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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휘옥은 부산대화학과-동국대불교학과-동경대에서 화엄학으로 석박사를 받고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였었고 김사업은 서울대영문학과-동국대불교학과에서 석박사-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동국대 교수를 했었던 경력의 사람들이다. 두사람이 같은 길을 걷는 도반으로서 교수직을 그만두고 3년여에 걸쳐 세계적인 선방들에서 여러가지 선수행을 직접 수행하고서 그 수행법과 참선등에 관해 쓴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일본 임제종의 치열한 선방,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원, 프랑스의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에서, 그리고 다른 프랑스, 스위스등지의 선방에서의 경험과 과정, 수행법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禪이나 비슷한 구도(求道)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두 사람은...2002년 이론과 수행이 하나 되는 삶을 살기 위해 교수직을 버리고 경남 통영에서 배를 빌려타고 20분쯤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섬인 오곡도로 들어가 절벽위에 서 있는 폐교를 구입해서 <오곡도 명상="" 수련원="">을 세워 본인들의 수행과 수행자들을 위한 지도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 www.ogokdo.net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 지난 세월 쓸데없는 생각 많이도 하고 살았구나...."
정말 지난 세월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쓸데없는 생각을 많이도 하고 살았고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것 같다. 본성을 찾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고 모든 것이 공이요 미망이요 心生卽種種法生인 것도 다 알겠는데 (?)....마음으로 알지 못하고 머리로만 따지고 오늘도 세월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뒷산이 파릇파릇해 질 때 쯤...통영 오곡도로 둥근 달이라도 보러 가야겠다...
[인상깊은구절] 중국의 유서 깊은 선종사찰인 천동사의 선방 출입구에는 '염불시수 (念佛是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염불하는 자, 너는 누구냐?' 라는 뜻이다. " 화를 내는 자, 너는 누구냐?" "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 " 백년을 못 살면서 늘 천년어치 근심을 하고 사는 자, 너는 누구냐?" 다 같은 말들이다...... 화두를 학문적으로 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뭐고, 저것은 뭐다'라는 식으로 머리가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는 살아 있는 화두가 될 수 없다. 살아 있는 화두란 '자신의 온몸과 온마음이 화두에 대한 의심 하나로 뭉쳐진 것'을 말한다. 화두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 하고, 자기 자신이 완전히 죽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새로운 경지가 펼쳐지게 된다. " 좌선중에는 시간이 언제 지나 갔는지도 모릅니다." " 지금 시간 같은 것을 말할 때냐? 그런 상태로는 백년이 흘러가도 안된다."..... "좌선중에 갑자기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다시 인터뷰 시간. 사야도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괴로움을 겪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라고 했다. 상대는 자신을 미워하는지도 모르는데 미워하는 나만 괴로움을 당하니, 미움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잘 살피라는 것이었다. 나는 시공간속의 한 점인 것 같았다. 이어서 몸은 느낌뿐이고 육신이 있다는 것은 관념일 뿐이라는 체험을 했다. 몸앞에 한없이 긴 터널이 전개되었는데,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사라졌다. ....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먹은 소, 돼지, 닭은 몇마리나 될까? 이 동물들이 비록 제발로 와서 잡아 먹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들이 바친 생명의 은덕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몸을 유지하기 위해 시금치와 배추는 또 몇포기나 먹었을까? 이 모든 존재들이 지금 내게 와 자기 몫을 찾아간다고 하면 내몸에서 나는 것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수많은 중생의 살과 피, 그 노고와 땀을 먹으며 살고 있다. 우리 존재 자체가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에서 시작한 것이니, '나'라는 것은 나 아닌 다른 것 없이는 처음부터 따로 존재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 희생한 소에게 평생 고마워하며 살 듯, 우리도 모든 존재를 향한 고마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나아가 우리를 있게 해 준 사람들과 동식물,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이좋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불교에서는 이런 세상을 '사바세계 (娑婆世界)'라고 한다. '사바'란 우리말의 '인내'라는 뜻으로, 이 세상은 누구나 괴로움을 참고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좀처럼 자기 욕심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불교는 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슬픔과 애환의 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라고 한다. 그러면 슬픔과 애환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고. <반야심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다 공(空)한 것임을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의 바다를 건너셨느니라"....오온이란 일체를 뜻하고 오온이 공하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일체,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것이 사실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는 뜻이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이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변하는 물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면, '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흐르는 강물은 가리키는 순간 흘러가 버리고, 잡는 순간 그 흐름이 끊기고 만다. 이토록 괴로워하고, 이토록 아파하는 '나'는 무엇인가?... 중국 당나라때의 유명한 고승 대주 혜해 (大珠 慧海) 스님에 얽힌 이런 일화가 있다. 원율사라는 스님이 대주 혜해 스님에게 와서 물었다. " 스님도 도를 닦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 그럼.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잔다네." " 그거야 모든 사람이 다 하는 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들도 스님처럼 도를 닦는다고 할 수 있겠군요?" " 그렇지 않네." " 왜 입니까?" " 사람들은 밥 먹을 때 밥은 먹지 아니하고 머리나 굴리고, 잠 잘 때는 잠자지 않고 온갖 것을 꾸미고 비교 하고 있지. 그게 나와 다른 까닭이야." 서양의 대학에서는 연구의 과제도 그 목적도 거의 대부분 외부 세계에 관한 것 뿐이다. 아무리 연구가 진행 되더라도 마음의 문제는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한 교육은 사람에게 행복이나 만족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사실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그런 종류의 교육과정을 통해 정신적인 행복이 오히려 종종 감퇴해간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 문자에 집착하게 되면 경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을 보는 것이 되고, 염불에 집착하면 소리와 이름, 모양에 집착하게 된다. 어떤 방법을 통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은 이렇게 말했다. " 불교에 대해 알려고 하면 단 세가지만 분명하게 알면 됩니다. 바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이지요. 이 셋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인간은 자아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되고, 자아때문에 늘 무엇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를 약화시켜야 합니다. 자아를 없애서, 다시 말해 아집을 없애서 무아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무상과 고를 골수에 박히도록 생각해야 합니다." 보름달과 솔바람이 어울러진 한밤의 법당에 앉아 좌선하고 있노라면, 늘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 지난 세월 쓸데없는 생각 많이도 하고 살았구나...." 반야심경>오곡도> |
| 과거에 성철스님이 쓰신 책의 제목이다. 나는 누구인가? 불교의 영원한 화두다.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적어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 아리스토 텔레스의 금언처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 아닐까? 그야말로 생각은 빼고 동물만 남는게 아닐까!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사람답다는 것은 내가 누구 인지를 반드시 봐야 한다. 그리고 어디서 와서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나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저자는 동상이 걸리고, 졸음이 닥치고, 죽음이 두려운 상황에서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매진한다. 나는 누구인가? 교수라는 편안한 동물의 상황을 버리고 여러나라를 떠돌며 진리를 찾는 고난받는 수행자인 인간이 된다. 진짜 인간이고 싶다면, 진리가 무었인지 알고 싶다면, 또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 세상에서 가장 버리기 힘든 욕망중 하나가 명예욕이라고 한다. 이 책을 쓰신 두 분은 대학 교수라는 남 보기에 부러운 직업을 미련없이 놔 버리고 본인들의 길을 가기로 맘 먹은 참자유인들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도인'은 무슨 도술이나 부리고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라고들 알고 있기가 쉽다. 그러나 묵묵히 자기가 가고자 맘 먹은 길을 걸어 가는 이, 그 사람이 바로 道人이다. 결코 쉽지 않다. 몰라서도 못가지만 길을 알아도 못 간다. 뻔히 길이 보이는데도 안가고 못간다. 그 발걸음을 붙드는 게 욕망일까? 어리석은 껍데기 뿐인 거짓 나일까? 아님 나의 나쁜 업일까? 이 분들은 직접 세계 이름 난 수행처에서 수행에 매진해 본 사례를 책에서 소개함으로써 많은 구도자들에게 나침판 역할을 하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진정 바른 길를 찾고자 하는 그 발걸음 마다 맑은 샘물이 솟아 나는 것처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진다. |
| 선(禪)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헤매이면서 찾았던 하나의 화두였던가? 두 젊은 불교학자가 모든 일을 내팽겨치고 화두를 찾아 세계속의 선방을 찾아 고생한 수행기는 그 제목만큼이나 저자로 하여금 화두를 찾아 헤매이도록 만드는 것 같다. 일본 임제종, 미얀마의 위빠사나, 프랑스 플럼 빌리지, 그리고 스위스와 프랑스 관음선원등 저자들이 찾아서 배우고자 노력했던 선방들의 고행기는 직접 겪어내고 체험했기에 더욱 더 값진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비록 우리나라와 하는 것은 틀릴지라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화두에 대한 여정의 가치는 어디에서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화두를 향한 온 몸을 불사르는 열정을 가진 두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의 뼈를 깎아내는 수행기를 두 눈으로 지켜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의 화두는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하나의 화두가 생겨버린 것 같았다. 삶에서 화두를 찾아 자신을 걸고 또 노력하며 목표를 찾아가는 두 사람의 수행기를 보며 괜시리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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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 장휘옥 김사업 지음/ 더북컴퍼니 불교에는 다양한 수행법이 있고, 어느 수행법이라 하여도 나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장휘옥, 김사업 이 두 불교학자가 몇 년 동안 세계의 이름난 선방을 찾아 다니며 수행을 하고 해당 선원의 수행방법을 소개한 책이다. 바로 이웃에 있는 일본, 불교에 관한 연구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으면서 그 저변 인구는 많지 않다는 정도로 아는 편인데, 일본 임제종의 화두수행에 관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입실과정에서부터 ‘니와즈메’, ‘단가즈메’라는 혹독한 단계를 거치고 수행 중에도 비장할 정도로 계절과 기온을 완전히 무시하고 혹독한 과정을 겪는 수행이다. 진리를 향한 제자의 열정이 없는 한 진리는 제자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제자의 열정을 북돋우기 위한 방편이며, 절절함과 사무침 그리고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임제종에서는 수행자에게 화두를 주고 깨달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 스승에게 깨달은 바를 보이도록 하는 ‘독참(獨參)이라는 문답이 있어 스승과 수행자 사이에 선문답이 벌어지고 가차없는 스승의 질책이 휘두르는 주장자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 겨울에도 출입문과 창까지 모두 열어놓고 계절구분 없이 간단한 옷차림으로 추위에 노출되어 동상에 걸려도 아랑곳 없이 오직 화두만 들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죽음보다 더한 수행자의 구도정신이 보여지는 듯 하다. 다음은 대념처경에 근거하여 남방불교에서 비롯된 ‘위빠사나’인데 미얀마를 찾아간다.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에서 대표적인 수행법인 ‘위빠사나’는 근래 국내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을 그 순간에, 어떠한 분별이나 어떻게 하고자 하는 의지작용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분명하게 아는 것”이라는 위빠사나이다. 일본 임제종에서 ‘독참’이 있었듯 위빠사나에는 ‘인터뷰’가 있다. 독참에서는 스승이나 제자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딪치지만 인터뷰는 전반적으로 부드럽다. 수행자가 수행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면 스승은 수행을 고쳐주고 가르침을 주기도 하며 더욱 향상하도록 수행자를 격려하기도 한다. 수행 중 모기가 자신을 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모기를 죽이거나 쫓지 말라고 한다. 대신 모기가 자신을 물고 있는 전 과정을 알아차리고 그 때 일어나는 마음작용을 관찰하고, 죽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그 즉시 “모기를 죽이려는 잔혹한 마음이 있구나”하고 알아 차려야 한다. 모기가 피를 다 빨아먹고 날아가면 모기의 안녕을 기원한다는데.. 우리에겐 가능할까 다음 장에서는 ‘틱낫한’스님이 설립한 프랑스 ‘플럼 빌리지’에서의 수행이다. 아마 불교관련서적 중에 국내외를 망라하여 가장 많은 책을 낸 분이 ‘틱낫한’스님 아닐까. ‘다이케이’라고, 일종의 종 명상으로 이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동작을 멈추고 종소리가 멎을 때까지 호흡에 집중하는데,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삶을 잠깐 멈추고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플럼 빌리지의 수행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호흡과 걷기 명상을 통해 심도 있게 알아차리고 모든 존재가 그물처럼 연관되어 있다는 자각 속에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일상에서 깨어있는 것을 통해 나와 이 세상이 하나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여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유럽의 선방을 찾게 되는데 티벳 불교를 계승한 스위스 로잔 인근의 선원을,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의 미국인 제자 우봉 스님이 운영하는 파리 관음선원을 간략히 소개한다. 이 책은 일본 임제종의 수행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직접 이 수행에 참가하여 독참과정을 거치며 스승과 마주치며 겪는 고유의 갈등(?)까지 소개하는, 독자의 주의를 끌게 한다.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공감대를 엿보게 된다. 반면 플럼 빌리지에서 탁낫한 스님이 창시한 수행법은 수행이라기 보다 단체 수련회 같은 성격으로 치열한 수행과정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왜 수행을 해야 하는가 살아가면서 겪는 숱한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걸림 없는 대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백 년을 못살면서 늘 천 년어치 근심을 하고 사는 자, 너는 누구냐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을 하든 매순간 이러한 의문을 가져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두 저자는 올해 초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 격으로 <무문관 참구>를 출간한 바 있다. 저자 장휘옥의 <정토불교의 세계>는 정토불교를 만나는 입문서 성격으로 유익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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