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지 10년. 지금까지 그녀의 글에서는 일종의 비애가 느껴졌다. 사회의 중심에 속하지 못한 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은 냉소 그 자체였다.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던가. 차가운 시각,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의 흔적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해하곤 했었다. 미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면서 나는 그녀의 글을 읽어왔다. 무언가 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글 중심에는 냉소의 시각이 흐르고 있노라고 믿는다. 다만 지난 글들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면 이번에는 그것을 내면에 꽁꽁 숨겨놓았다는 것이 변화했다면 변화한 점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이는 시간이 빚어낸 성숙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 피어난 소소한(?) 너그러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형제는 서로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아버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숙명이었다. 상대로부터 끊임없이 우월한 자신의 모습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 그것이 바로 영준, 영우 형제의 성장이었다. 그 과정은 결코 달갑지 않았기에 아이의 모습을 탈피한 이후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삶을 살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두 인물 모두 상대방에 대해 우위에 서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치 않음으로 인하여 생긴 관계의 단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단절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너무도 강고해져서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을 듯 해 보였다. 하지만 남이 되어 살아가는 그들을 지난 시간들은 결코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동질적인 과거를 공유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을 언제라도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매개체였고, ‘아버지’는 그들에게 그러한 매개체였다. 서로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상은 달랐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분명 권위주의적, 그 자체였다. 사업이 부도나기 전까지 그들에게 제시된 길은 말 그대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단 한 번의 선택도 허락되지 않은 그들의 인생은 그들 자신의 것이기 보다는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두 형제는 그러한 아버지를 부정함으로써 자신만의 세계, 그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철저히 자신의 원가족을 배제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롭길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이 맛보았던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아닌 소외였다. 모든 과거를 부정함으로써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정착할 곳은 없을 거라는 허망함이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시 K읍을 찾기까지 그들이 보여주는 망설임은 바로 이러한 심정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들 가족을 몰락으로 몰아넣을 수 밖에 없었던-어찌 보면 사소함이 될 수도 있는-아버지의 행동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그들은 K읍에 남겨있는 아버지의 집을 통해 느낀다. 아버지가 원하는 길을 걷지 않은 그들은 어찌 보면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운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몰락을 승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영향력 하에 놓인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수용함으로써 그들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새로이 바라보는 방법에 눈을 뜰 수 있었고, 이러한 전제(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수용)가 그들을 화해케 하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지금껏 작가가 말해왔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의 ‘냉소’인 것이다. |
| 자전적 영역의 완성,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털고 가야 했다는 작가의 말을, 읽는 내내 나도 작가가 쓰는 내내 그랬던 것처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문체에다 여러 층을 겹쳐 풀어가는 이야기의 실타래가 자못 독서 초반에 팽팽히 긴장과 기대의 끈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개인에게 있어 화인같은 기억과 감추고 싶은 은밀함이 기실 세상사에 있어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보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인 경우도 많다. "비밀과 거짓말', 이 작품의 시종과 함께 했을 작가의 번민에 기꺼이 공감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초반 전개의 탄탄한 긴장은 후반부에 이르러 내용과 형식이 함께 느슨해진다. 아쉬움이다. 역수의 땅, k읍에 가고 싶다. 힘이 세어지는 그 땅의 나는 것들을 올 봄에는 경험해 볼 참이었다. 이제 k읍을 지나게 되면 은희경의 생각이 더해질 듯하다. |
|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모두가 진실일까. 어쩌면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면 그럴 만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갑자기 물어도 이름을 댈 수 있는 몇 명의 여자작가 중 하나인 은희경은, 그녀의 전작들을 내가 눈물을 흘리며, 혹은 깔깔 웃으며 봤다는 이유로,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작가다.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본 은희경의 소설 중 가장 지루했으며, 감동도 없었고, 밍숭맹숭했다. 눈물 흘리며 공감할 부분도, 박수를 치며 깔깔거릴 유머 감각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브랜드 은희경은 읽은 시간마저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 게는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무엇인가, 아!하게 만들어줄 구절을 찾느라 한숨에 끝까지 읽었건만 한번도 감탄사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중간이상일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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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이 변했다.
최신작 '비밀과 거짓말'을 읽어봤다면 이말에 동의할 것이다.
분명 재미있고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소설이지만
뭐랄까, 2%가 아쉽다랄까.
첫인상은 솔직히 그렇다.
나를 비롯한 독자들이 은희경의 소설을 골랐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책을 붙들고 소위 '은희경스러움'에 흠뻑 빠져보고 싶은 것이다.
순수문학과 대중소설의 경계선에서
순수문학의 품위와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소설보다 더한 '읽히는 힘', 영화로치면 흥행성을
담보하고 있는게 은희경의 소설들이니까.
만약 내가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다면
'썩 잘 쓴 소설'이라고 추켜세울 만도 했겠지만
글쎄, "이게 바로 은희경의 신작"이라며 지금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은희경이 돌아왔다.
은희경은 1995년 신경숙과 공지영이라는 두 스타작가가
양분하고 있던 우리 문단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존재를 드러냈으니까
만39세(1970년)에 등단한 박완서씨만큼은 아니어도
대학 재학중에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하곤 하는
작가들에 비하면 꽤나 늦은 출발이었다.
이후로는 파죽지세.
등단 첫해에 내놓은 장편 '새의 선물'은
문학계의 찬사와 대중의 열광을 한몸에 받았고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상속' 등
장·단편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년 작품을 쏟아내며
90년대 중반이후 한국 문단을 말그대로 평정했다.
이상문학상, 동서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은희경을 따라다닌 상들도 적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은희경만의 맛깔나는 글솜씨가 몸부림친다.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힘이 간단치 않다.
가볍고 발랄한 터치서부터
적당히 진지한 고민까지 얘깃거리도 다양하다.
은희경은 등단 전 여성잡지사와 출판사,
이벤트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런 직장을 가져본 덕에 대중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자연스레 익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은
그녀가 등단 이후 최대 공백(2년7개월)을 깨고 올해초에 내놓은 작품이다.
전북 K읍(아마도 은희경의 실제 고향인 고창) 출신으로
40대에 접어든 주인공이
얽히고 섥힌 자기 가족사를 통해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고
소원했던 동생과도 화해한다는
일종의 성장소설(넓은 의미의)이다.
이렇게 간단히 단정짓기에는
괜시리 미안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튼 속사포처럼 쏴대던 말의 향연과
원투펀치처럼 번뜩이는 재치, 유머가 애써 자제됐다는 느낌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박완서씨 역시
"이번 작품은 덜 재미있게 써야
더 평가받는다는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특유의 반짝거림을 일부러 감춘 것 같다"고 평했다고 하니까.
덕분에
'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p191)라거나
'비밀이나 거짓말은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p192)와 같은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눈에 들어올 때의
임팩트가 예전같지 않다.
그녀가 쏟아내는 말발에 정신을 뺏긴 상태에서
이런 표현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과
충분히 진지하고 그럴 듯한 분위기에서
같은 표현을 대면하는 것은 다를테니까.
어쨌든 이렇게 변신한 은희경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야 할지
예전의 말발이 그립다며 서운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직 군인이었던 2001년 '마이너리그'가 출간됐을 때
외박기간을 이용, 교보문고에서 열린 그녀의 팬 사인회까지 쫓아가
내가 가지고 있던 그녀의 책 다섯권인가를
그녀 앞에 들이밀고 전부 사인을 받아내기도 했던 나로서는
서운하고 섭섭하다는 반응이 아무래도 솔직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한 데에는 아마도
"은희경의 신작이다!"라는 흥분에
평소보다 책장을 빨리 넘긴 탓이 분명 있었을 거라는
궁색한 자기암시도 한몫 했을 것이다.
소설 초반에 그녀가 남긴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어느 순간 자신을 향해 좁혀져오는
불길한 운명의 함정을 보았다 하더라도
이미 가고 있던 길에서 급히 비켜서기보다는
차라리 제눈을 의심하는게 훨씬 쉬운 일이었다'(p53)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그녀의 소설을 접하고
"느낌이 달라지니 퍽 좋은데"하며 쉽게 수긍하기보다는
"은희경이 이럴 리가 없어"라며 내 눈을 의심하고 있는 내 모습이
이 표현에 자연스레 겹친다.
어찌 됐건 '비밀과 거짓말'은 지난주
2005년 동인문학상의 두번째 후보작으로 올랐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벌써 기다려진다.
그런데 수장작 발표까지는
앞으로 반년도 더 남았다.
[인상깊은구절] '어느 순간 자신을 향해 좁혀져오는 불길한 운명의 함정을 보았다 하더라도 이미 가고 있던 길에서 급히 비켜서기보다는 차라리 제눈을 의심하는게 훨씬 쉬운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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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희경 작가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은 지방의 소도시 K읍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소설 내내 K라는 이니셜로 표현한다. 작가의 실제 고향이 전북 고창이라 K라고 붙인 것은 아닐 것이다. K읍은 작가의 고향 뿐 아니라. 각자의 마음 속 고향을 뜻함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개개인. 각 존재의 근원이라고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겠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K읍이 고향이 아니라 더 넓게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몇가지 점에서 국가보다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K읍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을 고향의 모습으로 현실화한 공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방의 소도시. 촌동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은 별볼일 없는 동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소설에서 K읍은 여행객들이 어디를 가기 위해 잠시 들렀다 가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원도 없고, 볼거리도 없기 때문에 K읍의 사람들은 인재를 키워내서 고장을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K읍 사람들이 인재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이자 사상이었다. 2. 양반사회 시스템의 신봉자이자 '가문의 전통'을 위해 살아가는<비밀과 거짓말>의 아버지인 정욱은 9대째 K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지역유지의 후손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씨가문의 막내아들이다, 정욱은 막내로 태어나는 바람에 가문의 재산을 그렇게 많이 상속받진 못했다. 그럼에도 시대를 읽는데 능한 정욱의 재주와 임기응변. 거기에 덧붙여 가문의 영향력으로 3공시대에 건축업으로 성공하여 지역 내의 기반을 닦는다. 그의 활약상이 소설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그런 정욱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1960년대 초에 태어났다고 명시(22P)된 이 두 아들의 이름은 영준과 영우다. 이 두 인물은 전통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는다. 격렬하게 저항한다. 그들이 가문의 전통과 맞서는 이유. 소설의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 정리해보면. 정씨가문의 첫째 아들. 즉 정욱의 첫째 형이자 집안의 장손이 단명하여, 영우가 정씨가문의 장손으로 입적되야 했기 때문에 이제 더는 형과 아버지와 한편이 아니라는 강압적인 명령. 그것에 어떤 부조리를 느꼈을 수도 있다. 96. 영우는 대나무집이 보이면 언제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 무렵의 영우는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을 가려내어 미워하기 시작할 나이였다. 영우가 그렇게도 많은 부정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자기 편일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채 판정을 유보한 대상은 영준이었다. 가장 확고한 한편은 물론 아버지였다. 아버지라는 세계만이 영우의 유일한 꿈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우가 사춘기 이후 십오 년이란 세월 동안 끊임없이 도망쳤던 것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존재는 영우에게 절망과 고독을 의미했다. K읍의 아들이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출세와 유랑, 그리고 죽음 세 가지 뿐이었다. 그리고 이건 소설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소설의 뉘앙스로 판단한 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영준이 K읍을 떠나기로 결심한 데에는 명선의 죽음에 얽힌 정욱과 영준 사이의 비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준이 이토록 가문을 떠나려고 애쓰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잘 나가던 정욱의 사업이 망했기 때문에 고장에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할 것이다. 210. 현대인들은 관심이 없다. 가문과 자신이 공동 운명체로서 공과 화를 함께 짐져야 했던 김인우의 기록은 개인적 단자로서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단지 '옛날이야기' 일 뿐이다. 혈연은 물론이고 지연과 학연에 의한 부당한 권력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기회 균등이라는 근대적 모럴을 위배한다. 어느 한 사람의 사상적 자유를 집안 전체의 잘못으로 만들어 권력자의 의도대로 사회를 통제하려는 연좌제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했다. 도시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조차 부분적인 동시대인일 뿐이다. 그것이 도시로 나온 K읍의 아들 영준이 생각하는 '사형제 이야기'의 진실이었다. 그래서 두 아들은 고장을 떠나려고 한다. 그리고 떠났다. 영준은 출세를 하는 척 유랑하며, 영우는 유랑하기 위해 유랑한다. 그렇게 둘은 K읍을 떠나 어른이 되고도 K읍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48. 자신의 고향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아직 어린애와 같다. 타향이 다 고향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세계가 다 타향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인간이다. 3. 176.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모조리 돌려주겠다는 철저한 자기 존재의 부정이 위악의 가속도를 받아 전의를 단련시켰다. 177.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아무것에도 집착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유는 한 가지다.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가문의 사람에게는 출세를 하는 척. 서울로 떠난 영준은 '출세= 법학' 이라는 고리를 끊고자 유랑을 결심한다. 유량의 도구로 선택한 것은 영화였다. 영준은 가문과의 질긴 인연을 끊고, 자기만의 것을 발견하여 그것에 집착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영준은 영화 안에 자신의 온전한 무언가를 담아내기 위해서 살아간다. 자신의 사상을 담아내기 위해 자신의 출신을 감춘다. 소설 속. 굉장한 감각을 가진 영준의 동료 박난아(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의 모두 의미심장하다. 단 한번 박난아라는 본명으로 지칭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바나나로 소개되는 그녀. 나는 그녀의 생각들을 존경하기 때문에 박난아로 기억할 것이다.). 그녀의 말은 영준의 단호한 결심을 표면에 드러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171. 감독님 처음 봤을 때는 고아인 줄 알았어요. 가족이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됐어요. 아무하고도 상관없이 태어나 줄곧 혼자 성장하고 혼자 살아온 사람 같더라고요. 이웃이나 동료는 있지만 친척은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자기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남은 음식은 그 자리에서 버리는 사람. 규칙적으로 면도와 쇼핑과 운동을 하고, 병원에 입원하면 간병인을 고용하고 명절에는 혼자 외국여행을 가고 또 보험이나 적금 든 건 없고 은행통장은 하나밖에 안 갖고 있고 그리고 어쩌다 등 뒤에서 따라오는 자기 그림자를 보면 어색한 표정을 짓는 사람. <비밀과 거짓말>의 아버지와 두 아들은 K읍을 떠나 오랜 시간 잘 살아간다. 그러다가 아버지 정욱의 죽음과 죽음으로 K읍을 떠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과 유산의 상속자로 언급된 명선의 이름이 공개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준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의 상속자에 적혀있는 낯익은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영준의 사촌 누이였는데,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유산을 전해줄 수 있을까? 사촌 누이. 명선. 그 이름의 진실을 찾아 가는 것이 <비밀과 거짓말>의 진짜 시작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마치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플롯과 비슷했다. 4. 225. 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위치한 보잘것없는 좌표를 읽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년들은 일찍부터 자기라는 존재를 자각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만나기까지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소년이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한가지 연료는 환멸이다. 이 지면을 통해서 결론을 이야기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루어져서는 안될 사랑 때문에 비극이 찾아왔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결론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영준과 영우는 전통(아버지)이 가려놓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말하기엔 망설여지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형제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고 좌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 좌표를 마주하면서 아버지와 영우, 아버지와 영준. 이 각각의 관계에서 알게된 진실까지도 공개된다. 283. 정욱은 이따금 생각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모두가 진실일까. 어쩌면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면 그럴만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283의 이 문장은 왜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비밀을 감춰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생각은 자신보다 주위의 시선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항복 선언이다. 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아마 은희경 작가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옳지 않음의 반작용이 <비밀과 거짓말>을 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모자람을 많이 느꼈다. 필요이상으로 생각들을 써내려갔지만, 사실 제대로 읽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가장 핵심문장이라고 생각되는 한 구절을 옮기며 마무리하면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결심한다. 5. 191. 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위인이란 존재는 철인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으로서의 긍지를 주어 인간을 고양시킨다. 반면 약점투성이인 사람은 때로 인간을 안심시키며 자신과 화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192. 조금의 망설임이나 어긋남도 없이 앞뒤가 딱 들어맞는 것은 거짓말이기 쉽다. 완벽한 미모라면 성형미인일지도 모르고 기승전결이 완전한 스토리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진실이란 대개 추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나 거짓말은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수단이다. 진실이라는 공의에 의해 쫓겨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도달하여 몸을 숨기는 막다른 골목의 어둠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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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았던 '전설의고향' 에피소드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증언'이란 제목의 작품이였는데요..
알고보니...'내다리내놔'처럼..전설의고향에서 여러번 리메이크 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비밀과 거짓말'에서 주무대인 'K읍'의 전설로 등장해서 반갑다고 할까요?
드라마에서는...(책에서는 네형제로 나옴...)
외동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큰아들이 장원급제하고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맞이하고...
상봉의 그 기쁜 순간, 두아들과 외동딸이 급사합니다...
억울한 아버지는 사또에게 호소하고..
사또는 '염라대왕'을 만난다는 내용인데요..
사실 죽은 두아들과 외동딸은...그 아버지가 젊은시절 살해한 젊은이들의 환생이였던거죠
주막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거금을 가지고 머물었던 세명의 젊은이를 살해하고 묻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돈으로 부자가 되지요...
이에 억울하게 죽은 젊은이들이 자녀로 태어나 복수를 한것이라는 내용인데요..
전설은....'부모'와 '자녀'와의 인연, 또는 악연을 말하고 있고...
마을을 떠나서 유랑하다가 객사하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죠..
척박한 땅 'K읍' 마땅히 발전도 없고 자랑거리는 없는..쇠락한 마을입니다..
더군다나...주위에 영화제로 유명한 도시와...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가 있기 때문에
'K읍'은 여행자들에게 잠시 머무는 장소거나 그냥 지나치는 장소일뿐 그다지 의미가 있는 도시가 아니지요..
그래서 'K읍'의 젊은이들은 늘 이곳을 벗어나가길 바라지만..
위의 전설처럼...'객사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와의 인연'으로 떠나기가 힘들죠
그래서 'K읍'을 떠나는 방법은 '출세','유랑' 그리고 죽음뿐이란 말을 하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영화감독인 '영준'이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며 소설은 시작되지요.
'K읍'에는 옛날부터 '정씨'가문과 '최씨'가문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영준'의 할아버지인 '정정일'이 독립투사로 활약을 하고...
아버지인 '정욱'의 사업이 잘될때는 '정씨'가문이 '최씨'가문의 위세를 눌렸지만
현재는 '최씨'가문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
'정욱'은 오래전 사업에 실패하여 마을을 떠나고...객사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가 죽기전 유언에 따라 집을 팔려고 '영준'이 내려왔는데
아버지의 유언중에....이상한 내용을 알게되지요...
여동생인 '명선'에게 집을 팔아서 일부분 주라는 내용...
'명선'은 18살때 자살한 '영준'의 고모였지요....
'영준'은 동생 '영우'를 만나 집을 팔계획을 잡는 한편, '명선'이라는 사람에 대해 추적을 하지요
그리고 'K읍'과 '정씨가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목이 '비밀과 거짓말'인 이유는...
'영준'이 촬영죽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명선'의 비밀...'정씨'가문이 숨겨야 했던 진실...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요즘 '은희경'님의 책을 한권씩 읽고 있는데요...
이분의 책의 매력은 세상을 냉소적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새의선물'의 '진희'처럼....말이지요
'냉소적'과 '비관적'은 좀 다르지요....가끔 세상을 차갑게 보는것도 저는 좋은거 같아요..
그래야 올바른 모습, 진실을 발견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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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위치한 보잘것없는 좌표를 읽게 되면 그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년들은 일찍부터 자기라는 존재를 자각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만나기까지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소년이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한 가지 연료는 환멸이다. (225~226쪽) 작가 은희경이 이 책 『비밀과 거짓말』에서 밝히고 있는 이러한 ‘성장론’ 혹은 ‘성숙론’은 그로부터 약 6년 뒤에 펴낸 성장소설『소년을 위로해줘』에서도 얼핏 다시 언급된다. 비록 지나가는 말의 형식이기는 해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상당히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둔 것으로 여겨지니 그녀에게는 꽤나 중요한 삶의 통찰이었나보다. 그 사이에 물론 변화가 없지는 않다. 이 책 『비밀과 거짓말』에서는 성장의 연료로써 ‘환멸’이 제시되어 있는 반면 『소년을 위로해줘』에서는 그 연료가 ‘사랑’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겠다. 사랑은 환멸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이 차이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환멸의 대상이 연인(즉 소녀)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한다면 그 차이는 뚜렷해지고, 따라서 그 구분도 필수불가결해진다. 소녀와의 사랑이 소년에게 성장의 연료가 되는 것은, 완벽한 타인이었던 소녀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그 동안은 오직 자기 자신 속에만 갇혀 있었던 소년의 협소한 세계가 자기 세계 밖으로 확장되는 기회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너를 사랑하면서 세계를 경멸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잠언이 의미하는 것처럼, 사랑은 세계로의 문을 열어젖혀 소년을 세계에 투신케 하고 이로써 소년은 어른으로 향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성장은 그래서 단기간에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유하자면, 사랑은 지진처럼 와서 소년의 마음에 우뚝 산을 세워놓는 것이겠다. 그 산을 오르면서 소년은 어른이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환멸을 통한 성장(또는 성숙)은 자신의 기원(起源)을 향한다. 자신의 존재의 근거인 아버지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과 각도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인데, 이때 소년의 마음을 물들이는 감정은 실망감이다. 소년의 눈에 언제나 둘도 없는 영웅이자 삶의 지표였던 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세고 훌륭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실망감은 더 커지고 깊어져서 마침내 환멸이 된다. 소년이 환멸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아버지는 더 이상 존경과 복종의 대상이 아니다. 소년은 환멸을 통해서 아버지로 표상되는 익숙한 세계 너머에 자신의 꿈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잃는 댓가로 얻게 되는 이러한 소년의 성숙은 슬픈 것일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법칙이기도 하다. 환멸을 통한 성숙은 소년에게 미치는 아버지의 권위가 몹시 높고 강고할 때에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완만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성숙은 산을 깎는 침식작용과 같아서, 이미 소년을 넘어선 나이인 중년이나 때로는 노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자신을 넘어서는 더 넓은 세계로,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성장경로를 갖는 사랑과는 달리, 환멸을 통한 성장은 대체로 회고적이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과 밀접하게 연루된다. 자신의 기원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서울과 지방의 작은 소도시 K읍을 오고가며, 또한 민속지와 역사서에서 가지고 온 민담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큰 아들 영준이 만들고 있는 영화 <비밀과 거짓말>의 이야기까지 동원되는 등 매우 중층적이며 얼핏 혼란스럽게도 다가오는 복잡한 서사구조에도 불구하고, 이 책 『비밀과 거짓말』의 초점은, 그래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느 시간을 부유하더라도, 어느 곳을 떠돌고 있더라도,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서사의 중심은 결국 두 아들 영준과 영우가 추억하는 아버지들(복수형을 쓰는 까닭은 큰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과 그들 정씨 집안이 누대에 걸쳐 살아온 고향인 K읍의 옛집으로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다. 다 쓰러져가는 고향의 옛집에는 아버지들이 아들들 모르게 숨겨놓은 추악한 비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치욕과 금기에 속하는 그 비밀들을 주인공 두 아들로 하여금 정면으로 대면시키는 것이 차마 안스러웠기에, 작가는 그토록이나 복잡한 우회로와 샛길들을 경유해서 그 비밀들에 도달하도록 서사를 짜놓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랫동안 고향의 옛집 눅눅한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아버지들의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이 의미하는 진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 두 아들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환멸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환멸을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두 아들은 아버지들을 아버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욕망에 휘둘려 부끄러운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 실수를 남몰래 숨긴 것이 때로는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위인이란 존재는 철인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으로서의 긍지를 주어 인간을 고양시킨다. 반면 약점투성이인 사람은 때로 인간을 안심시키며 자신과 화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알리바이가 지나치게 완벽한 용의자에게 의심을 품는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어긋남도 없이 앞뒤가 딱 들어맞는 것은 거짓말이기 쉽다. 완벽한 미모라면 성형미인일지도 모르고 기승전결이 완전한 스토리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준은 다시 한번 머리를 욕조 속에 깊이 담갔고 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꺼내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진실이란 대개 추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나 거짓말은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수단이다. 진실이라는 공의(公義)에 의해 쫓겨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도달하여 몸을 숨기는 막다른 골목의 어둠이라 할 수 있다. (191~192쪽)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기에 인간의 삶 역시 비밀과 거짓말로 점철된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나약함과 삶의 불완전함이야말로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또한 이어주는 그 무엇보다도 강한 연대의 끈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아들과 아버지처럼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라면 더욱 그렇겠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그냥 어둠 속에 묻어둘 수도 있었을 텐데도, 아버지 정정욱이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을 통해서 그 비밀의 입구로 영준과 영우를 이끈 것도, 어쩌면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아버지(즉, 영준과 영우에게는 할아버지) 정성일의 대를 이어받듯 자신도 똑같이 저질렀던 추악하고 부도덕한 실수가 두 아들의 삶에서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면 그 실수를 아들들에게 끝까지 비밀로서 숨겼두었던 정성일과는 달리, 정정욱은 자신의 비밀을 두 아들에게 알려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야 비록 환멸을 통해서일지라도 두 아들은 성숙할 기회를 갖게 될 테니까. 과연 두 아들은, 그들이 마침내 알게 된 아버지의 비밀이, 비록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실수를 은폐하기 위한 추악한 행위였을 망정 그 당시 세상 사람들과 가족들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최후수단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서, 영준과 영우는 아버지 정욱을 정점으로 해서 서로 반대편으로 잡아당겨서 팽팽해지고 깊어진 형제간의 속깊은 반목과 갈등도 해소하게 된다. 죽은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추악한 비밀이 살아남은 두 아들을 화해시키는 뜻하지 않은 축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저 아들로서만 존재했던 영준과 영우도 비로소 아버지, 즉 성숙한 어른이 된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작가 은희경이 등단 10년차에 세상에 내놓은 이 책 『비밀과 거짓말』은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는 마르케스를, 형식과 스타일에 있어서는 쿤데라를 연상시키는 뛰어난 역작이다. 역작인 만큼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도 참으로 힘들었던 모양이다. 작가의 말에서, 다시는 이런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소년이 사랑을 통해서 성장하고 환멸을 통해서 성숙한다는 이 책의 전언이 진실이라면,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한다는 항간의 통념도 또한 진실일 것이다. 그러니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녀는 이 책보다 더한 창작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소설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이 책 『비밀과 거짓말』은 아마도 그런 순간의 자신을 위해서, 은희경이 평생 곁에 두고 있을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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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고아처럼 보일정도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닫고, 혼자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영화 감독 영준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향 K읍의 집을 팔려는 과정에서 묻어두었던 가족의 이야기를 기억해내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접하게 된다. |
| 초등학교 때 본말과 비슷한말, 반대말을 공부했던 적이 있어요. 쪽지 시험도 치곤했으니 어휘력을 늘리는데는 제격인 방법이었지요 아마. 수많은 단어중, 은희경의 글을 읽으며 떠올랐던 본말/반대말은 위선과 위악이었습니다. "위선"이라는 단어는 익숙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대말이라 할 수 있는 "위악"은 익숙하지 않았던 거 같았지요. 이는, 도덕과 바른 생활이 중요시되던 당시 풍토에서 "위선"은 엄청난 금기사항으로 교육 받았던 반면,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고 웬지모를 조롱이 숨겨져있는 "위악"은 그리 가르칠 필요가 없었을꺼란, 오히려 숨겨져야할 단어였다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위악"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 공감을 얻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은희경의 소설을 통해서였지요. 은희경은 대체로 "위악"으로 대표되는 작가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늘 읽는이의 폐부를 찔러 그것을 파헤치다 못해 난도질을 하지요. 그로 인한 쾌감은 말랑말랑한 여타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위악스러움"은 시대의 트렌드와 부합하며 꽤나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10여년 동안 발간하는 책마다 사본 저 역시 그 생각에 많은 부분 동조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희경이 2년만의 칩거를 깨뜨리는 신간 "비밀과 거짓말" 역시 "위악스러움"이라는 큰 흐름에서는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한없이 발가벗기는 그녀의 작업은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될 법한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독자인 저로선 즐거운 쾌락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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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가인 은희경이 쓴 소설 중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좋아했다.
그 소설과 이 소설은 은희경식 독소와 냉소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인 영준이 제작하는 영화 제목과 이름이
같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내용이 영화의 시퀀스와 영준 및 영우의 기억과
혼재되면서 약간이라도 방심하면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을 놓치기가 싶다.
다른 소설보다 감상문을 쓰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이 책을 간략하게 아래와 같은
글로 표현하고 싶다.
"진실이란 대개 추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나 거짓말은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수단이기 때문에 진실보다는 오히려
비밀이나 거짓말이 보다 널리 통용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 감상문을 쓰는 이 시점에 '천암함 사건 감사원 발표', '나로호
폭발사건' 등등이 신문기사에 오르면서 이 책에 나오는 이 대목이 더욱 절실히
가슴에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