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살피기가 그토록 어려울까요? 조금만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하긴 처음부터 <태평천하>에 등장하는 윤직원에게는 개소리에 불과하겠지요. 그 양반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이 주 관심대상이니 말입니다. 자신과 자신 가문의 영달을 위해 관심을 두는 족보 만들기, 자신의 사회적 입지, 신분 상승을 위해 양반가문과의 통혼, 권력자 배출(군수, 경찰서장)하기만이 윤직원영감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룩해야 할 인생의 과업입니다. 그런 양반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말하는 사람 입만 아픈 게지요. 그러니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오줌이나 먹고, 인력거 품삯을 깎았다고 좋아하고, 한참 손녀뻘 되는 여자아이를 희롱하고 있으니 참 불쌍한 인생입니다. 훌륭한 부모 밑에 개차반 자식 없다고 부모가 그러니 그 자식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버지를 사기를 처먹는 자식이나 부모의 첩과 매음하는 그 손자나, 증조부의 애인과 놀아나는 증손자나 하여간 막 나가는 집구석입니다. 그런 사고를 하고 있느니 그나마 제대로 된 종학이 사상관계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고 하니 윤직원의 속마음이 어떨지 안 봐도 딱 맞습니다. 하는 말이 이 정도니 말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야?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274페이지) |
학교 과제로 읽었지만.......단순히 과제 위해서 읽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글로 옮기기엔, 또는 말로 옮기기엔 벅차네요.. 뭔가 윤직원 영감이 답답-하고 얄미우면서도....책을 덮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계속 읽었어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채만식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
수능필독서 읽기
중1 아들이 본격적인 수능필독서 읽기를 하고 있어요. 첫번째 상록수를 읽고 두번째 삼대를 읽고 세번째로 선택한 작품이 태평천하예요.
한권한권 읽어가면서 소설 읽기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어요.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태평천하라는 작품에 대해서 잘 알거예요.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을 끝까지 다 읽어 본 학생은 그리 많지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수능필독서라는 선입견 때문에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기대이상 재미있게 잘 읽고 있어요.
고등학생이 되면 문학작품 특히 장편을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분량에서 오는 부담감도 있구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중학생 때부터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중1도 충분히 읽을 수 있고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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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임이 틀림없으나 여간해서는 의미를 알아채기가 어려웠던 일제강점기 시대를 보낸 작가 고유의 언어. 그리고 등장인물 사이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져 나오는 전라도 방언. 이 두 가지의 요소가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독해를 어렵게 하는 수고로움을 가져다주지만, 이 수고로움은 강점기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므로 마땅히 감수할 만하다.
약간의 수고로움만 견디어낸다면 <태평천하> 역시. 세계고전보다 우위에 있을만한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음이 틀림없다. 이번에 비교해볼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윤직원 영감(생김새와 덩치 때문에 윤두꺼비라고 불렸던 영감은 두섭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매관매직의 상징인 직원(直員)이라는 직함을 자랑스러워 했다.)의 인물 됨됨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4장의 제목(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에서 우리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며, 자기만 잘살면 누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스크루지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유사한 성향의 인물을 다루고 있으나, <태평천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으므로 비교적인 우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태평천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제공하는 판타지의 요소와 이를 통해서 깨닫는 내적인 자기반성이라는 교훈을 완벽하게 제거한다. <태평천하>는 예방의 의미보다 현실의 극한까지 보여줌으로써 깨닫게한다.
부유한 지주의 신분으로 땅을 소작농에게 경작케 하여 부를 착취하거나, 일수를 빌려주어 폭리를 취하는 윤직원 영감에게 일제강점기 시대는 구한말 신변의 위협에 따른 불안함에서 해방된 사회이며, <태평천하>의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삶은 윤직원 영감이 처한 신분에 한해서는 어쩌면 타당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윤직원 영감은 이런 평화로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린다. 명예까지 얻으려한다. 권위있는 양반가문으로의 전환을 계획한다. 하지만 권위(지방군수와 경찰서장을 손자로 둔 뼈대있는 집안의 완성)로의 멀어짐은 부유한 환경이라는 늪에 빠진 자식들의 니힐리즘적인 탈선으로서 이루어지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종학의 사회주의자로의 배반은 영감의 입을 빌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라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결국, 이 소설은 사회비판 이전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으며, 이를 개성적인 인물의 표현(풍자·역설·반어·희화·과장)으로서 적절하게 묘사한다. 그렇게 따지면 <태평천하>라는 제목 역시 풍자와 역설과 반어의 표현이다. 미상불(과연) 작가가 설명한 대로 현실의 ‘추’를 문학적 ‘미’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115P.“나 한번 급살 맞어 죽어뻬리면 아무것두 모루구 다아 잊어뻬릴 년의 세상…… 그런데 글씨,어쩌자구 내가 이렇게 아그려쥐구 앉아서, 돈 한푼에 버얼벌 떨구, 뭇 놈년덜 눈치코치 다아 먹구,늙발에 호의호식, 평안히 못 지내구…… 그것뿐잉가? 게다가 한 푼이라두 더 못 뫼야서 아등아등허구…… 허니, 원 내가 이게 무슨 놈의 청승이며, 무슨 놈의 지랄짓잉고오? 이런 생각이 가끔, 그 뒤버틈은 들더람 말이네그려!”
이와 같은 건전한 생각이 잠깐 그의 곁으로 찾아왔다가. 의미를 되새겨볼 여지도 없이 잔인하게 지워버린 것은 이런 고민 자체가 남들에게 약하게 보일 빌미를 제공했기에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을 어두운 대가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그의 비극을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