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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여우 못지 않게 잔인하고 그야말로 나쁜 녀석으로 아이들의 동화책에 자주 등장한다. 이 책.. 분위기 진전이 참 독특하다. 저자가 스위스 사람이라고 하는데 낯설다고 해야하나? 책의 각 장면마다 전개되는 단 한줄의 바이올린 선율이 무척이나 궁금해 3주를 가지고 있었지만 끝내 들어보지 못하고.. 바이올린 수업을 받는 애니라는 아이. 여덟살이나 아홉살쯤 되었을.. 애는 선생님께 수업을 받으면서도 악보를 볼줄을 몰랐으나 그래도 자신의 바이올린에서 솟아나는 소리들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 엄마께서 들려주신 빨깐모자에 나오는 할머니와 아이를 잡아먹은 늑대이야기를 들으나 애니는 믿지 않는다. 다음날 일찍 들판 깊숙이 들어가 한 나절을 보내던 애니는 주위가 점점 어두워 지는 시간이 되자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얼마나 지났는지 솔잎이 쌓인 바닥에서 잠이 들고 만다. 집에서는 하나뿐인 딸을 경찰을 불러 찾고 야단인데도 말이다. 애니를 발견했을 때는 동트기 직전, 놀랍게도 경찰은 애니의 주변에서 늑대의 자취를 발견하고는 대 수색작전을 펼친다. 그리고는 끝내 늑대는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눈에서는 뭔가 흐르고, 눈도 감기지 않은.. 늑대는 음악을 사랑했을까? 이 제목처럼 말이다. 그 잔인함, 그 슬픔, 그 감미로움, 그 외로움. 애니는 어른이 되어서는 이 늑대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작가는 아이가 성장하여 오래도록 사실은 늑대보다 사람이 훨씬 잔인하다는 것을 아이가 인식해야만 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까? .. 그런 잔인함이 삶에서도 종종 목격되지 않는가? |
마셜 아리스만이 저명한 화가라는 데 <비밥을 만든 고양이>에서는 솔직히 와닿지 않아서 구글링합니다. ![]()
오오...분위기 있으시다. 하지만 이미지를 열었더니... 헐...헐...헐... 이건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느낌이다 했더니... 있네요. 바로 위의 빨간 배경에 노란 넥타이 그림도 <아메리칸 사이코>네요. 홈피에 갔더니 그간의 작업을 6분짜리 영상으로 엮은 게 있어서 쭉 보는 데 1분경 쯤에 뒤러의 산토끼를 겨누는 사람들 이미지가 있더군요.
작품의 주요 주제가 폭력과 약탈, 포식자라던 데 대번에 이해되었습니다. http://thesherwoodgroup.com/interviews/interview-with-marshall-arisman/ http://www.huffingtonpost.com/vickie-karp/third-screen-marshall-ari_b_140561.html 링크 두 개를 대충 읽어보니 (대충 읽었다는 말로 틀린 정보일 수 있음을 암시)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 전공하고 제너럴 모터스 사에 취직했으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3달만에 때려치고 유럽으로 건너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3년 정도 버티다가 돈이 없어서 다시 뉴욕으로 왔대요. 총에 관한 시리즈를 그리면서 명성을 얻었나 봐요. 어릴 때 농장에서 자라서 소도 잡고 사슴도 잡고 그랬다나 ㅡ.,ㅡ 영향 받은 작가로 마크 로스코랑 프란시스 베이컨 꼽던 데... 그림에서 두 사람 삘이 나는 듯요. (잘 모르지만 아는 척 ㅠㅠ) 페인팅 말고도 에칭이랑 조각들도 있던 데 더 자세한 작품세계 탐색은 능력밖이라서
<음악을 사랑한 늑대 the wolf who loved music> 이 책의 그림이 마샬 아리스만의 작풍과 많이 비슷해요. 예기로 긁어낸 표현과 실루엣 처리 등등 크리스토프 갈라즈가 글을 썼는 데 이 사람도 검색해 보니
오...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백장미>에 글을 썼군요. <백장미>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실 듯해요. 내용은 이러합니다.
(유난히 행간이 넓은 것이 눈에 띕니다) 배경은 스위스네요. 애니는 바이올린을 켜는 데, 매주 교수레슨을 받아요. 어느 날, 애니는 바이올린을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이 듭니다. 언뜻 회색의 뭔가가 보였던 것도 같은 데.. 부모님이 잠든 애니를 찾아냈는 데...늑대 발자국도 같이 발견합니다.
사람들을 모아 숲을 샅샅이 뒤집니다.
잡혔습니다.
늑대는 이렇게 죽었습니다.
책은 이렇게 32페이지로 끝납니다. 이건 토끼라서 안쓰럽다면 늑대는...? 늑대를 죽이는 것은 정당할까요?
그는 단지 음악을 사랑했을 뿐인데.. 그런데, 이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먼저...페이지 시작마다 악보가 그려져 있어요.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 중 피터의 테마 디즈니 애니메이션말고 이 영상이 좋아서 가져옵니다. A Classic Cartoon Tale By Mel-O-Toons (1960)
곡 해설을 읽어보시면 결말 부분에 늑대의 꼬리에 올가미를 채워 잡았지만 죽이지는 않고 동물원으로 가는군요. Charles Mikolaycak 의 그림도 그랬고요. 에릭 바튀의 책에서도 이렇게 처리했어요.
피터가 늑대의 꼬리에 올가미를..
사냥꾼이 총을 쏘는 걸 막고
에릭 바튀 책에서는 동물원 언급은 없네요. 그냥 잡았다고만 했군요. 그런데 왜 '음악을 사랑한 늑대'는 죽었을까요?
<빨간 모자>는 낯선 존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한 동화로 읽히지만 실상 성폭력의 가해자는 오히려 주변인물, 면식범인 경우가 많죠.
아.. ㅠㅠㅠㅠㅠㅠㅠㅠ 창은 커지고 문도 달렸는 데, 창 밖의 쥬라산맥은 여전한 데..... 삶을 놓아버린 듯한 애니의 표정이며 잘 아시다시피 빨간 모자는 빼로 버전과 그림 형제 버전이 있죠. 페로 버전에서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가 빨간 모자도 잡아먹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림형제 버전에서는 사냥꾼을 등장시켜 늑대의 배를 가르고 빨간 모자와 할머니를 살려냅니다. 애니 엄마가 애니에게 읽어 준 <빨간 모자>는 결말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애니는 숲으로 들어갔지요. 출처의 인터뷰에서 Grimm's fairy tale 이라고 했더라고요. 애니의 부모와 사냥꾼들은 제대로 단죄한 건가요?
눈동자 표현을 보니 <벽 속에 늑대가 있어>가 생각났는 데..
이 책도 <음악을 사랑한 늑대>와 같은 해 2003년에 출간된 책이네요. |
| 음악을 사랑하는 늑대라니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인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음악쪽으로는 미술쪽보다도 더 무지한 내게 음악을 사랑한 늑대가 나타나다니.. 웬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마음을 살짝 뒤로 숨기고 책을 본다. 그렇게 숨겨놓았던 마음이 더욱더 적나라하고 더욱더 가슴아픈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늑대에 비해 그 감상을 모르는 어른이 느낄수 있는 정도의 자격지심문제가 아니었다. 애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보는 각자는 많은 생각과 느낌이 들지 않을수 없을것 같다. 무엇이 잔인한 것인지 그 잔인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잔인함이 주는 슬픔. 잔인함을 당하는 슬픔. 그것을 지켜보는 슬픔. 그 모든것을 감싸는 감미로움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외로움은 어떻게 달래지는지... 애니가 가장 외로웠을까. 음악을 사랑한 늑대들이 외로웠을까. 왁자하게 떠든 어른들이 외로웠을까. 모두가 그 주체와 그 객체가 될수 있지 않을까. 음악을 사랑하는 늑대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보다 더 자연의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 그 자체로 그대로를 즐거워할수 있을지 모른다. 누가 어째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자신의 태어난 본성대로 살아갈뿐인것을 그것을 인간의 기준에서 악하고 나쁘다 평한다. 늘 이야기책속에서도 나쁜역할만 하는 늑대. 그래서 음악을 사랑했어도 그렇게 처참하게 사냥되어질 뿐인것을....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가장 잔인하다는 늑대보다도 더 잔인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또하나의 어른인 나. 애니한테 어떤 위로를 줄수 있을까... 마음이 무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