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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통속 연애 소설임에도 기묘한 중독성을 가진 작품이었어요. 내용은 그야말로 통속 소설의 전형이었습니다. 재벌이 등장하고, 가난에 찌들어 신분 상승만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가난해도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인물도 등장하며, 그런 인물들이 뒤섞여 배신과 복수가 난무하는 전형적인 <사랑과 야망> 같은 스토리였어요. 게다가 대사 또한 어찌나 손발이 오그라드는지 60년대 한국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밥은 먹었니? 아잉, 오빠가 없는데 어찌 제가 밥이 넘어가겠어요. 그래도 굶고 다니면 곤란하지 않겠니? 아잉, 몰라 몰라, 그럼 오빠가 사주시면 되지 않아요? (이때 BGM으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깔린다. 그러면서 여배우 비내리는 하늘을 가리키며 어마, 오라바니, 저 별은 오라바니의 별? 하고 말하면 남자는 이내 여배우의 손을 덥석 쥐고 그렇지 않아, 내 별은 오로지 순애의 마음 속에만 뜨지, 하고 말한다. 관객들 전원 오바이트.) 아, 뭐 이 정도까지 심하게 오글거리지는 않았어도 거의 범접할 수준은 된답니다. 어쨌든 클래식한 60~70년대의 전경을 떠올리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구요. 그러니 그만하면 초장에 탁, 하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법도 한데 요게 묘하게 계속 보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페이지가 슉슉, 넘어가더니 아우, 결국엔 이 작품만의 매력에 홀라당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청춘의 덫>의 심은하처럼 당신, 잘게 부숴 미숫가루에 타 먹어버릴거야, 하는 상황까지는 연출되지 않았어도 그런 비슷한 전개로 이루어진 이야기였는데요, 이런 타입의 여느 스토리와 크게 다른 점은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야망의 화신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예요. 히히.
이 작품은 박범신 선생님의 첫 장편이라십니다. 1979년에 발표한 작품이니 우와, 벌써 삼십 년이나 지난 소설이지요. 그러니 오호, 그 내용의 클래식스러움이야 두말 할 나위 없고 통속성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형적인 내용인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순문학만이 고급 문학이라 믿는 분들이 보시기엔 국문과에 신춘 문예 출신이 이런 장편을 발표했다는 사실에 심히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은 데요, 줄거리만 보자면 그런 소리가 나올법 합니다. 게다가 출간 당시 당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로 군림까지 한 형편이라 박범신 선생님을 대중 소설가라고 몰기에도 훌륭한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는 바이지요. 저야 당연히 고급이고 저급이고 제가 마음에 들면 그만인 타입이지만 그렇지 않은 냥반들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어쨌거나 상당히 대중적인 서사를 지닌 소설인 것만은 분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소설이란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질감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통속적인 스토리를 가진 작품임에도 페이지가 더해감에 따라 통속성보다는 문장에 점점 반하게 되어요. 스토리가 점점 부차적인 재미로 밀려나게 되지요. 이 작품은 종종, 제가 박범신 선생님의 타입을 두 갈래로 구분하여 예로 들듯이 <은교> 라인에 선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다소 과도하다 싶을만큼 화려한 문장인데요, 그러나 그 묘사를 읽는 맛이 아주 좋은 거지요. 여성으로 비유하자면 신사임당 같은 단아한 미를 지니지는 않았어도 황진이 같은 화려함이 잔뜩 묻어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죽음보다 깊은 잠>이라는 제목을 차고 1,2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실은 다른 소설이라고 합니다. 1을 발표하고 5년이 지난 후에나 같은 주인공들을 데리고 다른 제목으로 연재한 소설이래요. 말하자면 연작 소설인데 장편인 거지요. 그런데 전집으로 출간되면서 같은 제목에 1, 2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라 하네요. 어쩐지 1권을 읽는 동안 두 권짜리 소설치고는 스토리의 전개가 좀 빠르다고 느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엄연히는 다른 소설이었던 거지요. 작품 주인공의 흥망성쇠를 다룬 내용치고는 270쪽에 달하는 적은 분량인지라 극 구성의 완성도가 낮기는 했습니다. 디테일한 치밀함이 떨어져서 엉성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죠. 그러나 작품이 가지는 문장이 참으로 맛깔스럽고, 읽는 맛이 좋아서 그것을 충분히 대체하고도 남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핏 김수현 작가님의 드라마들이 우수수 생각나는 소설이었는데요, 김수현 작가님의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백미라고 생각되는 것처럼 이 소설도 내면 묘사의 화려함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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