, 살인자 또한 ‘진화의 모든 역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수백만 년의 세월, 모든 관계의 그물망, 생명의 끊임없는 율동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 또한 자명합니다. 그리하여 ‘개별적으로 저지르는 물리적인 폭력행위를 줄이기 위하여, 우리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폭력을 줄여야 합니다. 우리는 폭력을 지지해 주는 제도들을 개혁해야 하며, 모든 수준의 폭력을 제거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g*******g 2005.03.1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