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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연 장편소설/ 네오픽션 멸망 이후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생명이 존재 가능한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까? 혹은 지구에서 거주가 불가능해진다면 대안은 무엇이며 지구 밖에서의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SF 소설을 만나면 떠올리는 질문들이다 이야기는 서기 27543년, 인류가 자취를 감춘 지구에서 시작된다. 까마득한 숫자다. 결말에서도 무려 2000년을 교차로 건너뛴다. 역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지구의 회복을 위해 냉동 캡슐에 들어갔던 그리고 지금 소설의 처음에서 깨어나는 에리카!! 변화된 지구에서 다른 생존자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며, 인류의 흔적과 자신의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이야기다. 과연 에리카의 탐사는? 그 여정은 어떨까? 문명이 파괴되어버린 후, 새로운 문명을 마주하게 되는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인간 없는 인간이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가 먼저 밀려온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인류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SF적 상상력과 동시에 철학적인 사유를 마주하게 되는 책이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기존 해도연 작가 전작들의 주제를 확장하여, 인류의 종말 이후에도 지속되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룬다. 한국에서 과학소설이라 불렸던 SF에 대해! 이 분야 덕후로써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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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협찬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난 아직 여기 있어.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고." 마치 인류 문명의 시작을 그려내는 듯한 작품이랄까? 그래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인류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 내려간 소설 [라스트 사피엔스] 문명의 시작이 있었으면 끝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거듭된 반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아마도 냉동 캡슐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장치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 캡슐 안에 있는지 아무런 기억도 떠올릴 수 없는 주인공 그는 띄엄띄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단서들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에리카라는 점과 이미 2만년이 훌쩍 지난 미래의 시점과 공간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천천히 주위 환경을 파악해나가듯 새로운 눈으로 주위 환경을 알아가는 주인공 에리카. 그녀는 본인처럼 냉동 캡슐 속에서 사망한 듯한 사람과 마치 폐허처럼 변해버린 건물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를 짐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양쪽으로 갈라진 긴 코를 마치 팔처럼 사용하고 있는, 어쩐지 코끼리를 닮은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게 되고 그들을 "캔티펀트"라 부르며 관찰을 하고 추적하는 에리카.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모습과는 달리 캔티펀트들은 에리카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상당한 공포심을 자아내는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와 같은 독자들은 문명이 파괴되고 인간 존재가 사라져버린 듯한 공간에서 홀로 남은 에리카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그러나 공포스러운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외감을 자아내는 소설이다. 지성을 갖춘 생명체 "캔티펀트"가 가진 자애로움과 배려심 그 리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연대하는 에리카의 모습 그리고 먼 우주에서 들려오는 "살아라"라고 하는 신호는 어쩌면 우리 인류의 한정된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 우주가 인류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는 느낌이었다. 막판에 드러나는 일종의 반전은 한편으로는 허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만드는 결말이랄까? 마지막에 나오는 에리카의 선택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일종의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SF 적 상상력과 철학적인 깊이가 만나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 [라스트 사피엔스] 인류의 미래와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라스트사피엔스, 해도연,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장르소설, SF소설,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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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3500년? 무려 25000년 후의 미래를 그린 이 소설은 여러모로 독자의 상상을 과감하게 깨뜨립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세요. 미래에 대해 상상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그런 생각들도 이미 읽었던 책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의 상상력을 훨씬 넓혀주었다. 청소년이 읽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뻔하지도 않고, 뻔뻔하지도 않다. 그저 새롭기만 할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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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는 책마다 너무 재미있어서 진심 행복하다. 듀나의 바리를 읽고난 다음 이 책을 읽은 게 신의 한수 인거 같기도^^ 깨어나보니 25000년이 지난 지구라니.. 보통 지구의 생명이 다해서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소설들은 많이 봤지만..인간들로 인해 죽어가는 지구가 다시 재생되기를 기다렸다가 깨어나게 설계된 캡슐안에서 동면 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 기억에 오류가 생겼는지 자신의 이름조차 떠올릴수 없지만..깨져버린 글자들 사이에 에리카 잭슨인듯한 글씨를 유추하여 자신에게 에리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주변 탐사를 시작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이 살던 시대와 비교도 안되게 깨끗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느낄수 있고..그때와 닮은 듯 다른 식물들과 동물들.. 어느날 조랑말과 코끼리를 합친듯한 외형에 기다란 코가 갈라져있고 그 갈라진 코끝에는 손가락 비슷한 모양이 있어서 인간의 손처럼 보이는 커다란 동물들을 발견하고 에리카는 그 존재를 켄티펀트라 부르는데 상당한 지능을 가진 켄티펀트는 에리카를 위협하고 심지어 그녀를 사냥하려는 덫까지 설치한 걸보고 에리카는 켄티펀트를 사냥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귀에는 보석으로 가공된 귀걸이가 끼워져 있었는데..인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이토록 정교하게 가공된 귀걸이가 끼워져있는건 대체 무슨 의미인걸까? 켄티펀트 무리가 지키고자 했던 아기 켄티펀트..그의 귀에는 귀걸이가 없었고 벽화를 통해 자연에서 탄생한 유일한 개체임을 알게 되는데..다른 켄티펀트들과 다르게 에리카를 겁내하지도 않는 켄티와 함께 에리카는 자신의 임무를 찾아서 떠난다. 숲을 벗어난 먼곳에 있는 도시 한가운데 방주가 있고 먼저 깨어난 에리카가 환경 조사를 마친후 잠들어 있을 인류를 깨우는게 자신의 임무라고 확신한 에리카는 켄티와 함께 방주로 향하는데... 켄티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나 울리면 가만 안둘꺼라고~~괜시리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읽어나갔는데.. 댄장 결국 눈물나게 만드는 작가님 ㅠㅠ 지구상에 단 한명 남은 인간이라는 개체..인간들을 깨워 다시 문명을 이루려했지만..인간이 없던 25000년 동안 이 지구에는 다른 개체가 살고 있었고.. 그럼 그들에게 내어주는게 맞는거 아닌가.. 아니 애초에인간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지구의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는 그 어떤 생명체라고 죽일수 있게 만들어진걸까? 꼭 자신들이 나머지를 지배해야만 속이 시원한걸까? 방주에 다달았을때 상상도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고.. 마지막 장까지 꽉채워서 흥미진진했던 소설이었다. #라스트사피엔스 #해도연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sf #도서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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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냉동 캡슐에서 깨어난 사람. 소리쳐 불러도 주변에 사람은 없어 보인다. 깨어났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그 어떤 기억조차 없다. 캡슐 안 작은 화면에서 영어로 적힌 '에리카 잭슨'이 자신의 이름이라 여긴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과 똑같은 외모의 사람과 연인처럼 다정한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뒤에는 26세기, 밝은 미래에서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정말 내가 500년이나 자고 일어난 것인가? 오싹한 마음에 캡슐에서 시계를 찾아본다. 너무 이상해 처음에는 시계인 줄 모르고 지나친 장치에 적힌 숫자. 초, 분, 시, 일, 월, 년. 지금은 27543년이었다. 사진에 적혀있던 약속된 시간보다 25000년이나 지난 후 에리카는 홀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에리카는 인간의 문명이라고는 폐허뿐인 이 낯선 지구에서 새로운 생명체들과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에리카의 기억 속에는 없는 새로운 생명체 '켄티펜트'를 만난다. 그리고 개체 중 가장 어린 켄티펜트를 '켄티'라 부르며 다른 인간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방주'를 향해 여정을 떠난다. 📌후기 우선 소설 배경이 흥미로웠다. 100년도 1000년도 아닌 '25000년 후'라는 시간적 배경이 색달랐다. 그리고 다른 외계가 아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익숙한 이 '지구'를 낯설게 만드는 것에 눈길이 갔다. 소설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이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책이 재미있다고 할 때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그중에는 '뒷얘기가 궁금해서 책이 끝나는 것이 아쉽거나 앞 얘기가 궁금해서 절로 상상하게 만드는가?'이다. 이 책은 처음 캡슐에 사람들이 올라갈 때, 방주를 세울 때인 앞 내용과 소설이 끝난 뒤의 이야기를 마구 상상하게 만들었다. 스포일러 때문에 말은 못 하지만 결말은 특히 내가 상상도 못한 방향이었다.(positivie) 켄티와의 케미도 이 소설의 재미와 감동을 더해준다. 주인공 에리카의 성장과 변화도 이 소설의 큰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당장 에리카는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당장 먹을 것, 마실 것, 잘 곳을 마련해야 했으며 다른 생명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소설 후반부에는 이런 신체적 능력의 상승뿐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통해 에리카의 정서적 성장도 느낄 수 있었다. 재미뿐만 아니라 성찰도 있는 책이었다. 인간 존재의 유한함, 인간이 지구에게 끼치고 있는 피해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겸손해지는 시간이었다. 📌마무리하며 오래간만에 결말까지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200쪽 정도의 길지 않은 소설이고 흡입력이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sf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SF 장르의 초심자들도 거부감 없이 술술 읽으리라 생각한다. +) 황폐화된 지구와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김보영 작가님의 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배경만 유사하고 내용은 다르니 해당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라스트 사피엔스>도 같은 듯 다른 결로 충분히 즐겁게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 책 뒤표지에 부서진듯한 바코드까지! 디테일에 감탄했다. <본 서평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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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생명윤리, 별, 우주, 문명개척 등의 소재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드립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배경의 디테일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플롯... 그리고 25000년을 넘나드는 과감한 시도와 아름다운 별, 밤하늘을 묘사하는 해도연 작가님의 작품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요즘의 양산형 SF소설들 중에서는 단언컨데 독특하고 새로운 색을 뽐내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출판사를 통해 서평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는 크게 소리를 질러봤지만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는커녕 자신의 이름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캡슐에서 나온 에리카는 주변 환경을 둘러보지만 고요한 숲 뿐입니다. 그리고 떠올린 기억. 2050년 즈음 에리카는 캡슐에 올라탔던 기억이에요. 캡슐안에서 누군가와 찍은 '26세기에 만나자'는 사진도 발견하게 되죠. 그 말은 즉슨 500년동안이나 잠들어있었다는 말? 하지만 주변을 더 살펴본 후 500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27543년. 약속한 시간에서 약 25000년이 지났다. 구름이 태양을 가렸고 멀리서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는 사흘동안 이어졌다. 돌발 상황이 발생한게 분명합니다. 26세기에 깨어났어야 했는데.. 상상이상의 시간이 흘러버린 지구에서 에리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라스트 사피엔스>는 마지막 인류라는 뜻으로 지구에 남은 한 명의 인간 에리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쯤에는 라스트가 아니라 퍼스트로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칠듯한 외로움에 사로잡힌 그녀가, 그녀의 운명이 한탄스럽습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누구의 대답도 바라지 않았다. 에리카 자신을 향한 절규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시간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었다. 아무리 외쳐도, 시간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초반 도입부는 대부분 자연환경 묘사로 전개됩니다. 전형적인 포스트아포칼립스의 배경속에서 고독과 싸우면서 으스러진 과거문명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무너진 벽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별들의 위치마저 달라질 만큼 시간이 지나버린 것이다. . 오리온 자리. 조금 비틀어지기는 했지만 과거의 모습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별자리. 손가락 끝으로 별을 하나씩 짚어가며 오리온자리를 따라 그렸다. 멀고 먼 별들을 이으며 그리는 보이지 않는 선이, 이 깊은 심연 속에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는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 밤하늘의 별자리가 달라졌다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럼에도 오리온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에이다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과거의 밤하늘을 담아두고 있을 수 있을 만큼, 에이다는 가까운 관계였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대학원에서는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작가님은 전공을 살려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냈는데요.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에리카. 이 파트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해도연 작가님의 컬러와 매력이 그대로 담긴 페이지라고 생각해요. 지평선 끝에 보이는 도시를 향해 나아가는 에리카는 이때까지 본적 없는 생김새의 생물체 만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됩니다. 그래서 중후반부터 본격적이다, 재미있어진다. 는 평이 많아요. 어떻게 이런 환경이 되었는지, 인류는 어떻게 멸망했는지. 그리고 해괴한 생물 켄티펀트는 어떤 생명체고 어떻게서 태어나게 되었는가 등등 반전의 요소도 정말 많은 책이기에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독특한 sf장르의 소설을 읽고싶었던 분들에겐 분명히 재미있을 작품입니다. 인류의 멸망의 원인, 과정에 주목하기 보다 그 이후의 미래, 새로운 건설과정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저처럼 SF를 좋아하고 즐겨보시는 분들은 한 번쯤 색다른 맛의 소설을 즐겨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해도연 #sf #도서추천 #네오픽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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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했고 슬펐던 이야기 그래도 그 속에서 에리카는 실패에 주눅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잘못를 인간들의 잘못된 만행을 바로잡고 문명을 개척해갔다. 그덕에 새로운 생명체는 문화를 만들고 자신들의 자손들을 번창하고 에리카의 업적을 자손들을 향해 나아갔다. 과연 에리카는 어디로 갔을까? 기억이 돌아왔을까? 아마 에리카는 기억이 돌아왔든 안돌아왔둔 상관없을 것 같다. 결국 인류는 멸망했지만 새로운 생명체를 거두고 가르치면서 그들이 지구에서 새롭게 살아가길 바라면서 모험을 떠났을 것이다. 다행히 외롭지 않게 언제가 우리의 미래가 될 지 모르는 지구의 모습을 작가님은 조금은 현실감있게 그려내면서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이 아닌 자연으로 뒤덮인 세계로 과연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쓴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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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피엔스》는 25,000년 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삼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류입니다. 인간 중심의 문명, 그 문명이 초래한 생태 파괴와 오만, 그리고 그 결과로 찾아온 고독한 파멸. 에리카의 여정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닌 기억하고, 목격하며, 기록하는 ‘증인의 임무’입니다. 작가는 그 임무를 통해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스트 사피엔스》는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존재의 윤리’를 다시 꺼내 보입니다. SF 장르가 제공하는 상상력은 이야기의 장식일 뿐, 핵심은 결국 인간에 대한 근본적 성찰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드 피플’의 유산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요?. 누군가를 짓밟고 살아남는 이 삶이, 과연 생존이라 부를 만한 것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에리카의 마지막 선택에서, 그리고 그녀가 ‘기적’이 되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도연 작가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조예가 깊은 국내 SF 작가로, 인간 존재와 과학기술의 미래를 섬세하게 교차시키는 세계관으로 독자층을 넓히고 있습니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그가 창조한 가장 깊이 있는 세계 중 하나로, 감성적 서사와 공학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의 문체는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감정의 파동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기술적 휴면 상태(냉동 수면)와 지구 환경 회복, 인류 종말론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독자의 정서와 철학적 질문에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므로 누구나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단, 이 작품은 '무엇이 인간인가'라는 추상적 질문에 감정으로 답하려는 성향이 있으므로 감성적 공감능력이 클수록 깊이 있게 읽힐 것입니다. 해도연 작가는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인간성'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기술적 진보로 얼어붙은 시간과 기억 속에서 깨어난 ‘에리카’는, 문명이 사라진 야생에서 인간다움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작가는 '생존'이 아닌 '기억과 관계의 회복'을 통해 인간성을 되짚습니다. '만약 인류가 사라지고 단 한 명만 남는다면, 그 사람은 인간인가?' 작가는 인류 문명이 정점에 다다른 21세기에서, 인간의 본질을 되묻습니다. 문명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이라는 종의 고유성이 남을 수 있을까? 에리카는 기억과 책임, 존재의 의미를 짊어진 최후의 철학자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에리카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던집니다. 소설은 약속된 미래 대신 25,000년이 지나버린 먼 시간의 지구에서 눈을 뜬 에리카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도, 문명도, 약속도 사라진 그 세계는 기묘할 만큼 생명으로 가득하지만, 인간의 흔적은 차갑고 황량하기만 합니다. 에리카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언제’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가 깨어난 시점은 무려 27543년. 자신이 속했던 26세기에서 2만5천 년이 흐른 시간이었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유적, 멸망의 흔적들, 그리고 사라진 인류는 그에게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왜 살아남았는가?” 작가는 이 질문을 따라가며, 인간의 존재가 생존에만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26세기, 밝은 미래에서 다시 만나.’ 그러나 지금은 27,543년.” - 이 문장은 깨진 약속과 홀로 남겨진 자의 슬픔을 상징하며, 소설 전체의 감정선을 이끕니다. 작가는 '우리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서조차 인간성은 남는가, 혹은 반복되는가를 묘사합니다. 에리카가 만난 ‘배드 피플’은 인간성의 어두운 잔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가축처럼 생명체를 사육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멸망 이후에도 인간이 ‘지배’를 놓지 않았다는 메시지처럼 다가옵니다. “배드 피플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 에리카가 ‘켄티펀트’들의 상처를 목격하며 느낀 인간의 잔혹함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그대로 투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중반을 채우는 건 에리카와 ‘켄티’의 동행입니다. 말도 다르고, 생김새도 전혀 다르지만 ‘감정’과 ‘공감’으로 이어진 이 두 존재의 관계는 어떤 인간관계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에리카는 켄티에게 ‘이름’을 붙이고, ‘가족’처럼 여깁니다. 그 유대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해지고, 켄티로 인한 상실감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에리카는 끝내 자신이 마지막 인간임을 받아들이지만, 더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연결’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ㅅ“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나은 존재였다. 그래서 생존할 수 없었다.” -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온화했던 켄티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저지른 폭력과 지배의 결과임을 암시합니다. 에리카가 만난 새로운 지성체들은 그녀를 ‘뷸로 에리카’, 즉 전설 속 존재로 기억하며, 그녀는 이들에게 자율성과 자유의 의미를 전합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리카는 과거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남기는 자가 됩니다. “뷸로 에리카는 우리가 스스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며 그곳을 영원히 멈춰 버렸단다.” - 에리카는 더 이상 인간의 방식대로 생명을 생산하지 않도록 ‘기계’를 멈추고, 선택의 자유를 전하는 기적이 됩니다.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에리카의 존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에리카는 마지막 인간이었지만 마지막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책의 전체 메시지를 정리하는 한 문장입니다. 에리카는 인간의 마지막이지만, 새로운 존재들이 시작될 수 있도록 이정표를 남긴 인물입니다. 소설이 끝나는 순간, 독자는 깨닫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라질 존재지만,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건 ‘다음 존재를 위한 기억과 가능성’이라는 것! 《라스트 사피엔스》는 방대한 시간의 흐름과 미래적 상상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아주 ‘지금’의 이야기입니다. 기후 위기, 인간 중심의 착취, 생명 경시... 우리는 26세기의 방주로 피신해야 할 위기의 초입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주가 다시 한번 말했다. ‘살아라.’ 에리카는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들었다.” - 살아남은 이유가 없던 그녀는, 이유 없는 생존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에리카는 마지막이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라고. 다음 기적이 오고 있다고. “마지막 인간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라스트 사피엔스》는 끝에서 시작을 발견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강력한 문장들로 가득했습니다. 읽고 나면, 혼자였던 에리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우리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라스트사피엔스 #해도연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포스트아포칼립스 #SF장편소설 #소설 #소설추천 #독서 #독서습관 #책소개 #책추천 #추천도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도서 #신간도서 #신간 #서평 #도서서평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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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투리’라는 인공 가축이 인상 깊었다. 인간이 먹기 위해 만든 존재인데, 언어와 도구까지 사용하는 지성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보다 더 윤리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달까. 그래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육식과 동물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먹기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된 점은 이 책이 준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술술 읽히는 문장과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윤리적 질문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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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피엔스 - 해도연 읽으면 읽을수록 더 빠져드는 책이다. 읽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책이다. 굉장히 매력적이면서도 인간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___ p.48 '스피카는 언젠가 초신성이 되면서 크고 아름다운 성운을 남길 거야. 지구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성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아주 먼 미래의 일이 아닐까.' 아주 먼 미래. 지금 에리카는 그 미래 속에 있었다. p.50 하늘 높은 곳의 거친 바람 때문에 하얀 별빛이 반짝일 때마다 성운의 영혼이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마치 죽음 너머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살아라.‘ ‘살아라’ 이 부분에서 굉장히 소름돋았다. 일부러 살려준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무슨 말을 해도 스포가 될 거 같아 어떤 식으로 소개해야 될지 모르겠다. SF 적인 요소와 판타지이지만 굉장히 인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이다.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그런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혼자 남은 에리카가 새로운 지성체 켄티를 만나 방주로 향하며 일어난 일들이 나온다. 그냥 많은 분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까지 두근거리면서 책을 한자리에서 끝까지 읽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뭐라 설명을 못하겠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작품을 이상하게 설명하는 느낌이여서. ___ p.199 이렇게 공장에서 쏟아지고 있음에도 투리가, 켄티펀트가 번성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에리카는 알았다. 켄티와 함께 지내면서 알았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나은 존재였다. 그래서 생존할 수 없었다. 재밌다. 그리고 후반에는 조금 눈물을 흘렸다. 혼자 살아가면서 가족이라 생각하고 가족이라 받아들였던 존재를 잃는 그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그 가족을 위해 마지막에 한 행동은 참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족의 존재를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을 끊어낸다는 것이.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조금 생기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한편으로는 참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p.215 에리카는 마지막 인간이었지만 마지막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기적 같은 순간은 지나가고, 이제 다음 기적이 찾 아와 짧은 찰나를 새롭게 빛낼 차례일 뿐입니다. p.207 "뷸로 에리카가 마지막 계시를 받은 곳이지. 한때 우리가 부모 없이 태어나던 곳이기도 하고. 거기서 뷸로 에리카는 우리가 스스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며 그곳을 영원히 멈춰 버렸단다." #라스트사피엔스 #해도연 #자음과모음 #네오픽션 #서평 #서평단 #SF #도서추천 |