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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후배로부터 제일 감동 받았던 책이라는 추천을 받고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의 저서는 처음 접해보는 책이었지만, 그의 문화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 되어 주었다. 문화의 발전과정을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으로 풀어 놓은 그의 해박함은 한 분야의 전문가를 알게 된 기쁨 이상의 것이었다.
이 책을 보기 전부터 난 왜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무신론에 가까워지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해답은 마빈 해리스가 주장하는 생식압력-생산증강과정-생태환경의 파괴,고갈-새로운 생산 양식의 출현이라는 도식 속에 숨어 있었다. 어쩌면 인류의 문명과 종교, 강대국의 생성과정이 이처럼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책을 완독할 즈음에는 그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환경 결정론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그는 "역사는 결정론적인 역사이지만 동시에 인간은 도덕적 선택과 자유의사를 행사할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선언한다.
에덴동산부터 자본주의 까지를 생식압력이라는 단순한 키워드로 두루 섭렵하는 그의 능수능란한 해박함은 그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무신론이라는 화두를 생각하게 한다. 인신공양을 드리고, 짐승을 번제하던 야만의 종교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 고민은 깊은 번뇌가 아닐 수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로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내라는 신의 명령이 과연 현대에도 유효한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신이 현재에는 따사한 사랑을 강조하는 신으로 변모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어리석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어리석은 함정이 바로 종교라는 무신론적 주장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마빈 해리스는 또 어떤 키워드를 제시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가득하다.
예속적이고 종속적인 삶보다는 나름의 화두를 품고 사는 모습이 더 절실한 법이다. 배운 것을 의심하는 삶이 피곤할지는 몰라도 이 책을 통해 얻은 다양한 느낌들을 살아가면서 풀어갈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의 발전일 것이라는 작은 믿음으로 이 책을 갈무리 한다. [인상깊은구절] 이와 같이 끊임없는 생산활동 강화의 길 위에 들어선 제도는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기술혁신의 길로 나서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기술의 향상과 생산 조건들의 가차없는 악화 사이의 경쟁 결과에 달려 있다. 현재 상황으로는 기술이 이 경쟁에서 바야흐로 지려고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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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인의 편견과 오만’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시대와 지역에 따른 다양한 문화 유형을 고찰하여 그 의미를 살핀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제목으로 제시된 ‘식인’의 의미는 고대사회에 존재했던 ‘식인풍습’이 일부 지역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들의 삶의 조건에서 고찰하고 있다. 아울러 ‘제왕’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지위를 뜻하며, 결국 이러한 지위의 발생은 계급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전 세계에 널리 분포된 문화의 개별 유형들을 답사하면서 각 공동체가 부딪힌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고유의 문화를 형성했고, 일단 형성된 문화는 각자의 처함 조건에 따라 발전과 쇠퇴 그리고 소멸의 길을 밟게 되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에서 발견되는 식인 풍습은 물론 각 지역의 특이한 종교적 관습, 고대로부터 전개된 공동체의 양상과 제왕으로 상징되는 계급의 발생 과정을 살피고 잇다. 아울러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성립과 산업사회의 허실에 이르기까지 문화사의 흐름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성격을 ‘인류 역사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통사’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유형을 개별 지역 또는 시대의 특수한 생태환경적 조건에 대한 인간의 적응 형태’라고 전제한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다윈의 진화론에 기대어 있다고 여겨지며, 각 지역의 문화 또한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과정을 통해’ 그 나름의 특징으로 전개된다고 설명한다. 각 지역의 문화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결과로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문화가 전개되면서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 -> 생산증강과정 ->생태 환경의 파괴와 고갈 -> 새로운 생산 양식의 출현‘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고대사회’는 현대에 비해서 ‘낙후된 문화’로 인식하는 경쟁이 지배적이지만, 오히려 저자는 현대인들이 ‘미개인들의 물질적 빈곤을 과대하게 생각하였고 동시에 근대 산업 문명의 효능은 부풀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낙후된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일손을 덜면서 동시에 대량으로 생산하고 생활을 향상시키는, 기계와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기적과 풍요로움의 산업혁명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는 통녑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머릿속 깊이 주입된 이런 생각’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며, 오히려 ‘산업사회라는 것은 속빈 강정’이라고 단언한다. 즉 ‘산업사회의 이 대단한 풍요는 지구를 폐기물과 독소로 오염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사이비의, 고비용의 그리고 블량한 상품 및 서비스를 점점 더 많이 쏟아내고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현대에 와서 이루어놓았다고 생각하는 진보라는 것도 실은 많은 부분이 일찍이 선사시대에 널리 누렸던 것을 되찾은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이 저자가 전공 분야로서 문화인류학을 선택한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일련의 저서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한 다양한 문화유형을 탐색하고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저자의 연구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이해된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목차는 ‘문화와 자연’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에덴 동산에도 살인은 있었다’라는 항목을 통해서 이상화된 낙원은 그저 관념의 산물일 뿐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농업의 기원’과 ‘전쟁의 기원’은 인구 증가에 따른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문화’의 결과물이며, 전쟁의 필요에 의해 ‘남성지배제’가 성립되고 지배계급이 형성되면서 ‘원시국가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 이전의 중남미 국가들의 존재 양상을 상세히 고찰하면서, 그들의 ‘식인풍습’도 산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문화적 관습에서 유래되었음을 보고하고 있다. ‘희생양’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점차 사람에서 동물로 바뀌었으며, 종교 혹은 문화적으로 특정 동물의 고기의 섭취를 금지하는 ‘뮥식 금기’의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논증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자본주의의 발생’과 산업사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거품 같은 공업’에 대한 비판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어떤 문화이든지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형성되고 전개되는 것이기에,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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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꽤 유명하다. 몇년 전 돌아가신 지인이 추천해준 책인데, 그 당시 사놓고 쟁여만 놓고 있었다. 책도 좀 오래돼 보이고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이 그닥. 한물간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휴가철을 맞아 일주간 매일 반나절 정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행운덕에 그동안 구매만 했던 책들을 본격 소비하고 있다. 모처럼 소비가 구매를 초월하고 있다. 그러다가 서재 제일 아랫칸에 묻힌 이녀석을 발견했다. 이녀석을 본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지인이 죽고나서도 꽤 오랜기간 가상공간에 여러 흔적이 있었는데 며칠전 우연히 지워진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보였을 것이다. 책은 놀라웠다. 책의 출간 시점이 94년인만큼 97년 정도인 총균쇠를 앞선다. 그게 아니었음 총균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책으로 오인했겠지만 사실은 당연히 반대다. 어찌보면 총균쇠는 이 책을 다양한 사례와 균 정도를 보충하고 좀더 전시대를 자세히 보며 자신만의 의견을 강하게 보충한 책에 불과할지도 모를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계의 도킨스인 셈이다. 문화인류학이라고는 하지만 기실 이 책은 지리책에 가깝다. 상당히 지리적 결정론적 관점에서 쓴 책이다. 그 문화라는 것이 철저히 지리로 인한 생산력과 기후, 동물 및 생태계군에 절대적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도 문화보다는 그를 파생한 지리 이야기가 대다수다. 해리스는 공식을 보이는데 처음 정착지에서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이 생겨나고 이를 위해 생산력을 증가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며 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다. 그러면 이를 극복할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하여 문명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해리스는 이를 문화유물로적 결정론이라고 했으며(지리적 환원로이나 지리적 결정론이 더 잘어울리는데......) 이래 놓고서도 애써 자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책은 수렵시대부터 농경의 시작, 원시국가, 전쟁, 식인, 자본주의의 탄생과 그 한계를 다룬다. 인류역사 전체를 다룬 셈이고 시기순으로 다루었음에도 좀 시기마다 도약하는 듯한 모습과 주제별로 다룬 면이 있어 통사적인 느낌은 의외로 별로 없다. 수렵시대에는 인류는 평방마일당 2-3인의 인구밀도를 유지했다. 그 이상이면 생산력 저하가 급격히 오기 때문인데 마땅한 인구조절 방법이 없던 시기 해결책은 노인 살해 및 영아 살해였다. 당시 평균수명이 30세정도였고, 여성의 가임기시작부터 그 나이까지 생존하면 8회 정도의 임신이 가능하다. 절반정도의 아이가 여러 이유로 초기에 자연사해도 위의 인구밀도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정도여야 한다. 그러면 2-3명정도를 살해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영아 살해는 수렵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이르기직전까지 암묵적으로 꾸준히 유지되며 주로 여아에 집중된다. 해리스는 그 증거로 각 시대마다 인구밀도 과잉으로 인한 생산력 위기시에 등장하는 비 정상적 성비를 보여준다. 남아선호가 한창이던 20세기 말의 한국의 저리가라 할정도이며 1자녀 정책으로 남아를 선호하는 중국역시 명암을 못내밀 정도다. 이런 수렵인들에게도 나름의 인구조절 피임법이 있었는데 자로 수유기간을 길게 갖는것과 단백질 위주의 식습관이다. 이는 출산후 생리를 현저히 늦춘다 재밌는건 수렵시기라고 해서 인간에게 농경시대의 특징은 가축화와 재배기술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미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었고, 정식 농경까지는 아니지만 농경기술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발현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직 충분히 많은 수의 잡아먹을 동물과 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결핍이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빙하기의 끝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BC 1만3천년경 온난화로 동물의 터전인 목초지가 대규모로 사라지고 숲이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인간이 수렵기간동안 상당수의 대형동물을 절멸시킨 상황이어서 상황은 설상가상이었다. 자연히 인간의 식생활은 토끼나 사슴따위의 전에는 눈여겨 보지도 않던 작은 동물로 향하게 되었으면 조개류나 물고기도 주요 식량원이 되었다. 거기에 식물재배에도 노력을 기울여 농경이 시작되었고 육식위주의 오랜 식습관에서 채식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아마 온난화로 식물을 매우 잘 자랐을 것이다. 동물이 귀해짐에 따라 농경과 더불어 가축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염소나 소등의 가축들이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먹지 않는 식물의 다른 부위를 먹기에 무리없이 가능했다. 불행히도 아메리카는 구대륙보다 더 빠르게 대형동물이 절멸하여 딱히 가축화할 동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구대륙만큼 농경에 적합한 식물도 많지 않았다. 총균쇠에 나온 것처럼 이 커다란 차이는 향후 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가축은 생산력증강과 단백질 공급은 물론이요 힘쓰는 동물로 사용한 경우, 바퀴나 축, 도르레등 기술발전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 바퀴가 고작 애들 장난감으로만 쓰인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스는 이런 가축화를 전무후무한 동물 보호운동이라 했는데 정말 기가막힌 표현이었다. 농경이 시작됨에 따라 수렵채집인들에게 가능했던 피임법은 사용이 불가해졌고, 인구증가와 이를 위한 생산증강활동으로의 농경과 가축화는 삼림을 파괴하고 토양을 산성화 시키며 가축을 통한 질병까지 불러왔다. 농경시대의 전쟁은 이 해결책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의 기원은 조금 다르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과거 국가 시스템이 전무하고 영토개념이 없던 시기 전쟁은 인근 부족을 쫓아내어 인근 배후 지역에 무인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무인지대는 생태계의 보고로 향후 생산활동에 필요한 농물과 식물보호 역할을 하였다. 전쟁의 다른 이유는 인구조절기능이다. 전쟁에서는 주로 남자가 죽지만 사실 남자의 살해를 통한 인구조절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이나 세계2차대전후 세계 각국은 베이비붐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인구를 수년안에 회복한다. 하지만 몇세대 걸리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여성의 살해다. 남성은 수가 적더라도 여러 여성을 상대함으로 인해 인구조절에 기능이 없지만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인구의 수는 여성의 수만큼 늘수가 있다. 때문에 초기 인류의 전쟁에서 인구조절은 여아살해에 초점이 이루어졌고, 전쟁을 통해 남성을 중시하게 되는 남성위주의 문화를 통해 남아선호를 통한 일상적 여아살해기능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리스는 원시국가의 기원을 태평양지역 부족의 빅맨에서 찾고 있다. 빅맨은 부족 전체를 돌보고시혜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이는 재산상 빅맨에게 상당한 마이너스인데 이들 빅맨과 그 추종자들은 그럼에도 그 존경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행한다. 하지만 집약적 농업과 곡물이 대량수확되면서 이들 초기 지도자들은 상설 군대의 유지와 생산수단으로의 접근권을 제한할 권력을 갖게되며 본격적인 지배자로 올라선다. 이들 초기국가는 인구밀도가 과해지면서 분리되는 다른 촌락에 대해 재분배 기능을 제공하는 조건 혹은 패한 다른 촌락에 대해 추방대신 복종을 요구하며 성장해나간다. 초기 중심국가 주변에는 제2기 국가들이 들어서는데 이들은 초기국가에 대한 군사적 방어의 필요성과 초기 국가의 부로 인핸 무역 및 그 약탈을 위해 발생한다. 이런 국가의 성장을 이야기하던 해리스는 갑작스레 아즈텍의 식인문화로 향한다. 구세계의 주요 종교와 문화 및 관습들은 대개 식인을 금기시한다.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부 허용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즈텍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권장된 곳은 없다. 해리스는 정말 놀랍게도 이를 가축화할만한 동물이 부족하여 만성적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던 아즈텍의 자연환경에서 찾는다. 아즈텍의 신들은 인간의 피와 심장에 굶주려 있는데 피라미드위에서 산체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후, 신관들은 이 시신을 피라미드 아래로 굴린다. 문제는 이 시신이 아래쪽의 사람들에게 고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해리스는 아즈텍에서 포로로 잡아 인신공양에 사용된 사람의 숫자가 전체 사람들에게 충분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람고기는 비싼법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는 하위관리와 일부백성에게 지급되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반란을 막는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아즈텍에도 칠면조와 개라는 고기가 있긴 했지만 칠면조는 사람이 먹는 곡물의 낟알을 먹으며 개는 고기를 먹는다. 때문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매우 부적격이었기에 왕이나 일부 신관만이 사치스럽게 즐겼다. 또한 적절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리마나 기니피그를 가진 잉카문명에 식인습관이 없었던 것도 이를 어느정도 뒷받침한다. 그 다음엔 정확히 반대로 고기를 안먹는 쪽으로 간다. 바로 중동지역의 돼지금기와 인도의 소금기다. 농경이 심화되며 전세계 문화권은 늘 먹던 고기를 금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재배지가 넓어지고 이에따라 가죽을 위한 유휴지가 부족해졌기때문이다. 게다가 가축은 노동력제공, 비료 공급, 섬유질 공급등 쓰임새가 많았다. 때문에 고기는 모두의 음식에서 사치품이 되어갔으며 종교차원에서 육식을 금지하는 교리가 생겨나게 된다. 돼지는 고기공급원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지만 젖을 제공하지도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힘든 동물이다. 따라서 사치품이 되어갔다. 특히나 돼지는 스스로 열을 발산하지 못해 습기가 많은 지역을 선호하는데 사막지역인 중동에서는 정말 쥐약인 셈이다. 거기에 돼지는 자연상태에서 돼지감자, 과일, 견과류등 비싼것만을 먹어치우니 자연스레 중동지역에서는 돼지에 대한 혐오감을 발달시키고 금기시하게 되었다. 소는 정확히 반대다 소의 금기는 신성화로 나타났다. 돼지는 필요없음에 소는 너무나 필요했음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인구밀도는 매우 조밀했다. 거기에 여건상 관개수로가 매우 약하다보니 변덕이 심한 몬순의 강우량에 지역전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때문에 농경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소의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밌는건 암소의 신성화다. 수소는 노동력의 제공으로 가정에서 사육되지만 암소는 방목한다. 하지만 일상에선 크게 필요치 않은 암소도 기근이 심하여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지거나 수소의 재생산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보호받는 수소에 비해 일상에서는 보호하지 않은 암소를 신성으로 보호했다는 것이 해리스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소의 신성화의 경우 소를 사용한 다른 몬순 아시아 지역에서는 어째서 소의 신성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해리스는 중국의 예를 든다. 중국에서도 역시 소는 농경을 위해 귀한 동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와 인구는 비슷하면서도 몇배에 달하는 영토를 갖는다. 거기에 농경생산성도 인도의 두배에 달해 소에 대한 의존도가 인도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다른 가축을 위한 땅 및 기후조건도 좋아 굳이 소의 신성시까지 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자본주의외 의회민주주의다. 해리스는 왜 이 것이 세계 다른 지역이 아닌 알프스 이북의 북유럽에서만 등장할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우선 아시아지역을 살피는데 인도및 중국 지역의 문명을 비트포겔의 개념을 빌려 수력사회로 간주한다. 수력사회는 문명이 주로 건조 및 반건조지역에 위치에 하천의 물을 끌어다쓰는 평원과 계곡에 발달한 사회를 말한다. 이 사회에서는 생식압력에 대처하고자 필연적으로 수리시설의 강화가 필요하며 이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관료제를 동반한다. 수력사회에서 왕조의 순환은 다음과 같다. 초기 왕조는 치수-관개생산양식을 회복하거나 개선한다. 이로 인해 인구가 다시 조밀해지며 생산력을 한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왕조의 지속에 따라 이를 해결해야할 관료조직 역시 부패해지며 생산력이 더욱 떨어져 일반 백성은 극빈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패권을 다툴 반란 혹은 외부 침입이 일어나고 그 결과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여 이 쳇바퀴를 다시 돌리게 된다. 이런 수력사회는 관개의존성으로 인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를 갖게되며 국가가 대내적 수탈 대외적 수탈, 공공기관을 통해 국내의 모든 재산을 통제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생기기 매우 어려운 여건에 놓이게 된다. 반면 알프스 이북의 기후는 겨울의 많은 강설량과 봄비로 연간 충분한 습기가 공급된다. 게다가 이렇다할 큰 강도 존재하지 않아 강 주변에 문명이 집중하는 수력사회에 적합치 않다. 이로 인해 인구가 전역에 분산되며 문명이 지방 분권적 경향을 갖게 된다. 국가형성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져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장원경제체제하에서도 왕과는 별도로 장원경제가 돌아갔다. 생산수단에 대한 확실한 접근제한권을 갖고 있던 수력사회와는 달리 유럽지역을 왕이 이렇다할 칼자루를 갖지 못했던 셈이다. 이런 장원경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해리스의 공식처럼 장원경제체제의 생산력이 인구밀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연스런 여아조절로 성비가 130대 100에 달할정도로 인구조절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장원의 생산성에 관심이 많은 영주와 농민들은 수입원 보충 수단으로 양모를 얻기 위한 양치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양을 위한 목초지가 재배지를 집어삼키면서 농민의 토지는 감소하였으며 땅을 잃은 농민들은 빈민화 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발달하고 있는 도시노동자로 변모한다. 이는 도시노동자의 임금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효과를 낳아 제조업이 발달하는 최저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의 부 축적을 방해하던 여러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제약을 풀어헤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생산력 약진을 가져온 제도로 해리스는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해리스는 화석연료에 의지한 지금의 생산력이 화석연료의 고갈 및 생태계 파괴로 인해 다른 문명들처럼 곧 생산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한다. 책을 쓴 시점이 94년이니 그럴만도 한데 무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화석연료에 충분히 의존하고 아직 그 고갈에 큰 신경을 안쓰고 있으며 환경을 더욱 크게 파괴되었지만 매우 더워진 지구에서 그럭저럭 버티며 4차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인류를 보면 저자가 어떤 혜안과 반응을 보일지 자못궁금하다. 하긴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본격화되고 심각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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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분야의 책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인류학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인류는 앞으로 위로 전진하고 상승하는 진보를 계속 거듭해 나아간다고 보는 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을 들여앉히는 데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물질적․정신적 복지와 생산증가 및 인구억제를 위한 여러 제도의 비용과 효과, 그리고 이 양자 간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식인풍습, 사랑과 자비의 종교, 채식주의, 유아살해 그리고 생산의 비용과 효과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와 도덕적 선택이 사회제도의 발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그 이후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16세기 유럽사람들이 발견한 신대륙에 사는 원주민들이 전쟁을 벌이고 적의 목을 베어 전리품으로 모으고, 포로를 산채로 불태우거나 종교의식에서 인육을 먹는 것을 보고 이들이 미개하다고 단정한 것을 두고, 저자는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던 유럽 사람들도 인육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대륙의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에는 공통된 문화적 틀을 유지하게 하고, 변화에 최초의 시동을 걸며, 같은 또는 다양한 방향으로 변환과 변혁을 결정짓는 프로세스가 있으며, 그 프로세스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합니다. 석기시대 이래로 인류는 식량의 공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손쉽게는 유아살해나 노인살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채집과 사냥으로 식량을 구하던 인류가 농업과 목축을 통하여 식량을 얻게 되었지만, 이는 삶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을 수는 있지만, 투입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집단의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집단과의 전쟁이라는 차선책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원시국가의 형태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신대륙 원주민들의 식인풍습을 인용했습니다만, 마야와 아즈텍에서 식인풍습이 자리하게 된데는 마땅한 단백질원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의 선주민들이 야생동물들을 남획하여 멸종하면서 이를 대체할 가축을 개발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구대륙에서 소, 돼지, 말,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을 가축화하고 있었고, 안데스지역에서는 라마나 기니피그를 가축화하고 있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백질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에게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보면 고대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인신공양과 더불어 식인의 풍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배경까지도 재화와 용역의 배분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세 무렵까지도 문명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던 중국의 국가체제가 벌전하지 못한 것도 재화의 배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출산율 저하나, 영아살해 자녀유기 등의 끔찍한 사회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어린이 양육이 가져오는 순이득이 그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유리할 때는 자녀를 많이 낳았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진화의 방향이란 누구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발전 방향이 제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열려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자유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
| 제 인생에 전기를 마련한 책이 4권 있습니다. 하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전전날인가 봤던 '교과서에서의 여성 차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어린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교과서를 배웠던 저는, 교과서가 실은 얼마나 여성차별적인가를 깨닫고 전율을 느꼈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중2때 보았던 정신세계사의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인간의 시간이 얼마만한 용량을 갖고 있는가를 실존인물의 삶을 통해 펼쳐보인 책인데, 그걸 읽고 또 한번 충격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게으름을 버리지 못했으니, 게으름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인가 봅니다.) 세 번째 책은 고2때 보았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 그렇다고 제가 딱히 실제 행동에 옮기는 훌륭한 지식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만(웃음), 적어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지요. 교과서의 이미지를 꺠어 준 책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책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책이 바로 이 대학교 2학년 때 봤던 '식인과 제왕'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종교의 문제로 상당히 고민을 하고 있었고, 이 책은 그런 저에게 굉장히 설득력 있는 '무신론'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저를 '신은 없다' 쪽으로 돌려놓은 책. 어쩌면 가장 큰 영적 호소력을 저에게 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한참 종교의 문제로 고민하던 저에게는 복음이자 전율이었습니다. 왜 현대의 신은 역사(役事)하지 않는가. 왜 종교는 남녀차별적인가. 남녀차별의 문제는 초6이래 저를 항상 괴롭히던 의문이었고, 이 책은 그 뿌리에 관하여 어떤 종교도 제게 주지 못했던 해답을 주었습니다. 바로 <생식 압력="">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의 키워드가, 저의 오랜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던 것입니다. 내 인생 첫 번째 책의 '완성'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 생식 압력이라는 키워드는, 지방마다 다르게 발전한 금기, 종교, 그리고 좀더 구체적인 의문들, 가령 왜 더 발전했던 중국이 후대에는 유럽에게 먹혔는가 라든가 그런 의문에도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책이 지나치게 문화를 환경 결정론적으로 몰고간다고 비난한다지만 글쎄요, 이보다 더 명쾌한 이론이 어디 있을까요. 가령 챕터 13의 '물의 올가미'. 이 이론보다 더, 중국과 유럽의 역사 발전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 있었습니까? 끽해야 유럽인들이 한다는 소리는 백인의 우월함 아니던가요. 왜 아스텍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먹었는가에 대한 해답 역시 다른 책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은 그 역사에 대한 끔찍하고 선정적인 이미지만을 부각할 뿐, 근원에 대한 해답을 파고들지는 않지요. 하지만 마빈 해리스는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든 문명에 빠짐없이 적용되면서 아무런 모순을 남기지 않는, 완벽한 키워드를!! ...어쩌면 저는 이 책을 읽고 느낀 경이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남들은 찾아내는 오류를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학계 사람들은 이 이론에 반박도 많이 한다니까) 하지만, 이 책은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 있습니다. 사회 현상의 근원, 인간 역사의 원류. 문화의 생성 과정. 모든 부조리와 차별과 불합리에 의문을 느끼고 진리를 갈구하던 모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분명 뭔가를 얻을 것입니다. 설령 약간일지라도, 분명히. 모든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생식> |
| '문화의 수수께끼'를 통해 마빈 해리스라는 문화인류학자를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얼마나 큰 편견이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일게 되었다. 그리고 식인과 제왕에서는 다양한 문화유형을 더듬어가면서 일관된 논리를 전개해 간다. 때에 따라서는 수긍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지만 각 문화를 존중해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얼마전 우리 사회는 '개고기'논쟁으로 시끌벅적하였다. 애갯거리가 될 수 있는 가치조차 없는 진부한 이야기들이 강자들의 논리와 시각에 비추어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보면서 개탄을 하면서도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대표(?)들을 보면 조목조목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가웠다. 제국주의적인 눈으로 약소국의 문화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시각에 조리있게 대답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인 동시에 인류문화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사람, 사회에, 인류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이들이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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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문화의 이해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은 그 태생이 비록 서구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용도로 탄생했지만 오늘날 절실하게 연구해야 할 분야이다. 문화인류학의 거장인 마빈 해리스의 이 책 <식인과 제왕>은 문화 이해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의 지구상의 각각의 문화란 절대 우연이 아닌 '필연'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해리스의 모든 관점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문화인류학자로서 오 랜 세월동안의 현지관찰과 여러 연구 보고서를 중심으로 세운 가설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명쾌하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역사를 되짚어보는 고고학을 비롯한 문화인류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특징이란 '추측'을 가장 설득력있게 해내는 것이 아닐까.
문화의 독창성과 개별성이 퇴색되어가는 현대사회에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문화를 지키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분야이고 바로 이런 책이 문화인류학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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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의 저작이다. 1953년부터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미국의 수많은 대학에 초빙되어 강의를 했다. 1981년부터 현재까지는 플로리다 대학에 재직 중이며 미국인류학협회의 인류학 분과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브라질, 모잠비크, 에콰도르 등에서 오랫동안 현지조사를 한 바 있고, 문화 생태학적 입장에서 식민주의와 저개발국가의 문제, 그리고 인종과 민족문제의 상호관계를 비교문화의 측면에서 깊이 연구해왔다. 특히 이들 지역의 가족생활을 비디오 테이프를 사용하여 연구하는 일에 선국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자신감과 패기 넘치는 논객이기도 해서 여러 인류학 잡지에 정력적으로 기고하면서 활발히 논쟁을 펴고, 과거의 여러 인류학자들의 입장을 서슴없이 비판하는 것으로도 이름나 있다. 구석기 시대로부터 산업사회 후기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문화유형을 더듬어가면서, 그득 문화유형의 특성, 발전, 쇠퇴, 소멸의 배후에 있는 윈인들을 일관성 있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류역사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통사라고 할 수 있다. 해리스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유형을 개별지역 또는 시대의 특수한 생태환경적 조건에 대한 인간의 적응형태라고 설명한다. 그는 문화 유형의 진화과정을 다윈이 생물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듯 설명한다. 자연조건, 즉 생태환경은 인간의 의지나 희망과는 무관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는 독립변수로서 인간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제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과정을 통해 여러 문화 유형들은 그 특이한 문화적 특성을 취득하게 된다고 본다. 해리스는 문하발전의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인간의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생산증강과정→생태환경의 파괴, 고갈→새로운 생산양식의 출현’이라는 도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것은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과 자기조절의 과정을 도식으로 요약한 것으로, 가족제도, 재산관계, 정치경제적 제도, 종교, 음식의 기호, 금기를 포함한 음식문화 등의 진화, 발전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 그러나 해리스는 인간의 창의력과 자유의지를 ‘결정된 과거’와 ‘결정된 미래’의 틀 속에 완전히 가두어버리는 이른바 기계적 결정론자로 자신을 분류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물질적 과정과 도덕적 선택 사이의 관계는 확정성과 동일성의 관계가 아니라 확률성과 유사성의 관계”라고 말한다. 따라서 해리스는 “역사는 결정론적인 역사이지만 동시에 인간은 도덕적 선택과 자유의사를 행사할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선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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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해 친구들과 논의를 할때면 신기하게도 오타쿠처럼 관심이 유독 많이 가는 부분이 있다. 나는 종교에 관심이 많고 친구는 전쟁, 그리고 다른친구는 과학기술에 중점을 두고 역사를 해석해나간다. 물론 이 세가지를 완벽히 나눠서 이야기할수 없기에 어쩔수 없이 공부하다보면 모두 공부하게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친구가 공리주의에 관해 설명하면서 하나의 예시를 들었다. 바다에 표류하는 4명의 사람이 있는데 먹을게 없는 상황에서 한명이 바닷물을 많이 마시고 죽었다. 이런상황이라면 바닷물을 마시고 죽은 자를 먹어도 되는가였다.
물론 나는 그 문제가 공리주의의 예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이 식인과 제왕의 책을 들고와 먹어도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인육을 먹은적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는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동료를 잡아먹기도한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인간을 먹느냐 나는 인간성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되묻고 싶다.
우리가 안정된 식량이 공급되고 공권력에 의해 치안이 안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그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 그 인간성을 강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정적인 사회가 붕괴된다면 그때도 인간성을 유지하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일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안정적인 사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리적으로 식량자체가 잘 나지 않거나 단백질 공급원인 동물이 부족하다면 자연스레 인육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때도 인간이 인간을 먹는데 있어 꺼리침했던 것은 있었나보다. 종교를 만들어 우리가 먹는 행위가 꼭 먹기위한 행위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일정부분 쇄뇌를 시키는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낙후된 시설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을 비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방식으로 그들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발달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 그 나라의 지형, 기후, 주위 국가와의 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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