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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움직인다는 거,
남들보다 천천히 가고, 남들을 앞서려고 이를 악 물지 않는다는 것.
얼마 전 나의 일기를 들춰봤더니 이런 구절이 보인다.
"이를 악 물면 이빨이 빠져. 난 죽어가고 있어!"
나는 왜 이빨이 빠지는 걸 알면서도,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이를 악 물었을까? 무얼 그리 이루고 싶었을까? 이를 악 문다는 건, 자연 상태에 반하는 행동이다. 나의 행위는 온통 적개심에 가득 차서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세우기 위해 불순한 마음을 뭉개뭉개 부풀리는 행위였음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이 책은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앞부분에 노자의 도덕경 1장부터 81장까지의 본문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주가 도덕경에 대한 작가의 해설은 아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도덕경에 관한 학식을 풀어놓는 대신 자신의 살아 온 이야기와 시골에 거처하며 느낀 바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게 도착한 편지를 읽는 것처럼 친근하고 편했다.
예전에 나는 도덕경을 끝까지 읽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정좌하고 도덕경을 감상하기엔 너무 젊었고, 아니 어렸고,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책을 든지 10분을 못 넘기고 졸고 있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특별히 어렵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도덕경을 한 번! 읽은 셈이 되었다. 시중에 있는 도덕경에 대한 해설서들도 내겐 지루하고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졌는데, <느림과 비움="">은 해설서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나, 딱딱한 포장이 벗겨진 상태로 노자를 대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모든 사물은 강장해지면 노쇠해지니 이를 일컬어 도에 어긋난다고 하거니와,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난다' 라는 도덕경 속 구절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강장해지면 노쇠해진다-. 그걸 나는 왜 몰랐을까? 그 동안 강해지려고, 남보다 앞서, 남을 기어코 이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그 속물적 이기심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작가는 '달빛으로 생긴 마당의 그림자는 싸리비로 아무리 쓸어도 쓸리지 않고, 흐르는 물속에 뜬 달은 물에 젖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닻빛으로 생긴 그림자나 물 위에 떠 있는 달은 스스로 무언가를 행하려 하거나 무언가를 도모하려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 그친다는 이야기일까? 아름답다-,고 나는 중얼거려 본다.
가끔 내가 팽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빙글빙글 바쁘게 돌고 있는 나를 세상은 길다란 끈으로 더 빨리 돌라고 채찍질한다. 살갗을 파고드는 채찍질에 놀라 나는 더욱 빠르게 돈다. 빨리, 빨리, 남보다 더 빨리-. 그러나 이렇게 빨리, 빙글빙글 돌면서 내가 과연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 있을런지 의구심이 든다. 어차피 유일하고 유한한 생이라면, 나는 제대로 생과 마주하고 싶다.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이 갖으려고 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를, 작가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묻고 있다. 숨가쁘게 달리는 것과 느리게 걷는 것의 아주 미묘한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삶이 더 행복에 가까운 것인지에 대해, 나는 아직도 욕심을 두 볼에 가득 문 채 생각해 본다.
다만 천천히 걸으면서 꽃의 하품하는 모습이나 개울물의 흐르는 피부결에 꼼꼼히 눈 마주치며 '살아있고' 싶다는 생각은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이 생의 미친 속도를 끊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속삭이는, 작가의 나직한 음성에 잠시 시계를 멈춰 놓아도 좋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도시에서 반생을 협궤열차처럼 흘려보냈는데, 어느 날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더니 마음은 헐어 누추하고 안쪽으로 몇 개의 궤양과 누공을 안고 있었지요. 생은 대책 없이 가여웠고, 횡경막 아래에서 기쁨의 알들을 부화시키지 못하는 벙어리 종달새 몇 마리는 침울해 했습니다. 마음이 자주 몸을 비우니, 난파선 같은 몸만 반인륜적이고 뻔뻔스럽게 시끄러웠지요. 몸을 나간 마음은 어딘가 고아원 복도 같은 차가운 공기가 웅성이는 곳을 떠돌며 쉬지 않고 딸꾹질을 해댔습니다. 구석에 기댄 채 녹아내리는 제 영혼을 뚝뚝 떨구고 있는 검정 우산보다도 내 몸은 쾌할하지 못했지요. 이때 딸꾹질은 의로움 위에 생을 세우지 못한 자의 뼈아픈 자책과 그 자책에 대한 꾸지람의 의전儀典이라 여겼던 것이지요. 느림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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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년 동안 주말을 이용해 동해 해파랑길을 걸었습니다. 해파랑길은 직선화된 7번국도 옆으로 나 있는 구불구불한 옛 바닷길을 따라 난 길입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오륙도 앞바다에 이르기까지의 770킬로미터 여정은 한마디로 삶의 속도를 바꿔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동차로 몇 십분이면 쉽게 가는 거리를 한나절을 들여서 천천히 걸으면서 다른 세상을 느껴보는 것이지요. 목적지를 향해 최단시간을 추구하는 우리의 일상이 직선의 시간이라면 속도를 줄여 천천히 걷는 시간은 직선의 시간 바깥에 있는 풍경과 그 풍경이 일궈내는 또 다른 삶을 느끼게 합니다. 자연의 삶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은 시골에 내려가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일 것입니다. 도회지 생활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하지만 실행하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가진 수많을 것들을 내려놓고 비워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삶을 실천하면서 노자의 <도덕경> 속에 담겨진 참된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덕경의 구절들을 먼저 풀이하면서 자연에서의 삶이 주는 교훈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합니다.사실 도덕경의 구절들은 직설적인 사실 전달이 아닌 우주와 삶의 본질에 대한 우회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직선적인 방법이 아닌 곡선적 접근입니다.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아닙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무한의 존재를 말로써 한정지운다면 그 진실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도덕경이 주는 의미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에 빗대어 전달하려고 시도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상생과 융화의 삶, 가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비움을 추구하는 삶, 속도경쟁보다는 느릿느릿한 걸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이 모든 것들이 노자의 <도덕경>이 이야기하는 곡선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덕경을 읽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어 보입니다. 5천자에 불과한 <도덕경> 글자 한자 한자를 읽어가며 의미를 찾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스승을 모시고 오묘한 진리를 하나씩 터득해 나갈 수도 있겠지요. 반면 이 책이 시도하는 것처럼 자연의 삶 속에서 도덕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연결시켜 주는 방법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 책은 담백하고 느리고 비움을 추구하는 그런 자연을 닮은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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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사상은 동양철학의 양대산맥으로서 그 위치가 확고
한편 도덕경에 대한 주석서도 매우 많이 출판되었지만
장석주 시인의 번역본은 제목에서 보듯이 도덕경을
도덕경을 풀이한 부분도 매우 잘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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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다 읽기도 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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