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보다 생명의 근원에 더 가까운 아기의 살결은 얼마나 부드럽고 빛나는지 보기만 하면 손을 대고 싶어합니다. 투명하기조차 한 아기 살결을 만지고 싶어하는 것은 아름다운 꽃을 보았을 때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마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본능으로 좋아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생명의 본질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기와 꽃과 같은 존재에게서 생명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꽃 같은 존재인 아기는 부드럽고 동글동글하여 말소리조차 옹알옹알 부드럽고 동그랗습니다. 모름지기 생명은 부드러움과 동글동글함에 가깝습니다. 생명의 물질을 이루는 요소들은 어떤지요. 물은 부드럽게 흐르고 공기는 둥근 가벼움이며, 흙은 보들보들하고 불은 솟구치는 유연함입니다. 네 요소 모두 부드러움과 동글동글함에 가깝습니다. 생명의 본질이 부드러움과 동글동글함에 가깝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지요. 부드러움과 동글동글함과는 거리가 먼, 직각이 이루는 딱딱함이 아닌지요. 도시 생활 역시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 / 척척 접히는 계단 길 에스컬레이터도 / 아파트 난간도, 버스 손잡이도, 컴퓨터 자판도 / 빵을 찍는 포크처럼 딱딱하다 // 메주 띄울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 쇠기둥 콘크리트 벽안에서 / 딱딱하고 뜨거워지는 공기를 / 사람들이 가쁜 호흡으로 주무르고 있’(「감촉여행」)습니다. 부드럽고 둥근 생명이 감히 발붙이기 어려운 공간, 차라리 반생명의 공간이 도시입니다. 그리하여 직각이 이루는 딱딱한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옥탑방」)이고, 끝내 ‘온 세상은 하나의 탑이 되’(「김포평야」)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도시가 점점 더 딱딱해지고 반생명의 길을 걷고 있다면 새로운 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요. 시인은 이미 그 길에서 온몸으로 살며 시로써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시인은 ‘낯설지 않은 도시를 떠돌다 / 낯선 고향’(「귀향」) 같은 바닷가에 닻을 내렸습니다. 그곳에서 점점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을 멀리한 채 바닷가 움막에 살며 바닷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망에 걸린 물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기도 하고,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 맨발로 지구를 신기도 하며, 그물에 줄줄이 딸려 오는 주꾸미를 배 위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러한 생활 속에서 뻘밭의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뻘밭」)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내 뻘의 말랑말랑한 힘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다다릅니다. 기실 그곳에 생명의 길이 있었습니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무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그렇지만 ‘들이 아닌 강이 아닌 산이 아닌 / 식당에서나 음식물을 만나 / 죽은 고기를 씹고 / 똥을 내리는 물소리나 들으며’(「귀향」) 사는 도시는 이 시대의 대세입니다. ‘더운 곳에 물을 대며 / 살아가던 농촌에도 /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 (「감촉여행」)서 도시를 흉내냅니다. 그러니 도시에서 볼 때 농촌이나 어촌 같은 시골은 어서 빨리 도시화가 이루어져야 할 도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골은 도시의 그림자이고, ‘검은 그림자들이 줄줄이 서 있’(「불 탄 산」)는 불 탄 산 같은 곳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 죽음의 그림자일 뿐’(「질긴 그림자」)이고, ‘그림자가 그림자 먹어 치우는 것’(「고향」)이 우리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점점 딱딱해지는 세상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이 여자 몸 속에 아이 하나 못 심고 마흔을 넘긴 시인이 거대한 부드러움 속에 있기에 더욱 그걸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이 세상을 보는 눈은 흐릿하거나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더러운 호수가 하얀 연꽃을 피우듯 시인은 그림자로부터 일찍이 보지 못한 세상을 꽃피웁니다.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에 색깔의 수를 놓고, 어머니 휜 허리 그림자를 우둑둑 펴게 하며,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를 따뜻하게 하고, 마음의 그림자에 평평한 세상을 세웁니다. 그 어느 세상보다 값지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바닷가 사람들과 더불어 가난하게 살며 뻘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세상이기에 감정의 동요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리하여 ‘함민복은 우리 시대의 축복이다’는 후배 시인 박형준의 찬사는 너무 평이한 수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림자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
| 책 제목이 말랑말랑한 힘인데 “힘”이라고 하면 세고, 강하고, 단단한 것들이 생각나는데 “말랑말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세지 않고, 단단하지 않은 것들이 생각나서 책 제목이 서로 반대되는 말인 것에 흥미를 가지고 보게 되었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말랑말랑한 것이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함민복 작가는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단지 무료라는 이유로 공고에 들어갔고 졸업 후 원자력 발전소에 입사했지만 기계와의 대면이 너무 힘들어 4년 만에 그만둔 후 서울 예술대학 문예 창작과에 입학 후 2학년 때인 1988년에 <성선설>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6년 강화에 정착한 후 시집 <말랑말랑한 힘>과 에세이집 <미안한 마음>,<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펴냈다. 이중 <말랑말랑한 힘>은 출간하여 제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함민복 시인 특유의 유머 감각과 시인의 작품에 대체로 그의 삶이 시에 녹아있다. 구체적인 일상을 소재로 했고 대체로 일상에서 체험한 것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언어를 다루는 기법이 난해하지 않아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앞만 보고 힘겹게 살아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함민복의 시는 대체로 자신의 생애를 바탕으로 쓰였는데 함민복의 생애도 결코 순탄치 않았고, 함민복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시를 통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긴 시와 짧은 시가 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시를 읽어나가는 속도가 정돈될 뿐만 아니라 긴 시만 나오면 지루할 수 있는데 지루할 틈 없이 짧은 시가 나오기 때문에 이 책에 더 빠져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시집에 깊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지금의 딱딱한 도시에서 벗어나 예전의 말랑말랑한 도시의 정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시집 안에는 함민복의 어릴적 이야기들도 담겨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정을 느껴볼 수 있다. 이 시집에서 인상깊게 본 구절들이 있는데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면 살아가던 농촌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라는 구절이다. 예전엔 공동체 의식이 높아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냈는데 지금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곳에서는 서로 딱딱하게 대하는 모습들이 생각 나서 인상 깊었다. 점점 딱딱한 건물들만 들어서는 모습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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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첫 두 시인 ‘나를 위로하며’와 ‘감나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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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첫 두 시인 ‘나를 위로하며’와 ‘감나무’에는 시인은 예언자적 경향이 드러나는 듯하다. “보라”라는 표현이 시 첫 편과 둘째 편에 등장하는 걸 보니, 아마 그는 일상성 속의 비일상성을 깨우치려는 신비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일 게다.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초승달’이라는 시는 일상적인 것에서 비일상적인 것을 보는 시인의 신비로운 묵상의 힘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일상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저 은유의 신비로운 힘 말이다. 시인의 힘일까? 이 시의 힘일까? <초승달> 배고픈 소가 쓰윽 혓바닥을 휘어 서걱서걱 옥수수 대궁을 씹어 먹을 듯 함민복의 시에는 온 세상에 새겨진 사람과 사물의 흔적들 과거들이 계시처럼 이 시인에게 시의 소재가 된다. 벤야민이 미래를 열려고 했던 그 과거가 이 시인의 소재가 된다. 그래서 그의 이 시집은 인물과 사물을 더 이상 고정시키지 않는 힘. 일상성 속의 비일상성을 보는 묵상의 힘. 최선을 다한 묵상이 보여주는 직관의 힘. 세상 모든 것이 성스럽고 신비한 비밀을 제각기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이 묻어 나온 시집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