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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술관을 갔다
직장에 막 들어갔을 때 입사동기 동생이 미술관을 가자고 한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였다.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전시회란 곳을 가보지도 못했지만 남자 둘이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미술관에 갔다. 열심히 그림을 보는 녀석에게 샤갈에 대해서 좀 아냐고 물었을때, 쿨하게 "그냥 보는 거지 머"라는 답이 나왔다. 그림에 대해서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가 있을까. 보는 만큼 느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보다시피 한 때 비난 받았던 그림이 뒷 날 다시 재평가 받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았던가.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분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왕 그림을 보는 것, 그래도 좀 사전 지식이라도 쌓고 이 그림이 어떤 의미가 있고 배경이 있는지 알면 좋겠다 싶다. 그런 그림 문외한 들을 위해서 쿨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나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기"라는 글을 시작으로 서양 미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강점이다. 이 책이 그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지만 샤갈 퍼즐 하나를 사들고 근처 두부전골집에서 한 끼를 마친 전시회 관람이 그렇게 끝났다. 마음으로 공감하는 미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 멋 모르고 갔던 미술관을 떠올리며, 이제 다시 이 책을 통해서 "방구석 미술관"을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을 위한 미술이 되기를 바란다는 글쓴이의 말을 시작으로 에르바르트 뭉크에서부터 마르셀 뒤샹까지, 미술의 문외한일지라도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이 글쓴이의 손을 걸쳐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 [흡혈귀, 에드바르트 뭉크, 1895, 이 책p19] "죽음 앞에 절규한 에드바르트 뭉크, 사실은 평균 수명을 높인 장수의 아이콘"란 제목으로 에드바르트 뭉크를 시작으로 방구석 미술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익살스러운 글이 이 책을 통해 어렵게만 느껴졌던 서양 미술에 쉽게 다가갈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화가의 특징을 잘 잡아주기도 합니다. 뭉크는 <절규>라는 작품이 유명한데, 붉게 보이는 배경과 귀를 감싸 쥔 해골 얼굴이 죽음앞에서 소리지르는 듯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는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뭉크의 말로 시작하는 글은 뭉크가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마주치며 성장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그런 삶에 따라 그림에도 죽음이 많이 녹아들어갔겠지요. 위의 <흡혈귀>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에 젖은 뭉크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죽음과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라, 참 어려운 삶을 살았네요. 그렇지만 또 장수했다는 것이 반전입니다.
[[영화 프리다, 2002년 작, 의 한 장면입니다.] 불구가 된 몸으로 힘겹게 그림을 그리는 프리다 칼로의 고집스러운 모습이 잘 나타난 컷에는 <부서진 기둥, 1944>그림이 보입니다. 프리다는 교통사고로 크나큰 고통을 받는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프리다 칼로와 바람둥이 예술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막장 드리마"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자기표현"을 그려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멕시코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예술이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은 디에고였다고 말해줍니다. "알고 보니 원조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란 제목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막장 드라마에 비유해서 그려낸 글쓴이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프리다 칼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 <마리아를 경배하며(la Orana Maria),1891, 폴 고갱, 이 책 p164> 요즘 직장 생활이 힘든 직장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퇴사에 관한 책이 종종 나오는데요, 이 책에서는 "알고 보니 원조 퇴사학교 선배?, 자연의 삶을 동경했던 폴 고갱"이란 제목으로 폴 고갱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위 제목에서 고갱 삶의 큰 특징을 두 가지로 짚어주는데요, 퇴사라는 말에서는 원래부터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과 자연의 삶을 동경했던 이라는 말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떠하겠다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각 화가를 소개하는 제목이 익살스럽지만 그 제목에서 화가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이 이 책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고갱은 페루에서 살았고 답답한 파리 도시 생활 속에서 증권맨으로 생업을 했다고 하지요. 그 와중에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고 피사로를 만나 화가의 삶을 이어갑니다. "지금 나는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는 말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말했던 고갱은 오직 그림을 통해서, 노력을 통해서 그림을 그려나가고 결국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는 시골로 주제를 옮겨가게 됩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는 자연 속에서 언뜻 도시 혹은 문명의 모습을 담아낸 듯 하네요.
![]()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빈센트 반 고흐> 강렬한 노란색이 담긴 그림에는 고흐의 생전 열정이 담긴 듯 합니다. 하지만 반 고흐가 있던 시절은 압생트라는 녹색 술이 있었고 고흐는 이 술로 인해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같이 귀를 자른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열적인 그림을 그리던 중 도움을 주던 동생 테오가 죽자 결국 압생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저렇게 강렬한 노랑이 담긴 그림을 남겼으니 그의 정열적인 예술적 영혼의 극대치를 담아낸 듯 하네요.
![]() <나와 마을, 1911, 마르크 샤갈, 이 책 p274> 오래 전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샤갈의 작품이 이 책에서도 나옵니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제목처럼 입체적으로 해석해서 다양한 색을 입힌 그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목을 휘어 키스하는 모습의 <생일>이란 작품도 샤갈의 대표적인 그림입니다. 그림만 볼 때는 재미있고 다양하고 그런 느낌이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러시아의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라났던 그의 어린 시절 삶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힘들게 살았던 마을이지만 멀리 떠나 있어서인지 <나와 마을>에 그의 어린 시절 마을에 대한 향수를 담아놓았나 봅니다. 이 이외에도 19금 예술을 하고 반항아적 예술을 한 클림트나 그 뒤를 이은 에곤 실레, 로맨틱 풍경화를 그린 클로드 모네와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세잔 등등 이름만 들어도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화가들의 작품 세계를 고지식하게 지식백과 보듯 들여다보면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요? 이 책에서는 그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익살스런 제목에 화가의 특징을 담아내고 그의 일생에서 특징만 짚어서 이야기해줍니다. 제목만 읽어도 벌써 느낌이 오지요. 화가의 이야기가 끝나면 [더 알아보기]를 통해서 화가에 대해서 추가로 설명을 해주고 아래 QR코드를 통해서 팟캐스트를 연결해줍니다. 글쓴이의 목소리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화가의 삶과 그림을 마주할 수 있겠네요.
보는 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 그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예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하던 전시회를 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사전 지식 없이 그저 보고 느끼는 것도 나름 괜찮았던 듯 싶습니다. 그래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화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짝 엿보고 미술관에 가는 것이 좋겠네요. 재미있는 글쓴이의 해설과 함께 한다면 좀 더 화가들과 가까워지고 그림에 친숙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기본 지식을 쌓고 다시 보이는 대로 마음이 느끼는 대로 그림을 보면 이전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 다가오겠지요. |
![]() 우리는 왜 미술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서양미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우리가 이상하게도 자꾸 서양미술만 즐기게 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20세기의 근대화 과정’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 스스로가 아닌 서구 주도로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적 유산은 과거의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며 단절되었습니다. 반면 서구의 문물은 새롭고 진보된 것으로 여겨지며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이 20세기 내내 일어났죠. 그런 근대화 현상은 서구에서 만든 것이 우리가 만든 것보다 좋다는 착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근대화의 잔재는 현재까지도 사회문화 전반에 남아 있으며, 미술에 대한 인식에도 역시 남아있습니다. (p. 6) <방구석 미술관 2 :한국>은 우리의 이러한 예술적 편식에 균형을 잡아주는 책이다. 그렇다고 한국 미술에 대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의 한국현대미술에 대해 살펴본다. 이중섭, 유영국, 김환기, 천경자, 백남준 등 한국 미술가 10명을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차를 살펴보면 관심이 있었던 화가도 있고, 이름만 알고 있었던 화가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화가도 있었다. 나 역시 미술 전시회나 미술관련도서들을 찾아볼 때를 떠올려보면 거의 서양미술에만 관심이 편중되어 있었다. 서양화의 아름다움을 더 높이 평가했었다. 그런 나의 생각 역시 저자가 말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문화 예술적 편식 때문일지 모른다. 미술에 대한 나의 균형 있는 관심을 위해, 한국미술에 대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보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 ♣ ♣ ♣ ♣ 10명의 화가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화가의 이야기들을 몇몇 소개해본다. 1. 이중섭 나에게 이중섭은 ‘소’를 그린 화가보다도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너무도 그리워했던 화가로 기억된다. 몇 해 전에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들>이란 책으로 이중섭 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시대의 불운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 살다 쓸쓸히 삶을 마감했던 이중섭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의 그림들이 인상깊었었다. 이 책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 전쟁으로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가족의 사랑 안에서 행복을 그려 낸 이중섭의 작품이다. 따뜻한 색감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열매들의 모습에서 편안함,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우리는 왜 이중섭을 국민화가라 부를까요? 아마도 그의 삶에서 나온 소를 비롯한 모든 그림이 20세기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타인의 삶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 자체를 소에 이입해 그렸죠. 그가 겪은 고난과 아픔은 당시 한반도 위에서 생을 이어가던 모든 이의 고난과 아픔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과 아픔을 직접 겪어본 적 없지만, 이상하게도 중섭의 그림을 볼 때마다 마치 기억 속에 묻어둔 어떤 파편을 끄집어내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마 중섭이 시대의 산증인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그림에 온전히 이입시키고 있기에 가능해진 일일 것입니다. 그 결과, 중섭의 그림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우리와 감정으로 소통합니다. (p. 44)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는 가족과 에너지 넘치는 소를 그렸던 이중섭의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우울하고 힘을 잃어갔다. 그의 불운을 담은 듯한 우울한 분위기의 그림들 속에서 화가가 느꼈을 슬픔과 괴로움이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몇 해 전 제주도 여행 중에 이중섭 미술관에서 보았던 전시 작품 중 크게 와닿았던 작품이 있었다. 화가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함께 그려진 그림의 일부를 전시 벽면에 옮겨 놓았던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 그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그림 중 네 식구가 다 같이 둘러 안으며 위쪽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행복해하는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그림을 보면 그가 가족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들이 함께였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이중섭의 삶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2. 이응노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화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나도 월드 아티스트라면 백남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백남준보다 훨씬 이전에 해외에서 활동했고, 1965년에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까지 받았다는 이응노는 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까? 나는 궁금함을 가득 안고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 1930년대에는 서양의 문물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서화’ (근대화 과정에서 ‘미술’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전, 조선에서 사용한 단어로 글씨와 그림을 아우르는 말 ㅡ p.107)를 그렸던 이응노의 분야는 한물간 것이라는 취급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그는 동양화와 서양화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둘 중 하나를 고르겠지만, 이응노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융합한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아직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기로 한 것이다. ![]() ![]() 생명의 줄기들이 이리저리 엉켜 힘차게 뛰는 맥박의 힘! 생맥<生脈>에서 느껴지나요? 전쟁과 그 후유증 끝에 찾아온 한반도의 봄. 그 훈훈한 기운과 함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온갖 식물의 줄기와 잎이 ‘살아내려는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p. 119) 책에 실려 있는 그의 작품들은 한 사람이 그렸다고 하기엔 너무나 달라 보이는 그림들이라 그의 화풍의 변화가 놀라웠다. <생맥>같은 경우는 나 역시 저자의 말처럼 잭슨 폴록의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동양화의 현대화’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환갑을 앞두고 있던 화가 이응노는 당시로는 화가로서의 성취도 어느정도 이루었던 상태였다. 그는 그 상태에서 만족하고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유럽으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파리 생활 중 한인 유학생들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림재료는 물론 끼니를 떼울 돈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응노는 그림재료가 없어 쓰레기통을 뒤져 신문이나 폐지 등을 주워 와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워 온 종이들을 찢어 붙이는 작업에서 ‘서예적 콜라주’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정말 대단한 의지와 노력의 화가인 듯!!) ![]() <인간추상>을 잘 살펴보세요. 이 작품에서 그는 분명 서예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예가 아닙니다. 즉, 한지 위에 먹과 붓으로 획을 그리고 있지 않죠. (놀랍고 재미있게도) 동양의 ‘한지’를 잘게 찢어 서양의 ‘캔버스’ 위에 ‘콜라주’하며 ‘서예’를 하고 있습니다. (p. 124)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한국 전쟁 당시 이응노의 아들은 북에 강제로 끌려갔다. 북한은 그것을 미끼삼아 유럽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이응노를 북으로 데려가려는 계획을 꾸몄고, 그 일에 대한 오해로 간첩으로 몰리게 되었다. 간첩화가라는 낙인이 ‘이응노’라는 화가를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지게 만든 것 같다. (말년에는 프랑스로 귀화하게 된다.) 그는 옥살이 중에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의지의 화가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무는 그. 매일 조금씩 밥풀을 모아 신문지에 짓이겨 조각을 만듭니다. 간장을 먹 삼아, 화장지를 종이 삼아 그림을 그립니다. 계란껍질을 부채에 붙여 부조를 만들고, 나무 도시락 상자를 조각낸 뒤 합판 위에 밥풀로 붙이고 그 위에 고추장을 뿌립니다. 마치 어린 시절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그림을 그릴 때처럼, 닥치는 모든 것으로 모든 곳에 억압된 예술혼을 불태웁니다. 그렇게 300여 점의 작품이 차디찬 감옥 안에서 탄생하죠. (p. 131) ![]() 시련과 고통은 그를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듯하다. 이응노는 1964년 파리에서 세르누쉬 미술관과 함께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유럽 최초의 동양미술 교육기관이라는 이 곳에서 그는 3,000여명의 유럽 학생에게 한국어로 한국의 전통 서화를 가르쳤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한국어로 수업을 들으며 서예, 사군자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해보며 한국인으로서 으쓱함을 느꼈다. 이렇게 멋진 화가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지금이라도 이 책을 통해서 이응노를 알게 되고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3. 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화가 유영국. 조선의 미술계에서는 개념조차 없었던 ‘추상’을그는 왜 그리고 어떻게 선택하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추상은 도쿄에 소개된 지도 몇 년 안 된 가장 생소한 경향이었습니다. 조선미술계에는 추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추상은 이해받기 어려운 경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영국은 처음부터 가장 전위적인 추상미술을 택했을까요? 바로 ‘자유’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이 보았을 때, 구상회화는 (어떤 양식으로 그리든) 외부에 사물을 그려야 한다는 제약이 있어 보였습니다. 즉, 화가가 무언가를 그릴 때 외부 세계만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 것이죠. 반면, 20세기의 새로운 미적 발명품인 추상회화는 외부에 사물을 그려야 한다는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보였습니다. 즉, 추상회화가 구상회화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외부에 어떤 사물을 그려야 한다는 제약 없이, 과거에 어떤 규칙도 따를 필요 없이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자유롭게 창조한 조형언어를 표현하면 되는 추상미술이 그는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p. 147~148) 그리고 추상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유영국이 ‘미래의 흐름은 추상미술이 될 것이라고 예측’(p. 149)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유영국이 집안 내력으로 물려받은 사업가적 마인드 때문이라 했다. 성공하는 사업가들은 앞으로의 대세가 될 아이템을 미리 캐치하고 뛰어드는데, 유영국의 사업가적 감각이 바로 한국 미술의 미래를 제대로 읽어내어 선점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미술계는 추상미술이 대세’(p.149)가 된다. ![]() 저자가 소개한 이 작품은 1938년 작품이다.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려 보며, 시대를 앞선 매우 현대적인 작품에 놀랐다. 한국 추상화가의 선구자로만 알고 있었던 유영국은 중간중간 어부로도 큰 돈을 벌었고, 양조사업으로도 성공했다. 그의 남다른 사업 수완을 본 주변사람들은 그에게 더 큰 사업을 제안했지만 유영국은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돈은 살아가는 데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p.167) “돈이 없어도 그림을 못 그리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못 그린다.” (p.167) 그가 남긴 말에서 왜 사업을 더 크게 키우지 않았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었을 뿐, 그의 최종 목표는 결국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 ‘한국의 자연’에 담긴 본질을 ‘자신의 추상언어’로 변환해 담아낸 1957년작 <작품(work)>.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누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어떤 이미지들이 연상되지 않나요? 태백산맥의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검은 능선, 뜨겁게 지는 붉은 태양에 물든 샛노란 하늘, 산에서 들판으로 이어진 울창한 초록 나무 숲, 풍년을 알리는 누런 밭, 그 경계를 희망차게 감싸안는 푸른 동해. 그 독창적이면서도 극도로 절제된 기하학적 형상들이 모여서 이룬 구성미가 느껴지나요? (p. 170~171) 초기 작품에 비해 좀 더 한국적인 느낌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한국의 자연을 유영국만의 개성으로 새롭게 표현해낸 그의 작품은 익숙함 속에서 감동을 전해준다. 4. 김환기 ![]() (책에 실린 그림은 작은 크기여서 그런지 큰 감흥이 없어 좀 아쉬웠다… ) 김환기 화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과 한국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점이다. 김환기의 <우주>라는 작품은 2019년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132억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또한 ‘가장 비싼 한국 작가의 작품 10점 중 9점이 모두 김환기의 작품’(p. 227)이라 한다. 그의 작품들은 왜 그렇게 비싼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미술사적으로 한국 20세기 현대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p. 227)이라고 말한다. 김환기는 유영국과 더불어 한국의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며, 단색화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제 그가 순수추상이 아닌 반추상을 고집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조선의 미’를 누구든지 명확히 알아보고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누가 보더라도 그림 속에서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들, 솔잎을 닮은 초록 쥘부채들, 총천연색 하늘빛을 자아내는 해와 달, 그 옆에 새초롬하게 나는 새를 찾을 수 있습니다. (p. 233)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로, 한국인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자기 만의 길을 만들어 간 김환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가 믿는대로 나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화가로 쌓아 온 커리어를 적당히 누리며 살수도 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의 아내와 함께 파리, 뉴욕으로 건너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엄청난 작품가로 유명한 화가여서 그랬는지, 그가 힘들게 그림을 그린 줄은 몰랐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여러 번 겪었지만, 아내와 함께 묵묵히 헤쳐나가는 그의 삶의 행로는 나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주었다. 자신을 믿고 그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는 삶. 하고 싶은 것을 해내고자 기회를 만들어내는 용기. 당장 앞이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가며 천천히 나아가는 삶. 김환기의 그림뿐 아니라 그의 삶도 나에게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5. 천경자 ![]() 논란의 그림 ‘미인도’의 천경자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녀의 그림이라면 꽃과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천경자는 꽃과 여인, 그리고 ‘뱀’의 화가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고통을 뱀을 그려냄으로써 해소하고자 했다. 그런데 화가는 악의 상징, 고통을 주는 존재로 그려내던 뱀에게서 뜻하지 않게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한다. 뱀에게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저주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슬픔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서러움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저주스럽고 서러운 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시키는 생명력, 이게 바로 ‘인간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것이 자기 예술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녀는 깨닫게 됩니다. <생태>로 얻은 이 깨달음은 이후 그녀의 작업에 원동력이자,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자 주제로 자리하게 됩니다. (p. 318~319) 이 챕터를 읽으며 오래 묵혀둔 천경자 화가의 평전을 책꽂이에서 꺼냈다. (드디어 이 책을 읽을 때가 왔다.) ♣ ♣ ♣ ♣ ♣ 저자는 화가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 속에서 이어진 그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림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작품과 그것의 해설만을 듣는 것 보다 화가들의 삶과 연결 지어 보니 그들의 작품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았다. 서양 화가들의 작품만을 주로 즐기고 좋아했던 나에게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은 한국의 화가들도 그들 못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앞으로는 더욱더 전시회를 열심히 쫓아다니고(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얼른 사라지길..ㅠㅠ) 한국 미술 도서 또한 더 열심히 읽을 것 같다. (벌써 장바구니에 또 다른 책을 집어 넣고 있는 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화가들이 살아낸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선택, 삶이 주는 시련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모습, 자신만의 길을 찾아 걸어가는 의지와 용기. 이 책은 나에게 한국의 미술 작품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메시지도 전해주었다. (사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크게 와 닿았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은 이전에 <방구석 미술관 1>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에게, 쉽고 재미있게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화가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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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하고 ebook에 실린 내용이 차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이북 내용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주문한 책을 보니 책 두께가 생각 보다 두꺼워서 목차를 보니 이북과 다르네요 이럴꺼면 제가 이북을 왜 삽니까? 제가 잘 못 산건가요? 아니면 원래 이렇게 이북은 만들어진건가요? 아무런 말이 안 적혀 있어서 여기에다가 글 남깁니다 어쩐지 이북 읽는데 이북에 피카소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에는 있네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주세요 내용은 좋고 재밌는데 이것 때문에 기분이 나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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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구석 미술관]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조원재 님의 신간입니다. 1편 서양 근대미술 편이 2018년에, 한국 화가를 다룬 2편이 2020년에 나온 후, 5년 만의 신간입니다. 이번 책에는 보는 것 만으로도 한 없이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 미술을 친절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총 6명의 현대 화가가 등장합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1872~1944, 네덜란드)이 첫 테이프를 끊습니다. 점,선,면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추상의 거장. 전위 미술의 선도자. 순수 추상의 선구자. 신조형주의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고흐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입니다. 그 다음으로 살바도르 달리(1904~1989, 스페인) 입니다. 초현실주의의 대명사. 초현실주의란 호안 미로의 정의에 의하면 “무의식으로 예술하자는 생각”입니다. 달리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은 시계가 녹아 흘러내리는 <기억의 지속>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은 많지만 그림 자체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자신 보다 열 살 연상의 갈라를 자신의 뮤즈로 평생 모셨던 사람. 미술가로서 돈으로 재벌이 된 최초의 작가입니다만, 기구한 말년 인생을 맞이한 사람입니다. 행동 자체가 奇行이였고, 우스꽝 스러운 모습과 콧수염으로 한 번 본 사람이면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외모를 가진 분입니다. 세번째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 20C 현대미술의 거장입니다. “미술가는 타인이 아닌 자신이 사물을 보는 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분입니다. 보이는 대로 푠현하다 보니 사람의 모습이 성냥 크기로 작아 집니다. 이후 볼륨감이 업 되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삐쩍 마른 형태의 조각상으로 변모 합니다. 사뮤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무대에 무대장치로 나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두 명이 등장해 둘 간의 대화로 진행되는 연극이 현재도 절찬리 상연중 입니다. 우리나라 무대에서는 신구 님과 박근형 선생님이 출연하시더군요. 미국 현대미술의 전설 잭슨 폴록(1912~1956, 미국)의 이야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입니다. 알코올중독자이자 망나니의 대명사. 달리와 비슷하게 네 살 연상의 클래스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미술사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했을 듯 합니다. 구리 광산으로 갑부가 된 벤저민 구겐하임(1912년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다 사망. 그의 유산이 딸에게 상속 됨)의 딸 페기 구겐하임(뉴욕에 달팽이를 연상시키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에 의해 후원을 받았는데요. 특히 캔버스를 이젤이 아닌 바닥에 내려 놓고 물감을 떨어 뜨려 작업하는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기법으로 작업한 분입니다. 완성된 회화 작품에만 관심을 두었던 전통적 관점이 아닌, 화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행위에 초점을 둔 Acttion Painting으로도 유명하죠.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자이자 삶의 기행 만큼이나 음주운전중 나무를 들이 받고 사망한 죽음마저도 기이합니다. 다섯 번째 장은 색면화가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1903~1970, 미국)입니다. 유대인. 추상표현주의자중 한 명. “회화 작품 뿐만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공간까지 작품의 일부”라 여겨 전시장의 조명, 위치, 높이, 배경 등에도 끊임없이 관여한 분입니다. “작가가 느낀 감정과 작품 의도를 감상자인 관객들도 똑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의 소유자. 아쉽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1960년대 등장한 회화가 Pop Art입니다. 팝아트의 황제하면 앤디 워홀(1928~1987, 미국). 복제의 화신이지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마를린 먼로, 리즈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 닉슨을 거쳐 자신의 얼굴(자화상)까지 제작 판매합니다. 그 유명한 켐벨 수프 캔 도 유명하지요. 자신의 작업장을 처음엔 <공장>으로, 나중에 이전하여 <사무실>로 불렀는데요. 1968년 총격 사건으로 죽을 뻔 하다 살아났다 1987년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조원재 님의 책을 읽다보니 단순한 미술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라기 보다 각 작가들에 대한 評傳인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2편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舊 전남도청 자리에 위치한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선 <뉴욕의 거장들>이란 제목으로 10/9일까지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를 비롯, 21名의 작가와 작품이 전시중 입니다. 책도 다 읽었으니 이번 주말에는 이 전시회장을 찾을 생각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이제 시대 배경과 작가에 대한 상식을 가졌으니 가서 보는 눈도 달라질 것 같네요. 조원재 님의 팬이거나, 미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강추 합니다. #방구석미술관3 #조원재 #독후기록 #피트몬드리안 #살바도르달리 #발베르토자코메티 #잭슨폴록 #마크로스코 #앤디워홀 #현대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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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에 가까운 내가 문학 분야 외에 좋아하는 건 예술과 역사다. 소설을 주구장창 읽다가도 한번씩은 예술분야와 역사 분야를 읽어주어야 뭔가 가라앉는 느낌이다. 특히 예술분야 책을 많이 보게 되는데, 꼭 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림 때문이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여 많은 책을 소장하기도 하고 찾아 읽기도 한다. 조원재의 『방구석 미술관』을 사실 전자책으로 읽었다. 가볍게 읽는 작품이라하여 관심을 두지 않다가 전자책으로 읽고는 도판때문에 아쉬웠다. 도판을 큰 책으로 보아야 마음이 차오르는 것인데 그걸 놓친 기분이었다. 꼭 종이책으로 다시 구매해야지 하다가 그 두번째 책을 만났다. ![]() 이번에는 한국근현대미술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한국미술은 꽤 된다. 그중에서도 김환기와 이중섭, 박수근 등은 꽤 익숙한 작가라 여겼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보니 김환기의 경우 내가 알았던 그림은 거의 점화였다. 유명해졌을 때 그렸던 그림 말이다. 이번에 책 속에서 초기작들을 보고 나는 그 그림이 더 좋았다. 조선백자인 달항아리를 표현한 그림도 좋았고, 그림에서 드러나는 조선에 대한 자부심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 해서다. 우리나라 화가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점화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단순한 그림이 더 마음에 든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 저자 조원재는 그림을 쉽게 설명한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하여도 그가 말하는대로 작가에 대하여 알아가다보면 삶의 궤적등을 알게 되고 작가의 화풍 및 그림에 대한 지식이 깊어진다. 이름만 들어왔다면 이제는 비로소 작가의 삶과 그림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그림에 대한 안목을 높혔다. ![]() 천경자 화가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미인도>라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다. 예술에 문외한인 우리가 보아서는 위작인지 진품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천경자의 그림인 것만 같다. 한국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그림을 이 책속에 수록하여 무척 좋았다. 그동안 화가의 그림을 좀더 알고 싶었었는데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 천경자 화가가 무엇을 추구했는지, 삶은 어땠는지, 그림이 탄생된 배경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천경자 화가 편에서 그가 뱀을 그렸다는 건 생소했다. 수십 마리의 뱀들이 엉켜 있는 그림을 보고 작가가 처한 상황이, 그 마음들이 엿보여 화가에게 그림은 또하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나는 고갱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천경자 화가의 그림이 좋다. ![]() 화가 이중섭 편을 읽을 때면 늘 마음이 아프다. 전쟁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던 것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오히려 그림은 동화적이라 그랬던 듯하다. 돈이 없어 담배갑의 은박지에다 그림을 그려야 했던 고단함은 늘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온통 차 있어 안타깝다. 그의 황소 그림은 또 얼마나 전투적인가. 금방 움직일 듯 역동적이고 힘차다. 시대가 가진 고통의 순간이 그대로 그림속에 표현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책속에서 반가웠던 건 우리나라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던 여성 화가도 있다는 점이다. 그림은 남성 전유물이었다. 그것은 서양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화가를 향한 편견이 더 심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고갱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천경자의 그림외에도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실려 있어 더욱 좋았다. 진취적인 여성답게 그의 삶은 비록 평탄하지 못했지만 한국의 최초 서양화가로서 큰 궤적을 남겼다. ![]() 그림 관련 책을 보다보면 그림을 더 사랑하게 된다. 책에 수록된 그림을 그린 화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림과 화가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데 그게 책이 가진 성과가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동양화로 시작했다가 서양화를 그리게 된 화가들도 있었다. 이응노가 그러한 화가 중의 한명인데 그는 한글을 이용해 문자 추상을 그렸다. 글씨 예술 혹은 민족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비디오 아트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백남준이다.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더 유명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화가 이우환의 그림은 수록된 QR코드만으로 보아야 해서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 저자는 한국미술이라고 해서 한국 화가의 그림만 설명한 게 아니라 서양화가의 그림을 수록해 화풍의 비슷한 면과 다른 점을 설명하여 이해를 도왔다. 앞서 언급했듯 무엇보다 쉽게 설명하여 그림에 가까워지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읽고 알았으면 좋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양의 화가들도 좋지만 우리나라 화가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방구석미술관 #방구석미술관2 #조원재 #블랙피쉬 #책 #책추천 #책리뷰 #예술서 #미술 #한국미술 #미술에세이 #예술에세이 #미술에세이추천 #한국근현대미술 #미술공부 #내손안의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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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 몽크 (p.013)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참, 재미있게 읽읽었지만, 뒷맛이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책은 더더욱 그러한 외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방구석 미술관』은 다시 읽고 싶은,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다.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고 딱 며칠만에 한번을 완독했다. 그냥, 재미로!
시대적 분위기가 읽혀질 때도 있고, 화가의 개인적인 역동 상황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직 원시와 야생만을 그리기로 한 고갱. 이제 가야 할 길이 명료해졌습니다. 지구에 원시와 야생이 살아 있는, 아직 문명의 때가 끼지 않은 곳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자신이 느낀 태초의 순수함을 그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릴 적 5년의 항해 이후 기억 속에 먼지처럼 쌓여 있던 떠돌이 본능이 다시 깨어납니다. 그때는 목적 없는 방황이었다면, 이제는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떠납니다. 원시와 야생을 간직한 곳으로! - p.161
개인사, 시대적 분위기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개인적인 신념, 철학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하는 사람들. 『방구석 미술관』에는 14가지의 인생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읽고 싶다. 처음에는 그냥 흥미진진, 재미로만 읽었다면, 두번 째는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개인사적 인생에서 배우는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명화들을 다시 한번 감상하기 위해서. 아..이렇게 말하니...자꾸 다시 보고 싶어지잖아..나, 지금 리뷰 쓰는 중이란다, 머리야, 자제 좀!
2.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
우리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을 쓰지 않았습니다. 모델의 얼굴 피부색을 보세요. 우리가 아는 피부색이 아니군요. 마치 몇 대 맞은 것같이 파랗고,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때때로 '자연에서 본 색'과 다른 색을 썼던 세잔, 고갱, 반 고흐의 작품에서 마티스는 힌티를 얻었습니다. <모자를 쓴 여인>은 그 힌트를 극단적으로 작품 전체에 적용한 것입니다. 자연에서 본 색이 아닌 자신이 느낀 색을 표현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당시 그림을 본 어느 비평가는 '야수'를 그려놓았다며 비웃었는데요(이것이 야수주의라는 명칭의 기원입니다). 그만큼 당시 마티스는 자신의 예술 인생을 건 배팅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용기 있는 시도는 성공적이었고요. 20세기 좇,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도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 pp. 247~248
이렇게 그림에 대한 설명도 붙임으로서 나처럼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알려주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재미있다는 책읽는엄마곰님께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ㅎㅎ...한줄평 보시면...재미없으면 엄마곰 책임이라는 농담한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농담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결정했다. 가끔은 시대를 통해 바뀌는 인생들 들여다볼 수 있어서, 확장적 책읽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샤갈의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그의 예술 활동에 급제동이 걸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 이념 갈등이 심해지면서 예술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마는데요. 이 과정에서 국가는 샤갈의 구상회화가 아닌, 말레비의 추상회화를 '국가대표 회화'로 채택합니다. 말레비치는 러시아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조인 '절대주의'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샤갈처럼 무언가를 묘사하길 완전 거부하고, 흰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만 그려 넣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선보이죠. 사회주의를 채택하며 유럽 국가들과 이념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든 러시아는 미술도 유럽과 전혀 다르길 원했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유럽 국가의 영향을 받은 샤갈의 그림이 아닌 러시아에서 주체적으로 탄생한 절대주의를 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분위기에서 샤갈의 그림은 정치적으로 쓸모없어졌고요. 국가대표 화가로 올라선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국가가 천시하는 화가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조국에서 더 이상 작품을 팔 길이 없어져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게 됩니다. - P.280
3. 『방구석 미술관』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열네명의 화가들의 인생과 그림을 다룬다. 때로는, 그 화가들과 관련한 다른 화가가 추가로 소개되기도 한다. 각 장의 앞에는 그에 해당하는 화가인 듯한 사진이 실려 있고, 거기에 말풍선이 하나씩 달려 있따. 그 중 폴 세잔의 말풍선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얼마나 힘세게요?" "맨땅에 헤딩은 껌이야!" 이게 대체 뭔소리여? 나도 모른다. 책을 일어보시길! 화가 혼자 얘기하고 혼자서 대답하는 식이다. 이 대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각 장의 맨 끝에는 "더 알아보기"라고 해서, 화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지식인에 들어갈 만한 소개글이 나온다.
이외에도 뒤샹이 미술에 미친 영향은 무척 큽니다. 그는 원작의 유일성을 거부하며 <샘>을 다량 복제해 판매했는데요. 심지어 대표작 수십 점을 귀여운 미니어처로 만들어 가방에 넣어 <가방형 상자>를 만들었고, 이를 일반형/고급형 한정판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런 행위는 1960년대 팝아트 탄생에 영감을.... - p.335
그리고, 이 각각의 끝장에 화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에 대한 토크를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찍혀 있다. 14개의 QR코드가 각각의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보통 한시간 전후인 것 같으니까, 최소 14시간 동안은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관심 있는 화가가 있다면, 토크를 통해 더 자세히 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4.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책들이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고, 별로 인기 없었던 책들이 역주행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방구석 미술관』은 어떠한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방구석 미술관』은 베스트셀러다. 잘 몰랐던 화가들의 생, 그리고 화가들의 그림, 그리고 눈이 즐거운 화가들의 명화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즐거운 한판이었다.
'안티 미술' 뒤샹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평생 예술만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조차 깨부숩니다. 도서관 사서? 예술가? 체스키기사? 자신의 삶을 유일무이한 'Dunchamp Life'로 만들며 삶 자체로 행위예술을 하죠. 삶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남자. 미술을 떠나 삶에 무한한 영감을 주는 마르셀 뒤샹. 변기를 떡받으로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물은 몰카 장인. 이번에는 체스를 떡밥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Life란 무엇인가?' - p.334
『방구석 미술관』을 세번쯤 읽으면, 인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될 것 같은 이 갑작스런 느낌은 또 뭘까.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 나의 과거는 어떤 것이었으며, 나의 현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으며, 나의 미래는 어떠한 것이 오기를 원하는가? 한마디로, Life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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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 2학년 때 방학마다 미술 숙제가 미술 전시회 다섯 군데를 보고 입장권을 붙여서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강제적인 방학숙제였지만 그림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 관심이 그림을 소개하는 책을 찾아보게 한 것이 아닐까. 그림을 소개하는 책을 몇 권 읽었지만, 그 가운데 한국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이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이 우리의 미술에 대해 읽는 첫 책이다. 읽은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반 고흐는 저리가라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처음 소개되고 있는 이중섭은 그의 편지가 담긴 책을 읽었기에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지독한 가난 속에 혼자 죽어간 것은 알았지만 다시 그의 삶을 접하니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나혜석의 삶을 보니 이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이 책에 소개되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로 가장 비싸게 팔린다는 작품의 132억원이라는 숫자가 이들의 피, 땀, 눈물 속에서 탄생한 작품의 값어치라면 이해가 되고 남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에는 10명의 작가가 소개되고 있다. 손에 꼽는 작가가 되기까지 그들의 삶의 궤적은 특별하다. 당시의 가난은 한국인 모두가 겪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들이 특별한 것은 그 가운데 혼을 쏟아부은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대로 두어도 결코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정부가 해준 것은 고문과 투옥, 추방이었다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고 답답한 마음이 들게 했다.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작품은 그 무거운 마음을 상쇄시켰다. 이들의 삶을 알고 비록 작은 지면이지만 작품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상 순수미술을 할 수 없었던 동생이 46세에 다시 붓을 들었다. 내가 해준 것은 고작 신한 유화 물감 24색을 사준 것 뿐인데 그림을 시작한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내가 받은 감동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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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렵다. 그 중에서도 미술은 더 어렵다. 표현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추상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등 무슨 무슨 주의의 작품하면 구분도 안되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알고자 전문서적을 뒤져보면 볼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방구석 미술관>은 좀 다르다. 이 책 한 권으로 지금껏 모르던 미술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선 다른 책들과 다르게 힘을 빼고 "너도 알 수 있어"라고 말하듯 친질하게 맞이한다. 우리가 도통 알 수 없이 유명하다니 유명한 줄 아는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해 그 시작부터 면박주지 않고 잘난척하지 않고 다정하게 들려준다. 읽다보면 화가의 인간적인 면에 우리와 동질감도 느끼고, 작품에 대해서도 '아! 그래서 이런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화가에 대한 이해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 가슴에 울림을 준다. <방구석 미술관>은 제목 그대로 격식 차리지 않고 방구석에 앉아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화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미를 느끼며 그들의 작품을 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처음을 장식한 뭉크에 대해 읽고 나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절규>라는 작품에서 비극적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도 되지만, 생을 알기도 전에 죽음을 먼저 접하고 평생을 죽음과 함께 했던 뭉크가 당시의 평균수명보다 30년이나 더 산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며 <절규>가 희극적으로 보이게도 된다. 프리다 칼로 '루브르가 선택한 최초의 중남미 여성 화가'(50쪽)라 말하는 프리다에 대해 몸이 많이 아팠고 화가인 남편은 바람둥이었고 정도만 알고 있었다. 소아마비로 6세에 성장이 멈춘 오른발, 18세의 교통사고로 척추지지대를 착용해야 했으며 두 차례나 유산을 해야 했고 죽기 전까지 허리 수술을 7차례나 받고, 오른다리는 괴저로 잘라내야 하는 육체적 고통도 모자라 22살이나 나이가 많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편력은 프리다 칼로의 동생과도 바람을 피워 정신적 고통까지 안겨 준다. 정말 저자의 말대로 고통의 여왕답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그린 그림은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는 그녀의 고통을 보기가 고통스러워 힘이 들었다. 1926년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나는 제일 좋다. 에드가 드가 무희의 화가라 불리는 드가. 당시의 발레리나는 무대에 서기 위해 지독한 경쟁을 하고 무대 밖에서는 스폰서에게 몸을 팔아야 했다고 한다. 드가는 평생을 독신으로 금욕적인 삶을 살며 부르주아 남성에게 상처받는 하류층 여성의 애환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그림을 그렸다. 드가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프리다 칼로처럼 고통이 담겨있다. 다른 점은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하층민 여성의 고통, 타인의 고통을 담았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마음이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게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빈센트 반 고흐 저자가 '전 세계가 사랑한 영혼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렇다. 저자의 말대로 나도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사랑한다. 잘은 몰라도 유명한 몇 점은 고흐의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은 영혼의 화가라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녹색 요정이라는 압생트에 영혼을 빼앗겼다고 표현한다. 압생트의 주원료인 향쑥의 주성분인 산토닌의 부작용은 황시증으로 세상을 노랗게 보이게 한다. 알코올 중독을 걱정하는 의사에게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87쪽)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자신의 귀를 자르는 지경이 된다. "반 고흐식 후기인상주의는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색을 향한 100도씨의 열정.' 인상주의가 찰나의 빛이 보여주는 찰나의 색을 포착하려고 했다면, 반 고흐는 그 색이 어디까지 순수하게 정제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지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는 색을 통해 '자연의 생기'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94쪽) 구스타프 클림트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림 <키스>의 화가다. "뭉크로부터 시작된 표현주의는 기득권을 쥔 보수적인 화단에서 분리를 선언하며, '새 시대, 새 예술'을 꿈꾼 독일의 전위적 예술가들에게 전격수용됩니다. 그런 독일 표현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오스트리아에 맞는 표현주의를 담대하게 시작한 화가가 바로 클림트입니다."(119쪽) 저자는 클림트를 가리켜 희대의 반항아라고 말한다. 가난했던 클림트는 빈 미술공예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동생 에른스트와 친구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를 창업해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친동생 에른스트와 아버지가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하자 예술가 컴퍼니마저 폐업한다. 절망을 딛고 일어난 클림트는 빈 미술을 좌지우지한 빈 미술가협회에 대항에 분리주의 그룹을 만들어 자신의 철학과 개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사회적 금기나 규율에 갇히지 않고 인간 내면의 진실을 예술로 표현한 클림트의 곡선, 황금빛 장식성은 당시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을 반영한 결과로 여성의 관능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에곤 실레 실레의 아버지 아돌프 실레는 성병인 매독을 앓았고 이는 어머니 마리까지 감염되어 아이가 사산되고 실레 세 살 때는 누나 엘비라가 선천성 매독으로 열살의 나이에 사망한다. 매독 증세가 심해진 아돌프 실레는 직장도 잃고 고통 속에 살다가 실레 15세 때 사망한다. 그런 아버지를 실레는 정말 사랑했다고 한다. 실레는 "죽음을 부르는 '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 ... 실레는 인한 고통과 불안을 자신만의 예술을 꽃 피우는 영감의 원천으로 승화"(125쪽) 시켰다. 17세에 당시 45세였던 클림트를 만난 에곤 실레는 미술에 대한 철학과 기법에 영향을 받는다. 1909년 19살 빈 미술 아카데미를 자퇴한 실레는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한다. "실레는 자기 예술의 시작을 '자기자신'에서 찾는다. 내면에서 꿈틀대는 불안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자기 확신과 열정을 유일한 무기로 예술혼을 불태운다."(130쪽) 벗어날 수 없는 성욕의 굴레, 주체할 수 없이 타오르는 자기애, 이 젊음의 열기를 숨김없이, 꾸밈없이 선으로 거침없이 표현했다. 이것이 19금 포르노그래피로 보이는 실레의 드로잉에 숨겨진 정신이다.(142~143쪽) 폴 고갱 진보주의 정치부 기자였던 고갱의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은 조국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당선되자 한 살의 고갱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아내의 고향 페루로 향한다. 신문사를 차리는 꿈을 가지고 페루로 향하던 클로비스 고갱은 배 안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고갱은 페루에서 6년 동안 생활한다. 페루 소년 고갱은 친할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6살 프랑스로 돌아온다. 남미의 뜨거운 태양, 자연과 숨 쉬던 고개은 대도시 파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10대의 고갱은 선원이 되어 자유를 누리다가 5년 후 어머니의 사망으로 프랑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증권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결혼도 하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일에 능력을 보이던 증권맨 고갱은 회사를 다니며 그림을 그린다. 미술을 시작한지 7~8년 되는 때 인상주의전에 작품 전시를 하게 된다. 프랑스에 경기 불황이 닥치고 증권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고갱은 33세 늦은 나이에 전업화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고 5프랑을 벌기 위해 벽보 붙이는 일까지 하게 되지만 그림은 포기하지 않는다. 원시와 야생이라는 콘셉트를 찾은 고갱은 자기만의 색채로 자신이 느낀 바를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림은 그려도 팔리지 않고 아내에게는 욕만 먹던 고갱은 예술 인생을 건 최후의 승부수로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는 타히티로 향한다. 타히티에서도 1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파리로 보내지만 이해도 받지 못하고 팔리지도 않는다. 죽기 3년 전부터 조금씩 팔리게 되지만 매독에 시달리며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고통에 시달리는 삶을 살다 1903년 죽음을 맞이한다. 에두아르 마네 "'미래로 가는 문'을 찾아 그림에 숨겨둔 남자.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던 미술을 붓으로 내리쳐 금을 냈고, 전혀 새로운 모더니즘 미술로 가는 문을 찾았습니다."(174쪽) 마네는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이 높이 치켜세운 화가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시장, 아버지는 판사인 귀족 집안의 자제였다. 마네는 전통적 아카데미 화풍을 고수하는 살롱전 입상 화가 밑에서 고전적인 미술을 배웠고 대가의 작품을 모사하며 연구하고 스무 살에는 미술 여행을 했다. 게다가 심사위원이 역사화, 신화화, 종교화 등 교육적 주제를 담은 작품을 선호하는 살롱전 신봉자였다. 그런데 마네는 현대의 생활, 즉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리라고 주장하는 샤를 보들레르를 존경하며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의 소개로 일본화인 우키요에를 접하게 된 마네는 충격을 받게 된다. 1863년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살롱전에 출품한다.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에서 영감을 받아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파리스 심판>을 재해석한 이 작품은 그림 속 인물이 모두 1860년대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로 두 남자는 마네의 동새오가 매제가 될 사람이었고, 누드 여인은 빅토린 뫼랑이라는 모델이었다. 마네로부터 미술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게 된다. 1865년 마네는 매춘부의 매춘 현장을 포착한 <올랭피아>를 살롱전에 출품한다. 이 그림은 완전 평면으로 절대 진리인 원근법을 폐기 처분한다. '그림이 그려지는 곳은 평면이다.'라는 마네의 생각은 이후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추상주의 등 모든 모더니즘 회화의 기본 정신이 된다. 1882년 그린 <플리베르제르 바>에서는 복수 시점을 사용한다. 근대 미술의 토양을 다진 화가이다. 클로드 모네 18세기 장 자크 루소로 대표되는 게몽주으 사상이 탄생하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정신으로 압축되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다. 19세기에는 '답은 오직 단 하나'라는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정신이 탄생하는 가운데 근대적 정신이 반영된 모더니즘 미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는다. 또한 카메라의 등장은 회화에 위기 의식을 갖게 했지만 새로운 미술 세계를 열게 한다. 1858년 작 <루엘 풍경>은 모네가 18세에 그린 그림으로 스승 부댕에게 하늘 묘사의 왕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22세 용킨트를 만난 모네는 '주관적 감성을 담을 풍경화'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드가, 르누아르, 세잔, 바지유, 팡탱 라트르 등이 속한 마네의 집에서 미술에 대한 토론을 나눈 바티뉼 그룹의 멤버가 된 모네는 마네가 알려준 평평하게 그리고 디테일을 버리고 원색으로 단순하게 표현하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만의 차별점으로 빛을 캔버스에 담는다. 드디어 제1회 협동협회전에 <인상, 해돋이> 1872를 내놓는다.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린다'는 인상주의를 시작한다. 폴 세잔 20세기 회화의 씨앗으로 소개되는 세잔은 모네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잔식 인상주의를 만든다. 미술계가 인상주의 매너리즘에 빠지자 쇠라, 고갱,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 그리고 세잔으로부터 후기인상주의가 시작된다. 법을 공부하던 세잔은 22살 화가가 되기 위해 고향 엑상 프로방스에서 파리로 상경한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대가의 그림만을 교본으로 삼아 독학으로 그림 그리기를 10년을 한 세잔은 마네의 <올랭피아> 도전장을 내밀 듯 1865년 <모던 올랭피아>를 내놓는다. 카미유 피사로에게 그림을 배욱 된 세잔은 야외로 나가 자연과 빛을 주제로 삼아 그림을 그리게 된다. 1877년 38세에 파리를 떠나 1906년 사망하던 때까지 홀로 '세잔식 인상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자연을 탐구하며 그림을 그린다. "영원한 인상주의를 만들고 싶다"고 한 세잔은 사물이 지닌 본연의 색과 형태, 그 본질을 추출해 그리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인상주의에 조화와 균형을 담고자 했다. 파블로 피카소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대가들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시작했을 것 같지만 이 책 <방구석 미술관>을 읽어보면 그런 화가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뒤늦게 시작을 했다. 야수주의의 앙리 마티스도 22세에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파블로 피카소를 이야기하면서 앙리 마티스는 왜 나왔을까. 둘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치열하게 의식했다고 한다. 파리로 온지 14년 째인 1905년 33세의 마티스는 자기 부인을 모델로 그린 <모자를 쓴 여인>을 공개한다. 어느 비평가각 '야수'을 그려놓았다고 비웃은 것이 야수주의 명칭의 기원이 된다. 이 작품으로 마티스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도자'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어릴적부터 미술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은 피카소는 23세, 1904년 조국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1906년 마티스와 피카소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마티스는 열두 살 어린 피카소를 관대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1907년 앙리 마티스는 <푸른 누드>를, 피카소는 입체주의 시작을 알린 <아비뇽의 처녀들>을 내놓는다. 마티스는 세잔과 원시미술에 심취해있었고 그것을 곁에서 알고 있었던 피카소는 마티스의 연구과제를 빼앗아 '세잔과 원시'를 극단까지 끌고 간 것이다. 마티스의 <푸른 누드>는 두 개의 시점을 사용하지만 피카소는 무한대로 확장시켰다. 이것으로 '아방가르드 선도자'란 타이틀은 피카소의 것이 되고 만다.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피카소는 말하며 말년에는 세잔이 사랑한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이는 성에 살며 "세잔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기까지 한다. 회화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 고정관념을 버린 피카소는 회화를 실험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형태에 집중한다. 피카소가 형태에 집중할 때 마티스는 색에 집중한다. 마티스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자살충동까지 느꼈지만 고통을 견디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자신의 화실을 주제로 <분홍화실>, <붉은화실>, <화가의 가족>, 그리고 <가지가 있는 실내>를 그린다. 형태를 단순화시킨 '구성물'로 화면을 '구성'한다. '분석적 입체주의'로 사물의 형태를 무한대로 쪼개나가던 피카소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그 때 마티스의 <가지가 있는 실내>를 보고 돌파구를 찾는다. 피카소의 <기타>는 잘게 쪼개기를 버리고 크게 쪼개 구성하고 있다. 또한 신문지, 악보, 벽지, 종이 등을 오려 붙이는 파피에 콜레를 선보인다. 마티스는 피카소를 '노상강도'라 칭하며 멀리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둘은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마르크 샤갈 이름 때문에 프랑스인으로 착각하기 쉬운 샤갈의 본내 이름은 모이세 하츠켈레프로 러시아 유대인 격리지구 게토의 작은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다. 게토의 유대인은 거주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고 유대인 학교에서 수준 낮은 교육을 받아야 했고 취업과 직업 제한, 토지 소유 금지로 소규모 행상, 상업, 수공업에 국한된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파괴, 학살이란 뜻의 포그롬까지 자행되었다고 한다. 포그롬의 발단은 1881년 술 취한 러시아인이 유대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쫓겨나가 러시아인들이 집단으로 유대인 거주지 게토로 쳐들어가 파괴, 학살, 강간을 저질렀다. 포그롬은 20세기 초까지 벌어졌고 유대인 대부분은 감수해야 했다. 샤갈은 19세에 화가가 되겠다며 당시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허가증도 가지지 않은 채 궁핍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샤갈은 유대인 변호사 골드베르크를 만나게 되고 골드베르크는 샤갈을 하인으로 등록해 체류허가를 받도록 한다. 샤갈은 왕실협회 미술학교에 입학하지만 고전적 수업 방식에 회의를 갖고 자퇴를 한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즈반체바 학교에 입학한다. 1년정도 즈반체바를 다닌 샤갈은 1910년 8월 23세에 파리로 간다. 이 때 '큰 걸음'이라는 뜻의 '마르크 샤갈'로 개명을 한다.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의 화가 모네, 반 고흐, 마티스 등의 그림을 직접 보게 된다. 특히 피카소가 주도한 입체주의는 샤갈의 양식을 완전히 바꾸는 게기가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에 빠져든 샤갈은 캔버스에 빛을 창조한다. 렘브란트는 어둠과 밝음의 대비로 빛을 만들었다면 샤갈은 다채로운 색채로 빛을 만들어낸다. 1911년 <나와 마을>이라는 자신을 대표할 걸적을 내놓는다. 1914년 여름, 27세에 누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비테프스크로 향한 샤갈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8년동안 머므르게 된다. 이 때 연인 벨라와의 사랑을 담은 걸작들을 그린다. 그리고 고향 마을에 유대인을 그린 '비테프스크 연작'을 내놓는다. 러시아 정부가 유대인어인 이디시어 출판을 금지시키자 차별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유대인 화가' 샤갈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917년 11월 레닌을 중심으로 볼셰비키 당이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개역을 단행한다. 개혁안에는 유대인 차별 폐지가 포함되어 있다. 샤갈은 비테프스크 예술 인민위원으로 러시아 혁명 1주년 기념거리 장식을 감독하고 정부에서 작품을 대량 구입하기도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념 갈등이 심해지고 예술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국가는 러시아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절대주의 선구자 말레비치를 밀어주게 된다. 조국에서 작품을 팔 길이 없어진 샤갈은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게 된다. "다른 것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다면, 혁명은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조국을 떠나 파리로 간다. 1923년 36세의 샤갈을 파리는 환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시기를 가장 행복했다고 샤갈은 말한다. 194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신한 샤갈은 고향 비스테프스크가 독일군에게 파괴되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샤갈은 자신의 뿌리를 그리는 것, 자신의 고통을 그리는 것, 불합리를 밝히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1930년 43세 <구약성경> 삽화작업을 시작한다. 69세 마르크 샤갈을 105점의 동판화가 담긴 <구약성경>을 출판한다. 그리고 인생 최후의 걸작, 12점의 <성서 이야기> 시리즈를 10년 동안 매달려 79세에 완성한다. 1973년 7월 7일, 프랑스 니스. 86세 샤갈의 이름을 건 미술관을 개관한다. 그곳을 주인공은 12점의 <성서 이야기>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추상미술의 창조자 칸딘스키를 저자는 최강 연애 찌질이라고 말한다. 1866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음악과 미술을 사랑했지만 26세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하며 법률 고시를 가볍게 패스한 칸딘스키는 사촌 안냐 치미아킨과 결혼하다. 1896년 30세, 모스크바에서 최초로 열린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에서 모네의 <건초더미> 연자을 본 칸딘스키는 충격을 받는다. 1896년 도르파르트 대학 법학과 교수직으 거절하고 뮌헨으로 간다. 안톤 아츠베, 폰 슈투크 등 스승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운 칸딘스키는 1901년 35세 팔랑크스 전시협회를 만들어 전시회를 연다.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했지만 그 해 겨울 팔랑크스 미술학교를 만든다. 1902년 초 가브리엘레 뮌터가 입학을 하고 칸딘스키와 만나게 된다. 칸딘스키는 안냐와 별거를 하고 뮌터와 열애를 시작한다. 1909년 뮌헨 남부 무르나우에 칸딘스키와 뮌터는 정착을 한다. 칸딘스키의 추상회회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1911면 12월 뮌터, 프란츠 마르크, 아우구스트 마케, 알프레드 쿠빈과 함께 '청기사'를 만들고 자신들의 철학을 담은 <청기사> 연감을 출간한다. 1911년 칸딘스키는 아내 안냐와 이혼을 하지만 뮌터와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 마음이 식은 것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러시아로 떠난다. 1년이 지나서야 나타난 칸딘스키는 1916년 3월 뮌터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러시아로 돌아가 연락을 끊는다. 뮌터는 40통의 편지를 보낸다. 1년 후 51세의 칸딘스키는 27세나 어린 모스크바 장군의 딸 니나 안드레브스키와 결혼을 한다. 1922년 칸딘스키는 뮌터에게 갑작스런 연락을 취한다. 무르나우 집에 있는 자신의 물건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대리인을 통해 한 것이다. 뮌터와 칸딘스키의 다툼을 4년이나 계속되지만 뮌터가 칸딘스키의 물건을 보내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67세의 칸딘스키는 뮌터와 함께 했던 때가 생애 최고의 시기였다고 고백한다. 50세의 뮌터는 남은 생을 함께 할 요하네스 아이히너를 만나 1931년 무르나우 집으로 돌아간다. 제2차 세게대전 중 나치는 청기사파의 작품을 퇴폐미술로 간주해 불살하버린다. 뮌터는 지하실에 작품을 숨기고 책장으로 입구를 막아버린다. 1957년 80세, 거장이 된 뮌터는 칸딘스키의 작품이 포함된 100여 점의 청기사파 작품을 기증한다. 마르셀 뒤샹 <방구석 미술관>의 마지막 주자는 현대미술을 낳은 혁명적 창조자 뒤샹이다. 친할아버지 에밀 니콜은 사업가로 성공한 후 예술가로 전향을 한다. 뒤샹의 큰형 가스통은 법대를 갔다가 예술가의 길을, 둘째 형 레이몽은 의대를 갔다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 뒤샹은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된다. 1904년 17세 뒤샹은 풍자만화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첫째 형 가스통이 있는 파리로 간다. 그리고 20세부터 3년 동안 풍자만화가로 활동을 한다. 1910년 화단을 휩쓴 입체주의 그림을 뒤샹도 그리기 시작한다. 1912년, 샬롱 데 쟁데팡당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II>를 출품한다. 살롱 데 쟁데팡당은 1884년 보수적, 아카데믹한 살롱전에 대항한 젊은 예술가들이 독자적으로 연 전시를 시작으로 한 새롭고 진보적인 예술을 추구하며 심사도 없고 상도 없는 제도를 자랑하는 전시였다. 그런 살롱 데 쟁데팡당에서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II>를 거부한다. 이 작품은 입체주의에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넣은 것으로 수차례 실험끝에 완성한 역작이었다. 이유는 기존의 입체주의자들이 불쾌감을 느낀 것인데 제목에서 내려오는을 빼면 전시를 허락하겠다며 뒤샹을 압박하지만 뒤샹은 제목을 바꾸지 않고 작품을 가져와버린다. 이 사건으로 뒤샹은 기존 미술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안티 미술'을 시작한다. 뒤샹은 1년만에 자신만의 미술 콘셉트를 정립한다. '생각하는 미술', 즉 개념미술의 탄생이다. 1913년 <자전거 바퀴>는 뒤샹이 심심풀이삼아 만든 작품이다. 관객은 이 물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무의미의 미술'이라는 식으로. 1915년 뒤샹은 레디메이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미 만들어진 것(Ready-made)으로써 예술가가 만들지 않고 '선택해' 예술이 된 미술품을 의미한다. 1915년 뒤샹은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간다. 살롱 데 쟁데팡당에서 거부당했던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II>가 1년 후 1913년 뉴욕 국제현대미술전 <아모리 쇼>에서 주목을 받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후 2년 동안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담은 작품활동은 그리 주목을 끌지 못한다. 1917년 1월 독립미술가협회의 디렉터로 임명된 뒤샹은 전시 개막 전 <눈 먼 사람>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그리고 소변기를 사와 리처드 머트라는 가명으로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에 출품한다. 6달러만 내면 어떤 예술가든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는 독립미술가협회전에서 <샘>은 협회 회장에 의해 전시를 거절당한다. 뒤샹은 항의의 뜻으로 사퇴를 하고 <샘>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눈 먼 사람> 2호에 뒤샹은 익명의 사설을 남긴다. '미술계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 후 <샘>으로 대표되는 레디메이드 개념이 뉴욕 미술계에 뿌리내리게 된다. 뒤샹은 1923년 미술계의 비난을 받으며 체스에 올인한다. 1933년 체스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듣고서 1934년 다시 미술계로 복귀한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아랑곳하지 않고 놀 듯이 자기만의 예술을 만들어 갔다. <방구석 미술관>에 나오는 이 14명의 거장들은 대부분이 모두 고통받는 인생 속에서 작품을 빚어내었다. 그들의 고통에 괴로운 마음이 들 정도 였다. 저자의 유머로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지만 화가들이 겪는 고통은 재밌게만 읽게 되지는 않았고 힘 빼고 쓰여진 책이지만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예술가의 삶을 인간적으로 느끼게 된 책읽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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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책은 처음이다. 워낙 미술에 관해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호기심을 끌 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음도 한 몫 한다. 일단 책을 펼쳐 목차를 보니 내가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유명한 화가들이 나온다. 그리고 미술분야에 가볍게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화가의 출생부터 전성기, 그리고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그림과 글이 나온다.
우리는 처음 미술을 접할 때, 보통 ‘공부’를 하기 십상이라고 하면서 서양미술사라는 역사로 접근하거나, 미학이라는 학문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의 프로필을 안다고 친해지는 것이 아니듯, 미술 역시 지식으로 많이 안다고 해서 친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와 소통하고, 작품과 대화하며 공감해나가는 경험이 하나 둘 쌓이다보면 어느새 미술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술가를 생생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을 통해 예술가의 작품 탄생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방구석에서 흥미롭게 만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술사적 의의가 아닌 예술가의 삶에서 ‘왜 그런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가슴으로 공감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하지만 재미있기만 한 미술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한 화가에 대해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집요하게 파고들며, 미술 교양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알차게 전한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모더니즘 화가들로 이들만 제대로 알아도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꿸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각각의 본문 마지막에는 화가의 기본 정보와 함께 작품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핵심 미술 이론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그저 [방구석]으로 찾아온 미술계 거장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면 된다. 방구석 미술관으로 초대된 미술 거장들과의 수다가 독자들을 유쾌한 미술 세계로 안내한다. 미술계 거장들의 사생활과 명화에 담긴 숨은 뒷얘기까지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는 교양 미술서이다.
특히 목차에는 미술가들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표현으로 독자들을 본문으로 초대한다. 물론 미술사적 연대기순으로 화가들을 만나게 되지만, 목차를 보고 관심있는 화가를 먼저 찾아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20세기가 낳은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알고 보면 선배의 미술을 훔친 도둑놈?] 이라는 목차가 보여주듯 이 책은 누구나 쉽게 미술을 접하고 화가들의 생애와 특징, 그리고 화풍까지도 제대로 알게 해 주는 장점이 많다.
저자 조원재는 2016년부터 ‘미술은 누구나 쉽고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는 모토 아래, 팟캐스트 「방구석 미술관」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방구석 미술관」은 미술을 1도 모르는 문외한부터 이제 막 미술을 시작한 ‘미술 햇병아리’, 미술 좀 안다는 사람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최고 인기 미술 팟캐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쏟아지는 미술 팟캐스트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1위를 지켜내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미술전문가 아닌 애호가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쉽고 친근한 언어로 미술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게 풀어낸다고 볼 수 있다. ≪방구석 미술관≫은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치와 전매특허 스토리텔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책 한권으로 미술에 대한 교양을 모두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라는 것이 하다보면 장르와 분야가 넓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책을 벗삼아 미술 쪽의 관심을 갖게 되면 또 다른 지평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알고 있는 그림은 몇 장 안되지만, 재미있는 해설과 더불어 그림을 보게 되니 이해가 잘 된다. 덕후라고 하는 애호가의 책이니만큼 우리의 눈높이에서 미술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흥미를 더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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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을 읽는다는 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눈으로 담고, 마음속에 넣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미술 작품처럼 자주 찾게 되는 것도 없다. 마음이 울적할 때, 스트레스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그림을 보면 마음이 풀린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굳이 글이 없어도 그림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글을 건너뛰고 그림만 들여다보는 일도 많다.
세계적인 서양화가의 그림과 삶을 소개한 『방구석 미술관』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 화가의 삶과 그림을 다루었다. 신문 기사에 회자되었던 유명한 화가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몇 번이고 들여다봐도 즐거운 일이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환기 화가의 그림이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점화 「우주(Universe 5-IV-71 #200)」라는 작품으로 한국 화가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다. 그림을 그냥 봐도 좋지만 그림이 그려진 사연과 작품의 의도를 알고 나면 그림을 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그림에 대해 알지 못해도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그림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함께 읽으면 그 감정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림도 마찬가지인데 좋은 예술 책을 만나면 소개해주고 싶다. 주변 사람에게 그림을 소개하는 것처럼 말한 책이 조원재의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일 것이다.
우리나라 화가 중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의 화가 이중섭은 알 것이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약동하는 소는 우리나라의 기상과 닮았다.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국전쟁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던 이중섭은 종이와 그림 도구를 살 돈이 없어 담배갑의 은박지로 그림을 그렸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더 애틋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과 독보적인 여인상을 그렸던 천경자 화가의 그림은 볼수록 아름답다. 나혜석의 경우 최초라는 각종 수식어를 달았지만, 가족과 단절되어 안타깝게 한다. 그림에서 드러나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져 오래도록 그림을 바라보게 한다. 천경자의 화려한 색의 「황금의 비」에서 여인의 눈은 많은 것을 표현한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에 메두사처럼 뱀 몇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고독한 마음일 것이다.
김환기의 점화도 좋지만, 나는 그가 그렸던 조선백자를 모티프로 하여 조선의 미를 표현한 달항아리 그림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색을 사용하여 자꾸 바라보게 했다.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미술 교양서다. 소의 화가 이중섭,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심플’을 추구한 장욱진, 김환기, 서민을 친근하게 그린 박수근, 천경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돌조각으로 예술품을 만든 이우환. 총 열 명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작권 때문에 그 그림들을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이우환 화가의 경우 저작권 때문에 책에서 작품을 수록하지 않아 QR코드로만 봐야 해 아쉽다.
『방구석 미술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마치 앞에서 들려주듯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한국미술에 대한 지식이 한결 업그레이드되는 거 같다. 미술이라고 해서 어렵지만은 않다. 화가들이 걸어온 삶과 작품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아질 것이다. 추운 겨울, 방구석에서 그림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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